3월 9일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가 0.73 퍼센트 근소한 차이로 승리하였다. 백척간두 낭떠러지에 섰던 대한민국을 구하는 그루터기를 마련하였다. 1950년 6.25남침으로 한반도 끝으로 밀리다가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여, 자유세계 방어의 교두보를 확보한 상황과 흡사하다. 2014년 귀순해온 김국성 전 북한정찰총국 대좌는 BBC 인터뷰, 펜엔 마이크 인터뷰를 통해서 북한 정권의 80년 가까운 적화통일 전략이 성공했다고 증언하였다. 남한의 대북 정치예속화가 되었고 15만 명의 북한 간첩이 활동한다고까지 밝혔다.
3월 9일 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교착상태에 빠진 한일관계도 정상화할 전환점이 되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관계가 지금이 최악이라고 야단들이지만, 그 책임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 위해 반일, 혐한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이 친일·반일 프레임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의도가 불순하였다. 일반 국민의 상호 인식이 최악이었던 게 아니다.윤 당선인의 대외정책은 미·중 패권경쟁과 신 냉전체제 환경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원칙을 추구한다. 해법은 한·미·일 협력 강화다
청년을 보면 그 나라의 미래를 알 수 있다. 정치·경제적 여건이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청년의 정신이 깨어있으면 그 사회의 장래는 밝다.청년의 특징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데 있다. 변화와 혁신을 좋아한다. 옳다고 생각하면 위험도 무릅쓴다. 그게 바로 인류가 발전해온 힘이다.일본의 식민통치 시기에도 도쿄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유학생들이 앞장서서 2.8. 독립선언을 발표하였다. 조국의 3.1운동에 불을 지폈다. 건국 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시작도 1960년 4월 19일 학생혁명이었다. 부정선거에 항거하여 학생들이 맨손으로 뛰쳐나와 정부와
민족의 설날이 지났다. 민주주의 탈을 쓴 독재가 무겁게 누르고 있다.코로나 팬데믹으로 온 세계가 갑갑하기만 한데 한반도는 더 한층 우울하다. 3월의 선택에 따라서는 북한처럼 아주 깜깜해질 수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세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이 무너지고 있다. 자식이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사회로 들어서고 있다. 문재인 정권 5년에 한국 사회는 집단 자살로 치닫고 있다.근본 원인은 문 정권이 김씨 세습 정권에 꼼짝 못 하는 데 있다. 평화를 위한다면서 북한 정권의 안위를 먼저 챙긴다. 북한 주민의 생존이나 자유는 안중에 없다.
유라시아대륙의 맨 끝에 위치한 한반도, 그 근대사는 매우 기구하였다. 주변 강국의 횡포에 무릎을 꿇었다. 중국의 조공체제 압박과 일본의 제국주의 야욕의 제물이 되었다.마젤란 함대가 1522년 세계 일주 대항해에 성공한 이후 동쪽 끝 변방이던 일본이 먼저 서양문명을 받아들였다. 그에 비하면 조선은 눈과 귀를 닫은 어린애와 같았다. 중국을 통한 육상 실크로드는 오스만 제국에 의하여 차단되었다. 항공기 등장 이전이라서 서양문명은 바다를 통해서만 도달하였다. 서양 함선 선장의 눈에 한반도는 보이지 않았다. 조선은 문명 중심에서 가장 먼 구
76년 전 11월 23일 신의주 학생의거가 일어났다. 해방 바로 100일째다. 해방군으로 진주한 소련군의 약탈, 방화, 폭행, 겁탈 등 만행과 북한 공산당의 실정과 횡포에 대해 주민과 학생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11월 18일 신의주에서 약 80리 떨어진 용암포 제일교회에서 소련군과 조선 공산당의 만행과 실정을 비난하는 시민대회가 열렸고, 공산 당국이 시민들을 공격 폭행하여 사태가 터졌다. 23일에는 신의주의 6개 중학교와 부근의 5,000여 명의 학생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섰다.학원 내에 첩자를 운영하던 소련군은 미리 기관총으로
직업공무원 제도는 대한민국의 귀중한 자산이다. 5·16 이후 박정희 정부가 정착시켰다. 6·25 전란을 겪으면서 한미관계가 매우 긴밀해졌고, 군 장교들이 미국의 제도와 기술을 가장 먼저 배웠다. 한국 사회에서 군 조직이 가장 엘리트 집단이 되었다. 인사관리, 조직관리, 행정기계화도 가장 앞섰다. 타자기로 문서를 작성하는 것도 군에서 먼저 시작하였다.5.16 군사정권이 들어서던 1961년은 건국 후 13년 되던 해다. 그 당시 직업공무원 제도는 걸음마 단계였다. 평생직업으로서의 공직자는 매우 드물었다. 철도기관사가 20년 근속하면 일
해방되고서도 오랫동안 우리는 국제사회에서 어깨를 펴지 못하였다. 경제가 좋아지고도 또 상당 기간 그러했다. 권위주의 군사정권이었고, 국민도 국제관행에 서툴고, 비열한 한국인도 많았기 때문이다. 정치 민주화 이후 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렀고 K-문화가 역동적으로 발전하자 외국인들이 꽤 호감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자신감 있는 MZ세대의 해외 진출은 눈부시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를 넘어섰고,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 지위에서 선진국으로 격상시켰다. UNCTAD 57년 역사상 처음 일이다.그런 나라가
광복회장이 역사 편 가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의 이름은 일본식 ‘원웅(元雄)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인 1944년 만주에서 태어났다. 부모가 독립운동을 한 공적을 근거로 광복회장이 되었다.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필부필부라면 세태에 따른 것이라고 하면 되지만, 광복회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독립운동가 자손인데도 일본식 이름을 쓰는 연유가 궁금하지 않은가?이번 8월 15일 광복절 행사에서 김원웅은 이틀 전에 녹화한 기념사를 영상으로 공개하였다. 녹화 현장에는 청와대의 탁현민도 참석했다고 한다. 이승만의 내각이 친일파 일색이었다고
대한민국은 지난 7월 2일 UNCTAD(유엔무역개발회의) 이사회에서 A그룹(개발도상국 그룹)에서 B그룹(선진국 그룹)으로 격상되었다. UNCTAD가 창설된 지 57년 만에 처음 일어난 지위 격상이다. 한강의 기적에 대한 공식 인증이다. 한국이 1996년 선진국 클럽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29번째로 가입한 지 25년 만이다.당초 한국은 UNCTAD의 개도국 지위를 활용하여 빈약한 국내 산업을 보호해가면서도 대외교역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박정희의 꿈은 ‘자력갱생’이나 ‘수입대체산업육성’에 매몰되지 않았다.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과 일본은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으로 특별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필자의 대일외교 10년 경험이라는 렌즈를 통해, 한국 사회를 식민지세대-해방둥이세대-586세대-MZ세대로 크게 나눠 분석해 보고자 한다.80년대 초 도쿄에서 술기운을 빌어서 속마음을 터놓던 자리에서 한 일본 친구가 “북한사람들이 떼를 많이 쓰는데, 한국 사람도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라고 도발해와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일본이 주변국보다 앞서 개명했다고 하지만, 역사적 만행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도 일종의 떼쓰기가 아닌가? 재일 한인에 대한 차별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1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 직전, 랠프 퍼켓 2세 예비역 대령에 대한 6.25참전용사 명예 훈장 수여식에 참석하였다. 그런 훈장수여 행사에 외국 정상이 참석한 전례가 없었다. 6.25 참전 당시 퍼켓 중위는 청천강 유역 전투에서 밀려드는 중공군에 맞서 싸워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킨 전설적 인물이다. 퍼켓 대령과 함께 양 정상이 무릎을 꿇고 찍은 사진 한 장이 정상회담의 의미를 극적으로 설명해주었다.1만7000여 자에 달하는 장문의 공동성명은 문재인 취임 이후 북한과 중국에 대한 지나친 경사로 헝클어진 한미동맹
손 마사요시(孫正義) 소프트뱅크 회장은 일본의 최고 부자가 되었다. 소수자(minority)에 대한 차별이 심한 일본 사회에서 조센징 3세로 태어나 고교를 중퇴하고 미국유학길에 올랐다. 캘리포니아 실리콘 밸리에서 사업을 일으켜 세계 굴지의 기업가가 되었다.그는 1990년에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였다. 사업을 잘하려는 방편으로 국적을 바꾼 것이다. 일본 국적이 아닌 외국 국적으로는 불편한 게 많기 때문이다.손 마사요시는 일본 국적 취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손’이라는 성(姓)을 지킴으로서 일본인이 아닌
지난 3월 23일 밤 제네바 유엔인권이사회는 북한인권결의안을 투표 없이 컨센서스로 통과시켰다. 북한에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systematic, widespread and gross violation of human rights)”가 자행된다고 거듭 지적하고, 북한 정권에 이의 시정을 강하게 촉구하고, 정책결정자의 책임을 추궁하는 내용이다. 2003년 이후 19번째 연속된 결의안이다.결의안은 EU가 초안을 작성하고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참여하여 43개국이 공동제안하였다. 1998년 취임한 김대중 대통
나치에 쫓기던 유대인의 끔찍한 비극---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그보다 더 절망적 상황을 북한을 탈출하는 동포들은 지금 겪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와 인권을 헌법의 기본이념으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 땅에서조차 마찬가지 비극을 맞고 있다.최근 강원도 고성 육군 22사단의 경계망을 뚫고 귀순한 북한 남성이 우리 군을 3시간 넘게 피해 다닌 이유가 ‘우리 군을 믿지 못해서’였다고 한다. 지난 2월 23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은 그 남성의 행적과 관련, “확인한 바에 따르면
2018년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문재인-김정은의 3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이때 재벌기업 총수까지 동행시켰다. 경제난국에서 헤어나려는 김정은에게 잘 보이려는 것이다.그런데 평양발 보도로 잠깐 나왔다가 사라진 기사 하나가 매우 재미있다. 이재용, 구광모, 최태원 등 네 명이 호텔의 한방에서 모여서 담소하면서 밤을 새웠다는 보도였다. 각자 배정된 방에서 따로 지내지 않은 것이다. 꽃뱀 작전을 경계한 것이 아닌가?전후 사정에 비추어볼 때, 자신의 기업을 지키겠다는 비장한 노력이다. 바로 옥류관 점심 행사 자리에서 북한 이선권
대북전단금지법이라는 희대의 시대 역행적 입법이 대한민국 국격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김여정의 협박 공갈 하명에 따르는 입법 조치였고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문재인 정권이 입으로는 민주주의자라고 외치면서 공산주의를 두둔하려는 독재집단임을 폭로하였다.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구 동독지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아본 곳은 어디였을까? 바로 RIAS(Radio in the America Sector, 미국 점령지역의 라디오 방송국)였다. 장벽으로 외부와 차단된 동독 사람들은 바깥세상을 알기 위해서 그 방송을 많이 들었다. 구 동독지
12월 10일은 인류역사상 매우 중요한 날이다. 1948년 유엔총회가 세계인권선언을 채택한 날이다. 이어서 유엔은 국제인권 규약들을 채택하고 인권개선을 위한 제도적 장치들을 만들어 노력한 결과 세계의 인권상황은 느리기는 하지만 꾸준히 발전해왔다. 동유럽 공산권은 1990년 전후 민주화되어 주민들의 인권이 회복되었다.그러나 중국, 쿠바, 북한 등 몇 나라는 아직도 대세에 역행하여 심각한 인권침해를 계속하고 있다. 국제사회가 문제를 제기하여도 막무가내다. 한반도에는 인권의 관점에서도 남과 북의 극단적인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흔히들 같은
경제학자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경험과 기억이 경제를 설명할 수 있다. 지난 10월 25일 작고한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통해 우리는 새삼 놀라는 것이 많다.필자가 대학생이던 1960년대에 일본의 경제식민지가 된다고 해서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데모에 참여했었다. 한국이 70~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룬 다음에도 삼성이 소니(SONY)를 능가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한국 대기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산업일꾼들의 노력과 희생을 저평가해서는 안 된다.한강의 기적은 20세기의 신화다. 독일이나 일본은
지난 개천절과 한글날 광화문 이승만 광장은 철저하게 봉쇄되었다. 500여 대 경찰버스를 이어붙여 ‘재인산성’을 쌓고, 1만여 명의 경찰병력이 이중 삼중 철제 펜스로 광화문 광장으로 가는 길을 막아버렸다. 어느 외신 기자는 “마치 평양에 간 것 같다”고 했다.그날 당국은 집회를 일절 허용하지 않았고, 집회와 상관없는 시민이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앞으로 가는 것도 막았다. 우리 헌법 제14조에 명시한 국민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박탈한 것이다. 이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문 정권은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