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대한민국은 러시아와 국교를 맺었다. 우리 민족 역사상 두 번째 수교이다. 첫 수교는 1884년에 맺어졌다. 그런데 첫 수교 후 재 수교까지 125년 동안 우리나라와 러시아의 관계에 대한 기록은 창고에 갇혀 있었다. 러일전쟁에 일본이 승리한 후 닥쳐온 식민 지배와 철의 장막을 둘러친 냉전 시대를 거쳐 오면서 생긴 공백의 시간 때문이었다. 소련이 해체되고 두 나라가 다시 수교하면서 1990년 이후 드디어 러시아의 문서보관소들이 열렸고 조선 후기와 대한제국에 관한 기록들이 속속 드러났다.그 중 가장 중요한 문서는 조선 주재 러
1.1992년에 개봉된 영화 ‘인도차이나’를 최근에 다시 보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 종전 이후 한동안 철저한 공산화로 그 내부 사정을 알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베트남 하면 여전히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 베트콩의 부비트랩 가득한 정글만을 떠올리고 있을 때 이 영화가 개봉되었다. 숨겨져 있던 금단의 지역의 문이 열리며 이전에 볼 수 없었던 베트남의 아름다운 풍경이 158분의 긴 시간 동안 펼쳐졌다. 또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여배우 카트린느 드뇌브(극중 인물 : 엘리안느)의 우아한 외모는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거기에
1917년 10월 혁명 후 러시아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제정 러시아의 부활을 꿈꾸는 백군과 공산주의 적군 사이의 전쟁이었다. 이 전쟁은 볼셰비키 공산주의들의 승리로 끝난다. 내전에 승리함으로써 러시아의 공산주의 혁명은 비로소 완성된다. 어쩌면 이 내전은 러시아가 공산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고비였을 수도 있다. 비록 남의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이었지만 그 과정과 결과가 우리의 역사와 여러 가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 중 그 전쟁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여러 문학 작품, 영화
1.아주 유명한 고전동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를 해보자. 선녀들 목욕하는 곳에서 옷을 훔쳐 그들 한 명과 결혼하여 살던 나무꾼은 아이 둘을 낳자 방심하여 아내에게 선녀 옷을 내준다. 그러자 선녀는 망설임 없이 아이 둘을 양팔에 하나씩 안고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졸지에 아내와 아이들을 잃은 나무꾼은 자신의 경솔함을 한탄하며 하늘을 우러러봤다. 그때 하늘에서 두레박 하나가 내려왔다. 선녀 아내가 보낸 것이다. 나무꾼은 냉큼 그 두레박을 타고 천상으로 올라가 처자를 상봉할 수 있었다.여기까지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해피엔딩을 좋아
서울 정동에 있는 중명전(重明殿)은 원래 덕수궁 안에 있던 전각이었다. 궁궐이 이리저리 찢겨나가던 과정에 중명전은 덕수궁 담장 밖으로 밀려나 지금은 그 존재조차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중명전은 벽돌로 된 2층 양옥으로, 전통 양식의 다른 궁궐 전각과는 그 모습이 전혀 다르다. 그래서 외관상으로도 덕수궁과 관련지어 생각하기 어렵다. 중명전은 수옥헌(漱玉軒)이라는 황실 도서관으로 지어졌지만 1904년 덕수궁의 대화재 이후 고종이 임시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 이때부터 중명전의 비극이 시작되었다.중명전은 을사늑약의 현장이다. 입구의 왼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