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댓글 여론조작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악성 범죄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 것이다. 주권행사 방해다. 이러한 방해공작으로 득을 본 자는 책임을 져야한다. 선거에 이용할 의도가 있었다면 그것은 디지털시대의 부정선거다. 민주주의를 독살한 것이다.본래 민주주의의 기원을 1215년 영국의 대헌장(Magna Carta)에서 찾는다. 국왕이라 하더라도 전쟁이나 과세를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절대권능을 제약한 최초의 약속이었다. 1776년 버지니아 권리장전과 미국독립선언은 모든 주민들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전제에
고르바초프는 공산주의의 한계를 깨닫고 1985년 개혁·개방 정책을 선언하였다. 그 결과 주변부의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1989년 도미노처럼 무너졌고, 소연방도 1991년 12월 해체되었다. 공산주의의 70년 실험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종주국 소련이 무너졌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의 김씨 세습정권이 아직까지 지탱해온 것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동유럽 공산권의 몰락과정을 숨죽이면서 분석한 김일성과 김정일이 외부정보를 철저하게 차단하고 폭압정치를 강화하는 대응책을 썼기 때문에 가능했다.정권은 그렇게 해서 유지되었으나, 주민의 고통은 오히려 가
동아시아의 대제국 중국의 이웃으로서 중국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성(identity)을 유지해온 나라로 대한민국과 베트남을 꼽는다. 자긍심을 가질만하다. 그러나 5천년 역사에서 중국대륙에 눌려 고난을 겪은 치욕의 시기도 있었다. 명분에 함몰되어 지세와 시세 판도를 잘못 읽고 멍청한 외교를 했던 때였다. 다시 그런 비극의 전철(轉轍)을 밟으려는 현실이 크게 걱정된다.모름지기 정권 담당자는 정권의 이해관계보다 국가의 큰 이익을 앞세워야 한다. 그것을 어기면 애국자라 할 수 없다. 허구적인 평화를 내걸고 반역집단의 이익에 봉사하려 한다면 오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성인이 아닌 다음에야 매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정도의 문제다. 유독 한국사회에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는 비판에 대하여, “나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약속을 못지킨 것 뿐이지”라고 받아넘겼다. 근대 이후 우리는 일본의 식민통치, 해방, 6.25, 4.19, 5.16과 같은 사회적 격동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한국인들은 아직도 민족적 차원에
“북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개발할 능력도 없다. 그래서 우리의 대북 지원금이 핵개발로 악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다. 북이 핵을 개발했다거나 개발하고 있다는 거짓 유언비어를 퍼뜨리지 마라. (만약 북에 핵이 개발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고 2001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공언했다. 그리고선 햇볕정책의 이름아래 막대한 혈세를 대북지원에 퍼부었다. 정상회담을 성사를 위한 4억 5천만 달러 송금, 금강산 관광에 대한 현금지불, 개성공단 적극추진으로 북한에 들어간 외화도 북한의 핵개발을 위한 재원으로 쓰인 것이다. 그 김대
나폴레옹전쟁 후 유럽 대륙은 민족국가 단위의 국제질서로 발전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 근대화과정에서 일본이 앞서 민족주의를 받아들여 국가건설과 제국주의 침략의 도구로 썼고, 피해자인 조선이나 중국도 독립투쟁과 국권회복, 그리고 국가건설의 원동력으로 삼았다.유럽 시민민주주의의 후발국들도 감성에 호소하는 민족지상주의를 졸업한지 이미 오래인데, 동북아 3국은 아직도 민족지상주의의 포로로 갇혀 있다.북한정권은 맑스·엥겔스가 주창했던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국제주의 이념을 김일성의 유일영도체계 수립 후에 팽개쳤다. 김일성의
지난달 8월 20일부터 금강산 면회소에서 남쪽의 89명, 북쪽의 81명의 초 고령 노인들이 전쟁으로 70년간 헤어졌던 이산가족들을 각각 2박 3일간 도합 12시간씩 만났다. 중앙일보는 “당첨된 이들에게는 상봉로또요, 생존자들에겐 희망고문인 셈”이라고 지적하였다.전혀 상봉을 못하는 것보다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국이 이루어낸 특별한 성과로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야만사회의 사고방식이다.우리 대한민국은 선진국으로 진입하였다고 하는데도, 아직도 억지와 떼쓰기가 통용되는 야만적 요소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이산가족
무릇 어느 나라든 국력이 쇠퇴하고 주민단합이 무너지고 시스템이 망가지면 망할 수밖에 없었다. 위대하던 로마제국도, 20세기를 뒤흔들던 소연방도 예외가 아니었다. 소연방의 마지막 지도자 고르바초프가 군사력 이외에는 소련의 실체가 엉망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과감하게 개혁·개방을 선언하였다. 그럼에도 공산당의 노멘클라투라의 기득권 고수와 석고화된 시스템 속에 허위보고가 만연하였다. 최고지도자 고르바초프가 발트 연안 3국의 분리움직임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얼마 전 김정은이 함경도 어랑발전소 공사장을 비롯한 사업현장들을 시찰하면서 “뻔뻔하
국가는 그 국민에게 과연 무엇인가? 현대 사회에서 국민의 위임을 받은 국가와 정부는 그 국민을 보호할 기본적 의무를 진다. 그런 관점에서 49년 전 KAL기 남북사건의 피해자들은 어떠한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서울행 KAL 항공기와 50명의 승객·승무원이 북한 간첩에 의해 북한으로 납치되었다. 당시 박정희 정부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66일 만에 북한은 39명을 돌려보냈다. 그러나 납치범을 제외한 11명은 아직까지도 억류되어 있다.그 피해자 가족 대표인 황인철 씨는 북한이라는 집단을 상대로 계란으로 바위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현한다면 마셜플랜과 같은 막대한 자금을 북한에 퍼부어 대한민국과 같은 경제번영을 이루게 하겠다고 어르고 있다. 평양이 맨하탄처럼 변하고 원산 명사십리 백사장이 초일류 관광리조트 시설로 들어차는 장밋빛 그림을 보여준다.과연 그렇게 될까? 불가능하다.핵심적 이유는 북한 전체주의정권의 폭압통치 때문이다. 주민들은 자신도 모르는 이유로 처벌받지나 않을까 항상 두려움에 떤다. 열심히 노력해서 상을 받는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친척이나 친구의 일에 연루되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24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앞 공개서한을 보냈다. 예정된 싱가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통보하였다. 이틀 전 한미 정상회담에서 귀띔조차 하지 않은 사실은 트럼프 정부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신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준 것이다. 북한의 김계관이 즉시 꼬리를 내리는 담화를 발표하여 재개 가능성은 열었으나, 문재인 외교로서는 대참사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가 만든 한미동맹의 위기다.본래 트럼프 정부를 괴롭히는 북핵위기는 북한이 속임수를 쓰면서 핵개발을 해왔고 이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고집하는 데서
4월 20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노재봉 전총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수호 비상국민회의’의 창립총회가 열렸다. 당초 4월 2일 9명의 인사가 조찬모임에서 대한민국의 현 시국이 심각하게 위험하다는데 공감하고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기로 한지 18일 만에 일어난 일이다.팬앤마이크가 4월 9일 35인 확대회의를 단독 보도하였고 의식 있는 시민들이 SNS를 통해 퍼 나른 결과였다. 4월 16일 아침 127명 발기인대회 후 3일 만에 열린 창립총회에는 3천명 가까운 애국인사들이 운집하였다. 마른 잔디에 불이 번지는 것 같았다. 한
참 이상한 일이다.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한국 좌파인사들은 일부러 외면하거나 문제 자체를 아예 부인하려 한다. 때로는 억지이론까지 만들어 낸다. 인권이 좌파의 이슈라는 국제사회의 상식에는 반대되는 현상이다.1990년대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많은 북한주민들이 한국을 포함한 자유세계로 탈출하였다. 그들이 북한의 인권침해 참상에 관하여 일관되게 증언을 하였고, 그 결과 유엔에서 북한인권문제를 주요안건으로 논의하였다. 노무현 정권시기인 2003년부터 2004년, 2005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북한인권 결의안 표결에 막상 한국정부는 기권하
3월 9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이 백악관을 방문하여 김정은의 북핵 포기를 전제로 미북(美北) 정상회담을 하자는 메시지를 전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5월까지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즉각 수락했다. 극적인 반전이다.작년까지만 해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인한 미북간 대립은 극에 달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불렀고, 김정은은 트럼프를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불렀다. 미국은 한반도주변에 전략자산 배치를 강화하면서 최악의 경우 선제공격 가능성과 김정은 정권의 교체설까지 흘렸다. 당장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남아연방은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헤이트) 때문에 1964년부터 1988년까지 24년간 올림픽참가가 금지되었다. 유엔의 회원자격도 정지되었고, 경제제재도 받았다. 국제사회의 이러한 제재압박에 드디어 드 클레르크의 백인정권은 백기를 들었다. 1994년 민주적 선거에서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과연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도덕적으로는 물론 한반도의 위기 해결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인가?문재인 정부는 김정은의 1월 1일 신년사의 평화공세를 즉각 받아들여 남북 고위급 회담을 열어 일사천리로 합의하였다. 김정은 신년사의 대남통일부분을
1992년 12월 22일 한국이 북방외교 종착점인 베트남과 외교관계를 수립한지 25년이 지났다. 당시 수교 교섭을 했던 필자는 베트남 외교부의 카잉 차관보에게 밝혔다. “앞으로 10년 안에 맞이할 21세기에는 중견국인 두 나라가 힘을 합쳐야만 하고, 이를 위해 양국은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베트남이 발전하려 한다면 한국이 도와야 하고, 한국이 발전하려 한다면 베트남이 도와야 한다. 그럴 경우 나쁜 인연이라도 인연이 있던 것이 인연이 없던 것보다 훨씬 낫다”고...이에 대해 카잉 차관보는 “베트남사람들은 현명하다. 과거에 연연하여
1991년 말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이 해체되었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으로 수립된지 74년 만에 수명을 다한 것이다. 인류사의 큰 실험은 끝났고, 미소 냉전체제도 끝났다. 소련이 보유했던 핵탄두가 미국을 능가하였고, 바르샤바조약 기구의 병력과 탱크가 나토군을 압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주저앉았다.철저한 비밀유지 때문에 외부에서는 알 수 없었지만 실제 소련사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각자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한 만큼 소비하는 이상사회의 꿈은 불가능하였다.인민들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전위조직으로서의 공산당은 봉사자가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