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국가와 정부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주인-대리인(principle-agent)’ 관계로 설명될 수 있다. 정권이 정부조직을 꾸린다. 그렇다면 정권이 국가의 ‘대리인’인 셈이다. 정권은 선거를 통해 국가경영을 일정기간 동안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다. 하지만 정권이 국가 그리고 국민 위에 위치할 수는 없다. 

한국의 후진적 정치의식과 문화로 인해 국가는 종종 정권과 호환된다. 정권이 국가이고 국가가 정권이다. 따라서 정권을 잡으면 자기 책임 하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만큼 위험한 것은 없다. 문재인 정부는 더욱이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신봉하는 좌파정부다. 대한민국이란 역사적 구조물을 헐고 다시 지을 요량이다. 그들 눈에 과거는 모두 적폐로 인식된다. 그 같은 논리대로라면  현재는 미래의 청산대상일 뿐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을 보자. 그는 1992년에 미국 4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0년 공화당 출신 레이건 대통령을 기준으로 하면 ‘12년만의 정권 교체’인 것이다. 절치부심했을 터이지만 그는 미국을 뜯어고치겠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미국의 전통과 가치를 존중하고 미국에 봉사하겠다고 했다. 국민의 지지로 백악관에 들어가지만 4년 임기동안의 백악관 임차인일 뿐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그는 재선됐고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면서 다양한 위원회를 설치했다. 대선공약집에서 신설하겠다고 한 위원회만 꼽더라도 ”일자리위원회, 적폐청산특별조사위원회, 개헌특별위원회, 을(乙)지로위원회, 국방개혁특별위원회, 성평등위원회 등” 17개나 된다. 큰 파장을 일으킨 원자력발전공론화위원회는 나중에 추가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 ‘위원회 공화국’이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이다. 
 

노무현 정부의 '위원회 공화국' 부활하나

집권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오만은 헌법을 오독(誤讀)해서이다. 우리 헌법 제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적고 있다. 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뜻을 규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국민이 주인된 권리를 일관되고 명확하게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국민의 뜻이 정치적 편의에 따라 ‘우상화’ 되거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수단화’될 수도 있다. 

프랑스 헌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프랑스 헌법 제 3조 1항은 “국가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국민은 대표자나 국민투표를 통해서 국가주권을 행사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주권재민을 선언하면서 그 행사방식을 구체적으로 ‘대표자와 국민투표’로 한정하고 있다. 광장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2항은 “국민의 일부나 특정 개인이 주권의 행사를 특수하게 부여받을 수 없다”고 적고 있다. 프랑스 헌법 기준에 따르면, 국체(國體)를 흔들 수 있는 각종 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은 그 자체가 위헌이다. 국민의 일부나 특정 개인에게 주권 행사를 특수하게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헌법은 권력남용을 견제하는 헌법적 안전장치를 갖췄다.  

정부의 공식 기구도 아닌 ‘자문위’에서 자문형식을 빌어 개정헌법의 골격을 제시하는 것은 저의가 았는 위험한 접근이다. 물론 개헌은 할 수 있지만 개헌을 한다고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내재적 금선(禁線)’은 넘지 말아야 한다. 즉 국가체제의 본질적인 부분은 고칠 수 없다. 예컨대 공화정을 왕정으로 바꿀 수는 없다. 국민의 기본권을 축소하는 개헌은 불가능하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개헌도 마찬가지다. 공개된 국회개헌특위 자문위원회 헌법개정 초안은 체제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다.


공식기구 아닌 자문위에서 개정헌법 골격하는 것은 위험한 접근

헌법전문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자유롭고 평등한 민주사회 실현’으로 대체했다. 제4조에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에서 ‘자유’를 삭제했다. 민주적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같은 수는 없다. 그렇다면 ‘통일지상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 경제분야는 더욱 심각하다. 개헌안 35조 2항은 ‘노동자를 고용할 때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기간의 정함이 없이 직접 고용하여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제35조 5항에는 ‘노동자는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조문이 추가됐다. 제36조 2항은 ‘노동자는 단체교섭권 및 단체협약 체결권과 대표를 통하여 사업 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마디로 비정규직 제도를 없애고 정리해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노조의 경영참여를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적 추세인 ‘노동시장 유연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개정안의 취지라면 기간제·파견제·하도급은 위헌(違憲)이 될 수밖에 없다. 경제는 우격다짐이나 구호로 돌아가지 않는다. 경제는 ‘생존’이 달린 문제로, 노동편향적인 헌법조항은 도리어 노동자의 밥그릇을 깰 수도 있다. 

자문위의 역할은 자문이기 때문에 헌법개정 초안은 구속력이 없다고 한다. 단지 참고사항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쉽게 넘길 일은 아니다. 신고리 원전 공사재개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구성된 ‘원자력발전 공론화위원회’도 자문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동위원회의 권고사항인 ‘원자력발전의 단계적 축소’는 그대로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헌법개정은 국가의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이다. 오는 2월까지 개헌안 확정을 추진 중인 정부와 여당은 ‘자문위 개헌안’을 참고할 것이라고 했다. 모골이 송연하다.

자문위원회를 통한 국정운영은 법치와 민주주의 경계를 넘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자문위원회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의 행태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2013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고용노동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 전교조가 해직교사를 조합원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전교조는 즉각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1·2심 모두 패소했고 현재 대법원에서 계류 중이다. 당시 법외노조를 통보만 했던 고용노동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과정’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한다. 노사관계와 권력개입·외압방지’ 관점에서 처분과정의 타당성을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노조 무력화를 위한 권력의 부당개입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부가 전교조 법외노조 문제를 조사하겠다는 것은 대법원의 판결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 정부 차원의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직권취소를 위한 준비 과정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민주주의의 생명은 견제와 균형이고 3권 분립이다. 법원의 판결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자문위 형식을 빌어 정부가 조치를 취하는 것은 3권 분립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다. 


무분별한 자문위 정치에 족쇄 채워야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 인적 구성을 보자. 친(親)노동 성향의 위원장을 포함해 10명의 위 위원 중 8명이 민간위원이다. 공무원 2명을 빼면 민간조직이다. 목적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편향적인 위원회를 만들어 법원에 영향을 주겠다는 것은 삼권분립의 금선을 넘은 것이다. 법외노조 문제는 대법원에서 법적 절차에 따라 판단하게끔 울타리를 쳐야 민주주의 질서가 교란되지 않는다.

자문위원회는 국가적 공식기구가 아닌 특수 목적의 한시적 임의조직이다. 그들에게 누가 완장을 채워 주었는가. 국민이 위임하지도 않은 막중한 사무를 이들 조직이 수행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국정 표류가 아니면 그 어떤 것이 국정 표류인가. 그토록 닮고 싶었던 프랑스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무분별한 자문위 정치에 족쇄를 채워야 한다. 유리한 것만 선별적으로 발췌하는 편의주의적 사고를 버리지 않으면 국가의 대계를 그르칠 수 있다. 어떻게 만든 대한민국인가.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키워드
#조동근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