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경 기자
조준경 기자

지난 17일 현직 교회 전도사인 최인희씨가 페이스북에 ‘지역도서관 자유우파도서 비치 캠페인’ 글을 올렸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립도서관 분기별 예산신청 기간을 이용해 자유우파도서를 신청하자는 취지다. 우파지식 보급을 위한 활동은 여러 방면에서 진행 중이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교장을 맡은 이승만학당 4기 교육과정이 출범했다. 이승만학당은 13회에 걸쳐 건국대통령의 정치·경제사상을 비롯해 대한민국 탄생 과정을 조명한다. 2018년 대한민국은 풀뿌리 우파운동이 한창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에 의구심을 나타낸다. 좌파 대통령이 뽑히고 포퓰리즘으로 나라가 결딴나게 생겼다. 그런데 한가하게 책이나 읽는 게 무슨 효과가 있냐는 반응이다. 그들은 좀더 격정적으로 무엇인가를 하길 원한다. 물론 그 심정은 공감한다. 하지만 우파는 과거 하찮다고 미뤄온 ‘풀뿌리’ 운동의 밀린 빚을 청산해야 한다. 좌파는 우파가 간과한 풀뿌리 운동을 수십년간 착실히 진행해왔다. 그 결과로 교육·문화예술계가 심하게 좌경화됐다.

풀뿌리 좌파운동 기원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가 내세운 ‘진지전(陣地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 공산주의자 그람시는 자본주의와 기독교 윤리가 견고히 자리잡은 서유럽에서는 급진 공산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시민사회 지식, 도덕, 문화적 헤게모니를 서서히 붕괴시키길 원했다. 그래서 장기전 위주의 진지전 개념을 창안한다. 한국 좌파들은 운동권 시절부터 '진지전'을 받아들여 사회 각계각층에 침투했다. 그들은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모든 구멍을 찾았다.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공격을 천천히, 일관성있게 퍼부었다.

그 결과로 한국 교육계는 전교조라는 곰팡이가 슬었다. 전교조는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고 경제성장의 업적을 폄훼하는 사상을 학생들 머리속에 주입했다. 그 학생들은 사회로 쏟아져 나와 언론계, 법조계로 진출했다. 문화산업 종사자들은 좌파작품을 해마다 영화화해 좌파의 자연적 재생산 구조를 만들고 있다. 2016년 후반부에서 작년 상반기까지 이어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그 뒤를 이은 좌파정권 출범은 어느 한 순간 급작스러운 반란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좌파로서는 수십년간 씨 뿌리고 가꾸어 결실을 거둔 ‘위대한 승리’인 셈이다.

2018년 대한민국의 우파는 거의 모든 참호와 토치카를 좌파에 내줬다. TV를 켜면 언론은 연일 '문비어천가'를 낭송한다. 분기별로 개봉되는 영화마다 역사를 왜곡하고 좌파 이념을 확산시킨다. 우파는 이제 눈치를 보고 살아야 되는 소수로 전락했다. 그나마 잔존한 우파세력도 세월의 물결을 타고 역사 뒤편으로 퇴장 중이다.

빼앗긴 진지를 되찾는 일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급한 돌격만이 능사는 아니다. 참호를 파고 콘크리트를 세우듯이 실제적이고 생산성 있는 일을 차분히 해 나가야 한다. 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전투’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역도서관 우파도서 비치 캠페인과 같은 지식보급 사업은 우파가 기댈 수 있는 엄폐물을 세우는 ‘미래를 위한’ 작업이다. 올바른 지식을 편재시켜 우파시민을 양성해야 한다. 지식은 많이 보고 들음에서 난다. 좌파들처럼 재미있고 파격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문화 콘텐츠는 장시간에 걸친 지식 축적으로 빚어내는 결정체다.

우파 한사람 한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상대방을 또 다른 우파로 만드는 교육자가 돼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많이 읽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시장경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도서관에 책을 신청하는 일은 하찮은 일이 아니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사람을 비웃어선 안된다. 오히려 더 작은 일을 지속적으로 찾아야 한다. 좌파는 이를 깨치고 그냥 지나칠법한 사소한 부분도 빨갛게 물들이고 있다. 얼마전 우리은행 인공기 달력 사태도 그와 비슷한 경우다. 구한말 지식인 윤치호는 ‘작은 것을 멸시하고 자신의 수단과 능력을 넘어서는 일을 벌이는 버릇’을 가진 한국인들을 비판했다. 윤치호 아들이 운영하던 개성 농장에서 조선 젊은이들이 80전을 받고 풀베기를 안하겠다고 버텼다. 그 사이 중국인 노무자들이 일자리를 모조리 차지했다. 우파 스스로 이런 '허명(虛名)'을 좇는 버릇은 없나 반성해 보아야 한다. 나무 한 그루 키울 줄도 모르면서 수천 그루를 한꺼번에 심겠다는 말은 궤변이다. 우파는  더 헌신 해야한다. 누군가 하겠지하고 팔짱만 끼고 있어선 안된다. 작은일이 하찮다고 뒷짐지면 안된다. 폼만 잡고 있어선 안된다. 우파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실질적인 일들을 경중을 가리지 않고 바로 지금 실천해야 한다. 더 늦출 수 없다.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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