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대륙의 온대기후 지역에는 세계적인 강대국들 -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일본 - 이 위치하고 있다. 세계지도를 보면 서쪽의 영국부터 동쪽의 일본에 이르는 온대기후 지역에 위치한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국가들 중 폴란드와 대한민국만이 강대국의 대열에 들지 못 한 상태에서 두 개 이상의 주변 열강들에 의한 군사적 위협에 직접 노출되어 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국제정치학자 John Mearsheimer는 과거에는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 폴란드가 최악의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지만 현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한국이 가장 위험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폴란드인들이 독일과 러시아를 상대하는 방식은 한국인들이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태도와 매우 다르다. 전통적 강대국 중국에는 필요 이상으로 저자세이지만 신흥 강대국 일본은 너무도 쉽게 과소평가하는 한국인들과 달리 폴란드인들은 독일, 러시아 모두에 대하여 군사적 대결도 회피하지 않는 전투적인 국민들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의 초기 단계에서 폴란드는 독일과 소련의 군사적 침략에 맞서 정면대결을 선택했던 적이 있다.

폴란드인들의 강경한 태도는 과거 강대국으로서 역사적 기억 - 즉,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서기 1385년 - 서기 1795년) - 이 그들의 마음 속에 생생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즉, 폴란드인들의 기억 속에 독일과 러시아는 세계적 열강이기 이전에 자신들의 속국이었던 프로이센에 의하여 통일된 이웃나라 그리고 과거 자신들의 점령 하에 있었던 야만적인 이웃나라에 불과하다.

1870년에 성립한 독일 제국의 중심이었던 프로이센은 그 시작이 폴란드 국왕의 신하임을 자처하던 호엔촐레른 가문이 지배하던 공국이었고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까지 지속되었던 러시아 제국은 모스크바를 점령한 폴란드 국왕의 카톨릭 개종 강요에 반발하여 봉기했던 러시아 반란군 지도자 미하일 로마노프의 후손들이 지배하던 나라였다.

폴란드는 리투아니아와 연합을 시작했던 1385년부터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에 의하여 멸망한 1795년까지 유럽의 주요 세력이었다. 이 시기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가 연합 왕국의 형식으로 존립하던 야기에워 왕조 시대, 귀족 민주주의 시대, 폴란드 분할의 시기로 구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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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znaniak - własna praca na podstawie "Ilustrowany atlas historii Polski, wyd. Demart, Warszawa 2006",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9423686

 

1. 야기에워 왕조 시대 (서기 1385년 - 서기 1572년)

1226년 폴란드인들은 자국 북동부의 이교도 프루시인들을 제압하기 위하여 주로 독일인들로 구성된 튜턴 기사단을 자국 내로 불러들였다. 푸루시인들의 거주 지역을 50년에 걸쳐 정복한 기사단은 그들이 점령한 지역에 폴란드인들에게 임시로 거주를 승인 받았던 지역을 병합하여 자신들의 영토로 삼고 독일인들을 불러들여 정착시킨다. (프로이센의 기원)

한편, 튜턴 기사단 영토의 동쪽에는 또다른 이교도인 리투아니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은 과거 몽골인들의 영토를 점령해 나가면서 거대한 국가로 성장해 가고 있었으나 문화적 수준은 높지 않았다. 튜턴 기사단은 리투아니아는 자신들의 적수가 되지 못 한다고 보고 이들의 영토를 정복하기 위하여 전 유럽에서 기사들을 모집하였다.

존망의 위기에 처한 리투아니아는 996년 폴란드의 국왕 미에쉬코 1세가 카톨릭 국가 체코의 공주 도브라바와 혼인을 맺는 과정에서 카톨릭을 수용하면서 로마 교황청과 우호관계를 수립한 결과 독일인들의 정복 대상에서 벗어났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였다. 한편 폴란드인들은 튜턴 기사단과 리투아니아를 동시에 적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같은 슬라브족인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연합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두 나라의 귀족들은 1384년 당시 24세였던 리투아니아의 대공 야기에워 (Jagiello)와 폴란드의 왕위 계승자였던 12살 소녀 야드비가 (Jadwiga)의 혼인을 통하여 두 나라를 공동통치하기로 하고 양국의 왕위를 차지한 야기에워가 다스리던 리투아니아는 카톨릭을 수용하기로 합의하였다. 1385년 야기에워는 국왕, 야드비가는 왕비로 즉위하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이 성립되는데 이 시점부터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경제적 번영을 누리면서 유럽의 열강으로 부상하게 된다.

가난하고 야만적인 국가의 군사적 재능이 뛰어난 남성 지배자와 부유하고 문화 수준이 높은 국가의 현명한 여성 지배자의 결합은 1385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연합, 1469년 카스티야와 아라곤의 연합 - 스페인 제국의 시작 - 과 같이 성공적인 사례들이 많다. 즉, 온달 장군와 평강 공주의 설화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춘향전이나 신데렐라 이야기는 소설 또는 동화에 불과한 것이다.

폴란드는 튜턴 기사단에 의하여 바다로의 진출이 봉쇄되어 있었는데 리투아니아와의 연합을 통하여 발트해와 흑해 양쪽 바다로 진출하게 되고 리투아니아는 대공 야기에워가 문맹일 정도로 문화적으로 낙후되어 있었으나 폴란드의 영향 하에 급속도로 문명화되기 시작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모두 서유럽과의 자유로운 무역이 가능하게 되자 양국의 경제, 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410년 야기에워의 영도 하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이 튜턴 기사단을 그룬발트 (Grunwald)에서 격파하고 1466년에는 튜턴 기사단이 점거하고 있던 과거 폴란드 영토를 회복하였으며 튜턴 기사단장은 폴란드 국왕의 신하가 되었다.

1525년 튜턴 기사단장 알브레히트 호엔촐레른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에 대항하다가 패배한 후 마르틴 루터의 가르침에 따라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하고 튜턴 기사단을 해체하였다. 알브레히트는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맡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당시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1세의 신하임을 자칭하면서 과거 기사단의 영역을 프로이센 공국으로 선포하였다. 이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은 스페인, 프랑스 등과 함께 유럽의 주요 열강으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폴란드인은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Nicolaus Copernicus: 1473년 - 1543년)로 세계 최초로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였다. 이 시대 폴란드에는 스페인에서 종교 재판을 피해 망명한 유대인들도 많았고 프로테스탄트 신자들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었으나 종교전쟁은 없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대인들과 프로테스탄트들이 카톨릭 교회에 귀의하는 현상이 발생하여 현재의 폴란드는 유럽 내 대표적인 카톨릭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야기에워 왕조의 마지막 국왕 지그문트 2세는 1569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귀족들의 특권을 동일하게 하고 두 나라를 완전한 하나의 나라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으로 재편하였다. 문화 수준이 높은 폴란드가 넓은 영토를 가진 리투아니아보다 우위에 있던 내부 관계를 양자가 대등한 관계로 변화시켜 가려고 했던 것이다. 아들이 없던 국왕이 사망하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의 귀족들은 지리적 중심지인 바르샤바에 모여 선거를 통하여 국왕을 선출하기 시작했다.

16세기의 폴란드는 러시아를 제외하면 유럽 내에서 가장 큰 영토를 보유하고 있었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모두 이룬 유럽의 모범국가였다. 적어도 당시의 폴란드인들에게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은 경제적 번영과 종교적 자유를 모두 가져다 주는 축복 받은 곳이었다. 심지어 과거 튜턴 기사단이 지배했었던 호엔촐레른 가문 치하의 프로이센 공국의 주민들도 항상 폴란드인들을 부러워 하며 자신들도 완전한 폴란드인이 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17세기 절대왕정 시대에 접어들면서 유럽 대륙에 우수한 자질을 갖춘 전제군주들이 나타나게 되자 귀족 민주주의 하의 폴란드는 상대적으로 수세에 몰리게 되었다. - 재벌 기업의 오너 체제와 전문 경영인 체제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18세기에는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에서 예카테리나 2세, 마리아 테레지아, 프리드리히 2세 등의 계몽군주들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자신들의 이익 추구에 몰두하는 귀족들이 지배하던 폴란드는 위 국가들에 의하여 망국의 비운을 겪게 된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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