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주화 금·은 함량 줄이는 방식으로 화폐가치 떨어뜨려
디오클레티아누스, 최고임금과 가격 상한제 실시 칙령…'공공선' 명목
시장, 판매 물품 희소로 결국 칙령 취소…6년 지나서야 물가안정

고대 로마 시민들은 지폐를 불신하였고 금화나 은화가 아닌 종이로 된 화폐를 돈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통치자들은 남의 눈에 띄지 않고도 지폐를 더 찍어내는 방식으로 화폐공급을 늘리는 것이 차단되어 있었다.

그러나 로마 황제들은 곧 기발한 수단을 찾아내었다. 그들은 영토 안에 주화들을 회수했는데 주화를 보수한다는 명분이었다. 그리고는 주화의 일부를 깎아내거나 값이 떨어지는 다른 합금을 섞는 등의 여러 방법으로 원래의 액면가를 변경하지 않고도 주화의 은 함량을 줄였다. 그들은 이렇게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로마의 통화공급에 은화를 더 많이 추가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네로(Nero) 황제로부터 시작되어 그 후계자들에게서 더 심해졌다.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 황제 때에는 로마의 표준 은화인 데나리우스(denarius)의 가치는 이전 시기 가치의 1/10로 줄어들었다(역주: 최악의 기독교 박해자로 알려진 디오클레티아누스는 황제는 1,000여개의 물품과 여러 직업에 대해 최고가격을 지정하여 인플레이션을 잡고자 하였는데 수요-공급 원리에 무지한 채 경제흐름을 권력으로 지배하려고 하였다. 그는 로마 제국이 4황제 통치로 나누어지는 이른바 Tetrarchy의 시대를 열었다. 나중에 콘스탄티누스가 이를 다시 통합해 로마제국으로 회복한다).

이에 따라 “인민의 벗”(friend of people)이라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서기 301년에 모든 종류의 물품에 대한 상한가 및 모든 직업에 대한 최고임금을 설정하는 그의 유명한 칙령을 발표했다. 대표적 예를 보면, 갈은 콩은 100, 갈지 않은 콩은 60, 말린 강낭콩은 100 데나리우스였다. 수의사의 동물의 발굽 손질은 한 마리당 6 데나리우스였다. 수의사가 동물의 머리에서 피를 짜내는 일은 한 마리당 6 데나리우스였다. 작가들이 이류급의 글을 쓰는 데는 100행의 글 당 20 데나리우스가 최고가격으로 지정되어 그 이상을 받지 못하게 하였다.

칙령을 도입하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포고문은 오늘날의 정부의 훈계들을 아주 많이 담고 있다:

“우리는 인류에 대한 배려없이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무제한적이고도 광포한 탐욕을 견제해야 한다.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배려하지 않는 이러한 탐욕은 극도의 궁핍 속에 있는 사람들의 부(富)를 약탈하고 있다. 인류의 보호자인 우리는 정의(justice)가 심판(arbiter)의 자격으로 개입을 해야 하며, 그리하여 인류 자신이 제공할 수 없는 해결책이 우리의 선견지명에 의해 모든 사람의 보편적 삶의 증진을 위해 적용되어야 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시장에서는 무절제한 가격들이 너무나 도처에 만연해 있어서 이익을 얻으려는 무제한의 욕망은 공급을 풍부하게 늘린다고 완화되지 않는다. 일반의 번영을 막고 제 이윤을 얻는 것이 늘 목표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 전 국민을 완전히 만족시킬 수도 있는 엄청난 부를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한 재물을 장악하고 엄청난 몫을 차지하려고 한다. 보편적인 휴머니티에 대한 우려로 인해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탐욕에 제한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공공의 복리를 남몰래 공격하는 모리배(profiteers 謀利輩)들은 상품의 가격들을 후려치기 때문에 군인은 한 번의 구매로 군인은 자신의 봉급 및 상여금을 다 뺏길 정도이다(역주: 당시 로마 병사들에게는 현물로 급여를 지불하고 그 대금은 군인의 급여에서 공제했는데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군인의 급여 및 상여금이 몇몇 물품 대금만으로도 다 날아갔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이 점을 언급하면서 제 이득만 챙기려는 장사치들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우리는 고물가의 폭력이 도처에 있을 때 탐욕이 우리의 입법으로 통제되도록 최고가격(maximum)이 설정되어야 함을 선포했다. 그것이 잘 집행되게 하기 위해 누구든지 이 법규를 위반하는 자는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나중에 팔아먹겠다는 탐욕으로 이 법을 위배하여 물품을 구입하기를 모의하는 자들 또한 사형에 처할 것이다. 또 시장에 이미 나와 있는 제 물건들을 이 법 때문에 회수해야겠다고 여기는 자들 또한 사형에 처할 것이다.

우리는 공공선을 위해 제정된 법이 순종과 유념으로 지켜지도록 모든 자들의 충성을 촉구하노라.”

누군가 사람들로 하여금 최고가격으로 거래하도록 강제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디오클레티아누스였다. 그러나 문명화된 세계의 절대 황제이자 수많은 비밀경찰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역전의 장군인 그는 곧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후, 시장에는 팔려고 내어 놓는 물품이 아무 것도 없게 되고 모든 물품은 엄청나게 희소해졌기 때문이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가격을 지정한 그의 칙령을 취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가가 마침내 안정된 것은 정부가 금은에 다른 물질을 섞어 통화를 공급하는 짓을 멈춘 서기 307년이었다.

저자) Murray N. Rothbard

머리 로스버드(1926-1995)는 국가의 문제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한 무정부적 시장주의자이다. 공권력, 화폐발행권 등 정부 독점이 자유의 실질적 위협이며 재산권 보호가 자본주의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인간, 경제, 국가』(Man, Economy, and State, with Power and Market. 1962), 『자유의 윤리』(Ethics of Liberty. 1982) 등의 저서를 남겼다. 위 본문의 원전은 “The Edict of Diocletian”(1950), 『Faith and Freedom』 (vol, no.4)이다.

역자) 김행범 (부산대학교 교수)

원문) https://mises.org/library/edict-diocletian-case-study-price-controls-and-inflation

자유와 시장경제에 관한 더 많은 글을 「미제스와이어」(www.mises.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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