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반칙 없는 원칙과 상식" 말하던 김정호 의원이 공항에서 저지른 반칙
‘나는 내 스스로 관등성명을 밝힐 만큼 초라한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누구든 자기 얼굴만 봐도 귀한 신분의 인격자임을 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
현 집권세력, 힘없는 자를 돕는 데는 관심 없고 민초들을 짓밟으며 권력감을 만끽하고 있지 않은가
앞으로 공항 신입직원의 오리엔테이션에 국토위 소속 국회의원 얼굴 외우기가 필수과정 되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25세의 청년으로 조선에 와서 40년간 선교활동을 하면서 고조선부터 대한제국까지의 한민족의 역사를 저술하고 성경 번역, 한-영 사진 편찬, 그 외에 무수한 영역, 국역 업적을 남긴 캐나다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은 그의 1888년-1897년 조선체류기 Korean Sketches (최근에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출간 됨)에서 “조선에서 두발로 직접 걷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 행동에 속했다”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서양에서도 옛날에, 말 탄자와 걷는 자의 신분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에서처럼 자기 발로 걷는 자의 설음이 심한 데가 있었을까? 하기는 중국이나 이슬람 국가에서는 더 심했을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조선에서 자기 발로 걷는 사람에게 보행자의 ‘권리’는 없었다. 가마 탄 나으리나 말 탄 고관은 보통 ‘물러커라! 아무아무(대개 성명보다는 관직명) 대감 나가신다’라고 외쳐대면서 운 나쁘게도 마침 그 길을 지나던 보행자를 몽둥이로 후려치는 시종을 앞세우고 길에 나타났다. 몽둥이에 맞는 보행자의 죄는 높은 분이 나타나는데 번개같이 길 가에 꿇어 엎드리지 않은(못한) 것뿐이었다. ‘나도 길을 걸을 권리가 있다’는 따위의 항의는 팔다리가 모조리 부러질 각오가 없으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해주 목사(牧使)가 게일 선교사에게 억지로 붙여 준 포졸들은 “[물러커라!] 한마디로 우리[선교사 일행] 앞길의 모든 사람들을 쓸어버렸다 . . . 행차를 알리는 그들의 목소리는 멀리까지 찌렁찌렁 울려 퍼졌고, 운 없게도 자신들이 제왕의 행차 길에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들은 혼비백산 도망치느라 난리였다. 제발 그러지 좀 말라고 수없이 타일러 봤지만 헛수고였다. 내가 뭐라 할라치면 그들은 알겠다면서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절을 하고는 곧바로 눈에 띄는 촌사람들을 모조리 후려갈기며 내쫓았는데, 입에는 담뱃대를 물고 [서양 귀신] 구경 좀 해보려고 나왔던 이 시골 사람들은 상투와 누비바지가 너덜너덜해져서 쫓겨나기 일쑤였다. . . . 결국 [포졸들]에게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게일 선교사는 포졸들에게 선물을 주고 헤어졌다고 한다. 조선의 민초들과 친해져서 그들을 기독교의 품으로 끌어들이고 싶었던 여러 서양선교사들의 회고록에는 이런 포졸 또는 하인들에게 서민들을 후려치지 말라고 사정을 하고 꾸짖고 해도 소용이 없었던 경험담이 나온다.

그러니까 조선에서는 양반이 하급자나 평민에게 자신의 관등성명을 스스로 밝히는 일은 자신의 품격을 낮추는 일이었다. 양반은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하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지위를 들먹이며 서민들을 겁주게 했던 것이다. 벼슬아치들의 얼굴이 신문에 실리지 않았던 그 시대엔 지위 부풀리기나 사칭(詐稱)도 빈번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하인이 똑똑해야 양반이 양반 행세를 한다’는 말도 있었다. 하인들은 자기가 모시는 대감의 정확한 관직도 밝히지 않고 “보면 모르느냐?”로 주변 사람들의 기를 죽이며, 실제보다 훨씬 높은 지위인 것 같이 자세(藉勢)를 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신분증 제시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 유전자에 각인된, ‘나는 내 스스로 관등성명을 밝힐 만큼 초라한 사람이 아님’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번에 신분증을 지갑에서 꺼내서 보여주기를 거부한 김정호 의원은 국회의원 당선 인터뷰에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원칙과 상식대로 의정활동을 하고싶다”고 포부를 천명했다는데 공항에서 자신이 국토위 소속 국회의원임을 밝히면서 정상적인 신분증 확인 생략이라는, 특별대우를 강요하는 반칙을 범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면 공항에서 탑승객들의 신분증을 받아 쥐는 1초 동안에 정교하게 위조된 신분증을 가려내지 못하면 문책을 당하는 힘없는 말단 직원들이 국회의원에게 모욕과 갑질을 당하지 않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김정호 의원의 전력은 잘 모르지만 그는 젊은 시절에 보행자의, 말단 직원의, 설음을 당해보지 않았을까? 나의 짐작으로는 그가 그런 설음을 분명 당해 보았는데, ‘나는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이런 수모를 절대 끼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대신 ‘나는 다음에 출세해서 힘없는 하급자들의 기를 죽이고 마구 닦달해서 이 원한의 응어리를 풀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아닐까? 만약 그랬다면 그 응어리가 완전히 풀리기 위해서는 힘없는 하급자가 몇 명이나 필요한 걸까?

사실, 요즘 집권세력들을 보면, 그들은 아무도‘권세 없는 설음’을 당하지 않는 나라를 만든다는 ‘이념’(또는 신화)을 기치로 이 사회의 모든 불만세력을 규합해서 정권을 쟁취했는데, 이제 집권을 하니까 힘없는 자를 돕는 데는 관심이 없고 기득권층 파괴만 일삼으면서 사실상 자신들이 힘없는 서민들의 압제자가 되어 민초들을 짓밟으며 권력감을 만끽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이 진정 약자를 생각한다면 약자들에게 독이 되는 정책을 그렇게 죽도록 고집하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민중의 적이며 착취자로 규정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기득권층은 사회의 번영과 발전에 공헌이 있거나 없거나, 나라의 존속과 안녕에 필요하거나 하지 않거나, 모조리 난타를 가하고 있다. 그 옛날, 나으리의 권세를 업고 길가는 죄 없는 행인을 무차별로 후려치던 포졸들처럼.

선진국민들은 신분증 검사 같은 것은 번거롭더라도 그것이 무임승차, 또는 침입자를 막아서 정당한 댓가를 치르는 사람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기꺼이 응한다. 그리고 소지품 검사는 흉기나 유해물질의 반입을 차단해서 검사를 받는 모든 이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기에 선선히 협조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국민의 다수는 누구든 자기 얼굴만 봐도 귀한 신분의 인격자임을 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분증 확인을 받는 행위가 자존심 상하고 불쾌한 것이다.

아무튼 앞으로는 공항 신입직원 (또는 파견인력)의 오리엔테이션에 국토위 소속 국회의원 얼굴외우기가 필수 과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국토위 소속 의원과 외모가 닮은 납치범을 공항 직원이 통과시켜서 항공기 공중납치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증가하지 않겠는가?

우리도 이제 우리 안의 신분증 제시 거부감 DNA를 유전자가위로 잘라내고 나를 포함한 모든 입장객, 관객, 승객을 보호하는 신분 확인, 소지품 검색에 선선히, 기분 좋게 응하는 DNA를 이식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려면 우리사회가 훨씬 명랑하고 투명한 사회가 될 터인데….

서지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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