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밤에 전화기를 들고 “나 신현확이다. 몇 사단장이냐. 지금 어디 있느냐. 지금 사단 주둔지냐” 그러자 “아닙니다. 지금 서울 가는 길목입니다” 이래. 그래서 “왜 사전승인 없이 이동하느냐. 지금 최규하 대통령이 나하고 여기 같이 앉아 있다. 국군 총사령관의 지시 없이 왜 움직이느냐. 본대로 돌아가라. 이건 대통령의 명령이다”

[편집자 주] 이 내용은 지난 2007년 4월 작고한 고(故) 신현확 국무총리의 육성증언 녹음테이프 내용이다. 신현확 총리는 1979년 10.26 당시에는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1980년 5월까지는 국무총리로 재직하며 10.26과 12.12, 5.17과 5.18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광풍과도 같았던 격류의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 와중에 신현확 총리는 대통령 시해라는 초유의 비상사태를 맞아 “유신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를 치러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이 정부에서 헌법을 개정하고 선거를 실시하며, 선거를 통해 구성된 민간정부에 정권을 이양한다. 그 직후 유신헌법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은 퇴임한다”는 시나리오를 확정했다.
이 와중에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와 결탁하여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통해 실권은 신군부에게 넘겨주고 자신이 명목상의 대통령을 맡겠다고 나섰다.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씨들은 혹시라도 신현확이 대권을 차지하려는 것 아닌가 착각하여 자신들의 집권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신현확 총리가 이끄는 과도정부를 공격했고, 학생들을 선동하여 “전두환, 신현확 퇴진”을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급기야 1980년 5월 17일 저녁, 최규하는 결국 신군부가 요청한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해산 ▲주요 정치인 체포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로써 신현확 내각은 총사퇴했다. 최규하는 신군부 집권의 고속도로를 닦아준 것이다.
신현확 총리는 ‘현대사의 정리’ 차원에서 “나 죽거든 회고록을 출간하라”면서 구술증언을 남겼고, 기자는 이 구술증언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입수하여 월간조선(1999년 2월호)에 공개한 바 있다. 최근 들어 전두환의 5공 창출 및 광주사태를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어, 역사의 증언을 위한 차원에서 신현확의 육성증언을 다시 공개한다. 관련 내용은 신현확 총리가 남긴 구술증언을 녹취하였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중간중간에 기자가 박스기사 형식으로 해설을 붙였다. 분량이 길어 상중하 세 차례로 나눠 공개한다.

 

박정희 시해사건 이후 위기관리 내각을 이끄는 총리로서 새 헌법을 만들어 민간정부를 출범시키고, 정권을 이양하려 했던 신현확 총리. 그러나 최규하가 대권욕에 눈이 멀어 신군부와 결탁하는 바람에 내각 총사퇴를 하고 말았다.(연합뉴스 제공)
박정희 시해사건 이후 위기관리 내각을 이끄는 총리로서 새 헌법을 만들어 민간정부를 출범시키고, 정권을 이양하려 했던 신현확 총리. 그러나 최규하가 대권욕에 눈이 멀어 신군부와 결탁하는 바람에 내각 총사퇴를 하고 말았다.(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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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26 직후의 최규하, 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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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이 나서 그날 저녁에 당장 국무회의를 소집했어. 국방부에서 난리가 나고 격론이 나고 결국 그날 새벽에 박 대통령이 서거한 것도 확인하고 오고, 김재규를 체포하고 거지반 밤을 새웠지. 이튿날(1979년 10월 27일-기자 해설) 아침 8시에 국무총리 관저에서 비상회의를 열었단 말이야. 국무총리하고 나하고 내무장관, 법무장관, 그리고 국방장관, 참모총장 정승화, 이렇게 중심으로 관련된 사람들만 비상회의를 조직했단 말이야. “국가위기인데 대책을 어떻게 하느냐” 해서 당장 아침 9시부터 회의를 열었단 말이야.
그래서 일단 매일 아침 7시, 출근하기 전에 비상회의를 한다는 것을 결정하고 회의에서 논의할 내용으로 들어간 것이야. “위기관리 방안을 세워야 될 것 아니냐. 모두 의견들을 말해라” 이래도 당장 무슨 의견이 안 나온다 이 말이야. 한 4~5일 (회의를) 하는 동안 의견을 이리 내기도 하고, 저래 내기도 해서 종합안을 누가 만들어 냈느냐. 결국은 내가 전부 하는 입장에 서게 됐다 이 말이야.
최규하 씨는 대통령 권한대행이었고, 국무총리 겸하고 있으면서 그냥 듣고만 있는 입장이었어. 회의를 총괄하고 의견을 내는 것은 내가 종합을 하고 결론을 내리는 이런 입장으로 매일 비상회의가 진행되었어.>

(기자 해설-당시 신현확 총리가 비상회의에서 구상한 종합안은 국가 지도자의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 유신헌법에 의한 대통령 선거→헌법 개정→정권이양→유신헌법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 퇴임으로 간다는 기본 틀이었다.)

<그 회의체를 통해 만들어진 안을 가지고 전체 국무위원들 모인 자리에서 얘기를 했어. “비상회의에서 안을 만들었는데 의견이 어떠냐”고 물었어. 이것이 정부 안이 됐지. 이 안을 가지고 외국 계통에도 물어보고, 언론 의견도 알아보고, 정계 의견도 들어보고…. 이렇게 해서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예고하고 일주일만인가 발표를 떡 했지. 지금 정부는 이제 관리정부다. 그런 걸 선언하면서 “앞으로 관리정부로서 이래(이렇게) 해 나간다” 하고 발표하는 과정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한 것이지.>

(기자 해설-비상회의에서 검토된 안을 토대로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항은 1979년 11월 10일,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유신헌법에 따라 새 대통령을 선출하고, 새 대통령이 임기 전 빠른 시일내에 헌법을 개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국가 지도부가 정국운영의 기본틀을 이런 방향으로 정한 이유에 대하 신현확은 “현행 헌법에 위배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증언했다.)

<10.26 사태가 나고 나서 국가 위기관리의 기본 방향을 어떻게 가져가느냐 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됐지. 정당에서는 대통령이 궐위가 되어 서로 정권을 잡겠다는 입장이니까 여야가 동일한 경쟁적 입장에 설 수밖에 없었고. 이 위기를 국가적 차원에서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관점은 없었어. 그런 입장에 설 수 있는 것은 정부밖에 없었지.
그 때 정부에서 안을 세우되, 그러면 방안을 누가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문제는 아무도 몰랐어. 최규하 씨는 헌법규정에 의해 자동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지만, 그 양반이 외교관계만 일평생 전공한 사람이기 때문에 정치 분야나 국가 내부 관리나 경영, 경제 등등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자연히 내가 중심이 되는 것처럼 되었어.
내가 생각한 안은 위기관리 정부로 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기본방향은 유신정치는 철폐해야 되지만 경제성장 정책, 경제위주 정책은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이 두 가지 기본 입장에서 위기관리를 해 나가고, 그러기 위해서는 헌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새로운 헌법에 의해 정부를 구성하고 국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걸 1년 기한으로 해야겠다. 이런 아이디어를 만들어 냈어.
현행 헌법(유신헌법)은 대통령이 궐위가 되면 3개월 이내에 선거를 해서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는 강제규정이 있단 말이야. 그런데 3개월 이내에 헌법을 새로 만들어 대통령 선출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지.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헌법을 위반할 수도 없고. 그러니까 유신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통령 선출방식에 의해 일단 대통령을 선출해 놓고 (최규하) 권한대행이 출마하여 선거를 해서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는 것이 아니라 1년 이내에 헌법을 제정하여 신헌법에 의해 다시 대통령 선거를 시행한다. 동시에 구헌법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은 임기를 마치고 퇴직한다. 이런 안을 세웠단 말이야.
그런 안을 만들어 각계에 의논했는데, 당시 언론이고 학계고 우방들 의견이 “최고의 방안이다”라고들 했어. 그래서 내가 여야를 막론하고 당 대표들을 찾아다니면서 얘기를 했단 말이야. 모두 다 그 방안이 좋다고 납득했지.>

(기자 해설-국가 지도자의 공백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은 공화당의 김종필, 신민당의 김영삼, 재야의 김대중 씨에게 정권을 잡을 기회가 되었다. 3김 씨는 마음이 조급했고, 정부가 제시한 ‘1년’이라는 세월이 너무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 순탄할 것으로 예상되던 내각의 정국운영 프로그램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최규하 씨가 대통령 출마를 고사하고 나선 것이다. 이 장면에 대한 신현확 씨의 증언을 들어본다.)

최규하, “아이구 나는 못하겠습니다”

<자 그러면 누가 종전 방식(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에 의한 대통령 선출)에 의한 선거에 나가 정식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년 동안 개헌을 하고 관리정부를 이끌어 나가느냐, 이래됐단 말이야. 그러니까 모두 아무 말 안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제일 먼저 말했지.
“방법이 없지 않느냐. 대통령 권한대행이 지금도 관리정부 책임자인데, 유신헌법에 의한 대ᅟᅩᆼ령 선거에 출마해서 책임을 맡아야 되지 않느냐” 그렇게 얘기한 거지. 그러니까 최규하 씨가 “아이구 나는 못하겠습니다” 이러는 거야.
내가 “그게 무슨 얘기입니까. 못한다면 우짜자는(어쩌자는) 말입니까. 국가 위기를 당했는데, 그 위기를 당할 때 요 위치에 있었는데 우짜자고 못하겠다고 그러십니까. 책임을 완수해야 될 것 아닙니까” 이래 옥신각신하고 외의가 결론이 안나고 끝났지.
이튿날 또 회의를 열었는데 내가 “이거 결정짓고 나갑시다” 했더니 (최규하 씨가) “아이구 나는 못하겠습니다. 내가 그걸 어떻게 합니까” 이런 식이란 말이야. 내가 “어쩌자고 이렇게 합니까” 이런 게 며칠 갔어요.
그 동안 일각에서는 의견이 구구하게 나왔어요. 뭔고 하면 “최규하 씨 저 양반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가지고 관리내각을 이끌고 위기관리 업무를 완수해나갈 수 있겠느냐. 저 양반 성격과 지금까지 한 일과 모든 걸 볼 때 적임자가 아니지 않느냐.”
사석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내각 계통에서도 나오고 다른 계통에서도 나오고 했어. 나한테 그런 얘기하는 사람이 자꾸 생겨났다 이 말이야. 여러 사람이 나에게 몇 번을 와서 그런 얘기를 하갤래 “이것 보십시오. 내가 당신들 지금까지 하는 말을 눈치 못챌 만큼 바보도 아니고, 그걸 듣고도 모른 체 한 것은 당신들이 말하는 뜻은 ‘최규하 씨 가지고는 안 되겠으니 신현확 니가 해라’ 그 말 야니냐” 그랬단 말이야 허허허.
그런데 생각해 보시오. 이 사태가 왜 났느냐. 김재규가 박 대통령을 시해해서 이 사태가 났습니다. 국가 위기에 빠졌는데, 그러면 나보고 하극상을 또 한 번 하라 그 말 아니야. 내가 최규하 씨를 제쳐놓고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다고 치자. 국 누가 “이거 잘하는 짓이다. 저 사람 빋고 국가 위기관리 따라가면 되겠다” 이런 생각할 사람 누가 있겠느냐. 하극상 두 번 거듭해 가지고 나타난 결과를 잘된 거라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이제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국민이 다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정정당당하게 위기를 관리해 나가야 된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 불만한 점이 있고,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힘을 합쳐 위기관리를 해나가야 하는 입장에, 그런 얘기만 자꾸 하면 어떻게 하느냐. 이제부터는 그런 소리 절대 하지 마라.

등 떠밀어 최규하 대선에 내보내

이래 가지고 내 자신 (대통령) 하라고 하는 걸 막았단 말이야. 내가 야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거꾸러 알려진 거야. 그래서 이튿날 회의에 가서 내가 미리 몇 사람보고 “내가 이래 할테니까 당신들 그리 알고 회의에 임해라” 해놓고 또 얘기하니까 최규하 씨가 “아이구 내 이거 우째 하겠느냐” 이런단 말야.
지금까지 생각해도 아직 결심이 안 되면, 이 위기에 시간만 자꾸 허비하고 결정은 못짓고 이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고. 그래서 내가 “더 생각할라면 더 생각하십시오. 그러나 우리 회의체는 그렇게 하기로(최규하 씨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 결의해서 지금 이 순간부터 진행할 테니 그렇게 아시오” 이렇게 해버렸어. 다른 사람들도 “결의합시다” 이래가지고 최규하 출마한다고 결의해 버렸지. 자기(최규하)는 아무 말 안하고 있고. 그래 고마(그만) 결정해 버렸던 거야. 그래 하지 않으면 결정이 안 나.
그 양반이 결정을 못해. 나하고는 정 반대야. 그냥 우물쭈물하고, 결정을 못 내리고, 결단을 못 내리고, 판단을 못하고 전부 이런 식이니까 그렇다 이 말이요. 그래가지고 당선이 됐단 말이지. (통일주체국민회의) 선거 해가지고 정식 대통령 취임도 했지. 나도 그 다음에 총리도 되고, 그래서 정식 대통령과 정식 총리로서 진행을 해 나갔어.>

(기자 해설-대통령 중심제로 운영되는 나라에서 국가 지도자의 성격과 품성, 인간적 능력은 국가 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절대권력이 붕괴된 ‘과도기’의 국정운영이라는 과업을 책임진 최규하 대통령의 인간적 성품은 결국 여러 곳에서 신 총리와 격돌을 빚는 원인이 된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이나 대통령 출마를 둘러싼 암투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1979년 말에도 그런 갈등과 암투는 현실로 다가왔다. 고사를 거듭하는 최규하 씨의 등을 떠밀어 겨우 출마를 시켜 놓으니,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또 터져 나왔다. 공화당 지도자인 김종필 씨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내각이 마련한 ‘과도정부 출범’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이 문제를 담판짓기 위해 신 총리는 김종필 씨(공화당 고문이었던 김종필은 1979년 11월 16일 공화당 총재에 선출되었다)와 회동했다. 그러나 회동은 결렬되었고, 내각의 지지를 얻지 못한 김종필 총재는 대통령 출마를 포기했다.
1979년 당시 김종필 총재의 출마 포기는 김종필 총재 자신의 고독한 결단설, 정승화 당시 계엄사령관의 출마 포기 권유설은 알려졌으나 신 총리의 출마 저지 사실은 이때 처음 공개되었다.)

김종필 출마 저지 위해 담판

<그러고 나서 느닷없이 김종필 씨가 출마한다는 말이 공화당 내에서 돌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기 시작했어. 여기서 혼선이 일어났지. 유신정치의 핵심 대표인 김종필 씨가 출마하면 국민이 납득하지도 않고, 혼선이 일어나고, 정부는 무너지고, 나라가 혼란에 빠질 것이니 이 수습안도 무너질 것이고….
내가 안 되겠다 싶어 김종필 씨하고 1대 1로 담판을 했지. 장시간을 했어. 그래서 결국 (출마를) 못하도록 만들었단 말이야. 자기(김종필)는 그 때 (대권을) 잡고 봐야 된다 이런 의견이란 말이야. 그래서 그건 국가적 입장에서 안 된다. 합의가 되어서 자기가 (대통령 출마를) 그만둔 게 아니란 말이야. 아무리 얘기해도 합의가 안 돼. 그래서 결론을 내렸찌. “절대로 합의가 안 된다는 것이 우리 둘의 합치된 해석이다” 라고.
그러면 어떻게 하녀냐. 자기는 자기 마음대로 출마한다 그러고. 내가 “그쪽(김종필)에서 마음대로 할 것 같으면 나도 도리 없다. 국가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입장에서 나도 나 할 대로 하겠다”고 했어. 그러니까 “내 할대로 하겠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느냐” 그러더군. “무얼 뜻해도 좋다. 내 할대로 할 테니까 두고 봐라” 이런 상황까지 갔지. 그래서 결국은 그쪽에서 (출마를) 못하는 결과가 되었지.
우리 둘은 아주 상반되는 입장으로서 서로 섭섭하게 헤어진 것이지. 그것이 두고두고 “내가(김종필) 그 때 잡을 수 있었는데 당신이 못 잡게 한 것 아니냐”는 그런 취지가 그쪽(김종필) 계통 사람들에게서 표시된 적이 있단 말이야. 그러나 나는 개의하지 않았어. 도리도 없는 것이고.>

(기자 해설-신현확 씨 측근의 증언에 의하면 신 총리와 김종필 총재의 감정적 충돌은 상당히 깊은 것이었고, 불편한 관계가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감정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은 1990년 3당합당 이후였다. 당시 김종필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은 민자당의 대선 후보 쟁취를 위해 신현확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1990년 당시 두 사람의 회동 장면에 대한 신현확 씨의 육성증언이다.)

1990년에도 김종필 지원 거절

<사실은 1990년 겨울에 김종필 씨 계통의 현직 국회의원이 연결을 해서 “두 분이 서로 만나 섭섭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을 해소하도록 하십시오. 벌써 10여년 전 일인데 뭐 지금까지 그렇게 지내서 되겠습니까” 이런 제의가 왔었지.
그래서 “만나는 것은 좋지만, 다만 한 가지 미리 얘기해서 알고 나오도록 해야 되겠다. 그 말을 전한다면 만나겠다”고 했지. 뭔가 하면 내가 김종필 씨를 집권을 못 하도록 하기 위해서 반대한 일은 없다. 국가 위기관리를 위해서 그런 방향(김종필 씨의 대통령 출마)으로 나가면 위기관리가 안 되고, 국가가 위기에 빠지는 상태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 사태를 막으려고 한 것이지 김종필 씨 개인이 집권하는 것을 막을라고(막으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거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김종필 씨와 그 계통 사람들이 나에 대해 굉장히 섭섭하다고 생각할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적대시하는 것까지 종종 기회 있을 때마다 전해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국가 위기관리하려다 안 됐으면 그만이지 그 이상 나는 섭섭산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
저짝에서는 “김종필 씨는 내 감정을 풀도록 하기 위해서 그 당시 공화당의 당무위원으로 추천을 했다. 그런 데도 불응하고 공화당 탈당까지 했다” 이래 말하는데, 이것도 잘못된 이야기다. 나는 “공화당 당무위원으로 추천을 맏은 기억도, 받은 사실도 없다. 나는 관리정부로써 시종일관 나라를 관리하고 그것으로써 사명을 다하고 물러나겠다고 발표했고, 그것을 완수하기 위해 현직 국회의원을 자진 사임했다. 동시에 어느 당의 당적도 나는 이탈한다.
그건 왜 그러냐. 관리정부의 입장을 1백% 완수하기 위해서는 어느 당의 당원이 되어 가지고 어떻게 관리내각, 중간 입장에 서겠느냐. 그래서 내가 국무총리 취임하면서 국회의원까지 사임하고, 당적도 떠났는데 당무위원은 무슨 당무위원이란 말이냐. 이런 것을 명백히 전해라. 그러고 만나자” 했지.
그래 만나서 자기는 자기 얘기 다 하고, 나는 내 얘기 다 하고 해서 (감정을)해소를 했어요. 그 자리에서 이번 선거에 관해, 김종필 씨는 그 때 민자당의 대통령 후부로 출마할 생각을 가지고 그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어. (김종필 씨가)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그랬지. 도와달라고.
나는 우물우물 안 해. 뭐든지 원리대로 얘기하지. 나는 안 되겠다고 했어. 왜 안 되겠나 하면 지금 국내 사정과 정세를 전부 생각해 볼 때 박 대통령, 전 대통령, 노 대통령, 그리고 김종필 씨, 그러면 옛날 박 대통령과 김종필 씨가 5.16혁명할 당시로 한바퀴 돌아서 군인 대통령 세 분 돌아서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 거야. 지금 김종필 씨가 그 때 군인 김종필 씨가 아닌 거야 세상이 다 알지만, 그러나 한국이란 사회가 인식을 그래 안 한다. 여러 가지 판단하는 것으로 보아 민자당 후보가 되겠느냐. 지금 민자당 내부 구성이나 모든 움직임이나 판단으로 봐서 절 대 안 된다고 본다.
당신이 정치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앞으로 정권 못 잡는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거쳤으면 모르지만 지금 이 단계는 좋지 않은 것이다. 정세를 수렴하면서 그에 응하는 길을 찾아야지. 정치라고 하는 것이 국민의 생각이 어디로 흐르느냐는 것을 무시하고, 억지로 흐름에 역류해서 되겠느냐. 그런 것을 알면서 내가 듣기 좋게 “아 그러냐. 뭐 도와주겠다”고 말하면, 말하는 것은 쉽지만 내 속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것과 어긋나는 거짓말을 하는 것밖에 더 되겠느냐. 나는 “그래 하지 말라고(출마하지 말라고) 권유하고 싶다. 출마하면 혼란만 조장한다” 이렇게 얘기했다고.
그랬더니 그 분(김종필)은 대단히 달갑지 않지. 과거에도 그랬는데 이번에 또 그렇게 하니까. 그렇다고 내가 악의를 가지고 그런 건 아니다. 가능성 있는 후보 중에서 김종필 씨 당신이 인간적으로 못났다, 능력이 모자란다 그런 것은 전연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기초가 있고, 생각을 올바르게 가졌다 해도 그 시대의 흐럼에 알맞은 사람은 도리 없는 것 아니냐. 이렇게까지 설명을 했어. 결론적으로는 내가 본 것이 옳은 것이 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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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2.12 쿠데타, 격량의 한복판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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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해설-신현확 부총리는 1979년 12월 10일 국무총리에 지명됐다. 그러나 해일처럼 거대한 역사의 파도가 또 다시 과도정부를 강타했다. 1979년 12월 12일 밤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국무총리로 취임한 신현확 씨가 과도정부 내각 인선작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삼동동 총리공관(당시 청와대는 내부 수리 중이었기 때문에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된 최규하는 삼청동 총리공관을 사용하고 있었다)에서 최규하 대통령과 회의 중이었다. 12월 12일 밤 최규하 대통령은 어떤 조치를 취했으며, 신현확 총리는 무슨 역할을 했을까?
신 총리의 육성증언에 의하면 이날 밤 신 총리는 이동 중인 군부대 지휘관에게 전화를 걸어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에 의해 원대복귀”를 명령했다. 이 증언이 사실이라면 12월 12일 밤, 서울에 출동한 신군부 병력은 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한 반역 집단이 되는 것이다. 신현확 총리는 그 전까지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는 12.12 사건의 군 출동 저지 비화를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신현확 총리는 김영삼 정부에서 5.18 특별법에 의해 진행된 검찰 수사 당시 비슷한 내용을 진술했다).

<12.12는 군 내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파장이 굉장히 큰 것이고, 이것이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고, 군에서도 문제가 될 줄 다 알았지. 알았는데 전혀 (12.12를) 예견을 못했거든. 핵심 정보고 뭐고 모두를 통괄하고 있는 핵심부분(보안사)이 그 자체를 일으켰는데 어떻게 알 수 있느냐 이 말이야.
글데 이 사람들이 참모총장(정승화) 체포해 놓고 결재 받으러 왔단 말이야. 그날 저녁이 어쨌는가 하면, 새로 대통령이 취임하고 내각을 구성해야 한단 말이야. 내가 내각 구성하는 것을 최규하 대통령에게 지시 받아서 편성을 했지. 그걸 하는데 한 일주일 걸렸지. 프라자호텔에 방을 얻어놓고 (사람을) 연락해서 만나보기도 하고 이래서 내각을 편성해 가지고 최규하 씨하고 의논도 하고, 이래 진행해서 마지막으로 명단을 오늘(1979년 12월 12일) 저녁에 의논해서 결정짓자.
최규하 대통령이 청와대에 옮기기 전이란 말이야. 그래서 총리공관에 아직 살고 있을 때 밤 여덟시에 갔단 밀이야. 단 둘이 앉아서 조각 마지막 단계를 의논하고 있는데 전두환 씨 누구누구 장군 몇이가 뭐 결재 받으러 왔단 말이야. 그래서 얘기를 중단하고 “무슨 결재냐” 이러니까 “육군 총사령관(참모총장) 체포한 걸 결재 받으러 왔다”고 한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이게 무슨 소리냐. 너희가 너희 상관 참모총장을 어떻게 체포하느냐. 왜 사전 결재 안 받고, 문제 일으켜 놓고 사후결재 받으러 오느냐” 이렇게 됐지. 문제가 옥신각신 났는데 밤을 새우고 이렇게 된 거지.

“대통령 명령이다. 즉각 본대로 돌아가라”

그러나 문제는 점점 심각해졌다 이 말이야. 그러고 나서 정보에다 뭘 아라보라 지시했는데 들어오는 정보가 서울시내는 무슨 군부대가 어디를 점령했다 어쨌다, 국방부 어디서 총격적이 일어났다 어쩌고 저저고…. 뭐 사태가 이래 됐는데. 나는 최규하 씨 보고 “결재하지 마라. 결재하면 안 된다” 이랬어. 그리고 “너희 상관인 국방장관 결재는 왜 없느냐” 그러니까 “국방장관이 지금 어디 있는지 몰라서 연락이 안 됩니다” 이러는 거야. 그래서 “찾아오느라” 그랬어.
밤 두 시가 되고 (전두환이가) 몇 번 씩 “이래 이래 해 주십시오” “안 된다” 이런 식으로 가고 오고 하는 와중에 정보가 들어오는데 “어디 몇 사단이 서울로 이동 중입니다” 하는 정보가 오는 거야. 내가 (최규하 대통령에게) “지금 한두 시간만 지나가면 내란입니다” 말하고 이건 정말 내란이구나 생각했어.
그래서 안 되겠다 해서 최규하 씨하고 의논을 해가지고 “사단장하고는 이동 중에 안 되느냐. 전화를 걸어라” 이랬어. 그러자 최규하 씨가 “아 그거 좀 단단히 예기해 주시오” 최규하 씨는 그렇게 앉아 있었지. 내가 전화기를 들고 “몇 사단장이냐. 지금 어디 있느냐. 지금 사단 주둔지냐” 그러자 “아닙니다. 지금 서울 가는 길목입니다” 이래. 그래서 “왜 사전승인 없이 이동하느냐. 지금 최규하 대통령이 나하고 여기 같이 앉아 있다. 국군 총사령관의 지시 없이 왜 움직이느냐. 본대로 돌아가라. 이건 대통령의 명령이다” 이런 식으로 야단치고 그랬지.
우선 내란은 막아야지, 접촉하면 일어나는 건데 집촉을 안 시켜야지. 그런 식으로 막아 놓고 연락을 하는데 국방장관(노재현) 하고 연락이 됐단 말이야. 내가 전화를 받았지. 노 장관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지. “국방부에 이제 왔습니다” 그래서 당신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 아느냐 물으니 “알고 있습니다” 이러는 거야.
그럼 대통령이 여기 있는데 왜 안 오는 거냐, 이리 오시오. 그러니까 “못가겠습니다” 그래. 왜 못 오느냐 그러니 “아 지금 총격전이 벌어지고, 여기 난리가 났는데, 그리고 지금 양쪽이 대치하고 있는데 어떻게 갑니까” 이런 식이라. 이거 해결하자면 관계자가 여기 다 모여 앉아가지고 의논해야 될 거 아니야. 그럼 와야 될 거 아니냐. 이렇게 물으면 “못가는 걸 어떻게 갑니까. 대치상태 건너서 어떻게 갑니까” 이런 식이란 말이야.
시시각각으로 사태는 급박하지지, 어느 구석에서 내란상태가 터져 나올지 모르겠고 자기들(전두환 측)은 자꾸 “이제 내란 상태를 막을 길이 어려워지겠습니다” 이러카고(이렇게 하고)…. 그래서 내가 전화를 몇 번째 걸었지. 걸어서 노 장관, 거기 누구 있느냐 물으니 “누구 하고 누구 하고 있습니다” 해서 좋다 내가 가면 이리 오겠느냐. 나하고 같이 오겠느냐 그러자 “그러면 같이 가겠습니다” 그래.
좋다. 그러면 내가 가겠다. 결국은 대치하는 양쪽을 같이 모으는 것은 그 길밖에 없겠다. 대치하고 있으면 언젠가 또 충돌할 거고. 내란이 될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내가 간다. 대기하고 있어라” 이랬어. 그러니까 최규하 씨가 “아이구 정말 가주시겠습니까” 해서 그러면 가야지 어떻게 합니까. 내란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앉아 있겠습니까. “그러면 부탁합니다” 그래서 내가 갔지.>

(기자 해설-당시 신현확 국무총리 의전비서관으로서 신 총리와 함께 밤을 지샜던 장영철(후에 국회의원 역임)은 긴박했던 12월 12일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날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최규하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가다 신 총리가 들어오니까 다시 들어가더군요. 내가 무슨 일인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어요.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서 신 총리가 국방부로 가실 때 내가 수행하려 했더니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의 전속부관이 ‘내 책임 하에 모시겠다’ 이러는 겁니다. 나는 ‘안 된다. 상황이 어떻게 될 줄도 모르는데 총리께서 혼자 그 위험한 곳에 가시게 할 수는 없다’고 강력히 항의해서 제가 수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12월 13일 새벽, 신현확 총리가 노재현 국방부장관을 데려 오기 위해 삼청동 총리공관을 나섰을 무렵, 이미 군부대가 서울에 출동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있었다.)

<차타고 종각 있는 데까지 나오는데 탱크가 길을 막고 있는 거야. 그래가지고 차 문을 확 열면서 총칼을 들이대고 “누구냐, 어디 가냐” 그래. 국무총리라고 아무리 소리 질러도 병사들 뭐 “저희들은 상관 명령이니까 도리 없습니다” 이러카고. 이걸 몇 번을 통과해서 갔지.
국방부 앞에 가보니 뭐 총격전으로 유리문이고 뭐고 다 뿌사졌고(부서졌고), 앞에 (선혈이) 낭자하고 뭐 이래…. 그래 가서 다 데리고 왔지. 다 데려와 이짝도 오너라, 전부 한데 앉아 같이 의논해라. 이래가지고 결국은 “(정승화 총장이) 김재규하고 같은 혐의가 있다, 그러니까 조사를 해봐야 하겠습니다” 그래. “그냥 체포 안하고 자의로 연행을 해서 그걸 알아보고, 경우에 따라 정리할라고 했는데, 거기서(총장 공관) 총격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정승화를) 체포하는 결과가 됐습니다”이런 얘기란 말이야.
그러니까 혐의사실이 있어서 조사했단 말이었지. “김재규가 이렇게 진술했고 뭐 어짜고” 이러카는데, 이런 혐의가 있어도 조사하지 말라고 끝까지 이럴 수는 없다 이 말이야. 사태는 벌써 일어났고. 그러니까 마지막에 가서는 국방장관도 “그럼 조사해봐라” 이렇게 말했고, 대통령도 “그러면 조사해 봐라” 그래서 사후 추인하는 격이 됐다 이 말이야.
그러나 나는 사인하지 않았지. 왜 그런고 하면 총리는 군 통제권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관여 안하게 되어 있단 말이야, 옛날부터. 내가 마침 그 자리에 있었으니 문제가 그리 됐지, 거기 없었으면 나에게 연락도 안하고 다 진행될 일이라 말이야.
그러나 무슨 조사할 일이 있다고 해서 부하가 상관을 체포한다는 것의 법적 해석을 어떻게 할 거냐. 이런 문제가 있고. 이게 또 순수하게 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만 그랬다고 할 수 있느냐. 군 내부의 의견이 틀리는 계통이 있는 것을 제거하고, 전군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랬는지도 모른다고 누구든지 말할 수 있는 거지. 그런 의심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이고.>

최규하, 신 총리와 나눈 비밀 대화내용 美 언론에 흘려

(기자 해설-12.12의 긴박한 밤을 지새며 신현확 총리는 군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군부의 움직임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었고, 그들을 견제할 만한 수단도 없었다. 그는 해방 후부터 6.25 때까지 대구대학(영남대의 전신)에서 헌법과 법률을 가르치며 법률지식을 쌓아온 대학교수였다. 따라서 헌법상 국군 통수권은 국무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에게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민감하게 깨닫고 있었다. 총리가 군에 대해 할 수 있는 역할이란 고작 대통령에게 조언을 하는 정도였던 것이다.)

 <그래 군의 움직임을 비상한 관심으로 봐야겠다. 이제는 12.12가 나기 전까지의 군을 보던 것과 다른 눈으로 군을 보아야 한다 이런 거야. 그래서 내가 최규하 씨에게 얘기한 거도 뭔고 하면 “지금 김재규 문제 때문에 중앙정보부장이 결원인데, 저기가 쑥밭이 돼 있는데, 저걸 언제까지 저대로 놔두고 나가느냐. 이럴 때일수록 정보라는 게 결정적인 문제인데 이래가지고 어떻게 하느냐. 빨리 후임을 임명하되 이거를 곡 마음에 담아놓고 임명하십시오.”
정보부라 하는 것이 대통령 직속으로 되어 있어서 국가체제상, 제도상으로 보면 총리는 관여 못하도록 되어 있어. 그러나 내가 “위기니까 의견을 제시합니다. 군인을 임명하지 마십시오. 민간인으로 임명하십시오. 그래서 정보기관을 복수로 운영하십시오. 뭐라 그러나…. 군 정보, 전두환 씨가 하고 있는 정보부(보안사)하고 양립시키십시오. 그래서 이짝(중앙정보부)은 민간인으로 책임자를 임명해서 복수로 정보를 통제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의견을 제시했어.
그런데 일주일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어. 일주일 지나고 내가 또 얘기했어. 똑같은 얘기를. 그 다음에 뭐가 나타났나 하면 타임 잡지가 떡 왔는데, 타임 잡지에 ‘중앙정보부장을 최규하 대통령이 군인으로 임명하려고 하는데, 신 총리가 민간인으로 하라고 반대를 해서 임명을 못하고 늦어지고 있다’ 이래 났어.
그래 단 둘이, 배석도 없이 한 얘긴데 우째 (기사가) 나느냐 이 말이요. 사실 그대로. 저쪽(최규하)에서 일부러 흘리고 있구나, 속으로 그래 생각했어. 그래서 그 다음엔 아무 말, 간여 안 했지.>

(기자 해설-신현확 총리 측근의 증언에 의하면 문제의 타임 잡지 기사는 계엄하의 언론통제로 인해 모두 삭제되어 구멍이 난 채로 배포되었다고 한다. 도쿄에서 직접 구해온 타임지를 통해 이 기사를 접한 신 총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최규하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걷잡을 수 없는 의문에 빠졌기 때문이다.)

“전두환에게 정보부장 겸임 말라”고 충고

<(최규하가) 왜 흘렸는고 하면 그거야 (언론에) 흘림으로써 자기가 군하고 더 가차워(가까워)지고, 나를 좀 견제하고, 누르고 약화시키고, 그런 목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지. 그렇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날 전두환 씨가 면회 신청을 해 왔어. 그래서 “좋다 와라” 해서 총리실에서 만났지.
자기가 “(중앙정보부장) 겸임을 해야 되겠으니 양해해 주십시오”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어. 첫째 이 일은 대통령이 직속기관에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고, 국무총리가 보필하는 범위 외의 일이다. 나한테 양해해 달라고 할 필요가 없는 일이다. 대통령 마음대로 하는 것이지.
둘째로, 제도상 그렇거나 말거나 지금 이 국가위기에 중요한 문제라고 해서 내 의견도 참작하겠다, 그런 뜻으로 나한테 얘기를 한다면 겸임하지 마십시오. 나는 최 대통령한테도 그래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고. 겸임하는 것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고, 국가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내가 이래 말해 주었지.
나는 돌려가지고 뭐 그 때 이 사람 듣기 좋게, 저 때 저 사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은 못하는 사람이야. 그래 본인한테 얘기해 주었더니 뭐 전두환 씨가 겸무해야 하는 이유가 이러고 저러고 설명을 많이 하더구만.
그런 이유가 전부 일리가 없단 말이 아니다. 그게 일리가 있더라도 그보다 더 결정적인 마이너스 요인이 있다. 당신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 안하는 것이 낫다. 내 그래 얘기했어. 그리고 한 일주일 만에 겸무발령이 턱 났어.
그러니 겸무발령이 난 것은 내 권한도 아니니 항의할 수도 없고, 최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대로 행사한 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단지 나는 (최 대통령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그렇게 나간 거야.>(하권에 계속)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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