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출범이 ‘건국 100주년’이란 주장이 사라진 이유는 임정 출범이 건국으로 승격되는 순간, 북한은 반(反)국가단체가 되기 때문이다. 남한의 경우 제헌헌법 이래 3·1 독립정신 혹은 임시정부 계승을 주장해 왔으니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정식 정부가 1948년 세워진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북한은 1919년 임시정부를 인정하지도 않고, 국호와 건국 시점 모두 임시정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임정 100주년 기념일이 지나자마자 좌파 사학계가 일제히 임정을 공격하고 나섰다. 이유는 임정이 건국으로 승격되면 북한이 반국가단체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 4월 8일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기념관에서 열린 임정 100주년 기념 한국주간 선포식 테이프 커팅 장면, 오른쪽 세번째가 최영삼 상하이 총영사다.(연합뉴스 제공)
임정 100주년 기념일이 지나자마자 좌파 사학계가 일제히 임정을 공격하고 나섰다. 이유는 임정이 건국으로 승격되면 북한이 반국가단체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지난 4월 8일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기념관에서 열린 임정 100주년 기념 한국주간 선포식 테이프 커팅 장면, 오른쪽 세번째가 최영삼 상하이 총영사다.(연합뉴스 제공)

그 동안 문재인 정부 편에 서서 ‘1919년 건국설’을 줄기차게 띄워오는 데 앞장섰던 좌파 역사학자들이 문재인 정부가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11일)이 끝난 바로 다음 날, 느닷없이 임정을 걷어찼다. 지난 4월 12일 서울 동대문구 역사문제연구소 5층 강당에서 열린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 전쟁의 함정’이란 학술대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날 학술대회는 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의 공동으로 열렸다. 국내에서 좌파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총 출동한 셈이다. 이날 주제발표를 한 이용기 한국교원대 교수는 “보수 진영의 ‘1948년 건국설’이 제기됐을 때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침묵 속에 방관하든가 ‘1919년 건국설’에 동조했다. 지나고 보니까 동의하지 않는데도 왜 ‘1919년 건국설’ 뒤에 숨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토론자들 입장도 한결같았다. 윤상원 전북대 교수는 “임정 법통론의 한계를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임정 법통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 내몰려 스스로 임시정부주의자가 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고 자아 비판했다. 이들 주장을 요약하면 좌파 학자들은 1948년 건국설을 반대하기 위해 1919년 건국설을 지지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1948년 건국설, 1919년 건국설 모두 말도 안 되는 논리라면서 임정법통론 자체를 통째로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조선일보는 “진보 진영 역사학자들의 자기반성”이라고 보도했지만, 이게 무슨 자기반성이란 말인가.
그 동안 좌파 역사학자들은 어린아이 장난 같은 1919년 건국론을 줄기차게 주장해 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임정 법통론을 무기로 들고 나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1948년 이승만에 의해 건국된 대한민국을 부정하기 위해서였다. 해방 후 이 땅에서 반공을 강력하게 앞세워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 탄생을 봉쇄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기반의 국가를 출범시킨 이승만을 우리 역사에서 찍어내기 위해 좌파들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고, 이를 위해 1919년 임시정부를 내세워 건국 100년을 대대적으로 띄워온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임정 100주년 기념식 하루 뒤에 느닷없이 자신들의 학자적 양심과 학문적 입장을 180도로 뒤집고 나선 것일까?
이들의 변심 내지 변절 행태는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추적해 보면 1980년대에 좌파 사학자들은 임정 그 자체에 어떤 의미도 두지 않았다. 좌파 사학자들은 임정은 그저 여러 독립운동 단체 중의 하나 정도로 인식했을 뿐, 그들 관심은 애오라지 사회주의·공산주의 계열을 무장독립투쟁에 꽂혀 있었다. 이러한 관심의 흔적은 이번 임정 100년을 기념하는 퍼포먼스에 안중근 의사를 비롯하여 의열단원, 여운형 등을 등장시킨 모습으로 재현되었다.

임정이 건국이면 북한은 反국가단체가 된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우파 학자들이 1948년 건국론 논쟁을 제기하자 이들은 일제히 1919년 건국론, 임정법통론으로 돌아섰다. ‘1919년 건국론’의 돌격나팔을 분 사람은 한시준 단국대 교수다. 그는 대한민국이 1919년에 세워지고 1948년에 재건되었다고 주장했다. 1919년 건국론자들은 1919년에 세워진 대한민국이 1948년에 친미·친일 분단 독재 정부로 잘못 재건되었으나, 그 후 민중민주혁명을 통해 바로잡아 왔다고 본다. 별별 해괴한 논리를 다 동원한 곡학아세(曲學阿世)의 극치였다.
이들의 곡학아세의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식 연설에 그대로 표출되었다. 2017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고 선언하고, 그날 효창공원의 김구 묘소 방명록에 ‘건국 백년을 준비하겠습니다’라고 썼다. 정부 차원에서 ‘임시정부 수립=건국’을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평양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한 이후부터 1919년 건국 100주년이란 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정부 차원에서 명확한 설명도 없이 ‘건국 100주년’이란 용어가 깨끗이 지워지고 ‘임정 100년’으로 바뀐 것이다. 올해 초 청와대 관계자의 입을 빌어 “불필요하게 건국 논란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 나왔지만, 이런 변명은 지나가던 개가 웃다가 뒤로 자빠져 졸도할 이야기다.
임시정부 출범이 ‘건국 100주년’이란 주장이 사라진 이유는 임정 출범이 건국으로 승격되는 순간, 북한은 반(反)국가단체가 되기 때문이다. 남한의 경우 제헌헌법 이래 3·1 독립정신 혹은 임시정부 계승을 주장해 왔으니 임시정부를 계승하여 정식 정부가 1948년 세워진 것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북한은 1919년 임시정부를 인정하지도 않고, 국호와 건국 시점 모두 임시정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 정부를 위해 곡학아세를 서슴지 않은 좌파 사학자들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지워 없애기 위해 억지로 1919년 건국설을 주장했다. 이 주장을 반복하다 보니 전혀 의도하지 않게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부정하고 공격하는 논리가 되었다. 1919년 건국, 올해는 건국 100주년이란 주장은 북한에게는 “너희는 반역 집단, 반국가단체야”라고 낙인찍는 행위로 귀결된 것이다.
우리가 거족적인 비폭력 만세운동으로 높이 평가하는 3·1운동도 북한은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북한 사회과학원이 펴낸 『조선전사』라는 책에는 “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 선생님께서 일찍이 혁명의 씨앗을 뿌리시고…”라는 구절이 있다. 김일성 아버지인 김형직이 평양의 3·1운동을 이끌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만경대 시위도 김일성 외삼촌인 강진석이 지도했고 김일성은 “여덟살 되는 어리신 몸으로 거족적인 반일 봉기 대열에 참가하시어 보통문까지 가시었다”고 날조하고 있다.

북한은 임시정부를 완전 부정, 매도

이 책에서는 3·1운동 민족 대표 33인을 배신자라고 매도했으며, 일제에 대한 한민족의 항거를 김일성 일가의 혁명정신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날조한 것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3·1운동은 부르주아 사대주의자들 때문에 실패했으며, 3·1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외세 의존에 물들은 사대 매국노 집단이 구차스러운 방법으로 독립을 얻으려 시도하다 실패한 집단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심지어 "임시정부를 차려놓고 애국동포들롤부터 운동자금 걷어들여 탕진하면서 서로 물고 뜯는 일이나 했다"고 싸잡아 비난한다. 3·1운동과 임시정부가 실패한 이유는 탁월한 수령의 영도, 혁명적 당의 지도가 없었다는 점과 무장한 원수들과 조직적인 무장투쟁으로 맞서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것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문재인 정부는 2018년,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북에 제안했다. “남과 북이 독립운동의 역사를 함께 공유하게 된다면 서로의 마음도 더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반면에 김정은은 지난해 신년사에서 “올해 우리는 영광스러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 일흔돌을 맞는 대경사(大慶事)” “북한 정권 수립은 위대한 수령님(김일성)과 장군님(김정일)의 최대의 애국 유산”이라고 추켜세웠다.
북한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만이 독립투쟁의 역사라고 믿고, 1948년 9월 9일 자기들이 세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이 정통이고, 백두혈통의 수령의 영도를 종교처럼 신봉하고 있는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이런 사이비 주체교 신자들에게 “3·1운동과 임시정부 건국 100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하자”고 제안했으니 백두혈통의 김 씨 3대 세습군주께서 얼마나 황당해 했으며, 분노했을 것인가?
북한이 3·1운동과 임시정부 100년에 분노하고 있음을 뒤늦게 인지한 문재인 정부와 좌파 사학자들은 황급히 ‘건국’ 표현을 삭제하고,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일 임시공휴일 지정도 부랴부랴 취소했다.

좌파 사학계가 나갈 길은 임정 죽이기

이제 좌파 사학계가 갈 길은 뻔하다. 1980년대 자신들의 인식으로 돌아가 ‘임정 죽이기’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4월 12일 학술대회에서 이정선 조선대 교수의 발언을 통해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날 이정선 교수는 “(임정 법통론은) 대한민국은 정통으로 인정하고, 북한은 괴뢰 혹은 별개의 국가로 명확하게 하고 있는 인식 체계”라면서 “이를 풀기 위해선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경석 성균관대 교수는 “임정 법통론은 역사적 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해방 이후 수립된 남한 단독정부가 정통을 잇는다는 것도 진실에 배치된다”고 밝혔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고, 대한민국을 남한 단독정부로 비하하며 정통성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이건 좌파·친북 국사학계가 완전히 가면 벗고 노골적으로 북한 편들기에 나섰다는 뜻 아닌가?
참으로 의미심장한 선언이다. 이제야 종북 좌파 사학계가 커밍 아웃을 한 셈이니 올 것이 온 셈인가.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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