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될 수 없는 가치 지녔던 노트르담, 화재로 영원히 우리 곁 떠나...부는 물질적이며 문화적, 심지어는 문명적
건강한 사회,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 창출하려는 개인들로 구성...이 특성이야말로 문명의 특징
문명, 경제학 이상의 것이지만 경제학을 필요로 해...미제스 "경제적 사고 거부하는 민족들, 분명히 멸망"

노트르담(Notre Dame) 사원의 끔직한 화재는 수세기에 걸쳐 축적된 “문화자본”이 한 순간에 파괴될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12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지붕과 첨탑의 오크나무 목재는 영원히 사라졌다. 값을 매길 수 없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들 일부는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흔히 말해지듯이, 프랑스는 서구의 심장이고, 파리는 프랑스의 심장이며, 노트르담은 파리의 심장이다. 이처럼 상징적인 교회가 불길에 휩싸인 광경은 그 자체로서 서구의 쇠퇴를 보여주는 표징이 아닌지 불안하게 한다.

여기에서의 “문화자본”은 금융자산이나 생산요소로서의 자본이라는 경제적 정의보다 훨씬 더 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는 자본을 “세세하게 서로 얽혀있는 복잡한 자본재의 구조”로 정의했다. 이질적인 생산재로서의 자본이라는 라스바드의 정의와 같은 오스트리안의 폭넓은 관점조차 한 사회의 모든 부(富)를 포착해낼 수 없다. 자본은 궁극적으로 측정될 수 있고 개별 단위들로 환원될 수 있다. 그러나 세계 도처에 있는 가톨릭 교인들에게 노트르담의 가치는 측정될 수 없다. 그래서 순수한 경제학 용어로 그것의 손상 또는 파괴의 비용을 계량화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엄청난 손실이라는 사실은 다 안다. 그 아름다운 노트르담의 지붕과 첨탑에 담겨있는 수백 년에 걸친 부(富)는 이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블로거 Bionic Mosquito는 문명화된(civilizational) 부(富)는 시간을 거치면서 중첩되어 가기 때문에 부는 물질적이고, 문화적이며, 정신적이고 심지어 문명적이기까지 함을 일깨워 준다.

“... 부(富)는 단지 대차대조표 상에 나타나 있는 것만이 아니다. 문화, 축적된 지혜와 지식, 시간의 압축이라는 관점에서 부를 바라보아야 한다.” 

축적과 시간이 핵심이다. 건강한 사회는 부를 쌓고 이를 보존한다. 즉, 건강한 사회는 소비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창출하려는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순한 풀리(pulley, 밧줄과 도르래로 된 장치)와 발판을 사용하면서 200년 넘게 노트르담을 지은 사람들은 그들 작품의 최종적인 결과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사실 어떤 교황도, 어떤 건축가도, 어떤 금융가도, 어떤 석공도, 어떤 예술가도, 어떤 노동자도, 또는 어떤 프랑스 군주도 이 사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 세대들에게 오래 지속되는 그 무엇을, 돈으로는 도저히 환산할 수 없는 좋은 그 무엇을 지었다. 그들은 그들의 삶보다 훨씬 넘어서서 오래 가는 부를 건설했다. 

건강한 사회라면 그 어떤 사회도 이런 일을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넘어서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인간 본성이다. 사회를 형성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에 내재화 되어 있으며, 가장 야심찬 인간은 언제나 영원한 삶의 기념물이나 양식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즐기지 못할 미래를 위해 일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것은 특히 수명이 짧고 힘든 삶을 살았던 우리 고대 선조들에게 사실이었다. 그들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양물(滋養物)을 생산해야만 하는 대신 오래 지속되는 형태의 자양물로서, 음식, 물, 의복, 거처를 얼마나 많이 원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사실 이 특성이야말로 아마 어떤 다른 것보다도 문명의 특징이다. 우리는 이를 여러 가지 형태로 지칭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를 단지 다음과 같은 말로 대신할 수 있다. 건강한 사회는 자본을 창출한다고. 그들은 그들이 생산한 것보다 적게 소비한다. 이러한 자본축적이 투자와 생산성을 증가시키는 상향나선(upward spiral) 형태의 효과를 내면서, 미래를 더욱 밝고 풍요롭게 만든다. 자본축적은 인류가 생계의 비참함을 극복하게 해주었고, 농업혁명, 산업혁명, 그리고 디지털혁명을 가능하게 했다.

기술적인 노하우(know-how), 예술성, 장인정신도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는 부의 형태이며 그리고 지금까지 분명히 그러해왔다. 그런데 스미스(Kiona N. Smith)는 Ars Technica(역주: https://arstechnica.com)의 기고 글에서 노트르담이 정말로 전과 아주 같은 방식으로 다시 지을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진다:

“건축가는 기술적으로 아주 섬세하게 다시 짓기 위해 대성당에 관한 충분히 자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장인정신은 꼭 그렇지 않다. 오늘날, 대성당을 구성하는 돌은 기계를 사용하여 깎을 수 있지만 오늘날의 석공들이 손으로 12세기의 석공들처럼 깎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머레이(역주: Stephan Murray, 컬럼비아 대학교 예술 역사가)는 Ars Technica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세기와 20세기 고딕 건물들은 항상 조금은 죽은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돌이 석공의 손과(역주: 석공의 손이 빚어낸 것과) 동일한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명은 경제학 그 자체보다 훨씬 그 이상의 것이지만, 그것은 경제학을 필요로 한다. 미제스(Ludwig von Mises)는 ”민족들이 경제적 사고를 거부하는 교리에 계속 따를 경우, 그 문명은 멸망할 것이고 분명히 멸망한다“라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래서 노트르담 화재의 그 슬픈 광경을 떠올릴 때, 우리는 우리 시대의 정치학과 경제학이 미래 세대를 위해 부(富)를 쌓는데 용기를 주는지 아니면 용기를 잃게 하는지를 자문해보아야 한다. 오늘날 서구 국가들의 유산을 물질적인 복지로만 쳐다볼지라도,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 것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분명히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다. 재정 및 금융 정책의 수요견인 열광자들과 더불어, 단기(短期)의 정치적 사고는 노트르담 지붕을 태워버린 화마와 똑같이 우리의 미래를 집어삼킬 수 있다.  

글쓴이) Jeff Deist
제프 다이스트는 미제스 연구소의 회장이다. 그는 전에 하원 의원 론 폴(Ron Paul)의 수석 보좌관으로서 그리고 사모(私募) 투자 펀드 고객들의 변호사로서 일했다. 

옮긴이) 배진영(인제대 국제경상학부 교수)

원문) https://mises.org/power-market/notre-dame-and-what-was-lost

▶ 자유와 시장경제에 관한 더 많은 글을 「미제스와이어」(www.mises.kr)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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