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허위, 기만, 역사왜곡에 기반한 허접한 반일 종족주의, 항일 민족감정에 불을 지르는 감성팔이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조차 얻지 못하는 찌질이들이란 말인가!

지난 5월 1일 나루히토(德仁) 새 일본 천황이 즉위 행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우리 언론들은 일본 천황을 일제히 '日王'이라고 표기했는데, 일본 헌법에 의하면 일본에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언론이 '日皇'을 '日王'이라고 격하하는 것은 일본 헌법을 무시하거나 사실관계 왜곡이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지난 5월 1일 나루히토(德仁) 새 일본 천황이 즉위 행사에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우리 언론들은 일본 천황을 일제히 '日王'이라고 표기했는데, 일본 헌법에 의하면 일본에 왕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언론이 '日皇'을 '日王'이라고 격하하는 것은 일본 헌법을 무시하는행위이거거나 사실관계 왜곡이다.(사진 연합뉴스 제공)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얘기지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미국 헌법 제1조는 “이 헌법에 의해 부여되는 모든 입법권한은 연방의회에 속하며, 연방의회는 상,하원으로 나뉜다”라고 되어 있다. 캐나다 헌법 제1조는 “우리국가의 명칭은 The Federation of Canada이며, 이하 캐나다 연방이라 한다. 캐나다연방은 민주주의 국가이자, 천국에 봉헌된 국가이다. 캐나다연방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지만, 전 권력은 하나님이 권력을 위임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이다.

그렇다면 일본 헌법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갖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근거한다”라고 명문화 되어 있다.
일본 헌법에 근거하면 ‘일왕(日王)’이 아니라 천황, 줄여서 ‘일황(日皇)’이 올바른 표현이다. 이것이 숨길 수 없는 팩트(fact)다. 우리가 ‘일왕’을 고집하면, 그런 지위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국민과 언론들이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고 환상의 허구로 ‘일왕’이란 존재를 창작해내는 셈이 된다.

일본 헌법 제1조, “천황(天皇)은 일본국의 상징”

양식 있는 해외 언론들 거의 모두 ‘천황’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지구상에서 오직 한국 혹은 북한만 일왕(日王)을 고집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일본 헌법 규정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왜곡,  모욕할 경우 일본 국민들도 대한민국 헌법 1조를 모욕하고 무시하고 나설 수 있다. 그것이 국제 외교에서 통용되는 상호주의 원칙이다.

1988년까지만 해도 국내 언론들은 거의 모두 ‘천황’으로 호칭했다. 1989년을 기점으로 느닷없이 일본 천황 표기가 일왕으로 바뀌었다. 이것도 ‘민주화’ 바람 탓인지는 모르겠으되, 아무리 감정이 좋지 않은 한일 관계라 해도 언론이라면 사실 관계를 바로잡을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대한민국의 언론은 스스로 언론임을 포기하고 선동기관으로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유의깊게 바라봐야 할 점이 있다. ‘천황’ 호칭 문제는 이미 140여 년 전 개항 직전 시기에도 심각한 외교 문제를 촉발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 메이지유신 직후 메이지 정부는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하던 쓰시마 도주(島主)에게 “조선 정부에 일본의 왕정복고를 통고하라”고 훈령했다. 그리고 조선에 보내는 외교문서, 즉 서계(書契)에 일본의 황실과 국체의 존엄을 손상하는 자구의 사용을 일체 금할 것, 조선 국왕에 대한 일본 천황의 서열상의 우위를 분명히 할 것을 지시했다.

이 훈령에 따라 1869년 1월 말, 일본 외교관들이 동래부사와 예조참판에게 보내는 서계를 가지고 부산포에 도착했다. 조선 정부는 일본 측의 서계가 그 동안 통용되어 왔던 원칙에서 벗어나 있음을 발견했다.

메이지 유신 전까지 막부의 쇼군은 스스로를 ‘대군(大君)’이라고 칭하면서 조선 국왕보다 위계를 낮추었다. 그런데 새로 보낸 서계에 청조의 연호 대신 일본 연호를 사용하고, 일본 천황에 대해 ‘황상(皇上)’이니 ‘황조(皇祚)’ 등 중국의 천자만이 사용하는 명칭을 사용한 것이다. 소중화의 나라 조선이 이 서계를 접수할 경우 일본 천황이 조선 국왕보다 서열상 우위임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조선 정부는 결사적으로 서계 접수를 거부했다.

1870년(고종 7) 11월 메이지 정부는 또 다시 외교관 3명을 파견하여 초량 왜관에 1년여 머물며 서계 접수를 시도했으나 거부당했다. 1872년 1월에도 외교관을 추가 파견하여 국서 접수를 시도했으나 모욕만 당했다.

격분한 일본 외무성 관리 사다 하쿠보(佐田白茅)는 “조일 관계는 병력에 호소하지 않으면 호전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외무경 사와 노부요시(澤宣嘉)에게 장문의 건의를 올렸다. 건의서 요지는 “조선은 지킬 줄만 알고 공격할 줄은 모르며, 자기만 알고 상대는 알지 못한다. 대병력을 동원하여 10개 대대는 강화를 거쳐 왕성을 공격하고, 6개 대대는 경상·전라·충청의 3개 도를 유린하며, 4개 대대는 강원·경기에서 진격하고, 10개 대대는 함경·평안·황해 세 도를 공격하면 50일이 못 되어 국왕을 포로로 잡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다보하시 기요시(田保橋潔) 지음·김종학 옮김, 『근대 일선관계의 연구(상)』, 일조각, 2013, 311쪽).

사다 하쿠보의 조선 출병론을 계기로 정한론이 물 끓듯 제기되었다. 조선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일본 외무대승(外務大丞) 마루야마 사쿠라는 사와 노부요시 외무경에게 조선 정벌의 실행을 여러 차례 촉구했다. 그는 자신의 의견이 무시당하자 병사를 모집하여 조선 공격을 준비하던 중 1871년 초 체포되어 나가사키로 유배되었다.

정한론(征韓論) 등장은 자업자득

이 와중에 타협안으로 청국과 우선 수교론이 등장했다. 일본과 청국이 상호평등 원칙에 입각한 조약을 체결하여 양국 원수가 서열상 동등하다는 사실이 확정되면 조선 국왕은 자동적으로 일본 천황의 하위에 위치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그 결과 일본은 청국과 수교 교섭에 나서 임진왜란으로 국교가 단절된 이후 280여 년 만인 1871년 9월 중순, 청일수호조규에 조인했다.

청국과 일본이 수교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다. 열받은 일본 외무경 소에지마 다네오미(副島種臣)는 1873년 8월, 5만 명 병력을 연해주에 상륙시켜 북쪽에서부터 조선을 치기 위해 러시아 정부에 일본군 상륙 협조를 요청했다. 일본은 그 대가로 남부 사할린을 러시아에게 넘겨주겠다고 제안했다.

러시아 정부가 이 계획을 반대하자 일본은 영국에서 구입한 군함 운요호(雲揚號)를 이용한 도발을 감행했다. 정한론(征韓論)을 촉발시킨 것은 우리의 자업자득이었던 것이다.

근대가 뭔지도 모르는 조선군은 강화도 초지진에서 운요호에게 포격을 가했다. 조선군의 포는 돌덩이를 날리는 재래식 완구포였다. 때문에 1발을 제외하고는 모두 빗나갔다. 반면, 운요호가 발사한 110파운드 포와 40파운드 포는 발사하는 대로 명중, 초지진 포대가 초토화 되었다. 일본군이 영종도에 상륙하자 영종진 병력 600명은 지휘관과 함께 도주했다. 두 전투에서 조선 군민 35명 전사, 포로 17명, 포 36문을 빼앗겼다. 일본군은 부상자 2명이 발생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일본으로 귀환 도중 사망했다. 조선군은 임진왜란 이후 280년 만에 벌어진 한일 간 전투에서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운요호를 조선 해역에 출동하기 전에 주일 미국공사 존 빙엄(John A. Bingham)을 통해 미국에서 출간된 『페리의 일본 원정 소사(小史)』를 구해 상세히 연구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무력으로 개항시키는 방법을 충분히 숙지한 다음, 작심하고 바다를 건너온 것이다.

일본 군함 한 척에게 비참하게 얻어터진 조선은 일본과 외교 재개를 결정했다. 그것도 자의적인 결정이 아니라, 청국의 외교총책 리훙장(李鴻章)으로부터 “그러다 나라 망한다. 빨리 수교하라”는 권유를 받고 등 떠밀려 허둥지둥 교섭에 나선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맺은 조약이 강화도조약이었다.

근대사를 되돌아보면, ‘천황’ 표기 문제는 이미 140여 년 전 우리가 고집을 피우다 폭망한 역사적 사례가 있다. 우리가 계속 위안부니 징용이니 하며 일본을 물고 뜯고, 존재하지도 않는 ‘일왕’ 용어를 선동하는 것은 시대착오이고, 일본과 외교관계 단절, 더 나아가 전쟁을 각오해야 한다.

이 땅의 지식인과 언론인, 국가 고위 간부, 정치인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묻는다. 한국군이 일본 자위대와 싸워 이길 수 있다고 믿나? 북한이라는 적을 앞에 두고 동맹국과 이런 사소한 문제로 감정을 악화시킬 필요가 있나? 이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 남의 나라 외교공관 앞에 그 나라를 모욕하는 불법 시설물을 설치하도록 방치한단 말인가. 그것도 사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허구의 주의주장에 근거한 위안부 소녀상을!

기자는 오래 전 일제가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풍수침략용으로 박았다는 전국의 쇠말뚝이 모두 허위 거짓으로 도배질 된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이완용이 을사오적으로 나라 팔아먹는 악당이란 사실도 완전 가짜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처럼 가짜, 허위, 기만, 역사왜곡에 기반한 허접한 반일 종족주의, 항일 민족감정에 불을 지르는 감성팔이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우리는 역사에서 교훈조차 얻지 못하는 찌질이들이란 말인가!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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