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세대는 낡은 배에 미래를 싣지 않는다.

28년을 살아오면서 선뜻 우파라고 당당히 말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오늘날 우파가 남긴 폐허를 마주하며 조용한 새벽, 문득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글쎄,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언제나 정치이야기가 나올 때면 눈치를 살피며 중도인척 얼버무리기 일 수였고, 우파라는 사실을 마치 고해성사 해야만 하는 죄와 같이 느껴왔다는 것이다. 친일과 독재를 옹호한다는 낙인이 두려웠던 걸까. 그러고 보면, 나는 그저 좌파가 싫은 텅 빈 우파였다는 생각이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이 죄의식은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서서히 뿌리내려왔던 것 같다. 청소년 시절 선생님은 이승만 대통령을 친일파를 옹호한 악마라고 가르쳤고, 박정희 대통령을 무고한 시민을 괴롭힌 나쁜 독재자라고 말했다. 따라서 내게 건국의 역사는 자랑스러운 유산이 아닌 치욕스러운 과거였고, 대한민국을 일으킨 산업화의 역사는 친일파의 후예가 국민을 착취한 어둠의 시기였다. 나의 어머니 아버지 세대는 사악한 친일 무리에게 세뇌당하고 이용당한 무식하고 불쌍한 세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렇게 악의 무리가 승리했다던 부정(不正)한 역사를 배우며 청소년시절 정의감에 불타올랐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그리고 그런 내 주위에 우파의 역사를 변호하는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대학생이 되었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절망적이게도 우파 진영의 최신 유행은 언제나 반공(反共)이었다. 반공(反共)이라는 60, 70년대 노래가 오늘날까지 종북, 좌빨이라는 노래로 편곡되어 여전히 유행하고 있었다. 나라를 이끌어나갈 튼튼한 사상과 새로운 비전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좌파가 싫으니 눈 질끈 감고 밀어주자는 낡고 공허한 외침만이 가득했다. 결국 언제나 박정희라는 후광을 끌어와 버티는 식이었다. 산업화 시대의 영광과 향수 없이는 도무지 당당할 수 없을 정도로 우파의 사상적 토양은 황폐해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과거의 곳간을 털어먹으며 겨우 버텨온 사상적 가난은 지금의 텅 빈 우파를 예고한 것이다. 박정희라는 유산이 너무나 풍족했기에 그 누구도 새로운 봄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가난한 우파의 가슴은 오늘도 연신 박정희만을 외치며 좌파 진영으로부터 조롱당하고 있는 것이다.

낡고 텅 빈 우파다. 젊은 세대는 반복되는 우파의 묵은 이야기에 이미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좌파가 싫지만 우파도 싫다. 사실상 우파적 성향을 지닌 젊은 세대는 갈 곳을 잃고 스티로폼 조각처럼 그저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발을 붙일 새로운 이야기가 도무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지금 우파 정치권의 행보를 보면 절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새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썩은 대들보 위에 새 지붕을 올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리모델링만 적당히 마무리 해 놓으면 집나간 우파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근시안적인 방식의 정치가 바로 그 모습이다. 혁신의 탈을 쓴 내홍에 시달리며 우파의 마음을 잃어가면서도, 갈 곳 없는 거 알고 있으니 어서 돌아오라는 안하무인 식의 정치를 또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우파를 재건할 혁신의 실체가 겨우 친박 제거와 비박의 귀환이라니. 결국 우파 정치권은 사상적 밑천이 드러나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포퓰리즘을 등에 업고 국민을 상대로 호객행위에 나서게 될 것이 뻔하다. 아마 그런 그들에게 정체성이 있다면 ‘일단 선거 승리’ 정도가 될까. 먼 바다를 건널 튼튼한 배를 꿈꾸는 것이 아닌, 당장 눈앞에 있는 강을 넘어갈 나룻배에 만족하겠다는 것이다. 젊은 세대는 그런 낡은 나룻배에 미래를 싣지 않는다.

이재훈 시민기자

활활 타버리고 남은 우파의 잿더미가 국회에 처량히 흩날리고 있다. 지금은 모든 걸 다시,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시기다. 이제 박정희 대통령의 향수 아래 살아가던 날과는 작별을 고해야 하는 것이다. 다가오는 2018년에도 우리가 여전히 산업화 시대의 후광에만 기대어 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아마 피눈물을 흘릴 것이 틀림없다.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해져야 한다. 박정희를 외칠 틈이 없을 정도로 우파라는 그릇을 다양하고 신선한 이야기로 가득 채워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라나는 젊은 세대에게도 매력적인 우파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애국과 반공(反共)이 아닌 세련된 자유주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행히도 좌파의 기둥은 여전히 썩어있는 상태다. 좌파는 썩은 채로 여전히 살아있지만 우파는 마침내 죽고 말았다. 모든 낡은 것과 작별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기회를 먼저 얻은 것이다. 묵은 껍질을 벗어 던지고 마침내 꽉 찬 우파로 거듭날 소중한 기회를 절대 허망하게 날려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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