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표밭에 ‘3기 신도시’ 뒤통수 친 집권 여당
또 공공기관 이전 공약 등 배반에 무한지지 보낼 건가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경기도 일산 신도시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 그렇지 않아도 다른 신도시들에 비해 침체되어 있다는 박탈감을 갖고 있는 터에 문재인 정부가 일산보다 서울 쪽으로 가까운 위치에 3기 신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계획이 일산에 여러 가지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신도시 건설의 주무 장관인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일산 지역이 뽑은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주민들의 배신감은 더 커지고 있다.

김 장관 이외에 같은 고양 지역의 유은혜 심상정 의원이 각각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소속으로 전부터 좌파 성향이 강한 곳이 일산이다. 유시민 한명숙 등 좌파 인사들이 여기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언제부터인가 일산 지역이 좌파의 텃밭이 된 것은 고학력 고소득의 화이트컬러들이 많이 거주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최근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산서구와 일산동구는 고소득 고학력 등 사회경제적 계층 분포에서 전국 252개 시군구 가운데 각각 상위 16위와 18위를 기록한 바 있다.

한국에서 선거 판도를 좌우하는 요인으로는 흔히 지역, 세대, 이념 세 가지가 꼽히고 있으나 지역 색채가 엷은 수도권에서는 어느 한 가지 요인으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나곤 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문직 사무직 등 화이트컬러들의 좌파 지지 경향이 뚜렷한 점이다.

100만여 표 차이의 비교적 접전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던 2012년 대선에서 화이트컬러들은 67.2%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조사됐다(이용마, 2014년 ‘한국정당학회보’). 일산 신도시는 이런 현상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일산 신도시의 여성유권자 또한 인터넷 맘 카페 등에서 유난스런 친(親)문재인 성향으로 소문 나 있다.  

최근 일산 지역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민주당을 기대하고 지지한 민초로서 반성합니다’라는 글이 올라 왔다. 글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일산 주민들의 분노는 지지 정당이 지역 발전은커녕 오히려 피해를 입히는 정책을 내놓은 것에 기인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국가정책을 결정할 때는 지역구보다는 나라 전체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거주하는 수도권 지역에서 지지 세력의 뒤통수를 치는 사례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 부처를 세종시로 이전하는 행정수도 이전은 노무현 대통령이 “재미 좀 봤다”고 스스로 고백한 공약이었다. 그는 수도권에 있던 152개 공공기관까지 지방에 나눠줬다. 좌파 정당이 득표 전략으로 수도권 것 빼내 지방에 분배하는 나쁜 버릇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도지고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총선 공약으로 수도권 공공기관 122곳을 지방으로 이전하겠다고 나섰다. 청와대 국회까지 세종시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수도권을 입맛대로 요리하고 있는 중인데 수도권 유권자들의 반대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이래도 저래도 허허 웃고만 있는 ‘돌부처’ 이미지가 겹쳐진다.  

3기 신도시 건설의 계기가 됐던 부동산 문제만 하더라도 현 정부가 자신들의 정책 실패에서 비롯된 잘못을 수도권 주민들에게 떠넘기는 꼴이다. 최근의 아파트값 급등은 새로 지은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에서 출발한 측면이 크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에 재건축을 허용해 장기적으로 공급을 확대하면 풀려나갈 일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그 꼴만은 죽어도 못 보겠다는 외고집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구축 아파트촌은 안전 문제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황폐화 된지 오래고 재개발을 기다리는 단독주택 지역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혹시 시간 여유가 있는 분들은 한번 가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과연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여건인지를. 이런 상황에선 그 정책을 펴는 정당의 지지가 높을 수 없는 게 상식이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승리를 내심 자신하고 있다. 믿지 못 할 여론조사이지만 수도권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우세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여당이 겉으로는 웃으며 속으론 빼앗아갈 궁리만 하는데도 유권자들은 열심히 지지의 박수를 치고 있다. 

화이트컬러 유권자들이 좌파 정당에 표를 주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개인적 이익 추구에 앞서 이 나라가 더 나은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어찌 보면 선량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뜻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좌파 정당이 그에 걸 맞는 선의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토 균형 발전이 필요한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집권 여당의 방식은 세계 흐름에 무지함을 드러낼 뿐 아니라 구태여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어차피 나라가 어찌되든 상관없이 정치적 술수로 나선 일이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수도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인 시대가 됐다. 선진국에서도 우리처럼 수도권 집중의 부작용이 이슈화된 적이 있으나 지금은 옛날 얘기다. 그 이유는 서비스화 정보화로 압축되는 세계의 경제 흐름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을 서비스산업이 잘 갖춰진 곳에 살기를 원하고 서비스산업은 인구가 모인 곳에 더 발달한다. 같은 수도권이라도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동네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

정보화에 따라 지식과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말 부가가치 높고 차별화된 지식은 사람이 밀집된 곳에 가야 구할 수 있다. 소비자의 필요와 욕구가 치열하게 충돌하는 곳에서 미래 산업의 지식이 창출되고 경쟁력이 커진다. 노인들이 좀처럼 도시를 떠나려 하지 않듯이 고령화도 수도권 집중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한다. 수도권 집중과 집적의 메리트가 폐해보다 훨씬 중요해 졌다.

한편으로 지방 발전의 문제는 새로운 상황에 맞는 해법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진정 국가를 위하는 길이다. 집권 여당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수도권 공공기관 이전을 들고 나온 것은 수도권과 지방,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편 가르기 하는 악질적인 매표 전략일 뿐이다. 

상대가 강할수록 넙죽 엎드리고 약할수록 무시해 버리는 게 정치권의 속성이다. 노조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좌파 기득권 세력은 지난 10년간의 우파 정권에서도 큰 소리를 쳤고 이번 정권 들어서는 더 기세등등하다. 문재인 정권에서 힘들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이 더 팍팍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물며 아무리 자신들에게 역행하는 정책을 펴도 무한 지지를 보내는 유권자들을 정치권이 어떻게 여길지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투표로서 힘을 보여주는 길밖에 없다. 일산 신도시의 반발은 때늦은 각성의 조짐이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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