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킨텍스에서 28일 열린 긴급토론회 현장.(김진기 기자)

"80년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산 집이 일산 신도시 아파트다. 당시 여의도, 광화문에 직장이 있는 사람은 일산에 집을 샀고 강남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은 분당에 집을 샀다. 지금 분당 집값이 일산보다 3배 비싸다. 가격이 떨어진 것 까지는 참을 수 있지만 삶의 질이 하락하고 있다는 건 나를 슬프게 한다." 

"지난 10년간 도시 인프라는 변한 게 없고 서울로 출퇴근해야 하는 사람만 늘었다. 서울까지 1시간이면 되던 것이 지금은 2시간 넘게 걸리는 상황이다. 새벽 7시에 출근했었는데 이제는 새벽 5시 반에는 나서야 제 시간에 직장을 갈 수 있다."

흰 모자를 눌러 쓴 한 남성이 '3기 신도시 건설'을 강행하려는 문재인 정부를 향해 성토하는 일산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

28일 일산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가 주최하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주관한 긴급 현장토론회에 참석한 일산, 파주운정 신도시 주민들은 문재인 정부의 3기 신도시 계획에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강세 지역으로 평가받는 일산 주민들이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론까지 들고 나왔다.

이동환 한국당 고양병 당협위원장은 3기 신도시가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 위원장은 "2기 신도시는 57만 7000호로 아직도 진행 중"이라며 "2기 신도시 중 개발이 완료된 곳은 김포 한강, 대전 도안 등 2곳으로 개발 완료율이 16%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 위원장은 "3기 신도시는 30만 호를 추가 공급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베드타운(bed town)으로 전락한 1, 2기 신도시를 데드타운(dead town)화 시키는 재앙"이라고 덧붙였다.

긴급 토론회에 참석한 주민들도 '제발 집만 짓는 것을 멈춰달라'며 이 위원장의 발언에 동조했다. 3기 신도시 계획을 발표한 국토교통부가 서울 집값을 잡기 위해 경기도에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한 것에 주민 다수가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일산 주민 A씨는 "대한민국 국토부는 늘 강남 집값만 생각하며 대책을 사후약방문 식으로 내놓는다. 강남 오르면 하나 내놓고, 또 다시 내놓는 것을 반복한다. 그러면서 우리같은 경기도 신도시 주민들은 가만 앉아서 피해를 입어왔다"고 언성을 높였다. 

앞서 정용기 한국당 정책위의장도 "국토 균형 발전과 시장 원리, 도시에 대한 근본적 고민 없이 오직 '강남 집값만 잡으면 된다'는 식의 이념에 사로잡혀 기존 주민들을 좌절시키고 있다"면서 "미분양과 주택 거래 중단으로 신음하는 1, 2기 신도시 주민들은 ' 나 몰라라' 하면서, 강남 수요를 분산하겠다며 그린벨트 풀겠다는 것은 발상 자체가 불순하다"고 말했다. 

이어 일산 주민 이현영 씨는 "3기 신도시 문제를 집값 하락에 대한 주민들의 이기심으로 몰아가지 말라"며 "자유시장경제에서 누구나 자신의 상품이 가치있길 바라고 자족 시설과 인프라 요구를 마땅히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산과 운정 신도시는 고질적인 교통 문제에 자족 기능 미비까지 겹쳐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주택만 계속 짓겠다니 모든 악조건을 일산으로 몰아서 할렘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성토했다. 

지난 27일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3주간의 민생현장 점검을 마친 뒤 문재인 정부의 경제실정을 바로잡겠다고 밝힌 뒤 한국당 의원들은 일산 현장을 찾았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일산 주민들은 1, 2기 신도시에도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3기 신도시를 발표한 문재인 정부와 국토부 김현미 장관을 규탄했다. 

이날 토론회는 주민들의 고함소리에 진행이 원활하지 못했다. 토론자들의 발언마다 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토론 자체가 멈추기 일쑤였다. 토론회를 찾은 주민은 "이 자리를 빌어 3기 신도시 취소를 요구하고 싶지만 김현미 장관이 없으니 화가 난다"며 "어떻게 이런 상황에 GTX 하나만 인심쓰듯 던져주고 무마시키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도시 계획은 88 올림픽 이후 폭등한 서울 아파트 값을 진정시키려 한 노태우 정부 때 시작되었다. 노태우 정부는 1기 신도시로 일산과 분당 등을 지정, 90년대 초반에 대대적으로 아파트를 공급했다. 전문가들은 1기 신도시 계획이야말로 정부 주도로 집값을 안정시킨 유일한 사례라고 꼽아왔다.

그런데 문제는 서울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기 위해 박정희 정부부터 시작된 그린벨트를 문민정부 이후의 정권이 편의에 따라 훼손하며 일어났다. 1기 신도시인 일산의 경우에는 노태우 정부가 그린벨트를 가운데 두고 서울에서 20km 떨어진 곳에 개발한 도시이다. 일산 옆 파주 운정 신도시는 노무현 정부 때 판교와 함께 지정한 2기 신도시로 서울에서 30-40km나 더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반면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 발표한 3기 신도시들은 서울에서 불과 5km 떨어진 곳에 그린벨트까지 해제하며 짓기로 한 곳이다. 당연히 경기도 외곽 주민들의 반발을 살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서북권인 고양시, 파주시에 1, 2기 신도시 주민들은 누적된 문제들을 10년 이상 미루며 해결도 해주지 않으면서 무작정 3기 신도시를 추가 지정한 것에 울분을 토하고 있다. 

오랫동안 민주당 텃밭으로 알려진 일산 신도시 주민들은 파주 운정 신도시 주민들과 세를 모으며 김현미 장관과 문재인 정부를 향한 집회를 계속하기로 했다.       

윤희성·김진기 기자 penn@pennmike.com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