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삼 대기자의 역사현장] 대한민국 국군 최고의 승전지 파로호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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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中사대주의자들 '이승만 흔적 지우기'…中, 중공군 최대 몰살지 '파로호' 명칭 변경요구

#편집자 주: 지난 20일 펜앤드마이크의 김용삼 대기자와 조준경 기자가 강원도 화천 파로호를 찾았다. 파로호는 6.25전쟁에 개입한 중군군 2만5000명을 대한민국 군국이 수장시킨 '역사적 승리'의 현장이다. 또 3.8선 위에 있던 화천수력발전소를 확보해 전후 전력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이승만 대통령에게는 반드시 확보해야할 전략적 요충지였다. 김 대기자와 조 기자가 파로호 주변 구석구석의 다니며 현지 주민들을 만나 파로호의 이름을 변경하라는 친중 정치인들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 직접 검증해 보았다. 

‘파로호(破虜湖)’라 불려온 호수 이름을 ‘대붕호(大鵬湖)’로 뜯어고치려는 작전세력이 나타나 강원도 화천의 호수 개명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이번 작전 세력은 중국 정부와 문재인 정부, 그들을 지지하는 국내의 친중(親中)·친좌파 합작세력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70년 가까이 불려온 파로호란 지명을 느닷없이 대붕호란 정체불명의 지명으로 뜯어고치겠다고 나선 세력의 말단에 서 있는 단체가 ‘남북강원도협력협회’와 화천군 간동면 주민공동체로 알려진 '대붕호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난 5월 24일부터 2박 3일간 'DMZ 대붕호 평화문화제'라는 행사까지 열었다. 행사의 목적은 "파로호가 아니라 대붕호!"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1951년 화천전투 당시 유엔군과 국군에게 사살당해 파로호에 수장 당한 것으로 알려진 중공군들의 넋을 위로한다는 취지에서 문화제 행사 중에 황해도 만신 이해경의 '해원상생제'란 굿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파로호는 자연호가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화천수력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화천군 간동면 구만리의 북한강 협곡의 물길을 가로막아 인공댐을 건설하면서 조성된 인공호다. 조선총독부는 인공댐 이름을 대명제(大䳟堤)로, 댐으로 인해 생겨난 인공 호수를 대명호라는 공식 명칭을 부여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에 날개 길이가 삼천리, 하루에 9만 리를 날아간다는 상상 속의 새 대붕(大鵬)이 살았다는 전설을 근거로 하여 인공댐 이름을 대붕제(大鵬堤), 저수지를 대붕호라 불러줄 것을 원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방이 되면서 38선 이북 지역이었던 이곳에 북한은 화천저수지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북한이 1948년 5.14 단전으로 전력 공급을 중단하자 미군정청은 발전함 자코나호를 부산에 보내 발전을 하여 위기를 넘겼다. 불행하게도 화천수력발전소는 38선 이북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지 못했다.

이 와중에 6·25 남침전쟁이 발발하여 1950년 유엔군 북진 과정에 화천수력발전소가 대한민국 수중으로 넘어 왔다. 6·25 당시 남한 지역은 거의 모든 발전소가 파괴되어 심각한 전력난에 처했다.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이승만 정부는 1950년 11월, 화천발전소의 제1호기 복구를 완료하고 시운전을 시작했으나, 중공군의 대공세로 인해 또 다시 화천발전소를 빼앗겼다.

화천발전소를 확보하기 위한 이승만 대통령의 의지는 뜨거웠다. 그 결과 화천발전소를 둘러싸고 다섯 차례나 공방전이 벌어졌고, 이 와중에 화천발전소의 대부분의 시설이 파괴되었다.

6·25 전쟁사에는 화천발전소를 둘러싼 의미심장한 전투가 두 차례 벌어졌다. 1951년 5월 26일 미 제24사단 제21연대, 미 제7사단 제17연대, 국군 제6사단 제19연대가 화천 일대의 중공군 10·25·27군 등 3개 군을 포위 섬멸했다. 이것이 화천전투다.

중공군은 대대 단위로 포위망을 탈출하려 했으나 퇴로를 봉쇄한 국군과 유엔군이 사흘간에 걸쳐 중공군을 섬멸하여 화천저수지가 피로 물들었다. 이때 중공군 2만 4,141명을 사살하고 수많은 병력이 포로가 되었다. 중공군으로서는 치욕스러운 전투로 기록될 만한 대사변이었고, 국군과 유엔군 입장에서는 빛나는 승리였다.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여 당시 현지를 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은 "오랑캐를 격파한 호수"라는 뜻으로 화천저수지에 '파로호(破虜湖)'라는 친필휘호를 내렸다.

65년 간 잘 사용되어 오던 호수의 명칭 변경 문제가 불거진 첫 보도는 한겨레신문(2019년 3월 6일자)이다. 이날 한겨레신문은 3·1운동 100돌과 남북 평화시대를 맞아 강원도 화천 ‘파로호’ 이름을 애초 지명인 ‘대붕호’로 바꾸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자국이 패배한 전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파로호 명칭을 변경하라고 우리 정부 측을 압박한 사실이 알려졌다.

파로호는 우리 국군이 6.25때인 1951년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중공군을 화천저수지 일대에서 격파한 것을 기념해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물리쳤다”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이 전투에서 중공군은 최소 2만 5000명 이상의 전사했고, 포로는 7900여명이 발생했다.

중국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지우기 위해 우리 정부와 지자체에 “중국 관광객들이 불쾌하게 생각한다”라며 이름 변경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주중 한국 대사관과 강원도, 화천군 등 지자체에 이러한 요구사항을 전달했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지난 27일 “신화통신 등 일부 중국 언론인들도 이런 요구를 한 적이 있다”고 언론을 통해 말했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도 주중대사 시절 중국 측으로부터 같은 요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이러한 태도에 외부 지역에서 들어온 좌파단체들도 파로호를 일제가 패망직전인 1944년에 지은 명칭인 대붕호(大鵬湖)로 바꾸자는 운동을 벌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파로호 명칭 변경은 다행히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지명을 바꾸려면 지역 주민의 여론 수렴과 함께 시·군·도 관련 위원회 검토를 거쳐야 한다.

지역 주민 대다수가 파로호라는 이름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과거 공직선거에서 ‘파로호’ 명칭 변경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후보는 모두 낙선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실제로 파로호 명칭 변경은 이뤄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최 군수는 “지난 67년 동안 사용한 역사성과 승전의 기록을 대신해 일제 강점기 때 이름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명칭 변경에 반대했다.

‘파로호’ 명칭변경에 대한 시민단체 반발도 나오고 있다. 화천문화원 등 화천지역 사회단체들은 지난 21일 성명서를 발표, “지역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파로호'를 `대붕호'로 바꾸려는 시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영훈 이승만학당 교장은 “(파로호) 이름을 바꾼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지우겠다는 의미 아니냐”라며 “중공군에 저항해 한국군과 유엔군이 자유세계를 방어한 사실을 지우겠다는 의도 같은데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우리나라 좌파 종북세력은 기본적으로 중국에 대해 친중 사대주의 정서를 갖고 있다"며 "그래서 (중국이 제안한)안(案)을 수용하려는 모양인데, 자유시민 입장에서 볼 대는 심히 굴욕적"이라고 말했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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