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일각에선 "총수 30명이나 불러 놓고 무슨 얘기를 듣겠다는 건지, 결국 총수들 들러리 세우는 것"
국가간 현안이라 개별 기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제한적...문 대통령은 재벌 총수가 아니라 아베를 만나야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7일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대기업 총수 일부와 비공개로 만났지만 기업들에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일단 정부를 믿고 따르라"는 수준의 당부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는 "맞대응할 경우 일본의 강공에 말릴 수 있다"며 '의도된 저강도 대응'이라고 설명했지만 징용 문제로 시작된 갈등을 외교적으로 풀지 못해 기업들만 무방비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업계에서는 나오고 있다. 

재계에서는 당장 기업 피해가 눈앞에 닥쳤는데 뒤늦게 정부가 나서는 것에 "어이없다"는 반응이다. 5대 그룹 고위 관계자는 "양국 기업 간이나, 산업 간에 충돌이 생기면 정부가 기업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게 맞겠지만 지금 사태는 정부 간 외교적 갈등이 기업·산업 쪽으로 번진 건데 기업인 모아 놓고 무슨 대책을 세우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또 오는 10일 문재인 대통령이 30대 그룹 총수를 불러 놓고 열겠다고 밝힌 긴급대책회의에 대해서도 재계는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총수 30명이나 불러 놓고 무슨 얘기를 듣겠다는 건지, 결국 총수들 들러리 세워 보여주기식 대책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실무자급 협의를 일본 측에 제안했지만 일본 경제산업성의 미온적 태도로 논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지난 2일과 3일 두 차례 일본 경제산업성에 한·일 전략물자 수출을 담당하는 양국 국장급이나 과장급 협의를 '최대한 빨리 갖자'면서 실무자급 협의를 거듭 요청했으나, 일본 정부가 일정 조율을 이유로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홍 부총리와 김 실장이 주재한 이날 간담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개 기업 총수만 참석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청와대 간담회 대신 해외 출장을 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홍 부총리는 8일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는 철회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배치되는 것으로 우리 기업은 물론 일본기업, 글로벌 경제 전체에 대해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며 "우리 업계 및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소통, 공조 등을 통해 다각적이고도 적극적인 대응을 지속해 나갈 것이고 우리 기업의 피해 최소화와 대응 지원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하반기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등 다자적 논의가 예정돼 있다"며 "글로벌 경제의 성장과 보호무역주의 확산 방지를 위한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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