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문재인의 ‘마이 웨이’에 국가 내리막길
중도 세력이 제 목소리 내야 제동 걸 수 있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건 분명 맞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1일 종교계 지도자들과 만나 또 다시 국민들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얘기를 꺼냈다. “우리 나름대로 협치를 위한 노력을 했고 많은 분야에서 통합적 정책을 시행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오로지 지지세력만 쳐다보고 달려왔던 게 문재인 정권의 지난 2년 반이었다. 대통령이 협치와 통합을 위해 열심히 나섰는데도 요즘처럼 나라가 두 쪽이 났다면 그 잘못은 반대 편 국민들에게 있다는 말인가.

바로 이튿날인 22일에는 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이 있었다. 정치권, 국민들과 소통하는 중요한 연례행사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 앞서 자유한국당의 황교안 대표가 조국 사태와 민심을 거론하자 대답을 하지 않고 옆에 있던 대법원장에게 ‘법원 개혁’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국민 통합을 하겠다며 종교계 지도자들을 청와대로 불러 모은 뒤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말 따로 행동 따로’임을 보여준 것이다. 이 정도라면 남은 절반 임기도 지금처럼 ‘마이 웨이’로 간다고 봐도 틀림없다.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다면 국민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 정권 정책에 보다 강력한 반대와 거부에 나서 민심으로 압박하는 일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지금 “한국 대통령이 저렇게 나라를 멋대로 주무르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었다니”라는 놀라움과 함께 대통령의 위력을 재발견하는 중이다. 그동안 우파 대통령들은 그 쎈 권력을 갖고 뭘 하고 있었나 싶다. 이러한 무소불위의 힘에 맞서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전 어떤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기울어진 운동장’을 탓하는 걸 들은 적 있다. 한국의 정치 지형이 우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말이었다. 당시에는 좌파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현 상황은 좌파 쪽에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확 바뀌었다. ‘분노의 시대’로 요약되는 민심의 거친 파도가 좌파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좌파가 하는 일은 아무리 잘못되어도 누가 적극적으로 시비를 걸지 않거나 침묵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 풍토가 되어 버렸다. 반대로 우파는 실수라고 할 것도 없는 일에 무차별 공격을 당하고 누가 편들어 주지도 않는다. 사과할 일이 아닌데도 사과를 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 강고한 틀을 깨는 것이 우파의 일차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최근 개그계의 김영희와 강성범 사례만 봐도 그렇다. 김영희 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금수저’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가 “지금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조국 딸 느낌 나요. 박탈감 느껴요”라고 말했다가 집중 포화를 맞고 방송을 접어야 했다. 반면에 강성범 씨는 조국 수호 집회에 참석해 마이크를 잡고 “처음에는 조국이 아니면 안 되느냐는 말이 많았는데 이제는 조국이 아니면 안 되게 됐다”고 말해 집중 박수를 받으며 ‘개념 연예인’ 반열에 올랐다. 

두 사람의 명암이 엇갈린 이유는 간단하다. 김영희의 말은 좌파의 비위를 거스른 것이었고 강성범의 말은 좌파의 구미에 맞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판단의 기준은 상식이나 합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좌파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좌파 절대 우위의 문화 권력이 있고, 더 안으로 들어가면 극렬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수 없는 행동 세력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현 집권 세력은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도 큰 반사이익을 얻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를 배제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본능적인 거부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권이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 시각에도 이뤄지고 있는 낙하산 인사에 대해 현 정권은 국정 철학이 맞는 내 편을 기용한다고 강변하지만 다른 편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블랙리스트 적용과 마찬가지다.

박근혜 정부는 순진하게도 종이로 된 블랙리스트 명단을 갖고 있었고, 현 정부는 종이가 아닌 머리 속에서 꺼내 적용하거나 아직 종이 명단이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다. 최근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우파 채널에 대한 ‘노란 딱지’ 붙이기 탄압도 개그우먼 김영희 몰아내기 사례와 함께 블랙리스트 사건과 같은 성격이다. 다만 행동 대원들이 나서느냐 정권이 나서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사실 문 정권의 일방통행 정치와 행동 세력은 한 세트가 되어 움직인다. 정권 쪽에서 조국 수호를 외치자 당장 서초동에서 조국 수호 집회가 열렸다. 좌파는 스스로를 공동체라고 부른다. 이 둘의 연합 체제를 넘지 못하면 당분간 우파의 미래는 어둡다. 

다행인 것은 좌파의 본래 모습이 갈수록 확연히 드러나고 있는 점이다. 이 정권 들어 조국 사건을 필두로 화려한 포장술에 가려졌던 위선적 실상이 하나씩 벗겨졌다. 인터넷 공간에서 지배적인 것으로 보였던 의견들이 사실은 적은 숫자의 행동 세력들에 의해 부풀려지고 조작된 것이라는 점도 대중들이 파악한 지 오래다. 하지만 이들의 무차별적 공격 활동으로 위세는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현 정권의 국가 운영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이대로 나라가 무너져 내리고 결국 망국을 부를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설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잘 나가던 국가가 단기간에 추락한 사례는 많다. 이른바 중도 계층의 판단이 중요해진 시점이다. 중도가 포퓰리즘에 흔들리지 않고 현 정부에 제 목소리를 내면 지금이라도 얼마든지 물길을 바꿀 수 있다. 

중국 청두에는 1911년 일어난 ‘보로운동(保路運動)’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중국 대륙 곳곳이 서양 열강들의 먹잇감이 되던 시절 이곳에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역사의 조류를 되돌리지 못했다. 이 기념비에는 ‘나라가 망하는 데는 백성에게도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는 비장감 넘친 글이 새겨져 있다. 물론 나라를 망친 책임은 최고지도자에게 물어야 하지만 보통 사람들도 그로부터 자유로운 건 아니라는 때늦은 각성과 후회가 마음에 와 닿는 오늘이다.  

홍찬식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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