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켈리는 한 조직의 성공에서 리더십이 차지하는 역할은 20%이며, 나머지 80%는 팔로워십에 의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도 팔로워들의 지지와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새마을운동은 한민족 역사상 드물게 지도자가 앞장서서 이끌고, 국민들이 열과 성을 다해 그것을 밀어주며 혼연일체가 되어 ‘잘 살아보자’는 열망을 실현한 리더십과 팔로워십(followership)의 완벽한 조화였다. 그러한 리더십의 최고 정점에 박정희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누가 뭐래도 이런 역사적 사실은 지워지지 않고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문재인 대통령은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9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에서 열린 2019 전국새마을지도자 대회에 취임 이래 처음 참석해 기념 축사를 했다. 재임 중 이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사관(史觀)에 절어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꼽히는 새마을운동을 칭송하고, 새마을운동을 현장에서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해 그들을 격려하는 것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문 대통령은 축사를 하는 내내 ‘박정희’란 말은 단 한 마디 언급도 없었다. 아니, 새마을운동을 거론하는 데 있어 박정희를 빼다니. 게다가 새마을운동의 정체성, 즉 기본 정신은 근면·자조·협동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입에서 새마을운동의 핵심 정신은 입도 뻥긋 하지 않고 “나눔과 봉사의 운동”, “함께 잘 사는 나라”를 강조했다. 행사장 전면에는 느닷없이 "생명, 평화, 공경"이란 슬로건과 함께 "미래를 위한 생명살림, 함께 잘 사는 지구촌"이란 구호가 걸려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29일 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하여 새마을운동을 언급하면서 단 한 번도 "박정희"란 말을 언급하지 않았다. 사진은 행사 관계자들과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문 대통령(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월 29일 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하여 새마을운동을 언급하면서 단 한 번도 "박정희"란 말을 언급하지 않았다. 사진은 행사 관계자들과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 문 대통령(사진 연합뉴스).

이건 뭐하자는 미친 짓인가?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그들 앞에서 새마을운동을 완전히 왜곡 날조하고 있지 않은가. 뭐, 생명, 평화 공경이라고? 미래를 위한 생명살림이라고? 이 사람들 이거 미쳐도 단단히 미친 거 아닌가? 저들은 지금 새마을운동을 껍데기와 모양새만 남겨놓고 통째로 소프트웨어와 근본정신을 말살하고 있다. 그 이유를 밝혀 보겠다. 

새마을 지도자 앞에서 단 한 번도 "박정희" 언급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첫째, 새마을운동에서 박정희를 빼면 운동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마을운동을 연설하면서 단 한 번도 "박정희"를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박정희 없어도 새마을운동은 가능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는 상징조작 같은데, 그 무지와 착각을 깨우치기 위해 에피소드 하나 소개한다.

청와대에서 새마을 운동 실무 담당자였던 박진환 특보의 증언에 의하면 1974년, 대통령 지시에 의해 국무위원들이 절반으로 나뉘어 단체로 새마을연수원에 입소하여 새마을 교육을 받았다. 1974년 7월 20일 장·차관, 대학총장, 언론계의 중진 등 53명이 입교하여 남녀 새마을지도자들과 함께 구보를 하고, 노래도 부르고, 새마을 성공사례를 들으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박진환, 『박정희 대통령의 한국경제 근대화와 새마을운동』, (사)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2005).

1진이 교육을 마치고 현업 복귀했다. 2진의 입소는 8월 17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장·차관들의 입소 교육을 이틀 앞둔 19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가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다음날 새벽 2시 경 박정희 대통령은 육 여사의 시신이 안치된 청와대 접견실로 내려와 오래도록 통곡을 했다. 그때 김종필 국무총리가 들어오자 울음을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

“김 총리, 내일 나머지 장관들은 예정대로 새마을 교육 받으러 입소하는 거지?”

김종필 총리가 “국장(國葬) 때문에 장관들의 새마을교육은 일단 연기해야 겠습니다” 라고 답했다. 박 대통령은 “국장이라고 모든 장관들이 있어야 할 필요가 있나? 먼저 다녀온 장관들만 있어도 되지 않겠는가” 하고 입소를 지시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영부인이 암살범의 흉탄에 목숨을 잃어 온 나라가 비탄에 잠겨 있는 마당에 국무위원들 새마을 교육을 챙기다니…. 박진환 특보는 이 말을 듣고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 운동에 목숨을 걸었구나” 하는 생각에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새마을 운동이 전국에서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날 때 박정희는 “내가 대통령이 안 됐으면 새마을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마을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인물이 박정희다. 이런 인물을 빼고 새마을운동을 논하는 것은 일종의 사기다.

생명, 평화, 공경이 아니라 근면·자조·협동이다

둘째, 누가 뭐래도 새마을운동의 근본정신은 "생명, 평화, 공경"이 아니라 근면·자조·협동이다.

지금 이런 말을 하면 믿는 사람이 없겠지만, 5·16 군사 쿠데타가 벌어졌던 1961년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보릿고개, 초근목피(草根木皮), 절량(絶糧)농가, 춘궁기라는 말이 실제로 존재했다. 박정희와 함께 혁명을 했던 이석제 전 감사원장은 박정희의 근대화 철학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국가건설”, 즉 국민들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정희는 혁명동지들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

“국민에게 세 끼 밥도 제대로 못 먹이는 지도자는 참다운 지도자가 아니오. 여러분들은 어떤 정책이나 법률을 입안할 때 반드시 국민에게 밥을 먹일 수 있는 방법론과 연관을 시켜서 발상을 해야 합니다.”

행사장에 걸린 "생명, 평화, 공경" 구호. 미안한 얘기지만 새마을운동의 핵심철학은 "근면, 자조, 협동"이다(사진 연합뉴스).
행사장에 걸린 "생명, 평화, 공경" 구호. 미안한 얘기지만 새마을운동의 핵심철학은 "근면, 자조, 협동"이다(사진 연합뉴스).

국민들을 배불리 밥 먹이고 잘 살게 하려면 잠자는 국민들, 의욕을 상실한 국민들, 절망과 체념에 지친 국민들을 일으켜 세워 물불 안 가리고 뛰도록 해야 했다. 지난 수백 년 세월을 양반 지주, 탐관오리들에게 수탈당하며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아온,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을 일으켜 세우려면 국가의 행정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들 내면에 잠자고 있는 본능에 불을 붙여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탄생한 정신운동이 새마을운동이었고, 그 구호가 근면·자조·협동이었다. 박진환은 근면·자조·협동의 새마을정신은 청교도정신과 상통하는 것이며, 한국적인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새마을정신의 생활화는 한국에 알맞은 자본주의 정신을 가꾸는 작업이었다는 것이다(박진환, 앞의 책). 그런데 이런 근본정신을 정체성도 불분명한 "생명, 평화, 공경"으로 대체한다? 이게 새마을운동 지도자들 앞에서 할 일인가? 

함께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땀흘려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은 혜택 받는 제도

셋째, “함께 잘 사는 나라”, "함께 잘 사는 지구촌"이란 개념은 새마을운동의 근본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망언이자 헛소리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표 세 번째는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다. 내 삶은 내가 책임지는 것이지 왜 국가가 책임지나? 내가 언제 국가더러 내 삶을 책임져 달라고 위탁했나? 내 삶을 책임져주는 비용은 누가 대나? 문재인 대통령 개인 호주머니 돈 털어서 내 삶을 책임져 주는가? 국민 세금 뜯어다 하는 것 아닌가?

전국 방방곡곡의 농어촌, 도시 곳곳에 새겨져 있었던 새마을운동 정신.
전국 방방곡곡의 농어촌, 도시 곳곳에 새겨져 있었던 새마을운동 정신.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국가가 내 삶을 책임져주면, 국가는 그 대가로 나의 천부적 권리와 자유를 하나씩 빼앗아간다. 그 마지막 귀결은 공산 전체주의다. 이제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이 획기적이었다는 평을 듣는 이유는 “모든 사람을 다 돕는 보편적 방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잘 하는 마을에는 파격적인 지원을, 못하는 마을에는 지원을 끊는 정의의 신상필벌(信賞必罰) 원칙을 엄격히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경제학자 좌승희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 밝혀낸 것이다. 

좌승희 이사장은 모든 사람을 돕는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뭔가 해 보겠다”는 강렬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선별해서 돕는, 선택적이고 차별적이며 경쟁적인 방식으로 일을 추진한 것이 결정적인 성공 요인이었다고 말한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표. 세번째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다. 내 삶을 내가 책임져야지 왜 국가가 책임지나? 국가가 내 삶을 책임져주면, 국가는 그 대가로 나의 천부적 권리와 자유를 하나씩 박탈하여 공산 전체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국정지표. 세번째가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다. 내 삶을 내가 책임져야지 왜 국가가 책임지나? 국가가 내 삶을 책임져주면, 국가는 그 대가로 나의 천부적 권리와 자유를 하나씩 박탈하여 공산 전체주의로 갈 수밖에 없다(사진 연합뉴스).

새마을운동의 출발은 정부가 1970년 10월부터 다음 해 6월까지 전국 3만 4,665개 부락에 시멘트 300~355부대씩을 무료로 배급한 것으로 시작됐다. 시멘트를 그냥 나눠준 것이 아니라 반드시 마을 공동사업(즉 마을 진입로 확장이나 작은 교량 건설, 농가지붕 개량, 우물시설 개선, 공동목욕탕 건립 등)에 써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정부로부터 시멘트를 제공 받은 부락 중에는 농가마다 개별적으로 나눠 쓰고 치운 곳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유능한 지도자가 있는 마을, 단합이 잘 되는 마을은 정부가 지원한 시멘트로 마을 공동사업에 필요한 공사를 진행했다.

다음 해에 전년도 사업 실적을 평가한 결과, 절반가량인 1만 6,600여 마을은 지급된 시멘트를 이용하여 마을에 필요한 공동사업을 수행했다. 나머지 마을은 별 성과가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성과가 뚜렷한 마을에 한해 다음 해에 시멘트 500부대와 철근 1톤씩을 지원했다. 성과가 없는 마을은 지원을 끊었다.

철저한 신상필벌의 원칙

여당인 공화당은 대경실색했다.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부락은 다음 선거에서 여당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청와대에서 열린 당정(黨政)협의회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스스로 노력하고 협동하는 마을은 적극적으로 돕되, 노력하지 않거나 협동하지 않는 마을은 돕지 않겠다. 이 길만이 수 천 년 내려온 의타심을 뿌리 뽑고 자조하는 정신을 자각시키는 길이다. 이와 같은 방침으로 설령 선거 때 표를 못 얻어 져서 정권을 내놓는 한이 있어도 이 신상필벌의 원칙만은 바꾸지 않겠다.”

1973년 정부는 전국의 모든 마을에 대해 그 실태를 조사하고 전국의 마을을 다음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자립마을 : 리더십이 건전한 가운데 공동사업을 영위하고 있는 마을(2,300개).

◇자조마을 : 리더십과 공동사업이 불충분한 마을(1만 4,000개).

◇기초마을 : 저개발의 후진 마을(1만 8,400개).

정부 지원은 자립마을을 중심으로 차별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자 지원에서 배제된 마을들이 정부 지원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했고,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협동 단결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잠잠했던 농촌 마을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립마을로 승격되려면 마을에 간선도로가 뚫려야 하고, 지붕과 담장의 80% 이상이 개량되어야 하며, 경지 수리율이 85% 이상, 마을 주변의 개천이 정비되어야 했다. 마을회관, 창고, 작업장 등 공동시설을 둘 이상 구비해야 하고, 마을기금이 100만 원 이상 조성되어야 했다. 또 농외소득의 공동사업을 벌여 농가소득이 호당 140만 원 이상이 되어야 했다(이영훈, 「새마을운동을 다시 생각한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박정희정신』 제4호(2017년 7·8월호), 172~174쪽).

여러 기준을 충족하여 자립마을 지정 통지서가 대통령 하사금과 함께 내려오면 마을 사람들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고, 풍악을 울리면서 잔치를 벌였다. 치열한 새마을운동의 결과, 1979년 박정희 정부의 마지막 해에 전국 3만 4,800여 마을 가운데 97%가 자립마을로 승격되었다.

정부는 농촌 지역의 소득 증대와 생활환경 개선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다. 투자도 어느 마을이나 고르게 한 것이 아니다. 철저하게 선택적, 차별적, 경쟁적 방식을 도입하여 잘하는 마을엔 더 많이, 못하는 마을엔 아예 지원을 끊었다.

새마을운동 리더십의 정점에 박정희가 있었다

‘전기 없는 마을 없애기 운동’을 벌일 때 전봇대에서 가까운 마을부터 가설하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아무리 먼 산골이어도 새마을 사업성과가 좋으면 그 마을부터 전기를 넣어주었다. 전봇대에서 가깝다고 앉아서 전기 들어올 날만 기다리는 나태한 마을은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마지막으로 새마을운동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무지를 깨우치기 위해 사족을 하나 단다.

로버트 켈리는 한 조직의 성공에서 리더십이 차지하는 역할은 20%이며, 나머지 80%는 팔로워십에 의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도 팔로워들의 지지와 열정이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조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갈 수 없다는 뜻이다. 새마을운동은 한민족 역사상 드물게 지도자가 앞장서서 이끌고, 국민들이 열과 성을 다해 그것을 밀어주며 혼연일체가 되어 ‘잘 살아보자’는 열망을 실현한 리더십과 팔로워십(followership)의 완벽한 조화였다. 그러한 리더십의 최고 정점에 박정희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누가 뭐래도 이런 역사적 사실은 지워지지 않고 우리 국민 모두의 마음에 살아 있다는 사실을 문재인 대통령은 아무리 바빠도 반드시,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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