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기생충'으로 드러난 한국인 '마음의 가난'...부자의 착취 가장 심한 나라라는 '원망'
약 30년간 '나는 중산층' 응답 75%→20% 폭락...객관적 소득격차는 인식과 크게 다르다
외신이 본 한국, 유례없는 경제 성공에 소득격차도 평이해...당사자들 마음만 더 불행해졌다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기생충 이야기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작년 5월에는 칸느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더니 올해 1월에는 골든글러브 상도 수상했다. 아카데미상에도 6개 부문 최종후보로 올랐다고 한다. 한국 영화의 큰 성공이고 경사다. 마땅히 축하할 일이지만 기쁘기만 하지는 않다. 이 영화가 성공을 거둘수록 한국인들의 불만과 불행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내용 때문이다.

기생충의 내용은 같은 집에서 동거하는 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집은 부자이고 다른 집은 가난하다. 두 집안의 상호작용 갈등을 많은 유머 코드에 실어 실감나고 흡인력 있게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크게 공감한 관객일수록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와 계급투쟁 상황을 격렬하게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사회에 대한 불만도 커질 것이다.

물론 상을 준 심사위원들은 영화의 정치적 메시지가 아니라 영화 그 자체만을 평가했다고 한다. 칸 영화제 심사위원 중의 한 명인 엘르 패닝은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아주 아름다운 우화다. 매우 사적이고 마음을 다치기 쉽다. 많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며 소중한 영화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뛰어난 상을 받으므로 인해 기생충의 정치적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 그것을 보는 관객들, 특히 한국 관객들은 한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블룸버그의 영화 기생충에 대한 논평

흥미롭게도 두 곳의 외신이 이와 관련된 기사를 내놨다. 블룸버그 통신은 1월 12일자 기사에서 한국 사회의 소득불평등이 기생충에 그려진 것처럼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라는 내용을 썼다.[1] 블룸버그가 제시하는 근거는 지니계수와 소득 5분위 배율, 그리고 최상위 1%의 소득비율이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0.32인데 이는 아시아에서 동티모르를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니계수는 작을수록 소득분포가 평등함을 나타낸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보다 한국의 지니계수가 더 낮다. 5분위배수란 최상위 20%의 소득을 최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배수인데 한국은 프랑스 독일과 약간 높고 일본보다는 낮다. 블룸버그는 국제비교를 해보면 한국의 소득분포가 특별히 불평등하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다. 물론 남녀의 격차, 노인빈곤, 청년일자리 등의 문제가 심각하긴 하지만 빈부 격차가 특별히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생충은 빈부격차를 특별히 심각한 것으로 드러내고 있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아시아타임즈 Asia Times도 12월 31일자 기사에서 유사한 기사를 실었다.[2] 한국 청년의 75%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한다는 여성개발원의 조사결과에 대한 것이다. 기자는 이 결과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왜 살만한 나라인 한국에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석을 실었다.

외신이 증언하고 있듯이 세계적으로 봤을 때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특별히 크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많은 한국인들이 자기 나라를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 가난한 자에 대한 부자의 착취가 가장 심각한 나라인 것처럼 인식해왔다. 그런 인식은 자연스럽게 세상에 대한 불만과 원망, 질투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봉준호의 기생충은 그같은 감정들을 세계 최고의 수준에서 표현해내고 있다.

한국인, 마음의 가난에 빠지다

스스로 마음의 가난(주관적 빈곤)을 선택한 듯하다. 중산층 인식을 보면 그렇다. 조금 오래 되기는 했지만 2011년 보건사회연구원 조사는 한국인이 얼마나 마음의 가난을 선택했는지 보여준다. OECD는 평균소득의 50-150%에 속하는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정의한다. 50% 밑이면 저소득층, 150%보다 높으면 고소득층이 된다. 보건사회연구원은 OECD 기준에 의해 저소득층, 중산층, 고소득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는 자신을 어디에 속하는 것으로 인식하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객관적으로 고소득층에 속한 사람의 7.4%만이 스스로를 고소득층이라고 답했다. 82.1%는 중산층이라 했고 심지어 10.5%는 저소득층이라고까지 답했다. 객관적으로 중산층인 사람들은 65.3%만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인식했고 32%는 저소득층이라 했다. 한편 저소득층의 경우 70.3%인 대다수가 저소득층이라 했고 나머지인 29.1%는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중간 이상 소득을 가진 사람의 상당수가 객관적 위치와는 달리 스스로 가난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가난은 마음의 가난이다. 이들이 인식하는 소득격차는 객관적 상황이 아니라 마음의 격차인 셈이다.

한국인의 가난이 상당 부분 마음의 가난임은 중산층 인식이 변화해온 추세를 봐도 알 수 있다. 1988년 경제기획원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0%가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답했다. 1989년 갤럽 조사결과에서는 75%가 그렇게 답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2006년, 2013년 한국사회학회의 조사에서는 스스로 중산층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20% 수준으로 떨어졌다.[3] 소득분포의 객관적, 통계적 변화로는 설명이 안되는 현상이다. 필자는 한국인이 마음의 가난에 빠져든 결과라고 확신한다. 결론적으로 한국 경제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지만 그 당사자인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불만이 많아지고, 더 불행해진 셈이다.

미국 흑인의 주관적 가난함

이와 유사한 현상이 미국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소득수준이 같아도 흑인은 백인보다 더 가난하게 느끼는 것이다. 다음 그림은 PEW Research Center가 2015년 3월 미국인의 백인과 흑인을 대상으로 주관적 계층의식을 조사한 결과를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는 계층을 저소득층-노동자층-중산층-고소득층의 4개로 구분했다. 그림은 흑인은 같은 소득수준이라도 백인에 비해 자신의 처지를 가난하게 인식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들어 필자가 빨간 박스를 처놓은 미화 25,000-75,000 달러 소득자의 경우 백인은 43%가 중산층, 54%가 노동자층으로 인식했다. 저소득층으로 인식한 경우는 1%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소득수준에 속하는 흑인은 스스로를 중산층으로 보는 사람이 18%, 노동자층으로 보는 사람이 72%, 심지어 자신을 저소득층으로 인식한 사람도 9%에 달했다. 흑인들이 백인에 비해서 마음이 가난함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왜 한국인은 마음이 가난해졌을까. 확실한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좌파들의 거짓말과 선동이 크게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들은 기존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또 자신들의 정권을 세우기 위해, 다수 대중을 선동해야 했고, 그 대중들을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로 그려냈다. 다수의 한국인들은 기꺼이 그 선동에 속아주었다. 그리하여 객관적으로는 중산층이거나 부자인 사람들조차 스스로를 저소득층으로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재산과 소득이 얼마이든 다같이 ‘우리 같은 서민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성공을 해도 행복해지지 않는 나라. 성공해서 오히려 불만과 불행이 커져온 나라. 그 불만과 불행이 좌파 정치세력을 키웠고 지금 이 나라를 파괴하고 있다. 마음의 가난이 이 나라를 진짜 가난으로 몰아가고 있다.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김정호의 경제TV 대표)

<참고문헌>

[1] https://www.bloomberg.com/opinion/articles/2020-01-12/what-parasite-misses-about-inequality-in-south-korea?sref=9fHdl3GV

[2] https://www.asiatimes.com/2019/12/article/75-of-young-want-to-escape-south-korean-hell/

[3] 강원택 외, 당신은 중산층입니까, 21세기북스, 2014, p.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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