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체결로 여러 대신들 자결하는 가운데, 정작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잘 먹고 잘 산 전례 있어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이번 총선부터 만 18세 고등학생들에게도 선거권 부여돼...유권자로서 알아야 할 ‘책임’ 있어
“나라의 존속과 나의 안전한 삶을 위해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인물을 걸러내는 것이 유권자의 가장 큰 ‘책임’”

1.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 때인 1905년 11월 17일 한일협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이른바 을사늑약이다. 놀랍게도 이 중요한 조약이 맺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실록에는 별다른 기록이 없다. 다만 그 다음 날부터 쏟아져 들어온 상소문들과 고종 황제의 비답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거의 모든 상소문의 내용은 조약을 무효로 만들고 체결에 참여한 대신들을 처벌하라는 내용이었다. 고종은 그 수많은 상소에 대해 대충 다음과 같은 비답(批答·임금이 상소문의 말미에 적는 가부의 대답)을 내렸다.

“이미 대신들이 올린 차자에 대한 비답에서 칙유(勅諭·임금이 몸소 이르는 것)하였다.”

“조약을 약정하는 법은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번의 경우 또한 참작할 점이 있다.”

“임금에게 충성스럽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한 경으로서 어찌 이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난번의 일은 과연 졸지에 일어난 일이지만 어찌 조용히 좋은 방법이 없겠는가? 밤 공기가 몹시 차서 실로 염려스러운데, 바라노니 경(卿)은 즉시 물러가서 나의 마음을 안심시키라.”

“그대는 여러 상소문에 대한 비답을 보지 않았는가?”

“소란스러운 속에서 이 지경이 되었지만 또한 어찌 좋은 방편이 없겠는가?”

“이런 말은 하는 게 당연하지만 어찌 짐작하여 헤아린 것이 없겠는가?”

“그대들의 말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것이니 거듭 번거롭게 굴 것은 없다.”

“걱정스럽고 분해서 하는 말을 역시 어찌 이해하지 않겠는가?”

“너의 충성심을 알겠으니, 다시 상소할 필요가 없다.”

덕수궁 중명전에서 열린 이토 히로부미와 대한제국 대신들의 회의 장면. 이 회의 결과 한일협상조약(을사늑약)이 맺어졌다.

“어제 내린 비답에 이해할 만한 것이 있었는데, 이렇듯 재차 들고 나설 줄은 전혀 생각지 못하였다. 이처럼 크게 벌일 일이 아니고 또 요량해서 처분을 내릴 것이니 경들은 그리 알고 서로 거느리고 물러나 즉시 집으로 돌아들 가라.”

“이미 여러 번 칙유하였으니 이해해야 할 것인데 왜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구는가? 경들의 충성스러운 말을 왜 모르겠는가? 속히 물러가라……이미 거듭 타일렀는데도 지루하게구니, 자못 서로 믿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진달한 것이 절실하니 응당 유념하겠다.”

“모두의 일치된 말로 공공의 울분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대가 진달한 말은 가상히 여기지만 전후로 여러 상소에 대한 비답들도 서로 참작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당장의 위태로운 형편은 기울어져 엎어지기 쉽게 생긴 물그릇이나 물이 새는 배에 비길 정도가 아닌데 덕망이 있고 충성스러운 경이 어찌 이렇게까지 화락하지 못할 수가 있는가? 진달한 것은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앞서 올린 상소에 대한 비답을 통해 거의 이해하였을 텐데 어찌하여 다시 제기하는가? 이처럼 극도로 어려운 때에는 더욱 잘 이끌어줄 훌륭한 사람이 그리우니, 원컨대 경은 속히 나의 뜻을 따를 것을 생각하고 한 번 조정에 모범을 보임으로써 옆자리를 비워놓고 간절히 기다리는 짐의 바람에 부응하라.”

“진달한 것은 울분에서 나온 것이라고 이해한다. 말한 내용은 백성들의 소원이니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경은 번거롭게 하지 말고 관찰사의 직책에 더욱 힘써라.”

“여러 차례 비답으로 타일렀으니 이해했어야 할 것이다. 한갓 이렇게 번거롭게 반복하는 것은 서로 면려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성찰하는 것만 못하다. 힘쓸 것은 자강에 있으니 어찌 위험이 전환되어 안정될 날이 없겠는가? 짐이 참작하여 헤아린 점이 있다고 한 말도 또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경들은 그리 알고 서로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라.”

을사늑약 후 국운이 이미 기울어졌음을 깨닫고 자결한 내부대신 충정공 민영환의 동상.

군사가 덕수궁을 포위한 험악한 분위기에서 조약이 체결되었지만 끝까지 옥새를 찍지 않고 버텼다는 고종 황제의 태도라고 믿어지지 않는 비답들이다. 11월28일 고종 황제는 급기야, 그만하고 돌아가라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농성하는 신하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두(疏頭·상소의 주체)들을 잡아가두라고 명령했다. 그 이틀 뒤인 11월30일 시종부 무관장 육군 부장 민영환이 조약 체결에 분개하여 칼로 자살하였다. 그 다음 날에는 특진관 조병세가 약을 먹고 죽었다. 12월4일에는 학부 주사 이상철, 상등병 김봉학도 울분을 이기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 12월14일에는 전(前) 찬정 홍만식이 약을 먹고 죽었다.

조병세는 유서를 겸한 상소를 다음과 같이 남겼다.

“신(臣)이 늘그막에 죽지 못하여 국가의 망할 위기가 목전에 임박한 것을 목격하고, 병든 몸을 끌고 도성에 들어와 상소와 차자를 올려 여러 번 번거롭게 해드리면서 그칠 줄을 모른 것은 혹시 일말이나마 나라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입니다……신이 무슨 낯으로 다시 천지 사이에 서겠습니까? 신은 죄가 중하고 성의가 얕아, 살아서는 폐하의 뜻을 감동시켜 역신들을 제거하지 못하고 강제 조약을 파기하지 못한 만큼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감히 폐하와 영결합니다……신은 피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는 것을 금치 못하며 삼가 자결한다는 것을 아룁니다.”

이렇게 이른바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줄줄이 죽어나갔다. 이들의 죽음은 실록에 기록되어 있지만 기록도 남지 않은 보통 사람의 ‘분사’(憤死)도 적지 않았으리라 본다. 《매천야록》을 쓴 황헌은 “인간으로 식자(識者) 노릇 참으로 어렵구나”라는 내용이 담긴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 정작 그 엄청난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오히려 온전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이전보다 더 잘 먹고 잘 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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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의 홍릉(경기도 남양주 소재).

물론 조약 체결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도 있긴 했다. 조약이 맺어진 다음 날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협약을 막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사직을 원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번에 한국과 일본 두 제국 사이에 새로 체결된 조약이 비록 추호도 황실의 존엄과 내정의 자주와 관계가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국권을 잃고 나라의 체면을 손상시킨 것으로 말하면 자못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신은 시종 힘껏 저항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 못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상호간에 조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하의 명분에 비추어볼 때 무슨 죄를 받아야 하겠습니까?”라는 내용이었다. 황제는, 굳이 그렇게 인책할 필요 없으니 사직하지 말고 공무를 행하라고 비답하였다. 황제는 자신이 책임질 생각도 없었고 관련자가 책임지는 것도 만류했다. 그 엄청난 일을 겨우 관직을 사직하는 것으로 책임질 수는 없었다. 물론 죽는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당시 위정자들이 목숨을 다해 책임을 지고 나라를 구하겠다는 결기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쉬울 뿐이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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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라를 사랑하려면 먼저 건전한 인격이 되라고 강조했다(도산공원).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만 18세부터 선거권이 부여된다. 올해 4월에 실시되는 총선부터 고등학생 3학년 5만여 명에게 투표권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 상황에 대해 수많은 우려가 있었고 반대의 소리도 컸지만 이미 일은 저질러졌고 물그릇은 엎질러졌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4월 총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설사 선거법을 다시 개정하더라도 이번 총선까지는 18세 유권자들과 함께 치러야 할 판이다.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는 그들이 생애 처음 갖게 된 신성한 투표권을 슬기롭게 행사하도록 잘 이끌어가는 것이 최선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스로 사리판단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만18세에게 주입식으로 정치적 성향을 가르치기는 어려워 보인다. 또 아직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그들의 주변에는 좌편향의 교사들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으니 더욱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만 동동 구르며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의 ‘슬기로운 투표권’ 행사를 위해 기성 세대가 가장 주력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책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만18세가 유권자로서 알아야 할 ‘책임’의 내용은 두 가지이다.

첫째, 자신이 던진 표(票)에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자신이 그릇된 선택을 하여 나라가 어려워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것, 그러니 함부로 투표권을 버려서도 안 되고 신중, 또 신중하게 투표해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둘째, 책임감 없는 사람에게는 표를 던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책임’이라는 말이 이 나라에 살아 있기는 한 것인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뇌물을 받은 공직자, 부적절한 투자를 한 공직자, 비리에 연루된 공직자, 거짓말로 남을 비방한 공직자가 아내에게, 동생에게, 사돈에게, 아버지에게, 비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신이 저지르거나 최소한 아내나 동생이, 사돈의 팔촌이 자신에게 상의해서, 자신의 후광을 입어 저질렀음이 뻔한 일에도 “나는 몰랐다”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이런 공직자가 나라의 일을 책임감을 가지고 할 리 만무하다. 나라의 중요한 일을 그르쳐도 “나는 몰랐다”라고 발뺌을 할 것이다. 누구에게 표를 던질까 고민한다면 최소한 뻔한 거짓말을 하고 무책임하게 자신의 잘못에서 발을 빼려는 사람은 걸려야 함을 18세 유권자들에게 강조해야 한다.

무책임은 부도덕과 거의 맥을 같이 하는 말이다. 도덕적인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주변 사람들을 배려한다. 그런데 무책임한 사람은 부도덕한 언행을 하고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의 심성 구축에 대해서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위정자의 무책임은 나라의 큰 재앙이다. 위정자의 무책임은 나라를 망하게 하고 국민을 질곡에 빠트린다. 심지어 우리는, 앞에 소개한 것처럼 실제 그런 역사를 경험했다. 나라의 존속과 나의 안전한 삶을 위해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인물을 걸러내는 것, 그것이 유권자의 가장 큰 ‘책임’임을 새로운 유권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그러나 질풍노도의 18세들에게 이를 어떻게 알릴 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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