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연방제' 대신 용어혼란전술로서 꺼내 든 '낮은단계 연방제', 北 속셈들 그대로 수용한 것

(왼쪽부터)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박휘락 국민대 교수,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
(왼쪽부터)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박휘락 국민대 교수,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

돌이켜보건대, 남북의 정상들이 처음으로 만난 2000년 남북 정상과 6.15 공동선언은 당시로서는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역사적인 사건이자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는 계기가 되었지만, 두 가지 관점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퇴행시킨 사변이기도 하다. 첫째는 6.15 공동선언으로 대한민국이 ‘낮은 단계 연방제’를 수용 가능한 통일방안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북한에게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 시간과 돈을 벌어주었다는 사실이다. 2000년 당시 남북 정상은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합의하였다.

모든 것은 연방제 통일로 통한다

지난 2년반 동안 문재인 정부는 ‘자유민주주의’ 표기에서 ‘자유’를 삭제하는 개헌을 시도했고, 사회주의 경제정책으로 경제 폭망을 가져왔으며, 자해적 안보정책과 동맹약화 정책으로 안보를 허무는 일을 자행해왔다. 많은 국민이 절망했고 “도대체 왜 그러느냐”라는 반응을 보여왔다. 하지만, 문 정부가 임기내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이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들의 언행을 이해하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

문 대통령은 2012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도식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을 꼭 실현시키겠다고 했으며, 그의 자서전 「운명」에서 “민정수석을 두 차례하면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못한 것이 가장 뼈아팠다”고 회고하고 있다. 2017년 4월 25일 JTBC의 대선후보 토론회 당시 문 후보는 “낮은 단계 연방제는 우리가 주장하는 국가연합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2018년 6월 자신의 저서에 “촛불혁명에 부응하는 남북연합 만이 답이다. 남북에 독자 정부가 있는 상태에서 남북연합이란 북측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북연방과 같은 개념이다. 남북연합은 가능할 뿐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다” 라고 적고 있다. 그해 12월에는 통일부가 주최한 통일정책최고위과정 특별강연에서는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 낮은 단계 연방제가 실현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제1조 1항도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 이미 채택된 남북 선언들과 모든 합의들을 철저히 이행함으로써 관계개선과 발전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가기로 하였다”라고 쓰여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낮은 단계 연방제’를 다시 한번 강조한 것이다.

‘낮은 단계 연방제’는 적화통일로 가는 징검다리

결론부터 말해,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은 위헌이고 위험하다. 이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우선 낮은 단계 연방제가 어떤 제도인지를 알아야 한다. 연방제란 각 지방정부들에게 민생과 관련하여 상당한 자율권을 부여하지만 정치체제, 경제체제, 안보, 국방, 외교 등이 통일되어 있는 단일국가 형태를 말한다. 대표적인 연방제 국가인 미국의 경우에도 주 정부들이 상당한 자율권을 행사하지만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일 체제 하에서 중앙의 연방정부가 안보, 외교, 국방 등에 대해 전권을 행사한다. 즉, 연방제란 ‘1국가 1체제 1 중앙정부’를 가진 완전한 통일국가를 말한다. 세계에는 연방제를 취하는 국가들이 많지만, 이미 각자의 주권과 군대를 가진 두 개의 나라가 무력이나 흡수가 아닌 협상을 통해 연방제로 통일한 사례는 없다. 캐나다와 미국, 호주와 뉴질랜드, 오스트리아와 독일 등 많은 나라들의 경우에서 보듯 민족과 언어 그리고 체제가 같고 상호 우호적인 국가들 사이에서도 어느 일방이 주권을 포기해야 하는 연방제 통일이 성사된 경우는 없다. 하물며, 잔혹한 전쟁을 치렀고 지금까지도 두 체제가 제로섬적인 경쟁관계에 있는 남과 북이 합의를 통해 연방제로 통일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북한이 내놓은 꼼수가 ‘낮은 단계 연방제’이다. 즉, 백두혈통을 섬기는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와 선거를 통해 지도자와 정부를 선출하는 한국의 민주주의 체제를 그대로 온존시키면서 남과 북의 정부 위에 중앙정부를 흉내 낸 민족회의 같은 것으로 지붕을 덮어 통일국가로 선포하자는 것이다. 체제통합이 아니기 때문에 ‘연방제’로 부를 수는 없고, 그렇다고 해서 ‘연합제’로 부를 수도 없다. 연합제란 관련국 하나하나가 완전한 별개의 주권국가인 상태에서 긴밀한 협력관계를 가지는 ‘동아리’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연합제는 사실상 통일과의 무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태국과 말레이시아는 동남아연합(ASEAN)이라는 연합체의 회원국이지만 통일과는 무관하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낮은 단계 연방제’인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남쪽이 수령독재 체제를 가진 북쪽과 한 나라가 되겠다는 것이니 당연히 ‘자유민주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추구할 것을 명시한 헌법 제4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가 헌법 제4조에서 ‘자유’라는 표현을 삭제하려고 했던 이유도 알만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섬뜩함을 느낀 것이다.

낮은 단계 연방제 이후의 한반도

남북이 합의하여 연합제도 연방제도 아닌 ‘낮은 단계 연방제’로 어거지 통일을 이루었다고 치자. 그 다음에 일어날 일들은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들이다. 다양한 이견들이 분출하는 대한민국과 단일 여론만이 존재하는 북쪽이 한 나라가 된다면, 북쪽의 김일성 추종자들과 남쪽의 종북주의자들이 손을 잡고 남쪽의 자유민주주의 세력을 공박할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수령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북쪽 해커들이 온갖 찬반이 표출되는 남쪽의 인터넷 공간을 분탕질하고 여론을 호도할 것도 뻔하다. 어찌 그뿐이겠는가. 무력도발을 자행해온 북한군과 이를 저지하는 한국군이 한 나라의 군대가 되고, 남쪽 체제를 전복하기 활동하는 간첩도 모두 법적으로는 우리 국민이 된다.

낮은 단계 연방제가 되면 적지 않은 젊은이들은 “이제 올림픽에 단일 팀을 보낼 수 있다”며 즐거워할 것이다. “오라 남으로, 가자 북으로” 구호들이 난무하면서 한껏 통일의 기쁨을 만끽할 것이다. 좌파들이 장악한 언론들이 온갖 평화의 바람을 일으키면서 국민을 선동할 것이다. 미북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주한미군은 철수되거나 감축될 것이다. 한미동맹이 철폐되거나 형해화되면서 연합사와 유엔군사령부도 해체될 것이다.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 이후에 남북 간에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국제법적으로는 ‘내전’일 뿐이며,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세력을 돕기 위해 달려올 동맹군도 유엔군도 없을 것이다.

아니다 다를까, 북한은 낮은 단계 연방제를 주장하면서 다양한 전제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① 남한에 민주정부(북한에 우호적인 정권) 수립, ② 국가보안법 폐지, ③ 폭압통치기구(국정원, 기무사, 경찰 등 안보수사기관) 해체, ④ 북미 평화협정 체결, ⑤ 주한미군 철수 등이 그들이 제시하는 조건들이다. 하나같이 대한민국의 안보와 자유민주주의 정체성을 파괴하려는 속셈이 담긴 조건들이다. 모두가 ‘전쟁 없는 한반도 주체통일’을 이루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이런 속셈들을 그대로 수용하여 이 나라를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로 끌고 간다면 그 다음에 무슨 일들이 일어날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겠는가.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정체성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투표로 선출된 정부가 북한이 주장해온 연방제 통일을 목표로 삼고 있다면 진실로 무서운 일이다. 낮은 단계 연방제를 이루겠다고 공언하는 세력을 새 정부로 선출한 우리 국민은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물론, 그럴 줄 몰랐을 것이다. 당시는 촛불과 탄핵이라는 광풍에 휩싸여 국민의 눈이 멀고 귀가 닫혔던 암흑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 어떠한가? 문재인 정부는 언론과 군 그리고 검찰을 차례대로 장악해나갔고, 입법부와 사법부의 독립성을 무너뜨렸으며, 헌법을 있으나마나한 조재로 전락시켰다. 전형적인 좌파독재의 형태를 보이면서 나라를 연방제 통일로 끌고 가고 있다. 국민이 이것을 원했을 리는 없고, 국민이 그렇게 하라고 권력을 위임한 적도 없다. 지금부터 국민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우선은, 미몽에서 깨어나야 한다. 북한이 종전에 주장했던 ‘고려연방제’ 표현을 슬그머니 집어넣고 ‘낮은 단계 연방제’를 꺼내 든 것이 그들의 야욕을 은폐하기 위한 용어혼란 전술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적화통일로 가는 중간정거장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공동 기고자 명단]

김형철 전 공군참모차장,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송대성 전 세종연구소장, 신원식 전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박휘락 국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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