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혼자 광화문 거리를 걸었다. 정부서울청사에서 동화면세점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려 교보문고와 미국대사관을 지나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스산하다. 스산하고 스산하고 또 스산하다. 별 생각 없이 쓰던 이 표현이 이렇게 실감나게 와 닿은 적이 없다. 사람들의 표정은 오로지 무채색이다. 기쁨이나 희망은 어느 날부터 자유라는 단어와 동반으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절망과 분노가 마구 솟구치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냥 무기력이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통 비자발적 무기력이다. 흥미도 의욕도 없는 멍한 얼굴들이 곁을 지나쳐 간다. 누구는 좀비라고 했다. 아니다. 좀비는 뜯어먹겠다는 열정이라도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화가 나기는 하는데 누구한테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다보니 멍해진 사람들의 표정은 분노의 자체 소화 끝에 얻은 허탈이나 해탈의 결과다. 대통령이 장사하는 사람에게 물었다. 좀 어떠세요. 상인은 거지같다고 대답했다가 사방에서 돌을 맞았다. 돌 던지는 이유야 내가 던지지 않았으니 알 길이 없다. 대통령의 말이 나는 더 많이 힘들다. 어떠세요, 라니. 병문안을 가면 환자에게 묻는다. 좀 어떠세요?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어쩌다가 누워있게 되었는지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다. 환자를 병실에 눕혀놓은 당사자라면 그렇게 물으면 안 된다.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서두를 꺼내야 한다. 강도가 사람을 칼로 찔러 병실에 눕혀놓고 찾아와서는 좀 어떠냐고 묻는 격이다. 사이코에 소시오패스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곤혹스럽다. 네가 나를 찔러 놓고 어떠냐고 물으면 난 뭐라고 답해야 하니. 그때 그가 발휘한 최대의 타협적 수사가 거지같다 였을 것이다. 기분은 더러운데 상하가 있으니 욕은 못하겠고 불쾌와 자기모멸의 감정이 합쳐져 그런 표현이 나왔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떠신가. 갑자기 그 분이 나타나 좀 어떠시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하시겠는가. 아니 답이나 나오시겠는가. 횟집을 하는 사람이라면 주방에서 어떤 칼이 제일 잘 드는지 그거부터 생각할 거라고? 횟집을 안 해 봐서 모르겠다.

30년 만에 꺼내 읽는 겨울 공화국

집에 돌아와 술을 마셨다. 의사가 이번 주는 절대 금주라고 경고 했는데 가끔 죽음이 두렵지 않은 날이 있다. 두 병을 쓰러뜨렸는데 취하지 않는다. 몸은 취하는데 그래서 비틀거리는데 알코올에 각성제를 탔는지 머리는 계속 맑다. 흐린 눈에 빨간 표지의 책 하나가 들어온다. 원래 빨간 표지가 아니었다. 정부에서 팔지 말라고 해서 살 수 없었고 그래서 빌려 복사를 했더니 복사 집 아낙이 그것도 서비스랍시고 앞뒤로 둘러준 것이다. 제목이 겨울 공화국이다. 1977년에 나온 시집이니 미스터 박 시절이다. 단어들이 생경하다. 논과 밭, 총과 칼 같은 단어는 어색하고 비현실적이다.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는 말들이 누렇게 변한 종이 위를 질주한다. 분노와 설움, 조심스러운 희망과 손톱만한 결기로 시는 응축되었다가 풀어진다. 겨우 이런 이유로 시를 읽지 못하게 했다는 사실이 우습다. 겨우 이런 수준의 시를 좋다고 읽었으니 읽은 사람도 마찬가지로 우습다. 그런데도, 유치한데도, 어이가 없는데도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읽고 있으니 이건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다. 우스운데 유치한데 왜 슬픈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시가, 그냥 오늘 만난 사람들 얼굴 같았다. 그 얼굴들이 지나치면서 마스크 위로 주고받는 텔레파시 같았다. 시 제목은 잘 못 지었다. 제목을 ‘겨울 공화국’이 아니라 ‘거지같다’로 했어야 더 맞고 어울린다. 그러니까 시인의 눈에 당시 세상이 죄다 거지같았던 거다. 지금 우리 눈에 세상이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그런데 세상이 거지같으면 우리도 거지같이 살아야 하나. 시는 답까지는 아니더라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마음으로 줄긋고 읽은 부분을 들려드린다. 짧지 않은 시라 앞을 줄이고 중간을 좀 건너뛰고 뒷부분은 잘라버려 아쉽고 시인에게 미안하다.

삼천리는 여전히 살기 좋은가/삼천리는 여전히 비단 같은가/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날마다 우리들은 모른 체하고/다소곳이 거짓말에 귀 기울이며/부끄러워라 잠든 아기의 베개 맡에서/결코 우리는 부끄러울 뿐/한 마디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네/물려줄 것은 부끄러움 뿐/잠든 아기의 베개 맡에서/우리들은 또 무엇을 변명해야 하는가/우리들이 만일 게으르기 때문에/우리들의 낙인을 지우지 못한다면/차라리 과녁으로 나란히 서서/사나운 자의 총 끝에 쓰러지거나

남정욱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 문화예술인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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