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총칼 없는 전쟁이다. 전쟁은 전투로서 말한다. 승리는 모두를 얻고 패배는 모두를 잃는 법이다. 하지만 총칼 있는 피의 전쟁과는 달리 선거의 승패전쟁은 차기가 있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4·15총선은 피의 전쟁과 다를 게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와의 체제 전쟁이기 때문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삶의 결정권이 국민 각자에게 있느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정권의 통제 하에 들어가느냐”란 것이다. 이처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느냐, 지켜내지 못하느냐의 중대기로에 섰지만 국민 다수는 어정쩡하다. 그 중심에 미래통합당(미통당)이 있다. 이념도 애국심도 극히 의심스러운 이른바 ‘잡탕당’이 되면서 국민을 혼란의 늪에 빠뜨려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권이 무슨 못쓸 짓을 해도 지지율은 변함없이 야권을 앞선다. 이 같은 이상기류가 3040세대와 중산층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사회주의체제가 완성되면 직격탄을 맞을 그들이 문정권의 지지기반이자 버팀목이라는 현실은 예삿일이 아니다. 이 아이러니한 기현상은 주사파 출신과 중도라는 미명의 정치모리배들이 주도권을 잡은 미통당에 있기 때문이다. 그 게 그 게 아니냐는 좌우(左右) 동일시의 중독현상인 것이다. 오죽했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목숨을 담보한 옥중서신을 내놨을까? 하지만 이마저도 황교안 미통당 대표와 김형오 공천위원장은 립서비스로 흘려버리고 제멋대로다.

황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4일) 박 전 대통령의 서신은 자유민주세력의 필승을 염원하는 모든 국민들에게 반가운 선물이었다"며 "역사적 터닝포인트가 돼야 할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전해준 천금 같은 말씀"이라고 환영했다. 김형오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이 원하는 뜻을 결코 저버리지 않도록 우리 공관위원들도 마지막까지 초심을 잃지 않고 엄정하고 공정한 공천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흐름은 정 반대다.

토요일인 7일 현재까지 공천결과는 안철수계와 유승민계 출신이 최대수혜자가 됐고 친박 인사 내지는 대여투쟁에 앞장섰던 투사들은 대부분 탈락했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박 대통령 청와대 대변인 출신이면서 대여투쟁에 열혈이던 민경욱 의원이 유승민계인 원외인사 민현주에 밀려 탈락됐다. 오신환·유의동·지상욱·구상찬 등도 유승민 몫으로 공천됐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사였고 유승민 출신지인 대구 동구을 선거구에서 열심히 밭갈이를 하던 도태우 변호사는 경선조차 못해보고 탈락됐다. 박 정부의 민정수석이었고 현 미통당 정책위장인 김재원 의원도 컷오프의 수모를 당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탈락의 이유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와 달리 민주당 출신이자 안철수계인 문병호를 비롯 김근식도 단수공천을 받았다. 이를 두고 시중에서는 김형오를 앞세운 황교안의 ‘교활공천’이라는 조롱도 나온다.

왜 ‘교활공천’으로 회자될까? 황 대표는 공천관리위원장 선정을 국민에게 맡기겠다면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는 김문수(현 자유공화당 공동대표)이 1위였지만 배제됐다. 4위에 불과했던 김형오를 지명하면서 스스로 신뢰성을 훼손했다. 탄핵주적 공천우대, 탄핵반대 공천학살이란 말도 이래서다. 김형오 위원장은 미통당 깃발만 꼽으면 당선이라는 TK(대구경북)지역 20개 의석 중 11명을 탈락시켜 55%를 물갈이하였다고 자화자찬했다. 하지만 실제는 친박계 현역 4명과 당협위원장들이었다. 그가 자랑한 참신한 새 인물은 없었다. 하나같이 정치판에 굴러다니던 구태인물들이란 분석이 대체적이다. 감동은커녕 실망뿐이다.

황교안 대표는 출마지역구인 종로구에서 고전하고 있다. 등 떠밀려나간 결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즉 전투사령관이 최전선을 기피하는 전의(戰意)상실의 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황교안이 정치판에 발을 담근 것은 대선직행이었다. 정치판을 읽지 못한 탐욕이었는지, 문재인 실정의 반사이익만 노린 기회주의적 정치공학이었는지 아무튼 그랬다. 조국·유재수·울산사태 등 3대 악재에다 우한폐렴사태까지 벌어졌는데도 그 반사이익을 오롯이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답보상태인 지지율에 대한 책임을 외려 일선 투사들에게 뒤집어씌우는 꼴이 바로 이번 공천의 실체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의 2중대란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황교안의 세모꼴 정치 뒤편에는 권력 나눠먹기의 내각제 음모 개헌이 도사리고 있었다. 강창일 민주당 의원과 김무성 미통당 의원 일당이 지난 5일 발의한 내각제 음모 개헌안이다. 4·15총선에서 유권자 100만 명의 발의로 개헌을 제안할 수 있는 내용이다. 현행헌법개정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는 조항을 쉽게 가져가겠다는 꼼수다. 문제는 문재인 정권의 노림수다. 내각제가 아닌 사회주의개헌의 문을 활짝 터주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오래전에 예상했던 시나리오 그대로다.

지금 판세는 만만찮다. 문 정권의 본거지는 발도 부치지 못하면서 대척점인 영남권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부산·울산·경남은 박빙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당의 대통령을 탄핵해 옥에 가둬놓고 정치뒷거래를 하고 있는 배신과 사욕의 천벌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미통당은 태극기 우국충정을 아울려 함께 가라는 애끓은 옥중서신마저 배척하고 탄핵일당 위주의 공천을 자행하고 있다. 오만과 독선의 극치를 보이면서 표심을 얻겠다니 난감하고 기막히다. 지금이라도 박 전 대통령의 피맺힌 옥중서신을 되새김질하기 바란다.

정학길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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