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후국'과 '꼼수' 활개...일확천금 꿈꾸는 노추와 젊은이들의 '로또판' 전락한 정치판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얼마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산야(山野)에 펼쳐진 정치 삼국지를 보면서 범좌파 A 나라와 중도파 B 나라가 어떤 승부를 펼칠 것인가와 자유우파 C 나라가 내부 분열을 수습하고 선전(善戰)을 펼칠 수 있을 것인가에 관심을 쏟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4월 15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같다. A 나라와 B 나라 간의 승부는 가닥이 잡힌 듯하고, C 나라가 분열을 수습하고 선전을 펼치는 것은 물건너간 이야기인 것같다. B 나라의 자충수과 C 나라의 분열로 어럼풋이나마 범좌파의 무난한 승리가 점쳐지는 가운데 C 나라는 여전히 ‘분열과 패망의 골짜기’를 헤매고 있다는 뜻이다. 집권 좌파는 지지리도 야당복(野黨福)이 많다.

유례없는 ‘로또판’ 정치가 펼쳐진 대한민국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1980년대에 기업인들은 “경제는 일류, 정치는 삼류‘라는 말을 했었다. 기업들이 수출시장을 개척하여 국부(國富)를 키우는 동안에도 정치인들은 여전히 ‘파벌 정치,’ ‘돈다발 공천,’ ‘밀실 야합’ 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빗댄 말이었다. 그래서 “정치판은 개판”이라고들 했었다. 이후 30여 년이 지나면서 세상은 급속히 디지컬 시대로 돌진했지만, 한국 정치는 퇴보를 거듭하다 못해 아예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선거법이 엄격해지면서 ‘돈다발 정치’는 많이 사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국익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앞세우는 선사후국(先私後國)의 꼼수들이 활개치면서 정치판은 일확천금을 꿈꾸는 사람들이 득실대는 ‘로또판’이 되고 말았다.

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선거제도부터가 그렇다. 범좌파는 이 괴물(?) 제도를 만들어내기 위해 담합할 때 “거대정당의 싹쓸이를 막고 군소정당에게도 지지국민을 대변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짐짓 민주주의적인 논리를 앞세웠다. 하지만, 3%의 하한선만 넘기면 “로또에 당첨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많은 군소정당들이 창궐하게 만들었고, 거대정당들이 비례전문 정당을 만들면서 군소정당들의 기대도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총선 참여 정당이 40개가 넘는 대혼잡이 초래되어 투표용지에서 찍고 싶은 정당을 찾기조차 힘들게 생겼다. 거대 정당들이 앞뒤를 다투면서 자당 의원들을 제명하여 비례전문 위성정당에 빌려주는 코메디를 연출했다. 다른나라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창피스럽다.

전쟁에 나가 싸울 장수들을 뽑는 과정도 아수라장이었다. 어느 나라 할 것없이 선발 과정은 권력자 또는 ‘칼 쥔 사람들’과의 사연(私緣)이 대세를 갈랐다. 그래도 A 나라는 범좌파라는 이념적 밴드를 이탈하지 않는 일관성을 보였지만, 자유우파 정당을 자청하다가 중도로 위치를 옮긴 B 나라는 돈주고도 보기 힘들 코메디들을 연출했다. 말로는 ‘좌파독재 청산’을 외치면서도 이를 위해 전장에 나가 싸울 장수들을 뽑기보다는 당내 권력을 분점한 보스들 간 합의에 따른 지분 나누기와 선발위원들과의 친분으로 ‘내편’을 뽑는데 열중했고, 국민이 수긍하는 선발기준 같은 것은 보여주지 못했다. 소수의 전문가와 정치인들을 제외하고는 대개 ‘줄서기’와 ‘인맥’이 대세를 결정하는 가운데, 칼 쥔 사람들과의 사연(私緣)이 힘을 발휘하면서 하자없는 유력 정치인들이 영문도 모른채 배제되거나 ‘죽음의 경선장’으로 유배된 경우가 허다했다. 그 대신, 어제까지 중간 회색지대와 왼쪽에서 활동하며서 좌파독재와의 투쟁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중도파와 좌파들이 대거 입성하면서 우파 장수들과 좌파독재와 싸워온 세력들은 대부분 내쳐졌다. 그래놓고 ‘중도 통합을 통한 외연확장’이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간판과 내용물이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군소정당들이 투표용지의 앞번호를 받기 위해 앞다투어 거대정당에서 퇴출된 노정치인인들을 영입하여 비례대표 앞번호에 앉힌 것도 볼폼없는 해프닝이었다. 물론, 어떤 정치인이든 할 일이 분명한 경우에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후보 자격에 흠결이 될 수는 없지만, 국민 대대수가 정계에서 사라져주기를 바라는 ‘지겨운 인물’들이 연동형비례제 선거법의 허점에 편승하여 새 인물들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깔고 뭉갠다면 ‘노추(老醜)’라는 말밖에 달리 해 줄 말이 없다.

금맥(金脈)을 찾아 정치판으로 몰려드는 남녀 청년들

비슷한 맥락에서 ‘젊은 인재 영입’이라는 것이 ‘로또판 정치’를 점입가경으로 만든 측면도 있다. 모든 나라들이 젊은 표심을 사기 위해 젊은 일꾼들을 뽑겠다고 나선 것은 당연했지만, 경륜도 전문성도 없어 어디에 어떻게 써먹을지 알 길이 없는 ‘젊기만 한 장수 후보’들을 대거 발탁한 것은 망국적 현상이다. 비례후보의 홀수 번호를 여성으로 채워야 한다는 해괴한(?) 선거법이 로또판 정치를 가열시키는데 한몫을 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이 법으로 인해 모든 나라의 비례대표 장수선발 경쟁에서 “여자는 구인난인데 남자는 박이 터진다”는 말이 나온다. 그래서 선발위원 아들의 여자친구까지 비례대표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것이 마이크만 들이대면 ‘국가와 국민’을 말하던 사람들이 한 일들이다. 이런 것들이 며칠 사이에 비례대표 대상과 순번이 두 번이나 바뀌어 발표되는 촌극을 만들어냈음을 어찌 부인하겠는가? 이렇듯 장수선발 과정이라는 것이 실력, 전문성, 경륜, 직능 대표성, 상징성 같은 것은 따질 필요도 물을 필요도 없는 ‘줄만 잘 타면 누구나 당첨될 수 있는 로또판’이 되고 만 것이다. 미래를 바라보면서 능력을 키우고 정진해야 할 젊은이들이 벼락출세 신분 상승을 노리고 정치판을 기웃거린다면, 국가장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젊은이들이 열심히 공부하여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를 포기하고 주식투기를 통한 일확천금을 노리는 나라가 제대로 될 나라이겠는가? 서부개척 시대 동안 미국의 많은 청년들이 금맥(金脈)을 찾아 서부로 몰려들었다. 지금 한국의 많은 남녀 젊은이들도 금맥을 찾아 정치판으로 몰려들고 있다.

동일한 인물이 A 나라와 B 나라를 오가면서 총사령관이 되는 것도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괴이한 현상이다. A 나라와 B 나라가 동일한 이념•정책 노선을 가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에서, 다시 말해, B 나라는 우파에서 중도로 위치를 바꾸었지만 여전히 A 나라와는 이념적 위치가 다르고 대부분의 분야에서 상반되는 정책기조를 가진 상황에서, 지난번 전쟁에서 A 나라의 총사령관을 역임한 사람이 B 나라의 총사령관이 되어 A 나라와의 전쟁을 지휘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모를 일이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가 ‘생각도 판단 중심도 없는 무개념의 사람들’이라는 전제 하에서 가능한 일이다. 즉, 선전이나 전략을 잘 만들어 잘 홀리기만 하면 이념이나 정책기조 따위는 신경스지 않고 자신들을 찍어 줄 것이라는 발상이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분열과 패망의 골짜기를 헤매는 한국의 자유우파

지금까지 한국의 많은 우파 국민들은 C 나라의 선전을 기대해왔다. 즉, C 나라가 의미있는 규모의 정통 자유우파 정치세력으로 성장하여 B 나라가 비우고 떠난 오른쪽 자리를 채워주기를 기대했었다. C 나라 사람들은 누구보다 강력하게 좌파독재에 맞서 싸워온 사람들이며, 그동안 광화문 세력, 서울역 세력, 대한문 세력 등으로 나뉘어져 활동하다가 이런저런 군소정당들을 세웠다. 우파 국민들은 때가 되면 이들이 하나로 뭉쳐 A 나라의 실정을 규명하고 B 나라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기대는 무망(無望)한 것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결과론이지만, C 나라 사람들을 ‘내팽개쳐도 무방한 집토끼들’로 간주했던 B 나라 사람들의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닌 것같다.

그동안 C 나라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무수한 ‘사자의 포효’을 뿜어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 ‘공산화 저지.’ ‘낮은 단계 연방제 음모 분쇄,’ ‘박 대통령 무죄석방,’ ‘문 대통령 퇴진,’ ‘국민 혁명’ 등 수많은 거대 담론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이들이 실제로 보여준 것은 ‘고양이의행보’였다. 어떻게든 3% 하한선을 넘겨 자신이 정치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찾아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한 지도자들이 적지 않았다, 말은 사자처럼 하고 행동은 고양이처럼 하는 격이다. ‘칼 쥔 실력자들’과의 사연(私緣)이 장수선발 과정을 지배한 것도 거대 정당들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현역 국회의원이 있어야 투표용지의 윗 번호를 받고 국고보조금도 받는다는 일념(?)에서 명분을 제쳐두고 퇴물 정치인들을 영입한 것도 그동안 외쳐온 ‘사자의 포효’를 부끄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C 나라의 어떤 지도자는 선거법 관련 꼬투리를 잡혀 영어의 몸이 되었다. 이런 일들을 거치면서 ‘진정한 자유우파’로 자칭해왔던 태극기 세력들은 ‘분열된 아스팔트 세력’에 머물면서 정치적 사망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나로 합칠 기회는 이미 지나가버렸다. 그래서, C 나라의 지도자들이 쏟아내는 거대 구호들을 들으면서 희망을 키웠던 우파 국민, 애국 투쟁세력, 우파 지식인 등은 마음을 뉘일 곳이 없다. 변심(變心)하여 중도파가 되어버린 B 나라가 좌파 집권세력이 저질러놓은 실책들을 청산해줄 것으로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들이 어찌 투표장에 나가고 싶겠는가?

자유우파, 제대로 살려면 더 죽어야 한다?

B 나라 사람들은 시중에 발표되는 여론조사 결과들을 그대로 믿지 않는다. ‘중도 통합을 통한 외연 확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 여론이 불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A 나라가 B 나라에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왜곡된 표본집단에 근거한 엉터리 결과”로 간주하면서 조사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숨은 지지자’라고 주장한다. 집권세력에 반대하는 우파 국민들이 여론조사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표본집단에 집권세력 지지층이 과중하게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글쎄다. 필자도 표본집단이 왜곡되었다는 주장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필자 역시 여론조사 전화를 끊어버린 경우가 한 두번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거결과는 여론조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B 나라의 좌클릭과 사천(私薦) 놀음에 실망하고 C 나라의 분열에 절망한 우파 국민 중 상당수가 투표도 거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역투표를 하겠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선거철만 되면 중도놀음과 야합 정치를 반복하는 B 나라는 물론 지리멸렬 오합지졸 상태로 아직도 ‘사망의 골짜기’를 헤매는 C 나라까지 완전히 죽어야 제대로 된 B 나라와 제대로 된 C 나라가 재탄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제 기적을 기다려볼 수밖에 없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前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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