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6일에 발생한 천안함 피격 사건은 해군 장병 46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사고는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이 희생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느 정도 세월이 흘러서인지 언론들은 천안함 피격과 세월호 희생자들의 이름은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현 시점에서 일반 대중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인물은 천안함에 탑승했던 해군 장병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바닷물에 뛰어들었다가 순직한 한주호 준위와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온갖 비난을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원고 강민규 교감이다.

어찌된 일인지 천안함 전사자들의 부모님은 일반인들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세월호에서 사망한 몇몇 학생들의 부모님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마도 2016년 3월부터 2019년 2월까지 tbs 교통방송에서 '가슴에 담아온 작은 목소리'의 진행을 맡았던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이제 세월호의 기억도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듯 했으나 지난 4월 8일 방송된 OBS 경인방송 주최 경기 부천 병 국회의원 후보자 토론회에서 김상희 후보와 신경전을 벌이던 차명진 후보가 인터넷 언론 '뉴스 플러스'의 세월호 텐트 쓰리썸 관련 기사를 언급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만약 세월호 텐트 쓰리썸의 당사자로 의심받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뉴스 플러스나 차명진 후보를 상대로 한 민형사상 조치를 통하여 자신들의 명예를 회복하려 한다면 선정적 주제를 절대 놓치지 않는 언론들에 의하여 유민 아빠 김영오씨보다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될 것이 분명하다.

이 경우 세월호 사고는 문재인의 '미안하다 고맙다' 발언 및 차명진이 인용한 '세월호 텐트 쓰리썸' 기사를 통하여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되면서 진도 앞바다에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개개인은 완전히 잊혀지게 될 것이다.

세월호 유족들은 해난사고로 사망한 아이들이 더 이상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부모라면 자녀들이 자신보다 더 오래 살기를 그리고 사후에도 오래 기억되기를 염원하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학생들은 모두 잊혀지고 유민 아빠 등 일부 유가족들만 기억되는 현상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중국의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에 의하면 서양은 청년이 노인을 추월하는 ‘살부(殺父) 문화’를 갖고 있는 반면 중국은 반대로 노인에 대한 청년의 도전을 불허하는 ‘살자(殺子) 문화’가 지배한다. 우리나라에서 공(功)은 부모와 상사가 차지하고 과(過)는 자식과 부하에게 돌아가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은 광의의 중국 문화권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는 '오이디푸스' 등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수많은 작품들이 있는 반면 한국 전래동화에는 '심청전' 등 부모가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자식을 희생시키는 이야기들이 많다. 현대에 들어서도 우리나라에서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부모가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녀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가족 동반 자살은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세월호 사고로 사망한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잊혀지고 그 부모들 중 일부만 기억되는 현 상황은 한국적 ‘살자(殺子) 문화’의 대표적 사례일 지도 모른다. 인간이 자신의 이름을 사후에 남기는 것이야말로 영원히 사는 길이라고 해석한다면 말이다.

세월이 더 흐르면 결국 세월호 사고 희생자들뿐 아니라 그 유가족들도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과정에서 어른들이 쌓아놓은 업보는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쉽게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

유태선 시민기자 (개인사업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