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권력으로 회사채 매입은 양날의 칼, 외환위기 초래할 수도...원화는 아직 안전자산 아니다
기축통화국 美 사례 들며 "채권 매입 전향적으로 나서라"는 與...韓銀은 정치에 휘둘려선 안돼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은행이 증권회사나 일반 회사가 발행하는 회사채에 매입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한국은행이 직접 유동성을 공급해온 대상은 은행과 정부였다. 국채 매입을 통해 정부에 자금을 제공했고, 환매조건부 채권의 매입을 통해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증권회사나 일반 기업 등 영리법인에 대한 직접적 자금공급은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되었다. 거의 없었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을 맞아 증권사 등이 보유한 회사채의 매입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국은행이 일반 기업에 직접 자금을 공급하게 된다는 말이다.

미국의 연준이나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 등은 코로나 불황 극복을 위해 회사채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정부 및 은행들과의 거래라는 영역을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이런 관행은 한국은행법의 취지에 충실한 것이기는 하다. 한국은행법 제79조는 원칙적으로 한국은행이 정부와 은행 이외의 경제주체들과 거래를 할 수 없게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80조에서는 금융위기 같은 상황에서 금융통화위원 4인 이상이 찬성할 경우 영리법인에게도 여신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마음만 먹으면 일반 회사에도 여신을 해줄 수 있지만 그런 결정을 한 적은 거의 없다.

한국은행이 개별 기업과의 거래를 극도로 꺼리게 된 데에는 개발연대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작용하는 듯하다. 90년대 이전, 정책금융이 만연하던 시절, 은행은 정부가 정한 기업에 대출해줘야 했고, 한국은행은 그 뒤치다꺼리를 도맡았다. 정부의 시녀 비슷한 처지였다. IMF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한국은행은 비로소 독립성을 확보했다. 정책금융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다. 그런 한국은행에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개별기업에의 여신이 그다지 달가울 리 없다. 한국에만 있는 금통위원의 개별적 손해배상 책임제도 역시 영리법인에 대한 여신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회사채를 매입했다가 부도라도 나는 날이면 금통위원이 개인적으로 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으니 꺼릴만도 하다.

하지만 이제 분위가 바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금융안정 태스크포스 단장인 최운열 의원은 "회사채나 CP 디폴트가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 기업어음매입기구(CPFF)와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며 한국은행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은행 인재개발원의 차현진 교수는 요즈음 같은 위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민간 기업의 채권 매입 요청을 외면하는 것은 중앙은행으로서의 본분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미국, EU, 일본의 중앙은행들처럼 적극적으로 회사채 매입을 통해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라는 것이다.

필자 역시 한은의 회사채 매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반드시 찬성만 할 수 없는 것은 이 것이 양날의 칼과 같기 때문이다.

먼저 필요성부터 보자. 금융 시장은 야박하게 돌아갈 때가 종종 있다. 자금 상황이 나빠진다 싶으면 은행이 대출을 회수해서 기업들의 부도를 더욱 부채질 할 수 있는 것이다. 발권력을 가진 한국은행이 그런 기업의 채권을 매입해준다면 일시적 자금난으로 인한 기업들의 부도를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매우 우려되는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통화의 남발로 인한 원화가치의 하락, 환율급등, 외환위기로 이어지는 고리이다. 지금까지는 우리나라는 돈을 풀어 경기부양을 할 때에 한국은행이 정부의 국채를 매입해주는 방식을 취했다. 국채는 국가채무비율에 그대로 반영되어 국회와 국민, 그리고 국제금융시장의 지속적인 감시의 대상이 된다. 원화가 안전자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이 1%로 안정되어 있고 환율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현재의 메커니즘이 비교적 잘 작동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분위기가 바뀌어 한국은행이 제한 없이 회사채 매입에 나선다면 돈은 무한정 풀려나갈 수 있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우리의 원화를 글로벌 투자자들이 어떻게 평가해줄지에 달려 있다.

미국의 연준의 경우 3월초에 자산 규모가 4.2조 달러였는데 4월 20일 현재 6.6조 달러가 되었다. 두달도 안되는 사이 2.4조달러가 풀린 것이다. 1년 GDP의 12%에 해당한다. 그렇게 돈을 풀어내는 데도 미국 달러가치가 끄떡 없는 것은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이자 안전자산이기 때문이다. 일본 역시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일본은행이 거의 남발하다 싶이 돈을 푸는 데도 엔화가치가 안정되어 있다. 그런 사정이 한국에도 적용될까? 기대하기 어렵다. 올해만 해도 원달러 환율이 4월 19일까지 1296원까지 치솟았다가 한미통화스와프 소식에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원화는 아직 안전자산이 아니다. 돈 가치가 불안하다 싶으면 글로벌 투자자들은 원화를 팔고 나갈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외환위기로 이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들의 부도를 방치한다면 그것 역시 주가하락, 은행부실 등을 거쳐 자본이 빠져나가게 만들 것이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한국은행에게는 균형 감각과 절제가 필요하다. 한국은행의 회사채 매입을 하되, 남발해서는 안된다. 자금난이 일시적인 것이어서 이 시기만 지나면 반드시 살아날 수 있는 기업만을 대상으로 자금을 수혈해줘야 한다. 쓰러지는 모든 기업을 살리려다 보면 통화를 남발하게 되고 통화가치의 하락, 그리고 외환위기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어차피 살지 못할 기업이라면 마음이 아프더라도 놔둬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은행이 정치에 휘둘리면 안 된다. 정치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으로 흐른다. 살아날 가능성이 큰 기업보다 불쌍해 보이는 기업을 도우라 요구하기 십상이다. 그러면 경제는 망가진다. 대부분의 정부 기구들이 포퓰리즘에 젖어버렸지만 한국은행은 아직까지 엘리트주의를 유지해오고 있다. 가장 경제논리에 충실한 정부 기구다. 회사채 매입을 하더라도 엄격한 경제논리를 잃지 말길 바란다. 한국은행만은 포퓰리즘에 빠져들지 않길 바란다.

김정호 객원 칼럼니스트(서강대 겸임교수,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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