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논란'의 당사자로서 5.18특별법 보는 느낌 남달라
5.18의 1차 성과는 87체제의 성립이요, 최종 귀결은 朴탄핵과 文정권의 등장
586세대와 친노친문 및 좌파 모두 '5월의 자식들'
5.18특별법 등은 민주주주와 진보의 가치 정면에서 부인하는 시도
좌파의 정치적 포로 상태에 놓인 광주와 호남... 5.18특별법 거부 의사 밝혀야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이 21대 국회 전체 의석의 3분의 2 가량을 차지하면서,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이하 5.18특별법)’의 국회 통과가 유력시되고 있다. 심지어 민주당의 양향자 의원은 일제 강점기와 세월호 사고까지 ‘성역’에 포함시키는 역사왜곡금지법을 발의한 상태이다.

법안의 처벌조항도 살벌하다. 한국 근현대사를 왜곡·폄훼하거나 피해자 또는 유가족을 모욕하는 경우 최대 징역 7년 이하, 벌금 5천만원 이하의 처벌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광주는 80년대의 유산에 사로잡힌 도시, 생산 대신 제사에 매달리는 도시, 과거 비극의 기념비가 젊은이들의 취업과 출산을 가로막는 도시로 추락했다”고 발언한 이른바 ‘막말 논란’의 당사자로서 필자가 5.18특별법을 보는 느낌은 남다르다.

5.18특별법이나 역사왜곡금지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5.18에 대한 의견을 감출 생각은 없다. 일부러 법적 처벌을 초래할 위악적(僞惡的) 발언을 하지도 않겠지만, 지난 총선 과정의 내 발언이 정말 역사왜곡이나 막말에 해당하는지 법적 판단을 받을 기회를 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5.18특별법이나 역사왜곡금지법이니 하는 이슈에 대한 필자의 관심은 다른 데 있다. 이러한 법적 보호(?)가 5.18이라는 상징자산의 위상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하는 것이 관심사이다.

필자는 1980년 5월 이후 5.18은 결코 진압된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군사작전의 관점에서는 1980년 5월 27일 아침 진압된 게 맞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1980년대 민주화투쟁의 가장 큰 동력은 1980년 5월 광주의 피였고, 그동안의 민주화투쟁은 사실상 5.18의 연장선이었다. 그 1차 성과가 1987년 6.29 선언과 87체제의 성립(6공화국)이었고, 그 최종 귀결이 탄핵과 문재인 정권의 등장이라고 봐야 한다.

5.18의 성격과 평가를 놓고 아직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한국의 역사가 건국과 산업화를 거쳐 민주화로 가는 시대적 요구를 가장 잘 반영하는 사건이 5.18이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사회의 주류로 떠오른 586세대와 친노친문 및 좌파들이 모두 5.18의 피를 무기로 정치적 승리를 쟁취해온 ‘5월의 자식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여권이 추진하는 5.18특별법 등은 5.18의 정치적 도덕적 정당성을 뿌리째 흔들 가능성이 높다. 민주주의 필수 요소이자, 인류가 피와 땀과 눈물을 역사의 제단에 바치며 쟁취해온 진보의 상징인 언론 출판 및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근본적으로 부인하기 때문이다. 민주화의 명분을 내걸고 민주주의와 진보의 가치를 정면에서 부인하는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필자는 “한국의 보수세력이 호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정치적으로 패배한 결정적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5.18을 악용하는 지만원 등의 무리와 철저하게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광수론’이나 ‘북한군 침투설’ 등을 주장하는 지만원의 입을 법률적 강제를 동원해 막아서는 안된다. 그런 주장 역시 담론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해서 물리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우파는 건국과 산업화의 주인공이다. 그런 우파의 정치적 상징자산은 어마어마하다. 새로운 주류인 좌파가 내세우는 민주화의 상징자산보다 결코 적지 않다. 정치적 편견을 배제하고 판단한다면 건국과 산업화의 정치적 가치가 민주화의 그것보다 훨씬 중요하고 거대하다. 건국과 산업화의 성과 위에서 민주화의 가치도 꽃피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징자산을 갖고 있었던 우파도 언론과 출판,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틀어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자칭 민주화 세력이 저런 가치를 부인한다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자살이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좌파가 저런 정치적 자살골을 넣고도 그 결과에 대해서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좌파의 정치적 포로 상태에 놓인 광주와 호남이 좌파 대신 그 정치적 부채를 갚아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광주와 호남은 좌파의 정치적 채무를 대신 짊어지게 되고 결국 5.18의 피값을 이용해 그 부채를 갚아나갈 수밖에 없다. 결국 5.18은 정치적 누더기가 되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주도했던 상징성을 상실하게 될 위험이 크다. 5.18특별법 논란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광주와 호남은 1980년 5월부터 아니 60~70년대부터 고립과 소외, 혐오라는 질곡과 싸워왔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호남의 그런 분노와 한(恨), 투쟁이 민주화를 이룩하는 거대한 에너지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제 호남이 좌파와 손잡고 정치적 승자가 되었으니 그런 고립과 소외, 혐오에서 벗어난 것일까? 적어도 역사의 법정에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고 본다.

5.18을 정치적으로 적극 활용하는 현재의 집권세력은 대한민국 어느 정권보다 거센 종북 친중 논란에 휘말려왔다. 그런 논란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인상마저 준다. 자신들의 정체성이 친미친일보다는 친북친중에 가깝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런 행보는 역사적 진보에 대한 반동이자 역사적 상식에 대한 배신이다. 북한 김씨왕조와 중국공산당이 인류가 피땀 흘려 쟁취해온 인권 등 진보의 가치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집단이라는 것은 전세계 양심과 상식의 공통적인 판단이다. 대한민국의 현 집권세력은 그런 양심과 상식의 판단을 거부하고 있다.

5.18을 이런 좌파 세력의 정치적 담보물로 제공하는 광주와 호남은 영원한 역사적 고립과 소외에 갇히게 될 위험에 처해 있다. 김일성을 존경한다는 정치인을 자신의 정치적 대표로 선택한 것은 그런 현실에 대한 공증이나 마찬가지이다.

광주와 호남, 5.18의 진정한 고립과 위기는 이제 시작이다. 광주와 호남이 5.18특별법에 대해서 분명한 거부 의사를 밝히지 못하면 그 위기는 본격화될 것이다. 향후 대한민국의 추락과 역사적 후퇴의 모든 책임을 오롯이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지난 4월 6일 KBS광주총국이 주관한 21대 총선 광주서구갑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한 필자의 마무리 발언으로 5.18특별법에 대한 평가를 대신한다.

[광주는 1980년 5월 이후 40년째 끔찍하고 잔인한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투쟁을 이어왔습니다. 이제 좌파가 정권을 잡아서 광주가 고립에서 탈피했을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나폴레옹이 영국을 고립시키려고 대륙봉쇄령을 내렸을 때 영국인들이 한 말이 있습니다.

“도버해협의 풍랑이 거세지면, 대륙은 고립된다.”

대륙봉쇄령으로 영국보다 프랑스가 고립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진실이 됐습니다. 영국이 세계시장이라는 더 큰 가치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고립은 고통스러웠지만, 역사적으로 승리하는 길이었습니다. 민주화와 진보의 가치를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광주는 고립이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시장과 기업 등 인류문명의 진보의 방향이 아닌, 반시장 반기업 반미반일 친북종중 등 반문명 세력을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광주가 영원히 고립되는 길입니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21대총선 광주서구갑 미래통합당 후보)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저작권자 © 펜앤드마이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