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대국(大國)이요, 일본은 소국(小國)이라는 식의 조선식 사대교린 정책이 21세기에도 지속돼서야 쓰겠나?
21세기 국제사회에서 공산 중국은 민주주의와 리더십의 모델 될 수 없어...좋은 친구와 사귀는 것이 교린(交隣)의 참 의미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인은 아직도 조선시대에 살고 있으며 그 뿌리 깊은 DNA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사대교린(事大交隣)이라는 국제관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라는 큰 나라를 섬기고 왜(倭)와 여진(女眞)과 같은 이웃나라는 적절하게 달래고 억눌러 나라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조선의 외교방침을 21세기에도 계승하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여진(女眞)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중국에 대해서는 여전이 경외심으로 섬기고 있는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왜(倭)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 하고 있다. 해방된 지 70년이나 지났지만 ‘토착왜구’이니 ‘친일파’이니 하는 허무맹랑한 용어가 난무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큼 중국을 마음 속으로 섬기는 반면 일본을 우습게 아는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내 식자들은 조선의 DNA때문인지 중국을 G2 내지는 대국으로 표현하기 일쑤고, 소위 언론 매체들은 중국이 하는 일에는 무의식적으로 굴기(倔起)라는 표현을 해 왔다. ‘자동차 굴기’, ‘해군 굴기’, ‘반도체 굴기’, ‘조선(造船) 굴기’ 등,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굴기’라는 말을 붙였다. 한때 그들이 국제규범을 어겨가며 강성해지는 것이 그렇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는지 되묻고 싶을 정도다. 필자는 2017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개국(開局)한 ‘한국선거방송’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을 미화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상을 제작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민주주의와 리더십의 모델이라면서 중국 공산당에서 선전부를 맡고 있는 왕후닝(王滬寧)을 비롯해 덩샤오핑(鄧小平), 저우언라이(周恩來) 등을 다뤘다. 시진핑(習近平)의 책사라는 탈을 쓴 왕후닝은 중국 지도자가 바뀌는 와중에 탁월하게 변신한 처세의 달인이며 난세의 간웅(姦雄)일 뿐이다. 덩샤오핑은 도광양회라는 특유의 후흑(厚黑)으로 오늘날 국제사회의 우환을 키운 당사자일 뿐이다. 저우언라이도 마찬가지다. 2인자의 처세에 탁월해 중국인이 존경하는 총리일 뿐 우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으며, 더구나 민주주의와 리더십의 모델일 수는 없다. 중국에 보통선거가 있는가? 언론자유가 있는가? 도대체 중국지도자들을 한국인들이 흠모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퇴행적이고 병적인 한국인의 사대심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철저하게 무너지고 있다. 중화권에서는 이미 천멸중공(天滅中共)이란 구호가 보편화됐고 그 체제하의 백성들은 수심화열(水深火熱)의 고통에서 신음하고 있다. 우한폐렴 사태 초기 전 세계가 바이러스의 전파를 우려해 문을 닫은 마당에 현(現) 정부는 중국인들의 입국을 허용했다. 이제 우한폐렴은 베이징폐렴으로 진화했다. 우한은 1,100만의 도시였지만 베이징은 2,400만의 초(超) 거대 도시다. 베이징발(發) 우한폐렴의 제2차 대폭발 여파는 어느 정도가 될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중공은 아시아 최대라는 신파디(新發地) 농산물 도매시장을 온역(溫疫)의 발상지로 지목하고 전시상태에 돌입했다. 베이징 전역의 각급 병원은 우한폐렴 RNA 검사를 받는 시민들로 포화 상태며 바이러스는 중남해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우한에서처럼 베이징시 전체에 대해 봉쇄령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폐렴 발발 초기에 우한과 후베이인들을 전염병의 숙주로 간주해 차별한 것처럼 벌써 여러 지방정부는 베이징을 배척하는 역전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에게 베이징에 가지 말 것을 경고하는 한편 베이징 여행전력이 있는 이들에 대해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부는 중국인에 대한 입국금지를 실시해야 한다. 중화권의 식자들은 입을 모아 “바이러스에는 눈이 있다(病毒有眼)”고 말하고 있다. 우한폐렴의 피해가 큰 국가들은 한결같이 친중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한폐렴의 창궐 분포도를 보면 일대일로와 거의 일치하며 유럽의 경우도 이탈리아, 프랑스와 같이 친중 국가의 피해가 컸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1세기의 한국은 조선의 사대 DNA를 버려야 한다. 중국에 대해 사대를 하려면 최소한의 명분이라도 있어야 한다. 21세기 국제사회에서 공산 중국이 배울 만한 모델이 되는가? 아니면 그들이 우리의 생존을 보장해 주거나 최소한의 도덕규범이라도 있는가? 한 예로, 인도와의 분쟁에서 발생한 유혈충돌에 국제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중공군이 인도군을 가격한 못이 잔뜩 박힌 흉기는 충격적이다. 이 무기는 랑야빵(狼牙棒)이라고 해서 중세의 송나라가 여진 오랑캐의 흉기라고 경멸한 요상한 형상의 철퇴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는 전 세계가 중공의 행위를 상식적인 규범에서 크게 어긋난다고 보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교린(交隣)도 이제는 조선식의 사대와 대조되는 식이 아니라 제대로 해야 한다. 70년도 전에 일어난 일을 갖고 일본에 적개심을 품는 태도는 이제 멈추고 실리를 찾아 우호적인 ‘이웃으로 사귀어야(交隣)’한다. 대한민국이 과거 조선을 계승한 것이 아니듯, 자유민주 체제의 일본도 과거 제국주의 일본이 아니라 엄연한 서방 민주진영의 일원이다. 조선의 DNA를 계승한 21세기의 많은 한국인은 중국에 대한 막연한 사대심리와는 달리 일본의 불행에는 딱히 명분도 없이 열광한다. 많은 이들이 일본에 지진 같은 자연재해라도 발생하기를 바라는 속마음을 가지고 있다. 이해득실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일본의 불행에는 열광하는 심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회생활에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하는 것처럼 국제사회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경우 중국을 좋은 친구라고 할지 일본을 좋은 친구라고 할지를 보면 답은 정해져 있다.

소위 식자층으로 알려진 이들이 참여해 제작한 선관위 유튜브의 중국지도자 칭송 프로그램이나 조회수 부풀리기 유행을 타고 만연한 소위 ‘국뽕’ 유튜브의 허무맹랑한 ‘일본비하’는 사대교린(事大交隣) DNA를 공유하는, 망국에 이르게 하는 퇴행적인 병리현상의 한 예다.

박상후 객원 칼럼니스트(언론인 · 前 MBC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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