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의 극단적인 반일 정책과 반미 노선으로 '권력의 시녀'가 된 외교
정부의 근시안적 '구멍가게 외교'는 국내정치의 손쉬운 수단으로 전락
"100년 전과는 분명히 다른 미래를 형성해나가자"고 했던 노무현이 그립다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최원목 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한국 외교가 끝없이 몰락하고 있다. 인권외교를 빌미로, 현정권 일본 때리기의 전위부서 역할을 맡고, 외교적폐 청산을 한다면서, 민간 공모제는커녕 정권 친위세력 민간인들만 골라서 선호하는 지역의 해외공관장 자리로 대거 밀어 넣어 주었다. 코로나 외교 한답시고, 승인도 받기 전에 진단시약이 국제승인 받았다고 미리 선전해서 선거에 조직적으로 영향을 미치기나 했다. 이제 존 볼턴 전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은 북한의 가짜 비핵화 쇼에도 불구하고 한미 군사훈련만 중단하도록 ‘한반도 중재자 역할(?)’ 수행에만 집착한 우리 정상외교의 현주소까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외교가 ‘권력의 시녀’가 되면, 손쉬운 국내정치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과거사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압박하고 친미외교 일변도 노선에 변화를 모색할 필요는 있으나, 그것이 여러 세대 동안 쌓아온 우리 외교의 자산들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권은 바뀌고 국내정치의 방향은 보수와 진보를 오간다. 그럴 때마다 외교가 같이 널뛰기해서야 되겠는가. 외교관은 장기적 국익을 위해 뛰는 첨병이다. 근시안적인 국내 정치인들이 내놓는 무리한 요구를, 오랜 동안 쌓아온 연륜과 전문성으로 극복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요즘, 우리 외교는 ‘구멍가게 외교’이고, 외교부는 정치인이 그려주는 정책방향대로 죽도록 디테일만 챙기는 곳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청와대에서 외교를 좌지우지하며 "외교는 정치의 연장"이란 말의 끝판왕까지 보여주려는 자들은 틀림없는 외교의 적들이다.

대외정책의 한 분야가 제구실을 못하면 다른 분야에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안보를 우방에 의존하고, 경제를 대외무역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대내정치에 영합한 대가는 반드시 경제외교의 비용으로 돌아온다. 극단적인 반일 정책과 반미 노선이 특정 진영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진영 결집의 효과를 가져다주지만, 이에 필요한 비용은 국민경제의 몫이란 말이다. 한미 방위비 분담액수의 대폭 증액을 항시적으로 요구당하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라는 최신 세계공급망 형성게임에 글로벌 한국경제가 참여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견제 때문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G7에 한국을 초청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일본정부가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청와대는 “몰염치 수준이 전 세계 최상위권”이라며 일본정부를 비난했다. 필자가 일본 입장을 이해한다는 게 아니다. 외교를 국내 정치진영 모으기를 위한 바람잡이 수단쯤으로 여기는 정치꾼들이 청와대에서 한국의 외교정책을 결정하고 일본 때리기 정책을 고집해온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설마 트럼프 대통령이 애초에 G7에 한국을 초빙하겠다고 말했을 때 일본이 결국엔 반대할 것을 미리 예상 못했다고 보는 건 아니겠지? 우리의 일본 때리기 외교가 진행될수록 미국의 "청와대 은근히 때리기"는 가속화 된다는 걸 아직도 모르는가. 결국 트럼프의 한국 G7가입 발언은 일본에 일종의 보복수단 하나를 안겨주려는 "숨겨진 배려"였다고나 할까. 한국이 G7에 들어오려면 일본부터 설득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한국민들에게 결과로서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철저히 고립당하는 한국외교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트럼프 대통령의 G7 발언이 나오자마자 한미관계가 굳건하다는 시그널이라며 선전해댔고, 이제는 겉으로는 일본을 비난해대며 속으로는 또 일본을 때릴 구실이 생겼으니 나쁜 결과는 아니라고 볼 것 같다. 이게 바로 “세계 최상위권 몰염치 정치”가 아닌가.

차라리 노무현 같은 지도자가 그립다. 취임 직후 일본을 방문해 나눈 <일본 국민과의 대화>에서 노무현은 한일관계에 대해 진정한 지도자의 품격을 설정한다. “정치 지도자가 할 일은 과거사 논쟁이 필요 없도록 미래를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서로 협력해야하는 두 나라가 과거사 문제로 증오와 불신에 함몰되어서 싸우지 않도록.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에도 불구하고, 양국 지도자간 감정을 쌓지 않고 북핵문제 등 현안을 풀어가기 위해 자신은 일본총리에 대한 방한 초청을 취소하지 않았다고. 과거사는 대통령이 말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기에 양국 공통의 지반을 확인하고 차근차근 풀어나갈 프로그램을 만들어나가자고. 일본 국민들 30%만 과거사가 청산됐다고 본다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 일본 국민들도 그들 나름의 도덕적 판단을 내린 것이고 한국 대통령까지 과거사 해결을 촉구하고 나서면 70% 일본인마저 잃을 수 있기에 자신은 입을 다물고 미래만을 이야기 하겠다”고 말한다.

국민은 현재를 살 권리가 있고, 참된 지식인과 정치인은 미래를 살아야할 의무가 있다. 사이비 정치인과 지식인은 자꾸만 과거로 간다. 지금 노무현의 후예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노무현이 제살을 깎아가며 설정해놓은 격조와 균형감각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한일 위안부 합의, 강제징용 판결 집행, 반도체 보복, 지소미아 파기 및 번복 등 일본 때리기와 그 결과물은 아직도 쌓이고 있고 대통령이 나서서 기념식마다 과거사 문제에 직격탄을 날리는 건 이미 친숙하다. 대깨문의 정의연•윤미향 철통방어도 결국 성공했다.

이제 국내문제까지 과거사 정리 열풍을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인 적폐청산에 이어, 21대 총선이 끝나자마자 5.18 정신을 담은 개헌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억울한 민주투쟁 희생자는 제대로 처우해야 마땅하지만, 여당에 몰표를 준 특정지역에 주는 선물로 포장하여 정치 개헌을 위한 동력으로까지 삼아야 하나. 부정선거 이슈가 심각하게 제기되어 검증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21대 국회에 개헌의 방향까지 주문하고, 더구나 경제 국란상황에서 과거 지향적 논쟁에 불을 지피면서까지 말이다.

노무현 정신이 과거지향적 적폐청산의 악순환으로 오염되고 있다. 쌓아놓은 외교적 자산마저 소진되고, 죽음으로 지킨 대통령의 품격의 메시지를 복수와 적폐청산의 메시지로 반감시킨 것은 아닌가. 일본 국민들 앞에서, 아직도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았다는 한국 국민들 90%를 향해, "100년 전과는 분명히 다른 미래를 형성해나가자"고 선언한, 새 시대를 여는, 조산아 대통령이 내 기억 속에서 소환되어 그리워진 이유다.

최원목 객원 칼럼니스트(이화여대 로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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