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8월15일 에는 ‘독립 1주년’, 1950년 8월15일에는 ‘제2회 광복절’, 1951년 8월15일에는 ‘제3회 광복절’ 기념행사 열려
무엇인가를 영광스럽게〔光〕 되찾는다〔復〕는 의미의 ‘광복’...6·25 전쟁통에 ‘건국’이 아닌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대중이 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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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소위 ‘코로나19 감염증’이라는 엄청난 재해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이 찾아오고 8월이 돌아오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8월은 매우 특별한 달이다. 1910년 8월29일에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우리의 주권을 잃었다. 그로부터 36년이 지난 1945년 8월15일에는 그 식민지로부터 벗어나 해방을 맞이하였다. 3년 후 8월15일 우리는 역사상 가장 뜻깊은 날을 맞이하였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우리나라’를 갖게 된 것이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8월 15일은 광복절(光復節)이다. 광복절 제정 당시 이 날은 일제(日帝)로부터의 해방을 맞은 1945년 8월15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건국된 1948년 8월15일을 기리는 날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그러나 아직도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하고 있는 이들이 있는 것 같아 다시 한번 언급하고자 한다. 이 점은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확실히 알고 넘어갈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해 강조할 필요가 있다. 1948년 8월15일, 원래의 광복절은, 대한민국이 태어난 날로, 대한민국 역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날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어찌 존재할 수 있겠는가?

1949년 6월, 정부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상정했다. 당시 4대 국경일은 삼일절·헌법공포기념일·독립기념일·개천절이었다. 애초에 4대 국경일을 제정할 당시 우리 정부는 1948년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을 ‘독립기념일’이라 일컬은 것이다. 그리고 그 해 8월15일, 제1회 독립기념일 행사를 성대하게 치렀다. 그런데 1949년 9월 국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 때 삼일절이나 개천절처럼 독립기념일도 ‘○○절’이라는 이름으로 통일하자는 의견이 나와 ‘광복절’로 이름이 바뀌었다. 헌법공포기념일도 그때 ‘제헌절’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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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제헌절·광복절 등 주요 국경일과 관련한 노래 가사를 공모한다는 경향신문 기사(왼쪽 상단).

그 해 11월 9일자 경향신문 2면에 ‘歌詞募集(가사모집)’이라는 제목 아래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삼일절·제헌절·광복절

방금 정부에서는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의 가사를 현상 모집 중인데, 마감은 11월30일로서 원고는 총무처비서실 전례과로 보내주기 바란다 한다. 그리고 당선된 가사는 전문가에게 작곡을 위촉하여 명년 1월 1일부터 전국 관공서 학교 기타 식전에서 통일적으로 부르게 할 예정이다.

1. 삼일절 노래-기미년에 우리 민족이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을 선언한 기념일(3월1일)

2. 제헌절 노래-국회에서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공포한 기념일(7월17일)

3. 광복절 노래-대한민국이 정식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발족한 기념일(8월15일)

4. 개천절 노래-국조 단군께서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창건한 기념일(10월3일)

5. 새해의 노래-신년을 축하하는 날(1월1일)

6. 공무원 노래-각 관공서의 조례식 및 기타 집합에서 공무원의 이도를 앙양하고 사기를 고무하기 위하여 수시로 부르게 할 노래

이 공모(公募)를 통해 정인보·작사-윤용하·작곡의 ‘광복절 노래’가 만들어졌다. 노랫말을 만든 정인보 선생은 한학자(漢學者)이며 역사학자로서, 삼일절, 제헌절, 개천절 노래의 작사가이기도 하다. 이 노래가 ‘광복절 노래’로 확정된 것은 6.25전쟁 두 달 전인 1950년 4월26일이었다.

이 기사에서 보이듯이 광복절은 ‘대한민국이 정식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발족한 기념일’이다. 당시에는 그랬다는 확실한 증거이다.

‘광복(光復)’이란, 무엇인가를 영광스럽게〔光〕 되찾는다〔復〕는 뜻이다. 그래서 ‘광복절은 일본으로부터 우리 조국을 되찾은 날이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까지 우리 민족은 완전한 독립, 즉 홀로 선 상태가 아니었다.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미군정으로부터 주권을 넘겨받았을 때야 비로소 진정한 독립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1949년에는 ‘독립 1주년’이라는 말을, 1950년 8월15일에는 ‘제2회 광복절’, 그 다음 해에는 ‘제3회 광복절’이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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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소재 독립기념관 내 태극기광장.

매년 8월15일이면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울려 퍼지는 광복절 노래의 가사를 한번 살펴보겠다. 그동안 무심코 불렀던 가사를 자세히 음미해보면 광복절은 해방된 날이 아닌, 건국된 날을 기념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꿈엔들 잊을 건가 지난 일을 잊을 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

우선 1절의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라는 대목을 보자. 나도 이제껏 ‘40년’은 일제 36년을 반올림한 숫자라고 무심코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게 뭐 좋은 일이라고 36년을 반올림까지 하여 40년으로 날짜를 늘였겠는가. 여전히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40년’은 나라가 없었던 1910년부터 1948년까지를 일컫는 것이다.

역시 1절의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도 살펴보자. 주어와 목적어가 생략되어 있지만 유추해볼 수는 있다. “우리는 새로 세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길이길이 지키세”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지킬 대상이 있어야 지키자는 말이 성립될 테니 말이다.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 힘써 나가세 힘써 힘써 나가세”라는 2절 가사도 마찬가지이다. 남의 힘으로 간신히 해방된 상태를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이라고 가슴 벅차게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힘써 힘써 나가세”도 1절의 “길이길이 지키세”와 같은 맥락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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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소재 독립기념관 내에 보관중인 조선총독부 건물의 잔해.

그런데 1951년 모(某) 신문이 ‘광복 6주년’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다. 독립기념일이 광복절로 바뀐 것을 잘 알지 못한 국민들은 광복절을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로 그냥 받아들였다. 더구나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난 이후에는 대한민국의 건국을 기념하는 일조차 소홀히 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가 건국의 주축이 되었던 대한민국 자체를 ‘잘못 태어난 나라’로 여기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광복절은 이미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로 굳어져 다시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대한민국이 건국된 날을 ‘건국절’ 혹은 ‘건국기념일’이라는 이름을 붙여 축하하자는 의견은 오래 전부터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이 탄생한 날을 제대로 찾아 생일을 축하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과 이유로 그러는 걸까? 물론 그 이유도 대충은 짐작할 수 있다.

1948년 8월15일 열린 기념식의 공식 명칭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이었다. 그때만 해도 건국과 정부 수립 및 독립을 같은 뜻으로 썼다. 나라를 세우는 과정(총선거-제헌국회 구성-헌법제정-대통령 선출-정부 수립)에서 정부 수립은 가장 마지막 단계였다. 그러니 그 앞 단계를 다 거친 정부의 수립은 곧 건국이었던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날이 감사하고 고마운 날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욱 가슴 벅차고 영광된 날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워진 날이다. 우리 민족이 나라를 세우고 진정한 홀로서기를 한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영광된 날을 기리기 위해 ‘노래’까지 만들고 이 나라를 길이길이 지키자고 다짐한 것 아니겠는가?

8월15일을 건국 기념일로 정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 중에는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고 억지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임시정부는 정식 국가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임시’라는 말이 붙었지 않겠는가? 그 임시 정부가 제대로 된 국가가 아니었기에 해방 직후 좌익이든 우익이든 ‘건국 준비’를 위해 일할 단체를 만들었던 것이다. 임시 정부로 이미 나라가 세워졌다면 건국 준비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에는 ‘임시 정부의 법통(法統)을 계승’한다고 적혀 있다. 그 얘기는 임시 정부의 정신을 이어받는다는 것이지 임시 정부 자체가 대한민국이라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잉태된 날이 아닌, 아기가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를 생일이라고 축하한다. 임시정부 수립일은 대한민국의 정신이 잉태된 때라고 할 수 있고 1948년 8월15일은 대한민국이 완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난 날이다. 그러니 그 날을 대한민국의 생일로써 축하하고 기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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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천안시 소재 독립기념관 본관에 설치된 ‘불굴의 한국인’ 상(像).

1948년 당시 건국 기념식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을 굳이 해방된 날인 8월15일에 맞춰 개최하려 했던 기획자들은 이미 대부분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저승에서 그들이 이런 상황을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필 같은 날짜인 탓에 건국 기념일의 의미가 해방 기념일에 묻혀버리고, 대한민국 건국의 영광을 퇴색시키는 데 악용되는 것을 안다면 그분들은 아마도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건국 기념식을 다른 날짜에 할 걸……’ 하고 말이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이런 뻔한 얘기로 해마다 열을 올려야 할까? 물론 언제까지일지 나는 안다. 대한민국 건국을 폄훼하고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 자체를 부정하는, 국기에 대한 경례도 제대로 안 하고 엉뚱한 노래를 애국가 대신 부르는 세력이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이다. 그런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다만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이 이야기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계속해야 한다. 그래서 저들의 마수(魔手)에서 이 영광된 대한민국을 ‘길이길이 지켜야’ 한다.

황인희 객원 칼럼니스트 (다상량인문학당 대표 · 역사칼럼니스트) / 사진 윤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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