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좌익세력에게 월계관을 씌워준 총선을 관찰하면서 “이 나라에 세력으로서의 우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다. 자신을 우익·우파·보수라고 외쳐댔던 세력은 사실은 완벽한 기회주의 좀비, 양동안의 표현을 빌면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이었다.
정권이 좌파 쪽으로 넘어가면 그들은 재빨리 좌파 쪽에 빌붙어 벼슬을 얻거나 자리를 차지하고, 진보적 민주인사인 체 하며 인기 관리를 한다. 권력이 보수우파로 기울면 가히 빛의 속도로 재빨리 말을 갈아탄다.

#1. 헌법 개정 없이도 공산화 가능성 보여주는 나라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사청문회는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각성시키고 있는 한 주다. 청문회가 아니었다면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의 민낯을 필부필부들이 어떻게 들여다 볼 수 있었겠는가. 야당 의원의 고군분투 덕분에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한을 위해 열렬하게 일했던 박지원 씨의 활약상이 단연 돋보이고 있다.

무려 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3조6000억 원!

박지원 씨가 북한에 제공하겠다고 비밀 합의 했다고 언론에 공표된 액수다. 월급 500만원 받는 샐러리맨의 6만년 치 월급을 모아야 그 액수가 채워진다. 그 거액을 미국이나 서방 세계 정보기관의 감시망을 피해 국제결재수단인 달러로 옮기던 중 5억 달러의 꼬리가 밟혔다. 나머지 25억 달러의 행방이 이번 청문회에서 밝혀내야 할 급무가 되었다.

박지원 씨는 적장(敵將)인 김정일 비자금 계좌로 5억 달러를 상납하다 들통 나 외국환거래법 위반, 직권남용 및 알선수재죄(대기업 자금 1억 원 수수)로 3년형을 살았다. 김정일은 지난 2000년 정상회담 쇼에 출연해준 출연료(한국대표단이 먹은 곰발바닥 요리비, 와인값까지 포함해서)로 간단히 5억 달러 현찰을 선불로 챙긴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30억 달러라니...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제 김대중 연출, 박지원 주연의 적국(敵國) 불법 송금 사건은 전면 재수사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적행위·내란·외환죄·반역죄 등 헌정질서 파괴행위에 공소시효 따지는 세력은 그들도 동일한 이적 집단이다.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쳐 단죄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따위 이적행위 범죄자를 문재인 정권이 다른 기관도 아닌 국가정보원의 수장으로 앉히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산화 시대, 대한민국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현상이 어디 박지원 사건 하나뿐인던가.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을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하자 야당이 김대중 시절 북한에 '30억 달러 퍼주기' 문건을 폭로했다. 이제 김대중 정부의 대북 송금사건에 대한 전면 수사가 불가피하게 되었다(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박지원을 국정원장 후보자로 지명하자 야당이 김대중 시절 북한에 '30억 달러 퍼주기' 문건을 폭로했다. 이제 김대중 정부의 대북 송금사건에 대한 전면 수사가 불가피하게 되었다(사진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의 무법 난동, 검찰과 경찰의 좌익화, 적들 앞에서 무장 해제하고도 비실비실 웃기만 하는 국방부장관, KBS·MBC를 비롯한 거의 모든 언론의 좌익화 및 언론으로서의 의무 포기, 세금을 빙자한 전 국민 재산 강탈, 자신들과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게 재갈을 물리기 위한 역사왜곡 처벌법 제정, 좌익·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 영웅 만들기….

전 세계 좌익 사회에 문재인 정부가 끼친 공헌은 지대하다. 첫째, 폭력난동으로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현직 대통령은 내란 외환죄가 아니고는 재임 중 형사소추될 수 없다는 헌법규정을 아시는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금 재판받고 있는 주제는 모두 형사사건 아닌가. 이러면 굳이 이 나라가 장식품이나 다름없는 헌법을 유지할 필요가 있겠는가? 

둘째, 무리해서 헌법 개정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공산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문재인 정부는 중인환시리에 전 세계에 리얼 타임으로 그 비법을 생중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써먹은 수법 그대로라면 이 지구상 어느 나라도 공산화 위험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2. 일본보다 국민소득 높았던 칠레의 몰락

학습은 위대한 결과를 낳는다. 알고 보니 문재인 정권도 선배가 있었다. 1970년 합법적인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순식간에 칠레를 공산화한 살바도르 아옌데다. 아옌데는 억세게 운 좋은 사나이였다. 1970년 대선에서 불과 36.2%를 얻었을 뿐이다. 이 정도 쥐꼬리 득표를 하고도 대통령 당선이라니…. 이런 불합리의 뒤안길에는 반드시 치어리더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좌통우분(좌익은 통합, 우익은 분열)! 칠레 공산화의 일등공신은 세 명이나 난립하여 보수우파 표를 지극정성으로 분산시켜준 우익 후보들이었다.

잉크는 독가스요, 펜은 기관총이라 하지 않던가. 공산주의자들은 말로 싸우고, 글로 투쟁하므로 언변이 번지르르하다. 아옌데는 취임식장에서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민주주의와 국민의 기본권, 법의 합당한 절차를 존중하는 한도 내에서 사회주의 노선에 따른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겠노라” 선서했다. 임기 개시 즉시 그는 선서를 파기했다.

헌법과 법률 따위에 구속받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안면에 철판 깔고 아옌데는 ‘사회주의를 향한 칠레의 길(La via chilena al socialismo)’을 줄기차게 밀어붙였다. 소득재분배를 위한 임금 대폭 인상, 물가 동결, 남녀 동일임금제, 전국민 생활임금제, 사회보장제도 확대, 전 국민 대상 예방치료 의료보장, 국가 차원의 공교육제도 시행…. 지금 문재인 정부가 시행하는 여러 정책은 공산 칠레 아옌데 정책의 판박이다.

뿐만이 아니다. 아옌데 정권은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모든 60세 이상 인구에게 연금 지급을 약속했으며, 중소기업도 사회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가족 보호를 전담할 정부 부처 신설, 모든 어린이에게 무상으로 우유와 아침 식사 급식을 실시했다. 모든 동네마다 모자보건진료소와 법률상담센터도 마련했다. 집세는 가계 수입의 10%를 상한선으로 정해, 더 인상할 수 없도록 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복지정책 역시 공산주의자 아옌데의 정책과 놀랍도록 유사하거나 일치한다.

아옌데는 "헌법을 준수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선서하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 즉시 그는 안면몰수하고 공산화의 길로 직행했다.
아옌데는 "헌법을 준수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진보적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선서하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취임 즉시 그는 안면몰수하고 공산화의 길로 직행했다.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위한답시고 가진 자들의 재산을 무상 몰수하여 무산자들에게 분배했다. 주요 개인소유 광산과 제조업체를 사들이고, 농업협동농장을 건설하기 위해 대단위 농지를 접수했다.  놀라지 마시기 바란다. 이런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들을 국제사회는 공산국가, 사회주의 국가라고 분류한다는 사실을!

“저소득층·극빈층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 혹은 “공공부조” 따위의 탈을 쓰면 어떠한 무법·불법·탈법도 합법으로 둔갑했다. 이러한 사회적 배려나 공공부조에는 막대한 예산, 즉 돈이 요구된다. 그러한 돈·예산에 신경 쓰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진정한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칠레에서 재정 사정 따위는 조금도 문제 되지 않았다. 중산층과 부유층을 ‘가진 자’로 몰아 세금이라는 강탈 도구로 빼앗아 해결하면 되었으니까. 아무리 쥐어짜도 더 이상 나올 세금이 없자 조폐공사 기계 무시로 돌려 미친 듯 지폐를 찍어댔다. 

#3. 아옌데의 칠레와 문재인 한국은 일란성 쌍둥이

아옌데의 공산 칠레가 '진보적 개혁'을 이 정도 수준에서 그쳤다면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제재를 당하는 극한 상황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그들은 마지노선을 넘어버렸다. 외국 투자회사마저 몰수하여 국영화한 것이다.

이런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적폐’로 몰아 가혹하게 탄압하는 방식으로 전 국민에 재갈을 물렸다. 굳이 헌법을 개정하지 않고도 칠레는 순식간에 공산화 되었다. 1960년 기준으로 일본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았고, 1970년 기준으로도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칠레 경제는 2년 만에 완전 거덜났다.

국제사회의 경제 질서를 무너뜨리는 현상을 구경만 하면 그것은 지구촌 공멸의 길이 된다. 당연히 국제사회는 그에 합당한 방식으로 대응했다. 경제제재를 가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경제봉쇄로 나라가 쫄딱 망할 판이 되자 군이 일어섰다. 피노체트 장군의 쿠데타로 칠레는 공산주의 지옥에서 벗어났다. 그 과정에서 숱한 피가 흘렀고, 공산압제로부터 나라를 구한 피노체트는 ‘인권유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역사의 죄인으로 낙인 찍혔다.

아옌데의 공산 칠레 정책 및 수법이 오늘날 문재인 정권이 걷고 있는 길과 충격적일 정도로 유사하지 않은가? 알고 보면 아옌데의 공산 칠레와 문재인 한국은 완벽한 일란성 쌍둥이다.

#4. 대체 우익은 왜 이 모양으로 무력한가?

칠레와 한국에서 보우우익은 정치세력으로서 존재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존재했다. 아옌데는 36.2%, 문재인도 당선 시 41.1% 득표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수 우익세력은 공산화 과정에서 찍소리 한 마디 못하고 나라 망하는 과정을 멀뚱멀뚱 하며 구경만 했다.

대체 우익은 왜 이 모양으로 무력한가? 그 정답을 오래 전에 제시한 선지자가 양동안 선생이다. 양동안 선생이 머지않은 장래에 한국의 공산화를 예언한 ‘우익은 죽었는가?’ 라는 명논설을 발표한 시기가 놀랍게도 1988년 8월이었다.

양 선생은 이 논설에서 한국의 사회 곳곳에 침투한 좌익세력의 실체와, 한국의 언론과 지식층이 저들을 민주주의자·민족주의자·양심인사로 떠받드는 실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했다.

평화와 번영의 인류 제전인 올림픽을 앞두고 어느 누가 감히 이런 용기 있는 글을 써서 좌익 집단에 맞장 뜨자고 도전장을 내민단 말인가. 당연하게도 양동안 선생은 좌익 세력들의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공격에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다. 그 많던 보수우익진영 인사들 중 어느 누구도 양동안 선생을 구하는 일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처절하게 우익진영으로부터 버림받고 '수구꼴통'의 대명사로 낙인찍혀 지금까지도 그 멍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1988년에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명논설을 통해 좌익세력의 발호와 우익세력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폭로한 양동안 교수.
1988년에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명논설을 통해 좌익세력의 발호와 우익세력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폭로한 양동안 교수.

#5. 소위 ‘민주화’의 함정

1970~80년대, 많은 사람들은 10월 유신의 폭압정치, 권위주의 통치체제,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민주화 시대가 도래하면 좌익세력은 절로 사라질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그 후 역사는 1987년 6·10 시위, 6·29 선언으로 민주화가 폭발하면서 이 땅에서 좌익세력이 사라지기는커녕 화산 폭발하듯 대폭발했다. 일반인들의 믿음과는 정 반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양동안 선생은 ‘민주화’를 외치는 세력의 함정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즉, 저들은 ‘민주화’를 외치고 있지만, 실상은 민주화라는 탈을 쓴 공산주의 세력이었다는 것이다.

명백한 좌익·공산주의자·간첩들을 국가보안법에 의거하여 잡아넣을 때마다 저들은 “민주 인사 탄압”이라고 뒤집어씌웠다. 남영동·옥인동·홍제동 대공분실 앞으로 몰려가 “공안통치 분쇄, 용공조작 폭로,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쳐댔다. 그것은 이 나라 국시인 반공정책을 없애라는 악다구니였다.

이런 날조된 공세가 펼쳐질 때마다 보수우익은 반론 한번 못 내놓고 여론의 눈치만 봤다. 그 결과 좌익이 기득권층이 되고, 우익은 범죄자 집단처럼 숨어서 고개 숙이고 다니는 세상이 왔다. 양동안 선생 예언대로 저들은 ‘민주화’의 탈을 쓰고 자유민주주의를 사회주의·공산주의·팟쇼 전체주의로 체제를 뒤엎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것도 불과 30여 년 만에….

좌익세력들은 체제변혁을 위한 데모를 '민주화 시위'로 위장하여 한국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힘은 강한 조직력과 연대의식에서 나왔다. 강철(좌익)은 그런 방식으로 단련되었던 것이다.
좌익세력들은 체제변혁을 위한 데모를 '민주화 시위'로 위장하여 한국사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힘은 강한 조직력과 연대의식에서 나왔다. 강철(좌익)은 그런 방식으로 단련되었다.

#6.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압도적 열세였던 좌익세력이 짧은 기간에 체제 변혁에 성공한 원인은 무엇일까? 혁명은 머릿수로 하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저들은 냉혹하게 인식했기 때문이다. 소수 좌익이 몸집을 불려 다수 우익을 집아 먹는 전술에 대해 양동안 선생은 ‘우익은 죽었는가?’에서 예리하게 분석해냈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신규 교수 채용이 공표된다. 좌익세력은 해당 학계의 모든 좌익 교수, 좌익 학생회, 좌익 언론 역량까지 총동원한다. 그리하여 자신들에게 동조하는 좌익 인사를 그 자리에 집어넣는다. 어느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좌익 교수가 불이익을 당하면 학계의 모든 좌익 교수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그를 옹호·지원한다.

좌익 연극인이 좌익 사상을 품고 있는 작품을 공연한다. 언론사 문화부의 좌익 기자들이 선전 기사를 써 주고, 좌익 대학생과 좌익 노동자들은 관객 동원에 협력하여 관객을 의식화하는 숭고한 작업이 펼쳐진다.

좌익 기자가 월간잡지 기자로 들어가면 좌익, 혹은 좌익 동조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원고청탁을 한다. 좌익 대학생들은 그 잡지를 구독하고, 일간지의 좌익 기자들은 좌익계 필자들의 글을 “훌륭한 명문”이라고 떠들썩하게 선전한다.

한국 현대사, 특히 6·25 이후 좌익은 늘 소수였다. 소수가 다수를 뒤엎고 권력을 탈취하려면 비상한 방법이 요구되었다. 혁명이 성공하면 유토피아가 보장되지만, 실패하면 청춘을 감옥에서 썩거나, 심하면 사형을 당한다. 이 난세를 돌파하기 위해 강한 조직력, 연대의식은 저들의 무기가 되었다. 그들의 연대의식은 직능이나 직장, 분야와 지역을 뛰어넘어 우익들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파워가 만들어진다.

#7. 한국사회 좌회전의 진짜 주인공은?

강철(좌익)이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단련시킬 때 우익은 어땠을까?

보수우익은 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모래알이었다. 모래알들이 서로를 적대하며 때를 가리지 않고 분열하여 아군끼리 총질하고, 제 발등에 총을 쏴댔다. 더욱 악질적인 것은 좌익세력의 발호에 보수우익이 적극 협력했다는 사실이다. 양동안 선생은 그런 협력자 군상을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로 정의했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사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이 부족하다. 대신 그들은 정치 감각이 고도로 발달했다. 대중에 대한 인기영합, 구미 리버럴리스트의 생각과 행동 추종이 그들의 장기다. 어떤 순간에 어느 세력에 빌붙는 것이 유리한지 본능으로 깨닫고 후회없이 곡학아세하여 기득권에 빌붙어 떡고물을 주워먹었다.

그들은 좌익을 ‘순수한 세력’ ‘이상주의 세력’으로, 좌익의 반(反)국가 범법행위를 순수의 발로라고 호도하고, 민주화만 이루어지면 좌익이 사라질 것이라는 엉터리 주장으로 정부와 대중을 오도(誤導)했다. 좌익에 대한 철저한 대책을 강구하자고 주장하면 그런 사람을 ‘매카시스트’로 몰아 좌익을 보호하고, 저들의 활동에 월계관을 씌워주었다.

#8. 권력 빼앗기고 등신·머저리 집단으로 전락한 우익

우익은 목소리 톤이 낮다. 좌익에 맞서 싸울 무기나 보호장구, 즉 이론·이념·사상적 학습은 물론, 그와 관련된 준비조차 하고 있지 못하다. 조직력이 없고 연대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대가리 숫자가 많아보일 뿐이다. 1톤의 모래가 1㎏의 단단한 돌멩이를 이기려면 콘크리트가 필요하다는 사실조차 그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그 결과 지구상 최고의 반공국가 대한민국에서 우익은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적폐’로 몰려 좌익세력 똥구멍에서 콩나물 대가리나 뜯어먹는 구걸연명 신세로 전락했다. 양동안 선생은 속물근성으로 가득 찬 이 나라 우익세력의 행태를 다음과 같이 고발했다.

첫째, 우익인사들은 사상전을 남이 대신 해 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때문에 자신은 ‘옷에 흙 묻히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면서 사상전을 회피한다. 다른 사람이 피 튀기는 전투를 벌여 성과를 내면, 그 달콤한 열매는 재빨리 자신이 가로챈다.

둘째, 대부분의 보수우익 지도자 운운하는 세력들은 위기가 닥치면 싸울 생각은 않고 피난 갈 생각부터 한다. 지도층으로 갈수록 ‘피난민 의식’은 두드러진다.

셋째, 다수의 우익인사들은 좌익에 대해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지 못해 좌익의 도전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취약하다.

넷째, 우익은 자신들이 공부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젊은 세대를 우익으로 양성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좌익의 도전에서 한없이 무력하다.

30년 전 양동안 선생의 분석이 이러했는데 지금이라고 달라진 것이 있는가? 오히려 분열과 기회주의가 더더욱 고질화 되었을 뿐이다.

#9. 우익은 없다. 기회주의적 좀비들만 바글댈 뿐

기자는 지난 봄 좌익세력에게 월계관을 씌워준 총선을 관찰하면서 “이 나라에 세력으로서의 우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굳히게 되었다. 자신을 우익·우파·보수라고 외쳐댔던 세력은 알고보니 완벽한 기회주의 좀비, 양동안 선생의 표현을 빌면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이었던 것이다.

정권이 좌파 쪽으로 넘어가면 그들은 재빨리 좌파 쪽에 빌붙어 벼슬을 얻거나 자리를 차지하고, 진보적 민주인사인 체 하며 인기 관리를 한다. 권력이 보수우파로 기울면 가히 빛의 속도로 재빨리 말을 갈아탄다.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은 세 치 혀를 놀려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면 곡학아세는 지극히 당연한 통과의례쯤으로 여긴다. 처세에는 가히 달인들이므로 재빨리 진영을 넘어온 그들이 대부분의 고급 관직과 고위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오늘날 한국 보수우파를 대표한다는 모임에 가 보면 태반 인사들이 좌익 세상에서 한가락 했던 군상들이란 점이다. 과거 전력이 하도 변화무쌍하고 화려하여 어지간한 ‘빨갱이’들은 축에도 못 낄 정도다. 한 시절 열심히 좌익 물 빨면서 한국 사회 붉게 물들이던 좌익 공신들이 느닷없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전향 운운하면서 “내가 진성 우파”라고 외치는 이 기현상을 무슨 논리와 이론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이러고도 이 나라에 ‘우익’이 존재한다면, 그것 자체가 기적 아니겠는가.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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