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추구권’ 보장하는 헌법 10조 시대 포부 밝힌 文대통령의 억지스러움
헌법 10조는 초국가적인 기본권...국가가 국민에 강제하면 안 된다는 뜻 포함
헌재도 헌법 10조는 국가 권력 개입 근거 조항 아닌 제한 근거 조항임을 강조
입법 폭주 일삼는 문재인 정권 상대로 제기될 위헌소송 근거가 바로 헌법 10조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

문재인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헌법 10조를 꺼내 들었다. 2016년의 광화문 촛불 시위를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에 기반한 것으로 규정한 다음, 2020년 이후를 헌법 제10조의 시대로 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문재인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라고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끔 문재인 대통령이 과연 법조인 출신인지,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변호사인지 의심할 때가 있다. 선택적 정의와 공정, 내 편만의 인권, 불리한 모든 국내외 정세에 대한 묵비권 행사, 그 반대로 정치 공학적 계산이 선다 싶으면 속칭 ‘낄끼빠빠(낄데 끼고 빠져야 할 데 빠져야 하는 젊은 세대 에티켓의 준말)’를 무시한 아무데나 다 끼어들기에 익숙할 만도 한데, 여전히 내게 문재인 대통령의 어법은 낯설고 불편할 뿐 아니라, 때로는 그 억지스러움에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헌법 제10조가 어떤 조항인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이 내용에서 보듯이 헌법 제10조의 행복추구권은 초(超)국가적인 기본권으로서 국가가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국가의 승인도 필요 없다. 이 말 속에는 이 기본권 앞에서 국가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하는 것이지, 이 기본권을 빌미로 뭘 거들겠다고 나서서는 안 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초(超)”라는 말 속에 이미 행복추구권은 국가에 대하여 끼어들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의 권리에 대한 침해는 권력으로부터 온 것이 가장 치명적이고, 독하며, 잔인하였다. 그 역사적 경험을 통해 나온 것이 행복추구권이고, 이 문구는 국가의 이름을 빈 권력의 압제라는 원죄를 되살리는 경구(警句)이면서, 헌법적으로는 국가 권력 제어, 권력 행사의 정당성의 한계를 지우는 기준을 제시한다.

실제로 이 헌법 조항의 조상이 되는 1776년의 버지니아 권리장전 제1조에서는 “행복과 안전을 추구할 권리”가 천부적 인권으로서 선포되었고, 1789년의 프랑스 인권선언 제14조에서는 “다른 사람을 해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불가침의 행복추구권이 규정된 바 있었다. 그리고 1949년의 독일 기본법 제2조에서는 인격의 자유로운 발현으로 등장하였는데, 원래 그 초안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라는 형태였다가 표현이 너무 통속적이라는 이유로 점잖게 다듬어졌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괄적 자연권의 성격을 갖는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가 권력,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은 물론 헌법개정권력까지도 구속하며, 이에 반하는 국가 기관의 행위는 형식적인 합법성을 띤다고 하더라도 그 정당성을 잃고 국민에게 이를 강제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헌법재판소도 국민이 갖는 일반적인 행동의 자유권이 이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하여 헌법 제10조가 인간의 존엄과 가치 실현의 불가결의 요소인 자유권의 근원임을 밝히고 있다. “이른바 계약자유의 원칙이란 계약을 체결할 것인가의 여부, 체결한다면 어떠한 내용의, 어떠한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하느냐 하는 것도 당사자 자신이 자기의사로 결정하는 자유뿐만 아니라, 원치 않으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자유를 말하여, 이는 헌법상의 행복추구권 속에 함축된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입법 폭주를 일삼고 있는 문재인 정권과 여당으로서는 가슴이 뜨끔할 만한 결정이다. 헌법 제10조는 국가 권력 개입 근거 조항이 아닌 제한 근거 조항임을 헌재가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을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가르고, 주거권 보장을 명분으로 사실상 모든 국민에게서 자유로운 의사결정과 선택권을 빼앗아간 부동산 법률들을 상대로 줄줄이 이어질 위헌 소송의 근거가 바로 헌법 제10조라는 것이다. 그 밖에도 국민의 기본권을 멋대로 제약하는 입법 폭주를 막아낼 강력한 무기가 바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담고 있는 헌법 제10조이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앞으로의 시대가 헌법 제10조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 것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전혀 다른 의미에서의 선견지명이 있었다고나 할까. 그게 뭔지도 모르고 헌법 제10조의 칼을 거꾸로 잡고 휘두르려는 이 정권의 행태에서, 이들의 전유물인 말 장난을 통한 선동과 선전의 약발도 이제는 끝물에 이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끝은 무엇인가.

문득 단테의 <신곡>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단테(Alighieri Dante, 1265-1321)는 명분을 조롱하여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자들을 위선자로 규정하여 그의 작품 <신곡>에서 지옥의 여덟 번째 원(圓)의 여섯 번째 굴에 처넣고 있다. 거기에서 단테는 평화를 위한 사도를 자처하면서 사익을 취하여 평화를 파탄냈던 역사적으로 실재하였던 로데링고(Loderingo)와 카탈라노(Catalano)를 만나는데, 그들은 겉으로는 반짝이는 금빛망토를 걸쳤으나 속은 온통 납이어서 그 무게로 겨우 겨우 한걸음씩 내디딜 뿐이었다. 그 괴로운 망토는 영원히 그들의 것이었다. 얼마나 무겁고 고통스러웠던지 그 망토를 걸친 자들의 눈에는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달려가는 사람들만큼이나 빨랐다.

이제 슬슬 누군가에게는 금빛 망토의 무게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단테의 여덟 번째 원에는 위선자들뿐만 아니라 유혹하는 인간들, 아첨꾼, 사기를 일삼던 공직자들, 불화와 분열의 씨를 뿌린 자들도 각각 굴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던가. 시대를 보는 눈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 끝도 마찬가지이고.

이호선 객원 칼럼니스트(국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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