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칼럼] 우파정당의 부활과 집권으로의 길에 '진성당원' 있다
[주동식 칼럼] 우파정당의 부활과 집권으로의 길에 '진성당원' 있다
  •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프로필사진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20.08.27 09:17:56
  • 최종수정 2020.08.27 17:44
  • 댓글 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나라 우파는 정당 정치를 한 적이 없다
우파 정치의 모든 것은 행정의 일환이었지, 말로 하는 전쟁인 정치를 한 것은 아냐
우파 진영이 좌파적 어젠다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정치 리더십은 ‘정치 콘텐츠의 인격화’...우파 정당, 정치 콘텐츠는커녕 ‘정치 이권’으로 결속
‘진성당원’이 정치 콘텐츠 유통과 토론의 활성화, 그리고 정치 리더십 창출 모두를 좌우해
구경꾼과 응원단을 진성당원으로 변화시키는 거대한 변화 반드시 필요
다른 정당과 전쟁하기 이전에 정당 내부에서 먼저 전쟁 치러야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대한민국의 우파는 건국과 산업화의 주역이지만, 정치는 한 적이 없다. 반면 좌파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직 정치만 했다. 우파의 정치적 무능력과 좌파의 정치적 승리, 그 결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필자가 기회 있을 때마다 펼쳐온 주장이다. ‘핵심을 짚었다’며 공감하는 분들도 많지만, 반발하는 분들도 계신다. 반발의 요지는 이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우파 정당이 오랫동안 압도적인 다수였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도 많이 배출했는데, 우파가 정치를 한 적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

틀린 말씀은 아니다. 다만 필자가 강조하는 메시지와 초점이 다를 뿐이다. 바로 ‘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이 달라서 생기는 문제이다.

정치는 무엇일까.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政者正也)’이라는 공자의 통찰에서부터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는 데이빗 이스턴의 설명에 이르기까지 정치의 본질에 대한 규정은 수없이 많다. 정치에 대한 이런 규정들의 핵심에서 필자는 ‘정치란 말로 하는 전쟁이자, 리더십 창출 메커니즘’이라는 나름의 결론을 도출해왔다.

정치는 칼 슈미트가 말한 ‘주권의 예외적 상황’에서 작동한다. 주권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상황에서는 정치보다는 행정이 주권을 대표한다. 하지만 기존 법률에 근거한 행정만으로는 처리하기 어려운 주권의 예외적 상황은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 예외적 상황을 처리하는 것이 정치의 존재 근거이다.

국회의원들의 본업이 법률안의 제정과 개정 등인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다. 기존의 주권 규범, 즉 행정력만으로 처리할 수 없는 예외적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하기 때문에 새로운 법률의 제정과 기존 법령의 개정 등이 필요해지고 이것이 정치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예외적 상황을 처리하는 원칙이나 방향에 쉽게 합의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예외적 상황의 성격 규정은 말할 것도 없고, 특정 이슈가 주권의 예외적 상황에 해당하는 것인지 판단하는 지점에서부터 이견은 발생한다. 이런 이견은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과거에는 이런 이견을 가장 빠르고 분명하게 해결하는 방식이 전쟁이었다. 모든 전쟁은 주권의 예외적 상황에 대한 이견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전쟁은 빠르고 분명한 방식인만큼 부작용과 후유증도 엄청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정당 정치이다.

정당은 한 나라의 국민들 사이에도 계급에 따른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전제 위에서 만들어진 결사체이다. 상이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정당 정치라는 협의와 타협, 절충의 구조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협의와 타협, 절충이지만 핵심은 전쟁이다. 전쟁은 전쟁이되 말로 하는 전쟁이다.

‘우리나라 우파는 정치를 한 적이 없다’는 주장에서 말하는 정치가 바로 ‘말로 하는 전쟁’으로서의 정치이다. 우리나라 우파는 이념적 정체성도 있었고, 국가 경영의 대안도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행정의 일환이었지, 말로 하는 전쟁인 정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 우파의 정치는 청와대의 국회 파견 업무에 가까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로 하는 전쟁이라는 정치의 본질에 대한 우파의 적대감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표현이다. 50대 이상 시니어 세대가 자주 들어봤을 이 표현에 우리나라 우파의 정치적 무능력과 정치 혐오, 좌파의 정치 우위에 대한 두려움이 집약돼 있다.

1987년 체제의 성립 이후 우파 진영에서 이른바 개혁세력으로 분류되는 정치인들이 대부분 좌파적 어젠다를 적극 수용했던 것도 우파의 ‘말에 대한 기피’에서 연유하는 현상이다. 말을 적대시하니 정치적 메시지가 나올 수 없고, 주권의 예외적 상황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어젠다와 콘텐츠도 만들지 못한다. 1987년 체제에서는 이 모든 것이 좌파의 이념적 주도권 아래 만들어졌던 것이다.

주권의 예외적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정치 메시지와 콘텐츠, 어젠다를 제시해 당원과 유권자들을 설득하는 정치인이 리더가 된다. 그래서 정치 리더십은 ‘정치 콘텐츠의 인격화’라고 할 수 있다. 우파 정당이 정치 리더십 창출에 실패하는 근본 원인이 바로 정치 메시지와 콘텐츠의 부재이다. 즉 정치적 불임정당이 되는 것이다.

유권자 대중은 선거 때 내놓는 거창한 선거공약이나 정책자료집 등을 검토해서 정당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당 소속 정치인이 어떤 정치적 행보를 해왔는가를 보면서 그 정당이 추구하는 정치적 가치를 직관적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정치 콘텐츠가 인격화한 정치 리더십이 없는 정당은 정치 투쟁의 무기를 갖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정치 투쟁의 진검승부인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도 없다.

우파 정당에서는 그동안 정치 콘텐츠 대신 정치 이권이 유통됐다. 정치 이권이 정치 리더십을 만들었던 것이다. 정치 콘텐츠의 인격화가 아니라, 정치 이권의 인격화인 셈이다. 정치 이권이 인격화된 정치 리더십으로는 대중의 지지를 끌어낼 수도, 그들을 조직하거나 훈련시킬 수도 없다. 그 결과 좌파와의 정치 투쟁에서 백전백패하게 된다.

선거 때마다 공천 잡음이 불거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 이권이 공천을 결정하니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의 규칙이 자리잡을 수 없고, 공천 탈락자들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당에 대한 충성심도 있을 수 없고, 당 활동에서도 정치공학적 유/불리만 따지게 된다.

정당이 정치 리더십을 만들지 못해서 나타나는 비극적인 현상이 정당의 외부에서 리더십을 수혈하는 관행이다. 정치권 외부, 즉 대학이나 법조계, 비즈니스, 연예계 등에서 성공한 인물들을 ‘인재 영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데려오는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얼마나 대중에게 알려졌느냐 하는 인지도와 대중들이 고개를 숙일 만한 타이틀이나 스펙, 즉 간판이다.

이렇게 정치권 밖의 명망을 기반으로 아무 정치적 실적도 없이 갑자기 정치 리더의 반열에 오른 대표적인 인물이 안철수이다. 안철수의 정치적 공과를 최종적으로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적어도 정치 입문 당시의 하늘을 찌를 듯했던 기세와 기대는 거의 소멸했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안철수가 정치적 업적을 만들어낸다면 그건 정치 입문 당시 이름값이 아니라 정치권에 들어와 온갖 어려움과 경험을 겪으며 쌓은 내공의 결과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우파 정당 내부에서 정치 이권이 아닌 정치 콘텐츠를 유통시켜 정치 리더십을 만들 수 있을까? 정치 콘텐츠가 유통된다는 것은 토론을 통해 콘텐츠의 가치 평가가 이뤄진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말로 하는 전쟁’이다. 다른 정당과 전쟁을 하기 이전에 정당 내부에서 먼저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상징인 지방자치가 우리나라에서는 복마전으로 불릴 만큼 처참한 상태에 이르게 된 것도 미국의 타운홀 미팅 같은 토론의 전통이 백지상태이기 때문이다. 여론의 관심이 덜한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는 토호 이너서클의 야합과 정치적 거래가 일상화되고, 정작 지방자치의 주인공이어야 할 지역민들은 아예 관심을 끄거나 구경꾼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정치 콘텐츠의 유통과 토론의 활성화, 그리고 정치 리더십의 창출은 모두 연관되는 문제들이다. 그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진성당원의 존재이다. 한국처럼 토론의 전통이 약한 조건에서는 최소한의 정치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한 시민들끼리 토론을 조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시민들이 바로 당원, 그 중에서도 진성당원들이다.

그냥 당원이 아니라 굳이 진성당원이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나라 정당에는 정치철학과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의미의 당원이 상대적으로 희귀하기 때문이다. 중앙당이 주기적으로 당원 배가 운동을 벌이면 지역의 당협위원장 등은 정당의 정치철학에 대한 이해도 공감도 거의 없는 주변 지인들에게 읍소해서 입당 원서를 받아낸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다.

그 중에는 자신이 당원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거나, 이중 삼중으로 당적을 보유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페이퍼 당원들을 대상으로는 콘텐츠의 유통도, 토론의 조직화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성당원을 만들 수 있을까? 그 비결(?)은 서글플 정도로 간단하다. 당원들에게 월 1만원 이상의 당비를 받고, 최소한의 당원 정체성 교육을 하며 이런 조건을 충족한 당원들에게 주요 공직선거의 공천권과 주요 당직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주면 된다. 자격을 갖춘 당원들에게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결정권이 주어질 때 비로소 정치 토론과 정치 콘텐츠의 유통, 즉 진검승부가 이뤄진다. 그 결과가 정치 리더십의 창출이다.

우리나라 우파 정당은 엄밀한 의미에서 지지 대중을 가져본 적이 없다. 구경꾼과 응원단이 있었을 뿐이다. 이래서는 안된다. 구경꾼과 응원단들을 정당의 주인, 즉 진성당원으로 변화시키는 거대한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 작업을 해내지 못하면 당분간 우파 정당에는 집권의 희망이 없다.

이런 변화의 필요성을 말하면 “그런 엄청난 변화는 집권 이후에나 시도해볼 수 있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혹은 “일반 유권자들은 정당 내부에서 공천을 어떤 식으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런 혁신적인 변화 없이는 우파의 집권 자체도 불가능하며, 집권한다 해도 좌파에게 정국 주도권을 뺏기고 질질 끌려다니게 된다. 그리고 공천의 원칙이 투명하고 공정해지지 못하면 유권자들을 설득할만한 후보를 만들어낼 수도 없다.

이 변화를 현실화하는 데에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이 장벽을 돌파하는 데에 우리나라 정당 정치의 정상화와 우파의 부활, 나아가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려 있다.

주동식 지역평등시민연대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