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이후 신당 창당의 의미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는 작업 반드시 필요
신당이 우파의 상징자산을 기존 보수정당으로부터 뺏어올 수 있을까?...No!
상징자산 대신 강령과 정치 콘텐츠를 급조할 수 있을까?...No!
신당 추진세력의 안이한 정세 인식도 문제...총선 이후 좌파가 대한민국 권력 99% 장악
지금 진지전에 착수해야 한다고?...지금의 우파는 상황 달라
우파의 사활적 과제는 우파에 들어오지 못한 새로운 지지 대중의 발견
상당수 아스팔트 우파 흡수했던 몇몇 우파 정당들, 지난 총선 어떤 성적표 받았나?
제1야당인 국민의힘 당원 및 지지층부터 각성 및 훈련시켜야
"우리에게는 남은 총알이 많지 않다...난사할 상황이 아니다"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지난 총선 이후 비제도권 우파, 즉 아스팔트 우파 진영의 신당 건설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보통 신당 논의는 총선이나 대선 등 정치적 대목(?)을 맞아 활발해졌다가 선거가 끝나면 잠잠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총선 이후의 신당 논의가 총선 이전에 비해 질과 양, 두 측면에서 더 강화된 느낌이다. 아무래도 21대 총선에서 우파 진영이 겪었던 충격적인 참패가 가장 일차적인 원인일 것이다. 총선의 결과를 이성적으로 수용할 수 없는 우파의 멘탈 붕괴라는 점에서는 부정선거 논란과 궤를 같이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신당 논의는 우파 진영에서 상당한 지적 권위와 신뢰성을 인정받는 분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런 점에서 이 신당 추진 움직임의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하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우선 정치적 상징자산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지만 필자는 몇 년 전부터 정치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상징자산이라는 개념을 동원하고 있다. 유권자들이 정당 등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것은 정강정책이나 주장 등을 논리적으로 학습 검증한 결과가 아니라, 그 정치세력이 추구하는 가치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 인물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라고 보는 개념이다.

우파 진영의 상징자산으로는 건국과 산업화, 경제개발, 6.25전쟁, 반공, 안보, 이승만, 박정희, 영남지역 등이 대표적이다. 좌파의 상징자산으로는 민주화, 남북대화, 5.18, 인권, 김대중, 노무현, 호남지역 등을 거론할 수 있다.

우파가 좌파와의 정치투쟁에서 패배해 권력을 뺏기고 철저하게 비주류로 전락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도 저 상징자산 투쟁에서 완패한 것을 들 수 있다. 우파가 비주류로 전락했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의 하나가 자신의 상징자산을 설명할 때 소요되는 시간이다. 주류세력의 상징자산을 소개할 때는 긴 설명이 필요 없지만, 비주류의 상징자산을 소개할 때는 그렇지 않다.

언제부터인가 민주화와 인권, 김대중과 노무현을 이야기하는 것이 건국과 산업화, 6.25와 이승만, 박정희의 가치를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용이해졌다. 이런 점에서 우파는 지금 상징자산 투쟁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상징자산을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자산의 축적 위에서 신중한 재정비와 리뉴얼이 필요하다.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런 경우에도 예외가 아니다. 참고로 필자는 대한민국 우파의 상징자산이 좌파의 그것에 비해 훨씬 우월하다고 본다. 소유권을 가진 자들이 게으르게 방치, 패키징과 재해석 등에 실패했을 뿐이다.

문제는 우파 상징자산의 소유권을 지금의 보수야당(국민의힘)이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소유권은 법적으로 등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유권자 대중이 누구를 그 상징자산의 소유권자로 인식하느냐가 관건이다. 아직까지는 보수야당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보는 유권자 대중이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신당이 우파의 상징자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가능하다 해도 어떤 방법으로 소유권을 뺏어올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고려한다면 우파의 정치적 혁신을 추구하는 세력들은 기존 보수정당의 외부가 아닌, 그 정당 내부에서 대립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선택일 것이라고 본다.

상징자산을 대신하는 무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강령과 정치 프로그램 등 콘텐츠이다. 하지만 위력적인 정치 콘텐츠를 만드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 상징자산 없이도 정치세력이 추구하는 가치를 대중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정치 콘텐츠라니? 어마어마한 과제이다.

적어도 현재 우파 정치세력들은 그런 콘텐츠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본다. 그런데 언제 그걸 다시 만드나? 기존의 상징자산을 리뉴얼하는 작업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 자원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 대한민국은 더욱 더 그렇게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대표적인 정치 콘텐츠가 강령이다. 강령은 정당이 집권해야 할 이유와 집권할 경우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가를 보여주는 로드맵 같은 것이다. 우파보다는 좌파가 강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좌파가 더 이념적이기 때문이다. 진보정당들은 강령의 내용을 결정하는 내부 토론에 몇 개월, 심하면 일 년 가량 소요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치열한 토론 등 산고의 결과 만들어진 강령은 공식 채택된 그날부로 캐비넷 안에 집어넣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신세가 된다. 진보 진영에서는 나름 잘 알려진 얘기이다. 그나마 강령 등 정치 콘텐츠를 중시해온 좌파가 이럴 지경이면 우파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정당 구성원들의 인식 부족 등 다양한 원인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역시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그 강령이 우리 현실이 요구하는 과제를 정확히 꿰뚫어내지 못한 탓이라고 봐야 한다.

외국의 정치학 이론을 그대로 이식한 문제의식으로는 한국의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고, 그런 강령은 실제 정치투쟁 등 실천의 무기가 될 수도 없다. 정치적 장식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국 정당의 강령이 만드는 수고에 비해 실제로는 아무 효용도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한국 정당들의 강령이 현실 정합성을 갖지 못하는 것은 결국 한국의 지성들이 개념 설계(conceptual design)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강령 작업을 누가 하건 그것은 그 사회의 가장 뛰어난 지적 역량과 정신의 반영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당 강령의 현실 정합성 부재는 한국 지성들의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대한민국은 해외 선진국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지적 모델을 들여와 거기에 인력과 자금, 시간 등 우리의 자원만 쏟아붓는 방식으로 성장해왔다.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개발연대의 성과가 그런 방식으로 일구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의 문제는 해외 모델을 도입해 적용하는 것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 우리만의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새로운 해결방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를 위해 개념 설계(conceptual design)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지성계에는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 해외의 모델을 적용하는 경험만 쌓아왔기 때문에 how라는 질문만 있었고, why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갖고 씨름해본 경험이 적은 것이다.

이런 점을 따져보면 새로운 정치 콘텐츠로 상징자산을 대체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왕에 존재했던 상징자산을 새롭게 정비해서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것에도 실패한 우파의 능력으로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 즉 강령 등으로 승부를 거는 것이 과연 현실성이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이 신당 추진세력의 안이한 정세 인식이다. 지금 대한민국 상황은 좌파가 주류가 되고, 우파가 비주류가 됐다는 설명만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권력 99%는 좌파의 손에 들어가 있다. 총선 전에는 그나마 좌파가 95% 정도 권력을 장악했다고 봤지만, 지금은 좌파가 99% 어쩌면 99.99%의 권력을 장악했다고 볼 수도 있다.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하나의 예만 들어보자. 문재인 정권의 코로나 대응에서 가장 집중적인 공격 대상, 즉 공공의 적으로 떠오른 것이 개신교회이다.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부인하는 예배 제한, 심지어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목소리는 듣기 힘들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개신교계가 이렇게 약자의 위치에 처한 적이 있었던가? 앞으로 코로나가 수습된다 해도 교계와 정부의 역학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좌파는 20대 총선 이후 무려 4번에 걸친 전국 규모의 선거에서 연승했고, 우파와의 격차도 더 크게 벌려왔다. 행정부와 지방권력, 법조계, 언론계, 학계, 문화계, 시민단체까지 좌파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우파 등 반정부세력이 구사할 수 있는 무기는 극히 제한적이다. 일부 우파 지식인은 과거 좌파가 그랬던 것처럼 우파 지식인과 활동가들이 광범위한 영역의 풀뿌리에 근거를 마련하는 이른바 진지전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명제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그다지 적절한 조언이라고 할 수 없다.

좌파가 광범위한 진지전을 전개하고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결정적으로 그들이 1987년 체제의 정치적 승리자였기 때문이다. 좌파가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파는 행정부와 재계 등 실물권력을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합법과 비합법의 영역을 오가며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좌파의 풀뿌리 활동, 즉 진지전을 끝내 격퇴할 수 없었다.

지금의 우파는 상황이 다르다. 우파 시민단체나 종교계 등의 활동이 유지되는 것은 그것이 좌파에게 별 위협이 되지 못하거나, 또는 좌파 정권의 정국 운영에 나름 유용한 요소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정말 우파의 활동이 좌파 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면 한순간에 타격해 뿌리를 뽑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후까지 좌파의 공격에 대응해 싸울 수 있는 진지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정이 유지되는 한 좌파들이 함부로 무너뜨릴 수 없는 기구들이 그런 진지이다. 상당수 현역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등에 기반 조직을 가진 정당이 대표적이다. 지금 그런 진지를 밑바닥부터 새로 만들겠다고 나서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정당 조직과 정치자산을 활용하는 방안이 보다 현실적이다.

마지막으로 지지 대중의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신당을 만들 경우 그 지지 기반은 당분간 우파 지식인이나 활동가 등 이른바 선진대중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분들도 우파의 소중한 자산이다. 하지만 지금 우파의 사활적 과제는 그동안 우파의 활동 영역에 들어오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지지 대중의 발견과 그들의 조직화이다.

상당수 아스팔트 우파들을 당원으로 흡수했던 몇몇 우파 정당들이 지난 총선에서 어떤 성적표를 받았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지지 대중의 조직화라는 관점에서 우파는 아직 첫 발걸음도 떼지 못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우파가 가장 먼저 정치적으로 각성 및 훈련시키고 조직화해야 할 대중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당원 및 지지층이다. 이들은 여전히 응원단이나 치어리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오히려 상당수가 구경꾼이나 야유꾼으로 떨어져가고 있다. 이들을 제대로 된 당원으로 훈련시키지 못한다면 우파 정치세력은 당분간 집권의 희망이 없다. 우파에게 집권의 희망이 사라지면 대한민국의 명운도 위태롭다.

제대로 된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는 좌우를 막론하고 한국 사회의 현실을 바꿔보려는 모든 활동가들의 공통된 희망이다. 보수 제1야당이 유례없는 선거 참패에 이어 우파 정치세력의 정체성마저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처럼 비춰지는 상황에서 신당 창당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한다. 상황이 엄중하고 절망적일수록 우리는 선택과 행동을 서두르기보다 오히려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최근 신당 창당이란 주제를 놓고 의견을 주고받았던 어떤 정치인의 발언이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남은 총알이 많지 않다. 어쩌면 딱 한 발만 남았을 수도 있다. 신중하고 정확하게 사용해야 한다. 수백 발 총알이라도 남은 것처럼 난사할 상황은 아니다.”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필자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조직이기주의의 소산처럼 비춰질 수도 있다. 다만 좌파 출신으로서 우파 정당의 간판을 달고 당선 가능성 제로라고 평가받는 지역에서 출마를 강행한 배경을 봐서라도 이런 발언을 하는 최소한의 선의는 인정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동식 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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