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방문 중 하루에 국무회의 상정·국회송부·개헌안 공고 전자결재 승인
오후 3시쯤 靑정무수석·법제처장 승인된 개헌안 들고 국회 제출
野 모두 내용·절차 부정적…'개헌저지선 이상' 한국당 장외투쟁 예고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대통령 헌법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아랍에미리트(UAE) 방문 중이어서 국무회의가 개헌안을 상정·국회 송부·공고하는 절차를 전자결재로 '원격 처리'했다. 이날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4년 1차 연임제와 수도 관련조항 명시, 지방분권국가 지향, 토지공개념 강화를 비롯한 국가의 경제 개입주의 강화, 선거연령 제한 완화 등을 골자로 한다.

이번 개헌안은 '전문'(前文)과 '11개장 137조', '부칙'으로 구성돼 있다. 만들어지기까지 헌법 제89조 규정대로 '국무회의 심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통령비서실이 주도했다. 대(對)국민 발표 작업도 국무위원인 법무부 장관이 주도하지 않고 청와대의 '편의상 직제'로 존재하는 민정수석비서관이 앞장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개헌안 발의를 위한 국무회의에 상정되기 하루 전(25일) 청와대가 3개 조항을 수정 발의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새로운 '독단'이자 '졸속 개헌' 논란으로 떠오르고 있다.

앞서 문 대통령은 25일 '18세 이상의 모든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를 '모든 국민은 선거권을 가진다 (중략) 18세 이상 국민의 선거권을 보장한다' 등으로 수정한 조항을 보고받고 이를 재가했다. 단순히 그동안 여권의 관심사였던 선거연령 하향조치뿐 아니라, 나아가 '연령 불문 원칙적인 선거권 보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행 시기를 다룬 부칙 1조 1항도 논란 소지가 있어 수정했다. 청와대는 '이 헌법은 공포한 날부터 시행한다. 다만,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 없이 실현될 수 없는 규정은 그 법률이 시행되는 때부터 시행한다'는 단서 조항에 따라 시행일이 기약없이 지연될 수 있다고 보고, '법률의 제정 또는 개정 없이 실현될 수 없는 규정은 그 법률이 시행되는 때부터 시행하되, 늦어도 2020년 5월 30일에는 시행한다'로 시한을 명시한 것이다. 

이와 함께 개정안 제35조 제2항의 '모든 국민은 장애·질병·노령·실업·빈곤 등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적정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조항은 '모든 국민은 장애·질병·노령·실업·빈곤 등으로 초래되는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적정한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는 것으로 고쳐 헌법상 사회보장 대상의 폭을 크게 넓힌 격이 됐다.

청와대는 앞서 발의를 나흘 앞둔 지난 22일에는 '당일치기'로 개헌안을 국회와 언론 등에 공개하고 법제처에 심의를 맡겨 뒤늦게 형식적 요건을 맞추려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날 국무회의도 개헌안 첫 '심의'와 '발의'를 동시에 진행해 졸속 절차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대통령 개헌안은 이날 오전 10시7분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임시 국무회의에 안건으로 상정된 지 45분도 안 돼 의결됐다.  

이낙연 총리는 모친상을 당했지만, 예정대로 대통령 개헌안을 상정하고 의결했다. 국무회의에서 김외숙 법제처장은 개헌안 제안 설명을 했고, 위원들은 이를 심의, 의결하면서 UAE 방문 중인 문 대통령의 재가만 남겨 놓게 됐다.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안건으로 올라온 개헌안을 심의한 뒤 의결하면서 이를 승인하는 의미의 서명인 부서(副署)를 한다.

국무회의 의결 이후,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과 김 법제처장이 이날 오후 3시쯤 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승인한 개헌안을 직접 들고 국회를 방문해 입법차장에게 제출했다. 국회는 개헌안 공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의결해야 한다'는 개헌 절차에 따라 오는 5월24일까지 개헌안을 표결에 부쳐야 한다. 법제처장이 행정안전부로 개헌안을 넘겨 관보에 게재하는 절차도 병행된다.

그러나 이미 개헌 저지선을 넘은 116석의 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이번 개헌을 '사회주의 체제변혁 개헌' '지방선거용 관제(官製) 개헌'으로 규정 반대하고 있으며, 시한을 못박은 대통령과 비서실 주도 개헌에 모든 야당이 부정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어 여야 합의도 요원해 보인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대통령 개헌안 발의 강행 시 장외투쟁을 검토하겠다고 예고했고, 김성태 원내대표도 야 4당 공동 의원총회를 열자며 대통령 개헌안 저지를 위한 야권 연대를 제안한 바 있다. 

다만 바른미래당은 야권 연대 관련 입장을 유보했고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한국당과 연대를 부정하고 있다. 야당끼리도 이념과 선거 유불리 등에 따라 '개헌 셈법'이 서로 다른 탓에 개헌 저지 연대체가 출범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번 개헌 시도까지 '촛불'을 수사로 달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26일 오전(현지시간) UAE 아부다비 주메이라호텔 내 브리핑룸에서 대독한 개헌 입장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야당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개헌안을 발의하는지 의하해하실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네 가지"라며 "개헌은 헌법파괴와 국정농단에 맞서 나라다운 나라를 외쳤던 촛불광장의 민심을 헌법적으로 구현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6월 지방선거 동시투표 개헌은 많은 국민이 국민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회이며 국민 세금을 아끼는 길"이라며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하면 다음부터는 대선과 지방선거 시기를 일치시킬 수 있다"고 비용 문제를 논거로 댔다. 그러나 여야 합의 없이 독자 개헌안을 발의해, 수정도 불가능한 가운데 정치권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대통령 권력분산 개헌을 거부한 가운데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국민과 지방과 국회에 내어놓을 뿐"이라며 "개헌에 의해 저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더 나은 헌법, 더 나은 민주주의, 더 나은 정치를 위해 개헌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저에게 돌아오는 이익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지만, 논란의 소지가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일례로 개헌안 70조 3항은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 통일을 위하여 성실히 노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현행헌법 제66조 3항('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보다 통일의 의무를 약화시키는 속성이 있다. 국가적으로 지향하는 통일의 성격은 현행헌법·개헌안 제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바탕을 둔 평화 통일 정책을 수립하여 추진한다)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바탕을 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집권 이후 "북한 정권의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거나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서로 피해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발언한 바 있다. 만약 개헌이 될 경우 '헌법상 통일의 의무에 반한다'는 위헌 시비로부터 문 대통령은 훨씬 자유로워지는 이점이 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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