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신화 '한강의 기적'은 국민의 피와 땀, 지도자의 지도력, 한미동맹과 같은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낸 결과다. 특히 한국 기업인들의 개척 도전 정신은 모든 한국인의 DNA에 녹아 있다. 쉬운 길에 안주하지 않고 넓은 세계로 계속해서 나아가야 한다.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

경제학자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경험과 기억이 경제를 설명할 수 있다. 지난 10월 25일 작고한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통해 우리는 새삼 놀라는 것이 많다.

필자가 대학생이던 1960년대에 일본의 경제식민지가 된다고 해서 한일회담을 반대하는 데모에 참여했었다. 한국이 70~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룬 다음에도 삼성이 소니(SONY)를 능가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한국 대기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산업일꾼들의 노력과 희생을 저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강의 기적은 20세기의 신화다. 독일이나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폭삭 망했어도 이미 제조업 강국의 경험을 가진 나라였다. 제2차대전 후 신생국 중 대한민국보다 못살던 나라는 거의 없었다. 가까운 동남아시아와 비교해보면 너무 잘 보인다. 동남아 국가들은 자원이 풍부해서 대부분 한국보다 서너 배 잘 살았다. 필리핀, 인도네시아가 그랬고, 말레이시아도 그러했다.

1970년대 외교 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를 매우 높게 평가하였다. 고무, 주석과 같은 자원이 풍부하고, 특히 영국 식민통치의 영향으로 준법정신이 높은 사회였다. 1969년 5월 인종 소요 이후 부미푸트라(말레이계 우대) 정책을 통해 중국계와 균형을 추구하면서 의회민주주의도 발전시켰다. 한국의 일상 거래에서 영수증 없던 시기에 이미 말레이시아는 택시 요금도 영수증을 발급할 정도로 투명한 사회였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게으르지도 않았다. 그런 말레이시아를 한국이 추월하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한국은 말레이시아를 앞서게 되었다. 1982년에는 마하티르 총리가 ‘동방정책(Look East)’을 선포하고 일본과 한국을 배우자고 하였다. 4.19 학생혁명, 5.16 군사쿠데타, 80년 5월의 봄과 광주사태와 같은 사회적 격변을 겪던 한국이 어떻게 말레이시아 같은 모범적 국가가 선망하는 대상이 되었는가? 불리한 여건의 한국이 어떻게 동남아 국가들을 앞질러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나? 물론 국민의 피와 땀, 지도자의 지도력, 한미동맹과 같은 요인들이 함께 작용하여 이루어낸 결과다.

그러나 특기할만한 요인은 대기업 DNA의 차이에 있다고 본다. 화교(華僑) 경제권에 속한 말레이시아와 한국 사이에는 대기업의 투자 심리에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중국 국무원의 집계로는 전 세계 화교가 8700만 명이다. 그 9할 가까이 동남아에 거주하고 있다. 차이나타운 없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화교들의 생존능력과 결속력은 대단하다. 거의 모든 동남아 국가의 경제권은 화교들이 장악하고 있다. 동남아 10대 부자 중 9명이 화교 기업인이다. 화교 기업들이 동남아 주식시장 상장사의 7할을 차지한다.

태국 인구 6천5백만 명 중 1천만 명의 화교가 태국경제의 9할을 장악하고 있다. 태국 부자 7명 중 4명이 화교다. 인도네시아 2억 6천만 명 인구 중 3%인 화교가 인도네시아 경제를 좌지우지한다. 인도네시아 20대 기업 중 18개가 화교 기업이다. 1965년과 98년에는 화교들과의 인종갈등이 폭동으로 폭발하여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필리핀 인구 9천만 명 중 화교가 1%를 조금 넘지만, 현지 경제의 7할을 장악하고 있다. 베트남은 중국과 국경을 같이 하여 역사적 갈등 관계가 강하다. 베트남전 당시 사이공 중심의 화교의 경제권에 대한 반감이 확대되었고, 1979년 베트남-중국 전쟁을 거치면서 중국계 베트남 난민 수십만 명이 중국으로 피난하였다. 그 난민을 보호하기 위해 중국은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하였다.

영국 식민지였던 말라야연방은 1963년 독립하였으나 말레이계와 중국계 간의 갈등 속에서 리콴유의 주도하에 중국계를 중심으로 1965년 말레이연방에서 탈퇴하여 반도 남쪽 끝에 싱가포르로 독립하였다. 인구 중 77%가 화교다.

말레이시아 인구는 말레이계 67%, 중국계 25%, 인도계 7%로 되었으나, 중국계가 여전히 전문적 능력이나 경제력이 우월하여 말레이 경제의 4할 이상을 차지하였다. 말레이시아 10대 갑부 중 8명이 화교다. 말레이시아의 호텔왕, 설탕왕으로 불리는 곽씨형제그룹을 운영하는 로버트 곽은 2006년부터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마하티르 총리가 중국계는 우수한 유전인자를 타고났다고 평가하기까지 하였다.

하여튼 중국계 재벌들은 동남아 경제를 좌지우지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소수자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고, 투자 면에서도 매우 보수적이다. 정치 사회적 격변에 대비하여 귀금속과 같은 재화나 서비스업을 선호하게 된다. 회임(懷妊) 기간이 긴 장치(裝置)산업은 피하게 된다. 전 세계적 유랑민족인 유대인과 흡사하다. 이 점에서 한국의 대기업의 DNA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

한국의 정주영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산업을 일으켰다. 감히 엄두도 못 낼 자동차 생산, 선박건조와 같은 거대 장치산업에 기업의 사활을 걸고 덤벼들었다. 끝내 성공시켰다. 이병철, 이건희도 기업의 거의 전 재산을 쏟아 넣어 반도체 산업을 일으켰다. 훨씬 앞서가던 일본의 IT 전자기업들을 추월해버렸다. 대우, LG, SK, 두산, 효성 등 거의 모든 대기업이 장치산업을 일으켰다. 그 결과 대한민국이 일본, 독일과 경쟁하는 전 세계적 제조업 강국의 반열에 올라선 것이다.

말레이시아 같은 동남아의 모범국가를 추월하여 대한민국의 경제가 크게 도약한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의 대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도전했던 거대 장치산업들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말레이시아의 화교들이 서비스산업 중심으로 일궈낸 결과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그 엄청난 부가가치를 5천만 국민이 나누어 1인당 소득 3만 달러가 넘게 되었다. 말레이시아는 아직도 1만 2천 달러에 머물고 있다.

한때 앞서기도 했던 대만이 한국을 부러워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대만은 중소기업 중심의 산업정책을 택했다. 일본 대기업의 하청기업 역할에 만족하여 잘 나갔으나, 한국과 같은 거대 장치산업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한국보다 불리하게 된 것을 크게 아쉬워한다.

많은 젊은이는 대한민국이 처음부터 잘 살던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역사와 근원을 확실히 파악하면 앞으로 닥쳐올 위기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인들의 개척 도전 정신은 모든 한국인의 DNA에 녹아 있다. 쉬운 길에 안주하지 않고 넓은 세계로 나가면 큰 꿈을 이룰 것이다.

김석우 객원 칼럼니스트(21세기 국가발전연구원장, 前 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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