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에서 갈등을 수습하는 모습 도무지 보기 어려워
좌파는 좀 달라...압도적 차로 MB에게 정권 내줬어도 곧장 '광우병 파동' 만들어내
세력 투쟁 마친 좌파의 위계질서 배후엔 北김씨조선 정권과 '민주기지론' 있어
좌파의 일사불란한 단일 대오와 조직력, 평양 정권의 영향력 고려않곤 이해 어려워
그렇다면 우파는 이제 어떻게 해야할까?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우리 사회에서는 ‘좌파는 분열로 망하고, 우파는 부패로 망한다’는 명제가 오랫동안 상식처럼 통용돼 왔다. 하지만, 이 명제는 현실과 다르다.

좌파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온갖 갈등과 분열을 노정하면서도 결국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파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한번 이견이 드러나면 도무지 갈등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갈등을 수습해 단일 대오를 형성하기는커녕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넷이 다시 열이나 스물로 가지치기를 하는 모습이 우파 진영 내부에 완전히 자리잡았다.

당장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우파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인 대통령 탄핵을 놓고 탄핵 수용파와 탄핵 거부파로 나뉘었고, 이 갈등은 수습은커녕 점점 더 복잡다기한 형태로 분화되고 있다. 21대 총선 결과의 수용을 놓고 제기된 선거 부정론도 우파 사이에서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갈등과 적대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다시 미국 대선 결과를 놓고도 똑같은 양상이 되풀이되는 상황이다.

좌파는 좀 다르다. 지난 2007년 치러진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여당이던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530만 표, 22.6%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승리했다. 단순 득표수로 보자면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홍준표 후보를 557만 표 차이로 누른 것이 가장 큰 득표 차이지만, 득표율로 보자면 이명박 후보의 승리가 가장 압도적이었다.

이렇게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시작한 지 겨우 3개월만인 2008년 5월에 광우병 파동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당시 뇌송송 구멍탁 운운하던 광우병 괴담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지금은 거의 없다. 하지만, 당시 광우병 괴담은 막 출범한 이명박 정권을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고,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운동권 가요인 ‘아침이슬’을 불렀다는 쇼맨십으로 민심 달래기에 나서야 했다.

당시 좌파 진영이 광우병 괴담을 대중들에게 과학적 사실로 각인시키고 엄청난 인파가 길거리에 쏟아져 나오게 만든 기획력과 동원력은 2016년 촛불 시위에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역할을 나눠 행사 기획과 동원, 홍보 등을 체계적으로 수행했고, 그 조직과 자금 규모는 몇몇 개인이나 시민단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분열과는 거리가 멀고 부패로 망한다는 우파는 왜 이렇게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는 지리멸렬한 모습이고, 분열로 망한다던 좌파는 잘 조직된 군대처럼, 철통같은 규율을 연상시키는 일사불란한 모습으로 강철 대오의 위력을 과시하는 것일까?

이런 현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고, 하루이틀 사이에 만들어진 결과도 아니다. 이런 현상의 배후에는 거대한 힘과 영향력을 가진 정치적 존재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 힘과 영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3가지 요소가 필수적이다. 즉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인정받고 떠받들어지는 정치적 권위 △원하는 목표를 실제로 달성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대규모 조직 △조직을 운영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력 등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을 위협하고 심지어 현직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존재라면 저런 3가지 요소를 반드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영향력을 한두 해 정도가 아니라 매우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한반도에서 이런 요소를 모두 갖춘 존재는 딱 하나, 바로 북한 김씨조선 정권이 유일하다.

북한은 1945년 해방 직후부터 남한 지역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에서 지도부 역할을 하겠다는 원칙을 공공연하게 표명해왔다. 1945년 12월 17일 김일성이 ‘북한을 통일된 민주주의적 독립국가를 위한 강력한 민주기지로 전변시킬 것을 선언’한 이른바 민주기지론이 그것이다.

민주기지론은 북한의 대남혁명의 기본 전략이 되어왔고 이후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 전략으로 발전하고, 3대 혁명역량 강화 노선의 기초가 되었다. 3대 혁명역량이란 북한 자체의 혁명기지역량, 남한혁명역량, 그리고 국제적 혁명지원역량 등을 말한다. 민주기지론은 6.25 도발 등 무력통일론으로 대변됐다가 이후 연방제를 내세운 통일론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밟았다. 하지만, 그 기본노선은 정세 변화에 맞춰 표현을 달리했을 뿐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민주기지론이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의 기본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내부 좌파들의 운동 방식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특히 북한과 김일성 주체사상 추종을 자신들의 정치적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NL주사파의 행보는 무엇보다 뚜렷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87년 개헌투쟁 국면에서 드러난 NL주사파의 행보이다.

당시 NL주사파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투쟁 목표로 내세웠다. 이 노선은 전두환정권과 대립하던 김대중과 김영삼 등 보수야권의 정치적 요구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좌초된 이후 대통령 직선제가 보수야권과 국민들의 대중적 요구라는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학생운동권이나 재야 등 제도 정치권과 구별되는 좌파 진영이 보수야권의 주도권을 인정하는 정치노선을 선택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이런 상식 파괴가 가능했던 것이 바로 민주기지론의 영향이었다. 민주기지론이 갖는 정치적 함의는 ‘한반도 내에서 혁명 지도부는 평양정권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즉, 김일성 정권만이 유일한 혁명 지도부이고 박헌영의 남로당 등 남한 내부의 혁명역량은 평양정권의 지도를 받는 하부 단위라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남한 내부의 좌파 운동가들은 독자적인 혁명 정당을 건설할 수 없다. 남한 내부의 혁명가 조직은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도를 받는 하부 단위이기 때문이다. 만일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혁명 지도부를 건설한다면 이는 분파주의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논리는 자연스럽게 ‘남한의 혁명 세력은 보수 야당과의 협력을 대전제로 활동해야 한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독자적인 혁명정당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보수 야당의 반체제 활동의 외피를 빌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NL주사파의 이런 노선을 사회구성체의 관점에서 설명한 것이 이른바 식민지 반봉건((植民地半封建) 사회론이다. 대한민국이 정치 경제적으로 미국의 식민지이며, 사회적으로 봉건적 요소가 극복되지 않았다는 논리이다.

물론 남한 좌파 운동권 내부에서 NL주사파의 목소리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7년 당시에도 NL주사파의 이런 노선에 반대하는 좌파 운동권은 있었다. 흔히 PD 계열과 혼동되곤 하는 ND(National Democracy Revolution) 계열이 그들이다. 이들은 직선제 개헌 노선에 반대하는, 제헌의회 소집 투쟁을 내세웠다. ‘파쇼 하의 개헌 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라는 슬로건이 그들의 주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제헌의회 소집 투쟁의 명분으로 ‘직선제 개헌은 개량주의적이고 타협적인 보수 야당 세력에게 민중 투쟁의 성과를 고스란히 넘겨주게 된다’는 것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런 명분의 밑바탕에는 ‘남한 즉 대한민국은 북한과는 완전히 별개의 사회 발전단계와 자체 모순을 갖고 있으며, 당연히 이를 해결하는 남한만의 독자적인 혁명정당이 필요하다’는 사회구성체 분석 논리가 깔려 있었다.

실제로 제헌의회 그룹에 이은 노해동(노동자해방투쟁동맹) 그리고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그룹 내에서는 보수우파를 연상시킬 정도의 반북 정서가 강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들 그룹은 개헌투쟁 국면의 주도권을 NL주사파에게 뺏긴 후 사노맹까지 해체되면서 거의 NL주사파 그룹에 흡수되거나 핵심 활동가들이 활동을 포기한 상태이다.

NL주사파 그룹이야말로 1980년대를 관통했던 반체제 운동의 승리자였고, 그 정치적 과실을 거의 독점했다. 1987년 6공화국의 성립은 NL주사파 그룹의 대표적인 정치적 과실이다. 우파는 6.29 선언이라는 정치공학 카드로 정권을 뺏기는 사태는 막았지만, 정치적 정당성을 상실한 채로 좌파의 주도권에 휘둘리는 신세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을 위협했던 광우병 사태나 2016년 촛불 시위에 이은 탄핵 등은 모두 이 좌파 주도권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NL좌파는 1987년 당시 보수 야당 즉 민주당 계열의 깃발 아래로 들어갔지만, 결국 보수 야당의 내부를 잠식해 들어가 이 당의 주도권을 차지했다. 사랑방 손님이 안방을 차지한 셈이다. 이는 평양 정권의 민주기지론을 바탕에 깐 좌파 진영의 통일전선전술의 승리이기도 하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은 NL주사파 진영에게 문호를 열어 이들이 제도권 내부에 안착하는 결정적 계기를 부여했다.

결국 현재 좌파 진영이 보여주는 일사불란한 단일 대오와 조직력은 평양 정권의 영향력과 리더십에 대한 고려 없이는 정확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민주기지론은 한반도에서 무려 70여년 동안 살아남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정치노선이라고 봐야 한다. 마찬가지 관점에서 우파 진영의 끝없는 분열과 갈등, 지리멸렬한 조직 상태는 이러한 전략 단위 즉 정당의 부재라는 시각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우파 진영의 고질을 해결하는 방안도 정당의 기능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전략단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당을 어떻게 찾아내고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해둬야 할 것이 있다. 이런 전략단위 역할을 할 수 있는 조직 즉 정당은 하루아침에 만들 수 없다는 점이다. 단순하게 창당 과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정당 조직 전문가에게 맡기면 창당 자체는 몇 주 만에도 가능하다. 과거 김영삼과 김대중, 김종필 등 이른바 3김씨가 순식간에 선관위에 뚝딱 정당 등록을 하곤 했던 것이 그 사례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창당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정치세력에게 그만한 정치적 상징자산이 축적돼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해방정국 당시의 한민당에서부터 몇십 년에 걸쳐 쌓아올린 정치적 상징자산이 있었고, 김종필 역시 5.16 이후 20여년 이상 축적해온 산업화 세력이라는 기반이 있었다. 이런 상징자산은 결코 단기간에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파의 전략단위 건설에서도 이런 상징자산의 문제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결국 건국과 산업화라는 정치적 상징자산을 유산으로 받은 국민의힘을 기반으로 전략단위를 건설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문제는 특정 몇몇 정치인이나 정파의 이해관계를 넘어선다.

국민의힘은 우파 성향의 시민들을 가장 폭넓게 자신의 자장 안에 포괄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우파 시민들은 우파 정치세력과의 결합은 매우 느슨하다. 우파 대중이 우파 정당의 적극적인 지지자 즉 정치적 군대가 아니라, 단순한 구경꾼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우파의 정치적 부활은 이들을 어떻게 훈련시키고 조직하고 동원하여 본격적인 정치투쟁에 나서게 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그 출발점은 이들 우파 대중을 진성당원으로 변화시키는 데 있다. 월 1만원 이상의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들에게 국회의원과 지방선거 나아가 대통령 등 공직 선거의 공천권을 부여해야 한다. 당대표 선출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런 선출 과정에 정당의 주인인 당원 자격이 없는 사람들의 개입 즉 여론조사 반영 등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당원들 사이에서 공천을 둘러싼 토론이 전개되기 시작하고, 이것이 정치적 훈련과 조직화의 출발이 된다. 그리고, 이들 진성당원에게 자신만의 정치적 메시지를 제기하고 설득해 지지를 얻어내는 정치인이 바로 우파의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우파뿐만 아니라 정당정치 자체의 거대한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좌파들 역시 사실상 정당정치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우파가 본격적으로 진성당원제를 도입했을 때의 충격은 어마어마할 수밖에 없다. 좌파 정치는 의사결정의 불투명성과 왜곡 조작이 특징인 시민단체 정치를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파가 우파와의 정치투쟁에서 우세를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그들의 정치이념이다. 우파에 비해서 그들의 정치이념은 비교적 정교한 세계관과 철학에 근거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도그마의 완성도가 높은 것이다. 이들의 이념은 철저하게 정치투쟁에 특화돼 있다. 거기에 비해서 우파는 거의 무장해제 상태로 이들의 날선 공격에 노출돼 왔다.

우파의 이런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근본적인 동력도 진성당원제에서 나올 수 있다. 거대한 상징자산에 근거한 정치토론과 훈련, 조직화가 그 답이다. 이런 해답은 오직 건국과 산업화라는 정치 유산을 이어받은 국민의힘의 혁신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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