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식 칼럼] 광주와 호남은 5.18 악법을 거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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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0.12.16 08:15:22
  • 최종수정 2020.12.16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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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유공자 예우 및 단체 설립법'(예우법) 주목해야
유공자의 자손 대대로 5.18 빌미로 한 특권 상속하게 될 것
'5.18 3법' 추진 배경에는 경제적 이해관계 놓여있어
호남의 심각한 반기업 반시장 정서...지자체 재정자립도 모두 하위권
이런 호남의 분위기가 대한민국 전체에 미치는 영향
나는 광주와 호남을 위해 '5.18 3법' 통과를 애통해한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

1. 민주당 정권과 5월 단체들의 거래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이하 특별법), 5·18진상규명 특별법, 5·18유공자 예우 및 단체 설립법(이하 예우법) 등 이른바 ‘5·18 3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가운데 가장 뜨거운 관심과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인 것이 5·18특별법 개정안이었다.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 비방, 왜곡, 날조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하지만, 5.18 관계자들에게 훨씬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법안이 예우법이다. 예우법 개정안은 유족회, 부상자회, 구속자회 등 3개 5월 단체를 통합한 공법단체를 만들어 국가가 지원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5.18 유공자에 대한 지원은 국가유공자법이 아닌 특별법에 근거해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는 개인적인 보상 차원이었다. 예우법이 통과되면서 이제 5.18단체들도 재향군인회나 상이군경회처럼 공법단체를 만들어 수익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회사를 만들어 운영할 수도 있다.

문제는 5.18공법단체들이 운영할 사업의 성격이다. 광주와 광주시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배타적인 비즈니스일 수밖에 없다. 광주시민의 이름을 빌려 광주시와 국가의 예산을 마치 세금처럼 징수하는 것이다. 광주와 5.18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되, 실제로는 5.18단체의 구성원들이 이익을 취한다. 명분은 공공의 것을 빌리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모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특권이 영속화된다는 점이다. 현재 5.18 유공자의 자녀들이 받는 취업 시 가산점 부여 등의 혜택은 상속이 불가능하다. 우리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고,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하지 않으며, 훈장 등의 영전은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5.18유공자의 직계 자녀 등에게 혜택을 주는 것은 이런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공법단체를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유공자의 자손 대대로 5.18을 빌미로 한 특권을 상속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5.18 3법 가운데 지금까지 논란의 중심에 섰던 것은 특별법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예우법이 온갖 잡음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만만치 않은 이권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5.18 단체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문제를 두고 분란이 발생하곤 했다.

5월 단체들이 첨예한 논란을 불사하면서 5.18 3법을 추진한 배경에는 이런 경제적 이해관계가 놓여있다. 5.18에 대한 부인, 비방, 왜곡, 날조에 무거운 법적 제재를 가하는 5.18특별법도 5월 단체들에 대한 비판을 차단하는 기능이 핵심이다. 5.18 관계자들의 사적 이익을 보장해주는 대가로 민주당이 5.18의 정치적 상징성을 독점해 장기 집권의 무기로 삼는 것이다. 민주당 정권과 5월 단체들의 검은 거래의 결과이다.

2. 호남의 반기업 반시장 정서

5.18은 광주와 호남의 대표적인 상징자산이었고, 이 상징자산은 호남의 경제적인 낙후에 대한 보상 수단으로 적극 활용됐다. 5.18은 1987년 체제 성립의 결정적인 동력이었고, 그 정치적 승리자인 호남에게 전리품으로서 각종 보상이 주어졌던 것이다.

광주형 일자리와 한전 본사의 나주 이전, 한전공대, 남원의 공공의대 등 호남에 대한 온갖 시혜성 사업들이 대표적이다. 농업 보조금도 마찬가지다. 호남의 정치적 전리품이라는 성격이 강하지만, 호남 보조금이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농업 비중이 높은 호남에게 주로 혜택이 가는 농업 보조금이라는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2020년 광역지자체의 재정자립도에서 호남 지역 지자체들은 모두 하위권에 몰려 있다. 광주광역시가 41.1%로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대전, 울산, 세종 등 광역시 가운데 꼴찌이며, 전북(30.1%)과 전남(28.1%)도 도 단위 지자체들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낮다는 것은 중앙정부에 대한 재정 의존도가 높다는 얘기이다. 다른 지방의 도움이 없으면 버티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업과 부자들이 내는 세금으로 먹고산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호남의 지자체와 주민들은 다른 지자체나 기업, 부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 최소한 미안하다는 심정 정도는 갖는 게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2019년 국세 수입 293조 원 가운데 24%인 72조 원이 법인세이다. 그리고 전체 법인세의 16%를 삼성전자가 냈다. 삼성그룹 전체의 법인세 비중은 25%에 이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호남의 지자체와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국세 지원액 중에서도 삼성그룹이 부담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호남 시민들은 삼성그룹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갖고 있을까?

이 문제를 특별히 조사한 자료를 본 적은 없지만, 광주가 고향인 필자의 개인적인 체험에서 보자면 전국 어느 곳보다 삼성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가 강한 곳이 호남일 것 같다.

김승환 전북교육감이 “삼성전자에 전북 지역 학생들을 취업시키지 말라”고 지시했던 사건이 상징적이다. 선출직 공무원인 교육감이 학생들의 직업 선택의 자유조차 부인하면서까지 대기업에 대한 적대감을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또 그런 교육감이 3번 연속 선거를 통해 뽑힌다는 사실이 지역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호남 사람은 뽑지도 말고, 뽑아도 중용하지 말라”고 했다던 소문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런 소문의 영향이라면 삼성 아닌 다른 기업에 대해서는 태도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호남의 반기업 정서는 예외가 없다. 법칙이 있다면, 대기업일수록 즉 시장에서 성공한 기업일수록 호남의 거부감은 커진다는 점이다. 그게 미국 기업일 경우 금상첨화다. 이런 현상에는 호남의 좌파 시민단체들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회원제 창고형 대형 할인점 업체인 코스트코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순천, 전주, 완주 등 호남의 대도시에서 코스트코 입점이 추진됐지만 지역 정치인들과 시민단체, 지자체의 반대로 결국 무산됐다. 2020년 들어 익산에 입점이 추진되고 있지만 이 지역 민주당 국회의원이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호남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는 코스트코 입점을 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나주혁신도시에 거주하게 된 외지 출신 주부들의 가장 큰 불만 가운데 하나가 “제대로 쇼핑할만한 곳이 없다”는 것이라고 한다. 나주혁신도시의 다운타운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만 붐빌 뿐, 금요일 저녁부터는 인적이 끊기는 것이 현실이다.

3. 공짜에 의지해 생존하는 사람들의 자기기만

좌파 시민단체들이 주도하는 반기업 반시장 정서는 결과적으로 호남의 발목을 옭아매고 있다. 기업들이 투자를 안하니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없으니 사람들이 떠난다. 고급 인력 그리고 젊은이들일수록 쉽게 떠난다.

그나마 남아있는 인재들은 기업 등 생산적인 일자리보다는 정치계나 시민단체 등 상징자산을 다루는 영역에 주로 진출한다. 그 대상은 주로 민주당과 좌파 성향의 단체일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지역의 좌편향 분위기가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기업들은 더욱더 호남 진출을 꺼리게 된다. 이런 악순환이 갈수록 심화된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추진되고, 한전 등도 옮겨왔지만 이런 사업들이 과연 기업의 자발적인 선택의 결과일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장은 정치 권력의 강요에 의해 호남에 끌려왔지만, 정권이 바뀌면 이들 사업은 허공에 뜰 가능성이 높다.

한전공대나 공공의대 등도 마찬가지다. 일종의 시한폭탄이다. 언젠가 이 폭탄이 터지면 그 피해는 호남 시민들이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된다. 민주당과 그 앞잡이 노릇을 한 호남의 정치인들, 시민단체 등은 전혀 책임지지 않으며, 질 수도 없다.

광주시민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주 듣는 얘기가 있다. “서울 사람들 거기서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죽어도 거기에서 못살겠더라. 숨막힐 것 같더라.” 그리고 이런 말씀도 하신다. “그래도 광주가 살기는 좋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심정은 충분히 짐작한다. 필자도 그렇게 느낄 때가 많다. 광주에 숙소를 두고 서울에 자주 올라가는 편이지만, 생활 속에서 느끼는 속도감은 광주와 서울이 비교 불가능하다. 서울 사람들은 훨씬 바쁘게, 호남 사람들 관점에서 보자면 각박하게 살아간다. 광주에 오면 훨씬 느긋해진다.

그런데, 여기에서 불쾌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광주의 저 느긋함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일까? 이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저 질문에 낙관적인 답변을 내놓을 수 없다. 광주의 느긋한 분위기는 열심히, 각박하게,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존은 가능한 구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호남의 정치적 전리품으로서 각종 보조금과 국고 지원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풍족하지는 않아도 굶거나 길거리에 내몰릴 염려는 없다. 호남 지식인들 특유의 안빈낙도, 유유자적, 자연친화적 정서의 근거가 이것이다. 일하지 않고도 외부에서 공짜로 주어지는 시혜에 의지해 살아가는 지식인들의 존재론적 자기기만의 결과이다.

4. 5.18 3법을 두고 호남을 애통해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호남의 이런 분위기가 대한민국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다. 과거 호남이 소수이자 마이너일 때에는 이런 분위기가 일부의 편향 정도로 가볍게 취급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대응이 불가능하다. 호남이 메이저가 되고, 권력을 쥐었기 때문이다.

이제 호남의 선택은 대한민국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대한민국이 호남화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결과가 대한민국의 번영과 발전이라면 얼마나 다행일까. 하지만, 적어도 문재인 정권의 행보를 보면 현실은 그런 기대와 정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여기에 대한 책임도 결국 호남이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결국 호남이 반기업 반시장 정서를 버리고, 기업과 시장의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변화는 항상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5.18 3법이 바로 그런 저항의 현실화이다. 호남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내적, 외적 요구를 거부하고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이다. 호남을 희생시키고, 5.18을 오염시키는 대가로 소수 매향노들이 일신의 영달과 정치적 입지를 얻는 것이다.

이 법들은 5.18이 가진 정치적 상징성과 명분을 결정적으로 훼손한다. 앞으로 광주의 시민단체들은 5.18의 신성불가침을 주장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5.18의 피값에 대해 부채의식을 갖고 있던 전국의 개혁 민주인사들이 광주와 5.18에 싸늘한 시선을 던지는 게 느껴지지 않는가? 양심과 사상, 언론, 출판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로 쓰이는 5.18이 어떻게 민주주의와 양심의 존중을 받을 수 있는가? 광주는 1980년 5월보다 훨씬 더 심각한 고립에 직면하고 있다.

광주와 호남이 기업과 시장의 가치를 인정하는 변화를 달성하기 이전에 이런 고립이 닥친 것이 뼈아프다. 5.18 단체들이 5월 3법을 밀어붙이고, 광주 시민들이 여기에 동의하는 것은 시각장애인이 제 닭 잡아먹고, 욕심에 눈이 먼 자들이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격이다. 이것이 5.18 3법이 가지는 진정한 의미이다. 이것이 5.18 3법의 통과를 두고 광주와 호남을 위해 애통해하는 이유이다.

이제라도 광주와 호남은 5.18 3법을 거부해야 한다. 많이 늦었지만, 그래도 해야 할 숙제는 해야 한다. 그것은 온전히 광주와 호남의 몫이다. 역사의 법칙에 공짜는 없기 때문이다.

주동식 객원 칼럼니스트(국민의힘 광주광역시 서구갑 당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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