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권의 하산(下山)길, 여권발(發) 검찰 해체의 막바지 작업이 속행 중이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들끓는 민심의 해일(海溢)이 덮쳐와 내년이면 정권이 교체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눈엣가시 검찰을 작살낼 수 있는 입법 독주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작년엔 검찰과 똑같이 수사·기소권을 지니고 검찰에 사건 이첩을 요구할 수 있는 ‘대통령 직속’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를 만들어 검찰의 권능(權能)을 무력화시켰다. 금년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설치법을 상반기 안에 통과시켜, 이미 검경(檢警) 수사권 조정으로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진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아예 박탈하겠다고 나섰다. 검찰은 6대 범죄(부패·경제·선거·공직자·방위산업·대형참사)에 한해서만 ‘직접 수사’를 발동할 수 있다. 여권은 검찰청이 이 권한까지 중수청으로 넘기고 기소권, 즉 공소유지만 전담하는 ‘공소청’으로 남길 원하고 있다. 중수청이 설치될 경우, 어느 부처 예하에 둘지는 아직 미정이다. 검찰처럼 법무부 산하에 둘지, 경찰과 같은 행안부 소속이 될지, 공수처 있는 대통령 직속으로 갈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집권여당 의원들이 관련법을 발의하고 여권의 유명 인사들이 관련 사안을 언급하면서 군불을 때고 있으니, 머지않아 중수청 신설과 검찰 해체는 가시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은 공수처·중수청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이 권력유착과 권한남용의 산실이었던 검찰을 바른길로 개혁(改革)하는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경찰과 새 기구의 힘을 키우고 주요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도 뺏겠다고 나선다.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검찰의 힘을 빼야 이 나라가 ‘검찰공화국’의 오명(汚名)에서 벗어나고, 그 옛날 문민정권(文民政權)이 군부(軍部)를 다스리듯 ‘선출된 권력’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본다. 검찰의 사익 추구와 비대화(肥大化)를 우려하는 시각에서는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다. 그간 문제시된 표적수사, 별건수사, 혐의 조작 의혹, 제 식구 감싸기 등 검찰의 각종 폐단을 일소(一掃)하는 데도 일부 효과가 있을 것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검찰의 본래 기능을 고치고, 나아가 정권 차원에서 아예 검찰 자체를 공중분해(空中分解)시킨다고 해서 그 같은 폐단들이 이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다. 검찰의 권한을 이양(移讓)받은 또 다른 수사기구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남용을 자행할 수도 있다. 공수처와 중수청과 힘 얻은 경찰이 제2의 부패검찰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민주정권을 참칭(僭稱)하는 현 집권세력이 탄생시킨 조직들이기에 완전무결(完全無缺)하며 지고지선(至高至善)하단 말인가. 정녕 이 조직들이 작금의 검찰보다도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을 더 보장받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대통령 직속에다 여권의 입김으로 급조(急造)된 기구들이 수십 년 전통을 이어온 검찰보다 더 투명하고 올바른 수사와 기소를 할 수 있다고 어떻게 자신하는가. 명목상 법무부 산하에 있지만 사법적 성격을 지니고 정치적 독립을 보장받는 검찰은 정권이 흔들리면 숱하게 반기(反旗)를 들어왔으니, 믿을만한 수사기구들을 권력의 발아래 두고 검찰을 포위시켜 정권의 임기 말 안위를 보장받으려 한다는 의심을 사지 않겠는가. 대통령 하명(下命)을 받잡는 충견(忠犬) 노릇을 하는 인사들로 정권 옹위 기구를 채운다는 의심을 받지 않겠는가. 집권 초기 적폐 수사로 보수정권 인사들을 깡그리 감옥소로 보낼 때는 검찰 개혁 목소리가 잠잠하다가, 정권의 뜻에 반하는 조국 수사를 감행하자 윤석열 찍어내기에 몰두한 정권이 아니었던가. 연이은 법무부발 ‘인사 횡포’로 말 안 듣는 검찰총장의 수족(手足)을 잘라내 식물총장으로 만들지 않았는가. 대통령 뜻에 어긋나는 ‘탈(脫)원전 비리’ 감사에 착수한다고 정권의 표적이 된 감사원장을 ‘대통령 집 지키는 개’에 비유하지 않았는가. 대통령이 어디 조선시대 임금인가. 검찰과 감사원은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주상전하(主上殿下)께 명분뿐인 간언(諫言)을 드리는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가. 아니면 왕명을 출납하는 승지(承旨)나 치안이나 맡는 포도대장(捕盜大將) 정도로 여기는 건가. 아무리 선출된 권력이라도 삼권분립(三權分立)은 물론 독립기구, 수사기구, 감찰기구 등에 의해 상시로 견제를 받아야 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이해도 부족한 자들이 어떻게 검찰 개혁, 사법 개혁, 언론 개혁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검찰은 거의 정복하였으니 이제 손해배상제 어쩌고 하면서 언론에 재갈 물리는 법까지 만드나. 이 나라가 ‘5년 단임 정권’ 대통령의 소유인가.

지금 있는 검찰과 감사원도 이렇게 ‘정권의 하명 기구’로 전락시키는 마당에 무슨 공수처고 중수청이란 말인가. 정권이 연루된 비리 의혹 수사를 하면 어느 독립기구든 ‘선출된 권력’이라는 미명 아래 철퇴를 내리치는데, 또 다른 기구를 만들어본들 그게 무슨 청렴결백(淸廉潔白)하고 공평무사(公平無私)하고 멸사봉공(滅私奉公)하는 독립기구가 되겠는가. 있는 것도 제대로 쓰지 않고 다 못 믿겠다며 말 잘 듣는 기구들만 무슨 무슨 개혁이라며 출범시키지 않았나. 이 정권은 임기 내내 허상(虛像)의 적대세력과 싸우다가 허송세월(虛送歲月)을 했다. 일제, 친일파, 군부독재, 극우보수, 검찰권력 등 586 운동권 세력의 피해의식이 만들어낸 유령들과 혼전(混戰)을 벌이면서 나라 곳곳을 들쑤셔 놨다. 지난 정권이 아껴서 벌어놓은 국고(國庫)를 포퓰리즘 정치 놀음에 탕진했고, 세계 대유행의 전염병이 닥쳐오니 공포정치와 통제조치나 다름없는 행정명령 남용으로 국민들을 딴 소리 못 하게 옭아맸다. 제 돈도 아니니 세금은 남김없이 털어 써서 매표행위나 진배없는 ‘각종 지원금 살포’로 선거에 압승하여 사상 초유의 거여(巨與)를 탄생시켰다. 아무 법이나 만들어도 통과시키지 못할 것이 없는 입법 독주의 시대가 왔다. 청문회는 요식행위(要式行爲)로 전락했고, 막바지 장관 자리는 제 식구들 나눠먹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의 전리품(戰利品)이 됐다. 매번 ‘머릿수 밀린다’고 징징대는 야당은 중도·좌클릭 망상에 매몰돼 무기력하고, 1년짜리 서울시장 선거도 단일화 기싸움하다가 다 날려먹을 판이다. 사법부 수장은 정권 눈치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거여의 비위를 맞출까 그 생각만 하다가 후배 판사를 탄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대통령 집 지키는 개는 다름 아닌 입법부와 사법부였다. 총칼과 탱크가 등장해야만 독재인 것이 아니다. 촛불 타고 거저 얻은 권력으로 쇼와 선동과 남탓으로 일관한 정권의 입법 농단, 사법 장악, 검찰 유린, 언론 탄압이 신(新) 독재다.

신(新) 독재 정권의 인민재판(人民裁判) 하에서 검찰의 사지(四肢)는 거여, 경찰, 공수처, 중수청이라는 네 가지 수레에 묶여 찢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사지거열(四肢車裂), 능지처참(陵遲處斬)이다. 전 정권 무너뜨리기에 애용(愛用)되었으니 지금 보면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어떻게 부르든 간에, 검찰이 제때 스스로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 꼴이 된 것이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정권이 좋아할 소리로 들리나. 그렇지 않다. 진정한 검찰의 자체 개혁이란 정권 비리에 대한 철저하고 신속한 수사였다. 아무리 정권의 인사 전횡이 극심하였다 해도, 전 정권 털어내듯 현 정권 비리를 제대로 수사했다면 검찰이 민심을 잃고 정권이 우습게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금융비리, 선거개입, 원전문제, 적폐몰이, 헌법위반, 대북야합, 내로남불 등 논란이 된 의혹도 여럿이었으나 검찰은 윗선을 향해 과감히 칼 한 번 휘두르지 못하고 자포자기했다. 이제라도 떨쳐 일어나 검찰 본연의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신승민 독자(신승민 시사칼럼니스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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