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칼럼니스트.

여의도에 문을 연 더현대서울이 연일 화제다. 매장 면적이 엄청나게 넓고, 그 넓은 매장에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이 많이 몰렸기 때문이다. 백화점이 사양 산업이라고 하더니, 뭐든지 규모가 크고 화려하기만 하면 사양 산업은 없는 가 보다. 그러나 단순히 크고 화려하다고 해서 고객을 끌어 모을 수는 없을 것이다. 더현대서울의 1차적 성공은 ‘젊음’, 즉 MZ세대를 타깃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엔 도처에서 MZ세대라는 단어가 보인다. 밀레니얼+Z세대, 즉 20~30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세대는 모든 소비 분야에서 주인공으로 우뚝 섰고, 명품 소비에서도 큰 손으로 떠올랐다. 더현대서울도 지하2층 전체를 MZ세대를 위한 맞춤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중 한 매장이 국내 백화점 최초의 스니커즈 리셀 전문 매장 BGZT이다. BGZT라고 해서 무슨 명품 해외 브랜드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번개장터의 이니셜이다. 쓰던 물건을 되파는(resell) 매장이니 결국 중고 매장이다. 그러나 허름하고 값싼 헌 신발을 파는 매장이라고 생각하면 큰 코 다친다. 이 매장에서 가장 비싼 신발이 Nike Dunk SB Low Staple NYC Pigeon 모델인데, 값이 무려 7천만 원이다. 

Nike sb dunk low pro black pigeon.(사진=discount2021)
Nike sb dunk low pro black pigeon.(사진=discount2021)

중고거래

MZ세대와 기성세대를 구별하는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중고거래’다. 기성세대에게 중고란 남이 쓰던 물건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였고, 가난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MZ세대에게 중고시장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가치 있는 소비를 하는, 투자의 수단이다. 여러 차례 거래되더라도 신상품과 다름없이 받아들여지고, 거기에 프리미엄을 붙여 되팔아 상당한 시세 차익까지 남기는 것이 지금 MZ세대의 새로운 재테크다. 그래서 리셀(resell)이라는 세련된 이름도 붙었다. 중고제품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새 제품보다 더 값어치 있고 매력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소위 N차 신상이다.

2020년 여름 스타벅스는 전국 매장에서 계절 음료 3잔을 포함한 17잔의 음료를 구매하면 사은품으로 ‘서머 레디백’과 ‘서머 체어’ 중 한 가지를 제공하는 ‘e-프리퀀시 이벤트’를 벌였다. 이벤트 시작 바로 다음 날 서울 여의도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약 1백30만원치 커피 3백 잔을 주문한 구매자가 딱 한 잔의 커피와 사은품 여행 가방 17개만 챙겨가는 일이 벌어졌다.

뉴스가 전해지자 즉각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서머 레디백 검색이 쇄도하여 총 25만 건에 달했고, 그중 2,500건이 거래되었다. 개당 약 3~5만 원 정도의 이익을 냈으므로 300잔의 커피 값은 전혀 아까운 게 아니었다. 

샤테크라는 말도 있다. 샤넬 백을 사면 큰 차익으로 되팔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샤넬 클래식 플립백 미디엄은 2020년 5월에 715만원이었는데, 3개월 뒤인 8월 중고나라에서 860~900만원에 판매되었다. 오픈런(백화점이 문을 열자마자 달려 들어가 구입하는 구매 방식)으로 715만원에 구입해 900만원에 팔았다면 수익률은 25.8%다.

2019년 11월 홍대 앞 나이키 매장에서는 나이키와 가수 지드래곤이 컬레버레이션(협업)한 운동화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를 사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파라노이즈를 직접 사는 것도 아니고, 그것을 살 수 있는 응모권을 받는 행사였다. 총 8,888장의 응모권이 발매되었는데, 이를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이키 상의와 에어포스1 운동화를 신고 가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그날 저녁부터 중고나라에는 파라노이즈가 50만원에 거래되었다. 정가는 21만9천원인데 하루만에 2배가 뛴 것이다. 지드래곤 친필 사인이 있는 한정판의 경우 1,500만원까지 호가했다.

2020년 5월 한정판으로 출시된 나이키x벤앤젤리스 sb 덩크 로우 청키 덩키는 정가가 12만 9천원인데, 두 달 뒤 중고시장에서 130만~175만원에 거래됐다. 단기간에 1,000%가 넘는 수익이 난 것이다. 그래서 스니커즈 재테크라는 말의 스테크, 또는 슈즈 재테크라는 말의 슈테크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처럼 리셀은 MZ세대의 새로운 재테크 수단이다.

리셀 시장이 커지면서 기업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는 최근 한정판 운동화 거래 플랫폼 ‘솔드아웃’을 오픈했다. 서울옥션블루도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인 엑스엑스블루(XXBLUE)를 론칭했다. 롯데쇼핑은 국내 최초의 한정판 스니커즈 리셀 거래 플랫폼 아웃오브스탁과 손잡고 시장에 뛰어들었다.

국내 중고 거래 시장 규모는 무려 20조원에 이른다. 1차 시장보다 더 활발하다. ‘당신 근처 마켓’의 준말인 당근 마켓 일일사용자 수는 약 156만 명이다. 이는 쿠팡 이용자 397만 명 다음으로 이커머스 2위다. 이용자의 거주 지역 반경 6km 이내에서만 거래가 가능한 당근마켓 앱의 총 다운로드 횟수는 2천 만 회를 넘는다. ‘당근하다’라는 신조어까지 나올 정도다. 

나이키 덩크 특별판(사진=architecturaldigest).
나이키 덩크 특별판(사진=architecturaldigest).

전문가들의 청년 찬양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개성 만점이야. 딴 사람 신경 안 쓰고 자기 좋은 대로 헌 신발도 사 신고, 소주병 로고 백팩도 메고 다니니 말이야.” 이것이 젊은 세대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1차적 평가다. 트렌드 전문가들의 평가도 모두 MZ세대 찬양 일색이다. 이 세대에게 중고 마켓은 보물찾기 놀이터라는 것,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가 아니라 시간을 보내는 여가 수단이어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정글을 탐험하듯 온라인 쇼핑을 즐긴다는 것, 그때그때 유행을 경험해 보고 다른 트렌드로 빨리 갈아탈 수 있어서, 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세대가 싫증을 해결하는 나름의 솔루션이라는 거다.

이 모두가, 젊은이들이 충실하게 자기 의지에 따라 소비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업체가 우연히 내놓은 상품이 젊은이들의 취향에 우연히 맞았고, 그러다 보니 그냥 저절로 우연하게 대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그 뒤에 ‘숨은 신(神)’이 있는 건 아닐까? 파스칼은 세상 모든 것의 뒤에는,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신(神)이 숨어 있다고 했다. 그 신은 ‘아무 데도 없지만 그러나 도처에 있고, 언제나 현존하지만 또 언제나 부재하는 신(神)'이라고 했다. 

곰표 밀가루 로고를 사용한 곰표 밀맥주 캔.(사진=BGF리테일 제공)
곰표 밀가루 로고를 사용한 곰표 밀맥주 캔.(사진=BGF리테일 제공)

무신사

2001년 운동화 마니아의 커뮤니티로 출발한 무신사는 2009년 전자 상거래 ‘무신사 스토어’를 열고 옷과 신발을 팔기 시작했다. 현재 무신사 회원은 700만 명, 그 중 80% 이상이 18~35세다.

지금은 단순히 제품만 판매하는 게 아니라 서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업체의 이미지를 한 데 합쳐 콜라보 제품을 만들어내는 일에 주력한다. 2018년 여름, 패션 회사 4XR과 손잡고 ‘곰표 티셔츠’를 만들어 완판 기록을 세웠다. 2020년엔 편의점 CU와 손잡은 ‘곰표맥주’가 히트를 쳤다. 곰표 밀맥주는 2020년 6월 출시 당시 사흘 만에 준비한 10만개가 모두 팔렸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적 판매량 150만개를 기록했다.

무신사의 성장세는 무섭다. 삼성물산을 비롯해 LF·신세계인터내셔날·코오롱FnC 등 국내 패션 대기업 브랜드와 폴로 랄프 로렌·MCM·라코스테·베네통 같은 해외 브랜드들도 앞 다퉈 무신사에 입점해 물건을 팔고 있다. 삼성전자도 갤럭시 M20과 갤럭시 워치 액티브2를 무신사에서 판매했다. 2020년 무신사의 입점 브랜드는 5000여개나 된다. 2013년 연간 거래액이 100억 원이었는데, 2020년 거래액은 1조4000억 원으로 예상된다. 7년 만에 14배 커지면서, 그야말로 한국의 대표적 ‘패션 빅테크(Big tech)’가 되었다.

젊음의 개성 같은 것은 없다

비싼 운동화 열풍, 중고 시장 선호, 명품의 리셀 유행, 그리고 이색 콜라보 열풍까지 젊은이들의 톡톡 튀는 소비 행태를 젊은이 특유의 참신성 또는 펀슈머(fun+consumer) 경향에 돌리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라 해도, 절반만 맞는 얘기다.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조합이 낯설지만, 재밌는 것에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취향을 정확히 파악한 전략이었다’라는 평가는 앞뒤를 바꿔 말해야 한다. 거대한 청년 집단을 먼저 조직하고, 젊은이들에게 그런 성향을 가지라고 등 떠밀며 소비를 부추긴 누군가가 먼저 있었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그런 성향을 갖게 되었고, 그런 소비를 하게 되었다. 젊은이들은 순전히 자기 개인의 취향대로 헌 신발을 신고, 곰표 밀가루 로고의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또래의 다른 친구들이 다 그렇게 하니까 자기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또래 집단의 소비 행태를 결정해 주는 것은 거대하고 강력한 유통 업체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무신사 같은 유통 플랫폼의 정교한 마케팅 시스템이 그들 뒤에 숨어 있는 것이다. 

정치 영역이라고 해서 다를 것인가? 20~30 세대의 공고한 좌파 성향 뒤에 이런 ‘숨은 신’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문 정부에 실망해도 “그래도 우파를 찍을 수는 없지”라고 말하는 젊은이들은 뒤에 숨은 누군가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것일 뿐이다. 현대 디지털 사회의 이런 메커니즘을 알지 못하면 우파 진영의 정권 탈환은 매우 어려울 것 같다.

박정자 객원 칼럼니스트(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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