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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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10일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관 수는 정원에 1명이 모자라는 8명이었다. 2/3 규정에 따라 재판관 8명 중 6명 이상이 인용의견을 내야 탄핵이 결정되는 상황이었다.결론은 8:0, 재판관 전원이 인용의견을 냈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당시 재판관 김이수와 이진성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 피청구인(박근혜)은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하진 않았으며 헌법상 성실한 직책 수행 의무 및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를 위반 자체를 탄핵할 사유로는 충분치 않다는 보충의견을 냈다.

또 재판관 안창호도 보수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를 떠나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한 조치로서 파면을 해야 한다는 뜻도 모를 내용의 보충의견을 냈다.

만약 당시 탄핵인용이 완전무결한 판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들이 기권을 했다면 박근혜 탄핵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3명의 판사로 이루어지는 법원의 합의부 재판은 물론 대법원 재판에서도 기권은 없다. 판결은 대립하는 주장을 놓고 총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검사가 사건에 대한 기소여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기권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2021년 대한민국 검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와 관련된 모해위증교사 논란에 대한 박범계 법무부장관의 재수사지휘에 대한 대검 부장단(검사장) 및 전국 고검장 6명이 모인 회의에서 나온 상황이다.

이와관련, 대검은 지난 21부장회의를 거친 한 전 총리 관련 모해위증 의혹 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법무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대검은 지난 5일 관련자들의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박 장관이 대검 부장회의를 열어 다시 판단할 것을 요구하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것이다. 이에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은 지난 19일 일선 고검장까지 참여하는 부장회의를 열어, 기존 대검 판단대로 관련자들을 불기소하기로 의결했다.

조남관 직무대행과 대검 부장 7, 일선 고검장 6명 등 14명이 참여해 13시간30분 동안의 마라톤회의 끝에 표결한 결과다. 10명이 불기소 의견을 냈고, 기소 의견은 2, 나머지 2명은 기권했다.

비공개 투표였기 때문에 기권 의견을 낸 2명과 기권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투표에 참여한 고검장 6명은 모두 무혐의·불기소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이들 4명은 친정부 성향의 대검 간부들로 추정되고 있다.

투표에 참여한 대검 부장 7명 중 윤석열 전 총장 징계를 주도했던 신성식 반부패·강력부장, 한동수 감찰부장, 이종근 형사부장, 이정현 공공수사부장과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대학 후배인 고경순 공판송무부장 등이 친정부 성향으로 꼽힌다. 이 가운데 한동수 부장은 기소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2명의 기권에 대해 검사 내지 법률가로서의 양심상으로는 기소할 꺼리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지만 재수사지휘를 한 박범계 장관 내지 정권의 눈치를 보느라 나온 고육지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기권행위를 놓고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고검장 출신 한 변호사는 판사가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애매하다고 생각하면 피고인의 이익이라는 원칙에 따라 무죄를 선고하듯이 검사도 사건이 안된다고 생각하면 불기소 의견을 내면 되는 것이지 기권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사건 처리 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수사지휘권을 발동했지만, 압도적인 표차로 불기소 결정이 나오면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박범계 장관은 전임 추미애 장관 못지 않은 자충수를 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박 장관 스스로 고검장 참석을 받아들인 만큼,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대검과 충돌할 경우, 비판 여론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 때문에 한편에서는 애당초 박 장관이 수사지휘를 할 때,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을 제기한 재소자를 기소하라고 직접 지시하지 않고 대검 부장회의에 재심의를 지시한 것이 이 사건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아니라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체면치례에 불과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상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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