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을 파탄으로 이끈 마오쩌둥의 이념과 열정 따라가고 있어
집단지도체제 무력화하고 장기 독재체제 구축...2050년까지 중국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건설 선언
'중국몽' 내세워 공세적 외교행태 가속화...내수시장 확대로 '자력갱생'으로 회귀
중국 통치 엘리트들이 시진핑 묵인하는 이유는 '공산당 일당 독재 붕괴'에 대한 두려움
향후 시진핑은 '경직성'으로 대내외적 큰 저항과 반발 받을 가능성 높아

연상모 객원 칼럼니스트
연상모 객원 칼럼니스트

시진핑(習近平)은 2012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 취임 이후, 국내적으로는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공세적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 내에서는 권력집중 강화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대외적으로 미국과는 신냉전이 벌어진 형국이다. 시진핑의 이러한 행태는 과거 마오쩌둥(毛澤東)의 모방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건국 70주년을 앞둔 지난해 9월 시진핑은 베이징 교외에 있는 향산 쌍청(雙淸) 별장을 방문했다. 관영 신화사는 “시진핑 주석이 마오쩌둥 동지의 당시 집무실을 숭고한 경의를 갖고 바라보았다”고 묘사했으며, 이는 마오에 대한 시의 존경심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시의 마오 모방 상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1949년 중국 공산당정권 수립 이후 마오쩌둥 시대(1949-1976년)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1978-2012년)를 비교할 필요가 있다. 마오의 시대는 ‘신중국’ 수립 이후 소위 마오쩌둥식의 사회주의 추진 시기였고, 덩의 시대는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발전을 일군 시기였다. 즉 마오의 ‘이념과 열정’ 대 덩의 ‘실용주의와 신중함’의 순환이었다. 마오와 덩은 중국을 사회주의국가로 만든다는 최종목표를 공유했으나, 그 과정에서 방법은 달랐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비교

마오와 덩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비전에 대한 접근방식의 차이이다. 마오는 공산주의의 이념과 열정으로 중국을 급진적으로 변화시키려고 했던 반면, 덩은 실용주의와 신중함으로 중국을 발전시키고자 했다. 중국전문가인 맥파쿼(MacFarquhar)는 마오를 ‘투사형’, 덩을 ‘관리자형’으로 구별했다. 마오는 ‘영원한 혁명’을 추구했고, 이를 위해 중국이 영원한 위기에 있는 국가가 되기를 원했다. 그는 중국의 유산을 폭력적으로 해체함으로써 중국을 새롭게 만들려고 하였다. 1958년 대약진운동과 1966년 문화대혁명을 실행했다. 대중의 혁명적 열기를 동원하고 군중노선과 자력갱생 사상을 확산시켰다. 마오의 중국을 모르면, 덩의 업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대혼란을 체험한 덩은 개혁이 질서 정연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국가는 ‘안정과 통합’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마오는 중국을 박살냈고, 덩은 부스러기들을 모아 근대화를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마오는 끝없는 투쟁을 옹호했으나, 덩은 ‘질서, 프로페셔널리즘, 효율’을 언급했다. 그리고 덩은 개혁개방정책을 채택했다.

둘째, 통치형태의 차이이다. 공산당 내에서 마오의 지위는 제국의 황제와 같았다. 마오는 오만에 빠져 중국의 현실을 완전히 무시했다.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 했고, 대량의 인명피해와 부작용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덩은 독재자가 출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공산당 정치국에서 ‘집단지도체제’를 제도화하고 국가주석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했다. 덩은 개인적 숭배를 포기하고 질서정연한 승계절차를 마련했다. 1989년 천안문사태 이후 덩은 자신이 계획했던 은퇴를 실행했고 중요한 직책을 맡지 않았다.

셋째, 대외정책의 차이이다. 마오는 미국과 소련의 핵강대국 냉전의 시기에 ‘자유로운 행위자’로서 행동했다. 상대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양 강대국과 대립하였으며, 약하게 보이는 것을 거부하고 타협 대신 도전을 선택하고 서방국가들과의 접촉을 피했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외국과의 교류 대신 ‘자력갱생’에 의지했다. 덩은 겸손하고 실용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는 1978년과 1979년에 일본과 미국을 각각 방문하여, 중국의 ‘후진성’을 인정하고 선진국가로부터 기술을 습득하고자 하는 열망을 보여주었다. 이는 중국 최고지도자가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놓는 국정운영 전통에서 완전히 탈피한 것이었다. 그리고 “강대국이 될 때까지 자신의 힘을 감추어라”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실용외교를 추진했다.

시진핑과 마오쩌둥의 비교

1949년 이후 중국의 통치는 마오의 이념과 열정 대 덩의 실용주의의 순환이었다. 덩의 실용주의는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에 의해 지속되었다. 하지만 시는 마오의 정신으로 되돌아가려는 듯 보인다. 이는 미래의 중국에게 무엇을 의미할까? 이에 답하기 위해 먼저 시와 마오의 공통점을 보자.

첫째, 이념과 비전이다. 시는 2050년까지 중국을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으로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그는 “초심(初心)을 잃지 말자”고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마오의 공산주의 이념을 의미한다. 한편, 시가 추진하는 것은 ‘국진민퇴(國進民退)’이다. 국가가 경제를 장악하겠다는 것으로서, 민간기업이 국유기업에 의해 잠식되는 현상을 말한다. 사회주의의 근간은 공유경제이며 공유경제를 떠받치는 것은 국유기업이란 논리에 따른 것이다.

둘째, 통치형태이다. 시는 집단지도체제를 무력화하고 권력집중을 강화시켜 마오에 버금가는 힘을 갖게 되었다. ‘위대한 영수 마오쩌둥’을 연상시키는 ‘인민의 영수 시진핑’ 용어가 등장했고, 헌법의 국가주석 연임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그리고 현재 중국 내에서는 시의 장기집권을 위한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 내에서도 비판을 부를 정도의 개인숭배 조짐이 나타나고 언론 통제와 검열이 강화되었다.

셋째, 대외정책이다. 시는 공세적인 외교행태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는 ‘중국의 꿈’을 제시하여 민족주의를 고취시키고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중관계는 악화일로의 위기를 맞고 있다. 시는 대미 항쟁수단으로 중국 내수시장의 확대를 외치면서 과거 마오의 ’자력갱생‘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

하지만 마오와 시의 행태는 차이점도 있다. 첫째, 시는 마오의 카리스마가 없다. 마오는 자신의 권력을 직접 만들어냈는데, 시는 중국 정치파벌의 타협의 산물로 그 자리에 올랐다. 둘째, 마오는 좋은 의미이던 나쁜 의미이던 천재이며 모략가였다. 하지만 시는 마오의 비범함과 다르다. 시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며 중국 중심의 인물로만 알려져 있다. 셋째, 마오는 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에 대한 외교에서 전략적 마인드를 갖고, 적대와 우호를 유연하게 채택했다. 하지만 시는 강경일변도이다. 넷째, 마오와 시의 시대배경이 다르다. 마오의 시대는 냉전시기로서 미국과 소련이 경쟁을 하는 중에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인 소련의 뒤에 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은 현재 미국의 집중견제를 받고 있다. 다섯째, 시가 추구하는 중국의 비전은 불확실하다. 그는 ‘중국의 꿈’을 주장하나 구체적으로 어떠한 중국을 원하는 지는 불분명하다. 마오의 비전은 ‘영원한 혁명’을 위해 기존체제를 모두 해체하려 했다. ‘강대한 중국’을 위해 시가 마오의 투사형으로 계속 남을지의 여부는 더 지켜봐야 한다.

중국의 현재와 미래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마오의 이념과 열정은 중국을 파탄으로 이끌었고, 덩의 실용주의는 중국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시진핑은 과격한 마오쩌둥을 모방하지만, 원리주의자인 마오가 가졌던 전략적 유연성이 결여되고 ‘경직성’이 지배한다. 그 결과 중국을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서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의 통치 엘리트는 왜 시진핑 1인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무리수를 묵인하는가? 그 이유는 겉으로는 중국의 공산당 통치 엘리트들이 자신감이 있어 보이지만, 공산당 일당 독재가 붕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공유한다. 이러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경제침체와 코로나바이러스 등이 야기한 중국의 긴장은 시진핑의 권력이 겉으로는 확고해 보이지만 내부적으로 존재하는 취약성을 표출한다. 이념적 경직성, 정치적 반대자들과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 일대일로사업과 같은 외교정책을 무리하게 구축함으로써 권위의 통치자는 자신의 경직성에 구속되어 정책 실수를 수정하기 어렵다.

향후 시진핑은 자신이 다져놓은 경직성으로 인해 대내외적으로 큰 저항과 반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시진핑에게 바람직한 선택은 무엇일까? 이제라도 집단지도체제, 경제 개혁, 신중한 대외정책 등으로의 변화이다. 과연 그가 마오쩌둥의 ‘투사형’에 집착할지 덩샤오핑의 ‘관리자형’으로 운신을 꾀할지? 중국인은 물론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연상모 객원 칼럼니스트(성신여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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