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 칼럼] 디지털화(化), 그 도도한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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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4.15 10:19:50
  • 최종수정 2021.04.1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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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FT 열풍이 뜨겁다. NFT란 미술품을 디지털 자산으로 바꾸는 암호화 기술로, Non Fungible Tokens(대체 불가 토큰)의 줄임 말이다. ‘디지털 자산’이라는 말이 어렵다면, 쉽게 말해 미술품을 컴퓨터 파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회화 한 점을 사진으로 찍어 컴퓨터에 업로드 하면 그게 바로 jpeg 형식의 이미지 파일이다. 우리가 이메일로 누군가에게 사진이나 그림을 보낼 때 흔하게 사용하는, 언제나 복사가 자유로운, 바로 그 파일이다.

그런데 NFT는 블록체인을 통해 거래 내역을 저장하는 기술이 사용돼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파일이 됐다는 것이 특이하다. 거래 기록이 자동 저장되는 것은 물론, 작품의 위·변조도 불가능하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가상 화폐와 같은 원리다. 그런데 이 단순한 이미지 파일 하나가 지난 3월 초 우리 돈으로 8백억원 가까이(6930만달러, 780억원)에 팔리면서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낙찰가는 터너, 쇠라, 고야를 앞질렀고, 살아 있는 화가로는 제프 쿤스, 데이빗 호크니 다음으로 세 번째다. 고작 jpeg 형식의 이미지 파일이지만, NFT 기술을 사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파일이 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이렇게 높은 가격에 팔린 것이다. 결제 통화는 가상 화폐 이더리움이었다. 크리스티 255년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가상화폐 거래다.

"매일: 첫 500일", 레코드 가격에 도달 한 암호 아티스트 Beeple의 작품.(사진=nypost, 박정자 교수)
"매일: 첫 500일", 레코드 가격에 도달 한 암호 아티스트 Beeple의 작품.(사진=nypost, 박정자 교수)

디지털 아티스트 비플

작가는 40세의 비플(Beeple, 본명 Mike Winkelmann)이다. 럭셔리 브랜드 루이 비통과 협업하고, 팝스타 저스틴 비버나 케이티 페리 등과도 협업하는, 매우 힙(hip)한 화가다. 그림 제목은 ‘나날들: 첫 5000일’(Everydays, First 5000 Days)이다. 2007년부터 작가가 하루에 그림 하나씩을 그려 인터넷에 5000일 동안 올린 작품들을 콜라주 한 것이다.

"오션 프론트"(사진=nypost, 박정자 교수)
"오션 프론트"(사진=nypost, 박정자 교수)

그의 또 다른 10초짜리 영상 작품 ‘교차로’는 길에 쓰러진 트럼프 전(前) 대통령의 알몸 앞을 행인들이 지나치는 단순한 작품인데, 2020년 10월 한 수집가가 6만7000달러(약 7500만원)에 사서, 몇 달 만에 100배 오른 가격에 되팔기도 했다.

바닷물에 박힌 나무 기둥 위에 트레일러, 버스, 화물차 등으로 얼기설기 만든 아파트를 보여주는 디지털 이미지 ‘바닷가’(Ocean Front)는 지난 3월 6백만 달러에 팔렸다. 물론 재미있는 그림이기는 한데, 6백만 달러라면, 이런 허접한 아파트가 아니라 뉴욕 센트럴파크의 침실 셋 있는 고급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가격이다.

뱅크시

‘얼굴 없는 화가’로 알려진 영국의 유명한 낙서 화가 뱅크시도 NFT 시장에 뛰어 들었다. 그는 ‘멍청이’(Morons)라는 제목의 그림을 NFT로 변환해 경매에 내놓아, 228.69 이더리움에 팔았다. 우리 돈 약 4억3000만원으로, 원본 가격(10만달러)의 거의 4배다. ‘멍청이’는 미술 경매장에 모인 구매자를 조롱·풍자하는 작품이다. 그림에는 “이런 쓰레기를 사는 멍청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글귀가 적혀있다. 원본 그림은 불태웠다. “가상과 실물이 병존할 경우 작품의 가치가 실물에 종속되지만 실물을 없애면 NFT 그림이 대체 불가의 진품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불태우는 장면도 유튜브로 생중계 했다.

그라임스

캐나다 가수 그라임스(33)도 NFT를 적용한 디지털 그림·영상 10점을 온라인 경매에 부쳐 20분 만에 65억 원어치를 완판시켰다.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의 여자친구로 유명하지만 유명 화가는 아니다. 비행하는 아기 천사 등 가상 이미지에 배경음악을 입힌 작품들이다.

NFT는 그림만이 아니라 애니메이션도 있고, 음악도 있고, 텍스트도 있다.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가 15년 전 단어 5개로 쓴 최초 트윗도 경매에서 290만 달러(33억원)에 팔렸다. “방금 내 트위터 설정 완료(just setting up my twttr)”라고 쓴 이 트윗은 잭 도시가 트위터를 창업한 뒤 2006년 3월 21일 서비스를 개시하면서 처음 쓴 것이다. 잭 도시는 경매 수익을 케냐·르완다 등 아프리카 빈곤 퇴치 활동을 하는 비영리단체에 기부했다.

농구 선수 르브롱 제임스의 덩크 슛을 찍은 NBA Top Shot 비디오 클립은 1,630.6 이더에 팔렸는데, 이는 20만 8천 달러에 해당하는 값이다.

Ecstasy of Saint Teresa, Bernini. (사진=onearteveryday, 박정자 교수)
Ecstasy of Saint Teresa, Bernini. (사진=onearteveryday, 박정자 교수)

‘비트코인 엔젤’의 경우

영국 에딘버러 출신 화가 트레버 존스(Trevor Jones, 1970~)는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법열’을 패러디하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제목을 ‘비트코인 엔젤’(The Bitcoin Angel)이라고 붙였다. 그는 이 애이메이션의 원판인 유화 작품 ‘비트코인 엔젤’도 NFT로 만들어 이미 7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바 있다.

Ecstasy of saint teresa, Bernini(사진=박정자 교수)
Ecstasy of saint teresa, Bernini(사진=박정자 교수)

‘성 테레사의 법열’(Ecstasy of Saint Teresa, 1652)은 로마의 코르나로(Cornaro) 예배당에 있는, 17세기 이탈리아 조각가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의 작품이다. 황홀경에 빠진 테레사 수녀의 표정도 예사롭지 않지만, 그녀가 남긴 자서전의 한 구절 때문에 현대 철학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작품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구절은 다음과 같다.

"나는 천사의 손에 황금으로 된 긴 창이 들려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 끝의 철제 꼬챙이는 불로 이글거렸다. 이것으로 그는 내 가슴을 여러 차례 찔렀고, 그것은 내 창자까지 관통했다. 그가 이것을 빼내었을 때 창자도 함께 빠지는 듯 했다. 그 고통이 너무나 커서 나는 몇 차례 신음 소리를 냈지만, 강렬한 고통이 야기하는 달콤함은 너무나 강렬하여 나는 그것이 절대로 멈추지 말기를 원했을 정도였다. 신을 향한 위대한 사랑이 내 몸은 완전히 불태우는 듯 했다.”

라캉은 자신의 주이상스(jouissance, enjoyment)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베르니니의 조각 작품을 예로 들었다. 그의 주이상스는 일차적으로는 오르가즘이고, 혹은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고도의 성애적인 죽음 충동이다. 그러나 단순히 성적 의미만은 아니다. 인간에게 쾌락을 줄 수 있는 모든 대상의 소유-향유를 뜻하는 단어다. 결국 가장 근원적인 인간 욕망의 원형이다. “로마에 가서 성 테레사 조각 작품을 한 번 보기만 하면 당신은 고통이 곧 궁극의 쾌락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고 라캉은 『세미나』에서 말했다.

트레버 존스의 애니메이션 ‘비트코인 엔젤’은 오르간과 합창이 천둥소리처럼 울리는 배경 음악과 함께 시작한다. 황홀한 꿈에서 깨어난 테레사 성녀가 천천히 눈을 뜬다. 머리를 드는 순간 그녀의 앞에는 꿈속에 나타났던 천사가 황금 화살촉을 들고 서 있다. 천사는 다짜고짜 화살을 그녀의 가슴 깊이 찔러 넣는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차라리 달콤하게 느껴져 그녀는 열반(涅槃)에 잠긴 채 머리를 뒤로 젖힌다. 순간 화살이 몸에서 빠져나가며 그녀 몸에서 비트코인이 줄줄 흘러내린다.

거리의 화가 뱅크시도 천사 대신 패스트푸드를 그려 넣은 패러디 작품을 만들었다.

NFT와 원본 개념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자료는 예술과 잘 맞지 않는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NFT는 블록체인을 이용해 조작 불가능한 ‘원본 증명서’를 만들어냄으로써 전통 예술의 원본(original) 개념을 가능케 했다. 블록체인은 발행과 거래를 기록한 디지털 장부(ledger)를 수십만 개로 분산시키고, 이 발행 장부를 사슬(체인)처럼 줄줄이 엮어 조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이 과정에 참여하는 컴퓨터에 대가로 주는 것이 암호화된 토큰(token)이다. 토큰을 화폐로 쓰면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암호 화폐가 되고, 공인증명서처럼 다른 파일과 연결시키면 NFT가 된다.

제작 방법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계 시장에서 거래된 NFT 미술품 수는 이미 10만점을 넘었고, 누적 거래액은 약 2220억 원이다. 한국에서도 팝 아트 작가 마리킴의 ‘미싱 앤 파운드(Missing and Found)’가 약 6억 원(288 이더리움)에 팔렸다. 작가가 지난해 오프라인 개인전에서 판매한 실물 작품 1억5000만원의 4배에 해당한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디지털 창작물을 NFT 아트로 판매하고 싶으면 우선 이더리움 가상 화폐 지갑을 만들고 이를 NFT 서비스에 연결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판매하고 싶은 사진, 영상, 음악 등을 업로드하고, 가격과 로열티 비율 등을 설정하면 된다. 실물 작품도 디지털화하면 NFT에 연결할 수 있다. 디지털화 과정을 기록해 공개하고, 물리적 작품을 현실 세계에서 제거하면 가치가 더 높아진다. 뱅크시가 디지털 작품을 판매한 후 실물 원본을 불태운 것도 이 때문이다.

NFT 비판

당연히 NFT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원본’이라 해도 디지털 파일은 여전히 컴퓨터 속의 데이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NFT 작품을 ‘합의된 환각(consensual hallucination)’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한갓 환상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원로 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는 비플의 작품을 “바보 같다(silly)"고 말하며, NFT를 띄우는 사람들은 모두 ‘국제 사기꾼’임에 틀림없다고 잘라 말했다.

고객이 주로 젊은 MZ 세대라는 것도 특이하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비플 작품 경매에 참가한 응찰자의 90%가 새롭게 등록한 뉴 바이어들이고, 그 중 64%가 MZ세대였다. 디지털에 익숙한 신세대들이 물리적인 형태의 예술품을 소유하는 것보다 가상의 세계를 선호하여 NFT 예술을 보다 자연스럽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옥션 관계자도 NFT 경매를 시작하며 “유형·무형을 구분 짓지 않는 디지털 원주민 2030 MZ세대를 타깃으로 삼았다”고 했다. “미술품 감상이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고 ‘인증’하거나 이슈의 중심에 서는 데서 만족을 얻는 새 향유 방식”이라고도 했다. 젊은이들의 농구화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이 하던 말과 똑같다. 그러니 예술적 관심보다는 차라리 가상화폐 재테크의 개념에 가깝지 않은가,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하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열풍과 비교되기도 한다. 1637년 2월 바이스로이(Viceroy)라는 이름의 튤립은 구근 한 개 값이 6,700 길더였는데, 이는 당시 부자 동네 큰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바로 그 달 말 튤립 시장은 붕괴되어, 구근 하나 값이 95센트로 떨어졌다. 이후 튤립 열풍은 비합리적 투기 광풍의 대명사가 되었다. 코로나 봉쇄로 사람들이 집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져 NFT 열풍이 일어났다는 해석도 있다. 튤립 열풍도 네덜란드 인구 5분의 1을 죽게 한 임파선 역병(bubonic plague)의 창궐 바로 다음해인 1637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다소 과장되기는 했어도, 모든 분야에서의 디지털화가 도도한 트렌드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상은 점점 더 가상으로 치닫고, 가상 세계에 익숙한 세대가 점차 사회의 중추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회화를 완전히 대체하게 될 것인가?

그렇다고 해서 NFT 열풍이 전통 회화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트레버 존스나 뱅크시 같은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베르니니의 ‘성 테레사의 법열’을 패러디했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물성(物性)의 결여가 특징인 NFT 예술은 테크놀로지 예술이라는 나름의 열등감에 의해 더욱 더 전통 회화의 물성(objecthood)에 자신의 권위를 기탁하려 할 것이다. 오랜 과거의 작품에서부터 비교적 최근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마티에르 충만한 전통 기법 회화의 가치는 더욱 더 올라갈 것이다.

박정자 객원 칼럼니스트(상명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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