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재판부 지적에 지난 20일 공소장 변경 신청서 제출
담당 검사, 류석춘 前교수가 언급하지도 않은 19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실명 기재
류 前교수 측, 19명의 피해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입증할 자료 요구할 듯
그간 여성가족부가 공개하지 않아 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록 절차 등 공개 불가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사진=연합뉴스)
서울서부지방검찰청.(사진=연합뉴스)

대학 수업 시간 중 수강생과의 토론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류석춘 전(前)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에 대해 서울서부지방검찰청(검사장 노정연)이 법원에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펜앤드마이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류 전 교수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서부지검 최종경 검사(사시51회·연수원42기)는 지난 20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류 전 교수 사건 공소장 변경 허가를 구했다. 이는 이 사건 피해자들이 특정되지 않았다는 재판부의 지적에 대응한 것이다.

앞서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박보미 판사(사시51회·연수원41기)는 “‘일본군 위안부’라고 한다면, 취지상 대한민국에서 끌려간 할머니들을 지칭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지만, 광범위하게 본다면 과거 동남아 지역 등에서 끌려간 이들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며 “피고 측은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재판부 역시 그 의견에 공감한다”고 지적했다.

최 검사는 기존에 제출된 공소장의 “그러나 사실은 피해자 위안부 여성들은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위안부로 끌려가” 부분을 “그러나 사실은 피해자 우○제, 윤○만, 이○수, 정○수, 이○선, 하○임, 김○주, 김○애, 김○선, 박○근, 함○란, 길○옥, 강○출, 이△선, 박○선, 김○귀, 이○달, 이○산, 김○기 등 19명의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은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위안부로 끌려가”로 고쳐썼다.

최 검사가 특정한 이 사건 피해자 19명은 ▲우연제 ▲윤순만 ▲이용수 ▲정복수 ▲이옥선 ▲하수임 ▲김양주 ▲김경애 ▲김복선 ▲박필근 ▲함귀란 ▲길원옥 ▲강일출 ▲이옥선 ▲박옥선 ▲김옥귀 ▲이막달 ▲이수산 ▲김용기 등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의기억연대가 류 전 교수를 고소하면서 수사기관에 제출한 녹취 속기록에 따르면 문제의 수업 토론에서 류 전 교수는 최 검사가 특정한 이들 19명의 실명을 언급한 사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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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공소 제기하면서 최초 제출된 공소장 내용(위)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최종경 검사가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4단독 재판부에 제출한 공소장 변경 신청서의 변경된 부분(아래).

다만 류 교수는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여성 분들은 자기가 자발적으로 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냐?”하는 수강생(여성)의 질문에 “현재 매춘업이 성행하는데, 그 여성들은 어떻게 매춘업에 종사하게 된 것이냐?”며 “살기가 어려워서 매춘업에 들어가게 된다. 집안이 어렵고, 본인들은 돈을 못 벌고 하니 유혹을 받게 된다.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 역시 마찬가지(‘일본군 위안부’는 매춘의 일종)였다”는 취지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류 교수는 “생활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지, ‘내가 원해서’라고는 할 수 없다” “자의 반(半), 타의 반 매춘을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호소하고 있는 이용수 씨의 경우 지난 1992년 8월15일 방영된 한국방송(KBS) 특집 프로그램 〈나는 여자정신대: 민족수난의 아픔을 딛고서〉에 출연해 자신이 ‘정신대’(위안부)가 되는 과정과 관련해 “그때 나이가 열여섯 살인데, 헐벗고 입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인가가 원피스 한 벌하고 구두 한 켤레를 갖다 줘서, 좋다고 따라갔다”며 ‘가난’을 언급했다. 또 이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과는 거리가 먼 내용으로, 오히려 ‘무단 가출’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초기 증언에서 길원옥 씨는 “(평양 기생권번 동창들과의 모임에서) ‘중국에 가면 편안하게 일하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노래나 하고 술을 파는 정도의 일로 생각해 화북(華北)으로 향했다”고 했다.

검사 측이 피해자를 특정한 만큼, 류 전 교수 측은 방어권 행사 차원에서 이들 19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 등록 내용과 피해자 등록 심의 절차 등에 대한 자료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무기대등의 원칙’에 따라 공소사실의 근거가 되는 자료들을 피고 측에 제공해야 한다. ‘무기대등의 원칙’이란 공소를 제기하는 검사와 피고 양 당사자가 대등한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검사는 자신이 갖고 있는 증거들을 피고에게 동등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여성가족부가 그동안 ‘개인 신상’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록 절차·내용 중 일부가 공개된다.

이용수 씨에 대한 피고 측 증인신문도 가능해진다. 이 경우 류 전 교수 측은 이용수 씨에게 ‘증언 번복’의 이유를 집중적으로 물어볼 가능성이 크다.

다음 공판 기일은 5월12일 오전 11시 40분으로 예정됐다. 재판부는 서울서부지검이 제출한 공소장 변경 허가 여부를 이때 밝히겠다고 했다.

한편, 서울서부지검은 류 전 교수를 불구속 기소하면서 “공소 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 측 증인신문이 있었던 두 번째 공판 직후 “검찰은 공소사실 입증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평이 나왔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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