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철 칼럼] 권위와 역할을 찾기 - 누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것인가
[이인철 칼럼] 권위와 역할을 찾기 - 누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것인가
  •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프로필사진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21.04.29 11:22:18
  • 최종수정 2021.04.29 11:2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4월 보궐선거 이후에도 집권 여당은 전혀 변화가 없다. 종래에 걷던 길을 그대로 걷겠다는 그들의 다짐과 행보는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된 그들만의 선민의식에서 유래한 것 같다. 80년대를 통해서 그들이 만들어온 담론에 기초하여 자신들만이 만들 수 있는 세상에 대한 환상이 그들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그들만이 시대를 이끌어나갈 정치 지도자로서 자격이 있으며 그들의 행위는 어떤 경우든 정당화가 되고 다른 이들은 그들을 무조건 따라야 하고 그들에게 양보해야만 한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2011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과 안철수간의 단일화 과정을 보면 깔끔하게 차리고 나온 안철수와는 대조적으로 턱수염을 기르고 나타난 박원순의 모습에서 박원순은 안철수를 압도하는 이미지를 연출함으로써 단일화는 협상의 문제가 아니라 포기해야 할 사람이 당연히 양보하는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그들의 사고방식을 잘 표현한 사건이고 이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들은 결코 민주적인 세력이 아니다.

운동권이었던 하태경 의원은 안철수는 80년대 도서관에서 공부만 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운동권에 대한 불필요한 부채의식이 꽤 큰 것 같다는 평을 한 바 있다. 80년대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운동권의 사고 방식에 호감을 갖고 그들의 정치적 입장에 동조하는 경향이 있는 386 세대가 갖게된 잠재의식을 정확하게 표현하였다. 현 집권세력의 집권은 이러한 386세대의 학생운동에 대한 호감과 지원 및 이를 자원으로 삼은 운동권의 엘리트 의식과 사명의식이 만든 정체성이 배경에 있다. 과거에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였다는 자책감과 채무의식은 그들이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감싸안는 정서를 만들었고 이를 기반으로 그들은 정치적 선민의 위치를 차지했다.

부채의식 여부는 80년대 이후 전대협과 한총련으로 이어지는 학생운동권세대와 70년대 민주화세대를 가르는 분기점이다. 복거일 선생은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부채의식을 가지지 않았다고 언급한바 있다.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것과 공부를 해서 자기 분야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국가에 이바지하는 일이어서 부채 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70년대 민주화세대와 구분되는 80년대 안철수 세대의 부채의식은 특별한 권위의식으로 일관하던 전대협 운동권 세력의 권력추구적인 행태가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오늘의 집권세력의 오만과 독선은 당시의 그들의 행태에서 이미 배태되어 있었던 것 같다.

80년대의 분위기는 운동권을 당대의 사회를 바꾸는 변혁운동의 주체로서 그들만이 정치적 정당성이 있는 유일한 정치세력으로서 자격이 있다는 그들만의 주장을 수용하게 하였다. 그러한 수용은 운동권에 대한 부채의식의 공인이었고, 그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80년대는 이념이 아니라 엘리트의식을 가진 학생운동권의 정치적 지도력에 대한 환상을 만들었다. 30년의 세월이 지나고 그들이 한국사회를 이끄는 주류가 되었다. 그들만이 자격이 있는 정치엘리트라는 신화를 기초로 80년대에 만들어진 사유에 기초하여 과거사를 가공해서 아직도 친일세력과 반일세력이 전쟁중이라는 백년전쟁같은 정치 선전물이 만들어졌다. 그들의 장기집권을 위한 이러한 선전물들이 하나씩 TV의 정규방송 편성처럼 공인된 환상이 되어가면서 오늘의 주류 문화로 형성되었다.

특정한 정치세력의 활동에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역할을 인정하게 하였다. 그러한 권위 부여가 그들의 행태를 용인하게 하고 그들을 따르지 않는 것에 대한 부채의식을 만들었다. 신주류 세력의 등장은 정치적 사건이나 세대교체라는 측면도 있지만 이와같은 부채의식으로 표현되는 그들에 대한 권위의 부여라는 상황이 만들었다. 신주류세력의 잘못된 행태까지도 용인하여 주고 특히 공화국을 해치는 결과를 낳는 잘못된 행동까지도 받아들인 사정들이 누적된 결과이기도 하다. 변화는 급격하게 오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침윤의 시간을 통해서 온다. 마음의 자리를 이미 내어주었을 때에 더 이상 반대할 수 없다. 그들을 자신과 완전히 동일시하게 된다. 지나간 안철수의 연이은 양보 사건은 이러한 배경에서의 불필요한 부채의식의 발로라는 현실을 보여준다. 많은 이가 동의하는 가운데 그렇게 주류세력은 교체되었고 변화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이렇게 그들의 신화가 만든 그들의 정체성에 대한 환상에 이끌려서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게된 결과로서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구축했다. 조국사태와 윤미향사건 그리고 추미애의 추태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이 집권주류 세력의 도덕적 자산을 무너뜨리고 정치적 정당성에 타격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무너지지 아니한 것은 국민의 마음속에 그들 세력을 대체하고 그러한 정치적 리더십의 정당성을 제시할 만한 어떤 세력이 형성되었다는 확신이 없었고, 구 주류세력은 여전히 과거의 모습으로만 비추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4월 보궐선거도 집권세력의 실정의 연속으로 인한 결과이지 대체세력을 결정적으로 선택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신주류세력의 등장이후 그들의 실패가 만든 공백에서 누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경쟁 및 선택의 장이 전개되고 있다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민주화이후의 대한민국은 신주류세력을 대체하여 이 사회를 이끌어나갈 정신적 권위를 지닌 대안을 찾고 있다.

모두의 실패가 있었고 그 이후에 등장한 경쟁과 선택의 장에서의 승리는 상대방의 잘못과 비리를 드러내는 것으로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지난 선거가 보여준다. 상대방의 잘못을 드러내고 폄훼하면서 우리끼리 만족을 얻는 정신승리로 되어질 것이 아니다. 정치를 주도하는 세력으로서 인정을 받을만한 자격을 입증해야 한다. 현재의 집권 세력의 실정을 비판하고 그들의 잘못을 통쾌하게 여기는 것만으로 변화가 오지 않는다. 대체 세력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과거에 대한 불필요한 부채의식을 털어버리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지난 시간의 경험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와서 해야할 현실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그동안의 운동권세력의 주도하에 만들어진 정치적 환상들이 정치적 도그마를 만드는 정치기술의 산물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현실의 과제를 바라보고 이에 집중해야 한다, 선택의 장이라는 현실이 미래의 대한민국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모두의 피할 수 없는, 피해서는 안되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행동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으며, 한편 행동하는 방법도 검토해야 한다. 위대한 지도자가 혜성같이 등장해서 세상을 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정치적 역량이 만들어지고 정치세력으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 얼마되지 않는 운동권 세력이 각계에 진출하여 자리를 만들고 역량을 키우면서 행동하여온 지난 시간들이 오늘의 현실에 이른 원인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제6공화국 30여년이 지나서 신주류세력의 등장과 그들의 실패 이후의 공백이라는 선택의 장에서 신뢰를 얻고 책임을 떠안는 대체 세력으로서 위상의 변화와 그러한 자격을 어떻게 부여받을 것인가가 과제이다. 변화를 만드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변화로 이끌수 있고 어떻게 실천해야 하는지의 실행의 문제다. 그들의 오만과 독선을 물리치고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어떻게 하여야 정치적 지도력을 세우고 어떻게 이를 공인을 얻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