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른 중국의 GDP 상승...투키디데스 함정은 늘 숙명적이나 '하나의 태양'으로 질서는 재편
미국, 반도체 기술동맹 통해 중국 견제하고 있지만...文 "중국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
美, 반도체 대미투자 촉구로 '양자택일' 신호...'백신'과 '반도체'라는 경제적 실리마저 놓치나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은 기존 패권국가와 빠르게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이 결국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한다. 앨리슨(G. Allison)은 그의 저서 《불가피한 전쟁(Destined  for  War, 2017)》에서 세계 도처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져 서로 원치 않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고 분석했다. 

O 2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신흥강대국의 국내총생산(GDP)이 패권국의 절반에 육박하면 투키디데스 상황으로 인식한다. 1985년 일본 엔화의 평가절상을 초래한 ‘플라자 협약’도 투키디데스 함정 상황에서의 통화질서 재편이었다. 당시 일본의 GDP는 미국의 절반 수준이었다. 그림은 최근 미국과 중국의 GDP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2020년 기준 중국의 GDP는 미국의 71%로 미국을 턱 밑까지 추격하고 있다.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투키디데스 함정은 늘 숙명적이다. 하지만 다시 ‘하나의 태양’으로 질서는 재편된다. 

 미국이 간파한 중국의 아킬레스건은 첨단 기술이다. 중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여전히 취약하다. 따라서 미국 중심의 반도체 기술동맹을 맺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고사 시키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 때 이미 통신장비 업체 ‘화훼이’를 침몰시킨 적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의 중국 고사 정책을 그대로 승계하고 있다. 미·중 간에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O 문재인 대통령 ‘보아오 포럼’ 발언 적절 했나  

중국 하이난성 ‘보아오(博鰲)’에서 지난 18일부터 나흘 간 ‘보아오 포럼’이 열렸다. 중국판 ‘다보스 포럼’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올해는 보아오 포럼이 20주년을 맞은 데다 미·중 갈등 고조로 중국 입장에서 세계적 우군확보가 절실하기에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이번 보아오 포럼에는 실시간 화상 회의와 영상 메시지로 한국과 중국, 인도네시아, 뉴질랜드, 싱가포르, 캄보디아, 몽골 등 7개국 정상이 참가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세계 대변화 국면'이며 부제는 ‘글로벌 거버넌스와 ‘일대일로(一帶一路) 협력 강화’이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주석이 내세운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 재편을 뜻한다. 시진핑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세계화라는 ‘중국몽(中國夢)’을 실현시키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코로나로 교역·투자 환경이 위축되고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며 "큰 나라와 작은 나라,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서로를 존중하며 동등하게 협력할 때 인류의 미래도 지속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구동존이(求同存異)’는 포용과 상생의 길이며 코로나 극복에도 중요한 가치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나아가 "포용성을 강화한 다자주의 협력을 새로운 시대로 가는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며 "지난해 체결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역내 경제 협력의 속도를 높이고, 다자주의에 대한 신뢰 회복과 자유무역 발전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은 외교적 언사로 보이지만 곱씹어보면 ‘중국에 경사(傾斜)되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우선 ‘구동존이’는 ‘서로 다른 점은 인정하면서 공동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시주석이 미국을 겨냥해 ‘남의 나라 정책과 가치에 대해 간섭하지 말라’는 의미로 써온 말을 문재인 대통령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백신 선진국들이 수출을 통제하려는 이기주의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문대통령의 발언도 미국을 향한 중국의 불만과 닿아 있다.    

 RCEP은 중국이 주도한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10국 등이 참여한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를 추진하자, 중국이 TPP 견제를 위해 주도한 협상이다. 일본은 RCEP과 TPP에 동시에 가입했지만, 한국은 RCEP에만 가입했다. 한국은 경제협력에서도 미국이 아닌 중국의 네트워크를 선택한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 안보·경제 등 전방위 패권전쟁이 격화되는 와중에 더욱이 내달 말 방미를 앞둔 시점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와 ‘포용적 다자주의’ 및 RCEP을 강조한 것은 투키디데스 함정에서 한국은 중국 편에 서겠다는 의사를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나 진배없다.    

 O 대중 경사(傾斜)로 무엇을 얻었나 

 문정부 들어 외교 우선순위도 중국이 동맹국 미국보다 앞섰다. 비근한 사례로 문 대통령은 새로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에 앞서 시주석과 통화하면서 “중국 영향력이 날로 강해지고 있다”고 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취임 후 첫 일정도 중국 외교장관에게 시주석 방한을 요청한 것이었다. 시진핑 방한은 문재인 정권의 변함없는 첫 번째 ‘버킷리스트’다. 

 2020년 2월 우한 바이러스가 창궐했을 때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 시키지 않은 것도 실은 시진핑의 방한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보아오 포럼에서 문대통령이 언급한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서로를 존중하며 동등하게 협력할 때“에서 큰 나라는 ‘중국’이다, 국가 간 경제협력을 강조하면 충분하다. 굳이 ‘큰 나라 작은 나라’를 구분할 필요는 없다. 2017년 방중 했을 때에도 그는 “큰 봉우리, 작은 봉우리”를 외쳤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금까지의 미국과의 관계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초로 한 ‘가치동맹’이었다면 앞으로의 동맹은 ‘평화동맹’ 이어야 한다고 거들고 있다. 그래야 중국과 북한의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을 세워주기 위한 일이라면 기존의 한미 동맹의 성격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서슴치 않고 있다. 어느 쪽이 함께 피 흘린 동맹이고 어느 쪽이 피를 흘리게 한 적성(敵性)국인지 조차 구별되지 않는다. 

문정부 출범 이후 4년간 굴욕적인 대중 외교 결과는 참혹하다. 문대통령의 혼밥,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고수,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침범 등이 그 사례다. 문재인 정부의 중국 사대주의는 국민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었다.
 
O 백신과 반도체라는 경제실리 마저 놓친 문재인 정부

 한국은 코로나 백신 확보 실패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을 ‘백신 이기주의’로 몰아세우고 있다. 백신을 개발한 국가가 우월적 지위에 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리고 미국의 ‘자국민 우선 접종’도 탓할 일이 아니다. 모더나와 화이저가 백신을 개발 중에 있을 때, 백신 도입 계약에 공을 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사회적 거리두기 등 ‘K-방역’이 성공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백신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인사를 신설된 방역기획관에 임명한 처사이다. 이제 백신 확보는 미국의 ‘배려’ 없이는 공백 사태가 불가피하게 됐다. 일본의 경우, 스가 총리가 화이자와 담판을 지아 일정량의 백신을 확보했다. 미국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일 19개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백악관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확대와 일자리 늘리기 계획’을 천명했다. 대통령이 반도체 회의에 모습을 드러낸 것 자체가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동맹’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이다. 이날 회의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삼성전자와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를 포함해 네덜란드 NXP 등 외국 반도체 기업, 이 밖에 포드·제너럴모터스(GM)와 노스럽그러먼(방산 기업) 등이 참여했다. 이는 미국 경제의 근간인 자동차·방산 업체들과 해외 반도체 기업들의 ‘전략적 협업’을 늘리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삼성전자에 5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 공장의 미국 내 증설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내 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로서는 고민이 싶어질 수 밖에 없다. 대미투자를 촉구한 것은 미·중 사이의 줄타기 외교가 아니라 양자택일을 하라는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한 달 뒤 개최되는 한·미 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그 의미가 각별하다. 외교는 국익을 개척하고 추구하는 처절한 소리 없는 전쟁이다. 중차대한 시기에 중국에 경사(傾斜)되는 것만큼 패착은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친중(親中)을 감추는 ‘전략적 모호성’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해 ‘가치동맹’을 복원하는 것이다. 그 바탕 위에서 반도체·백신 문제를 풀어야 한다. 한·미 동맹 복원에 모든 외교 역량을 쏟아 부어야 한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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