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현재 5.18은 무엇을 뜻하는가. '검찰개혁'이자 '민주당 재집권'이고, '주한미군 철수'이자 '국가보안법 철폐'이며, '이석기 석방'이자 1991년 '분신 정국'이고, '민주노총 총파업'이자 '국민의힘 해체'며, '세월호'이고 '노무현'이다. 이렇게 5.18은 당파적으로 재현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해먹는 종북 좌파의 상징자산 대부업─이것이 2021년 5.18의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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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

광주 5·18이 올해로 41주년을 맞았다.

여·야는 5·18 메시지를 두고 설전(舌戰)을 주고받았다. 윤석열 전(前) 검찰총장은 "어떤 형태의 독재·전제(專制)이든, 이에 대한 강력한 거부와 저항을 명령하는 것"이라며 5·18의 자유민주주의적 성격을 강조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5.18정신을 북한에 전파하자"고 했다. 김영환 전 의원은 "오월 광주가 정치인의 전시공간이 되었으며, 오늘 외지(外地)에서 모여 고개를 숙인 자들은 그날 대체로 침묵한 자들"이라는 표현으로 날선 비판을 가했다.

여권은 격하게 반응했다. 민주당 정청래, 김남국 의원은 윤석열 전 총장에게 5.18을 논할 만한 '자격'이 있냐고 반문했고, 열린민주당의 김의겸 의원은 윤석열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에 빗댔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방명록에 "광주 정신은 검찰개혁"이라 썼고, 김두관 의원은 "차기 대선(大選) 승리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는 길"이라고 말했다.

여야의 반응을 요약하자면 야권은 "5.18이 민주당 것이냐"고 물었고, 여권은 "내 것에 손대지 말라"고 응수한 셈이다. 공방(攻防) 이면에는 좌파의 '상징자산' 남용이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좌파는 촛불, 5.18, 세월호, 위안부 등 자신들의 상징자산을 과도하고 당파적으로 소비했다. 상당수 국민 사이에서는 이에 대한 피로도와 불만이 누적됐다. 그렇기 때문에 "5.18이 민주당 것이냐"는 야권의 질문에 격렬히 반응한 것이다.

그런데, 5.18의 당파성 문제는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소위 '오월단체'와 호남 시민사회 역시 '당파적'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오히려 민주당보다 더 강하게 비판받아야 할 집단이다.

◇5.18기념행사의 당파적 재현(再現)

기념행사의 핵심 축은 과거 사건에 대한 재현(再現)에 있다. 행사의 주체는 사건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재현하여 어떠한 의미를 전달할지 결정한다. 지난 몇 년간의 행사 내용을 볼 때 5.18기념행사는 당파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힘들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역대(歷代) 행사 기조를 보자. 2015년 〈세월호 1주기와 함께하는 5.18기념행사〉, 2018년 〈촛불 민주주의 계승과 적폐청산 요구〉, 2019년 〈한반도 평화통일 및 동북아·세계평화 실현〉이다.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옛 전남도청. 2021. 5. 17. / 사진=박순종 기자
광주광역시 동구 금남로에 위치한 옛 전남도청. 2021. 5. 17. / 사진=박순종 기자

행사 기조부터 중구난방이다. 여기에 뭔가 유일하게 '일관성'이 있다면, 민주당으로 기운 '당파성'뿐이다. 세월호·촛불·적폐청산·평화통일 등은 모두 현 정부의 아젠다이자 상징자산이다. 심지어 민주당의 만든 정치적 전선(戰線)과 시기까지 일치한다. 이처럼 5.18기념행사는 민주당이 야당일 때에는 정부를 비판했고, 민주당이 집권하면 관제적 성격을 보여줬다. 민주당은 자신의 정치투쟁을 항상 5.18과 연결시켜 명분을 강화한다. 즉 오월단체와 민주당은 정치적 '한 몸'이라는 것이다.

죽음은 당파성을 극대화한다. 예컨대 5.18은 '민주화운동'이라는 것이 사회적 합의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은 해난(海難) 사고다. 양자는 아무 관련이 없다. 둘을 잇는 유일한 매개체를 굳이 꼽자면 '죽음'일 것이다. 좌파는 비극적 죽음으로 대중(大衆)의 분노를 자극함으로써 정치적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를 위해 5.18과 세월호 사건을 엮는다. 개별 사건을 '죽음'으로 매개하고, '언더도그마'의 위치를 선점하며 정치적 반대파를 악마화한다. 이 때 5.18은 전략적 효용이 가장 높은 상징자산이 된다.

한편, 종북 세력도 5.18기념행사에 깊이 개입했다. 이미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듯, 몇몇 종북 단체들이 집행위원회 구성단체로 들어가서 국가보안법 폐지, 미국 책임 역할 규명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5·18 41주년 대학생 행사위는 "'5.18 학살배후' 미국, 사죄하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옛 전남도청에 걸었다. 5.18 공식 조직의 공식 입장이 '반미'(反美)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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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금남로에는 '반미'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가 나부었다. 2021. 5. 18. / 사진=나연준

그뿐이 아니다. 민주노총 광주전남본부는 오월정신계승을 내걸고 총파업을 결의했으며, 대법원으로부터 이적 단체 확정 판결을 받은 '코리아연대'의 후신으로 알려진 민중민주당은 금남로에서 “민주의 봄은 미제국주의를 몰아내야 온다”는 삐라를 뿌렸다. 또한 이석기 석방과 국가보안법철폐를 주장하는 현수막이 오월정신계승이란 표제를 달고 광주시내 곳곳에 걸렸었다. 대진연은 수시로 국민의힘 광주시당으로 난입하여 오월의 이름으로 ‘국민의힘 해체’을 외쳤다. 좌파에게 오월광주는 정치적 이익을 위해 멋대로 남발하는 당파적 백지수표다.

◇죽음으로 잉태하는 사업

올해 5.18기념행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1991년 5월 열사투쟁'에 대한 재조명이다. '1991년 열사투쟁 30주기 광주전남기념사업'이란 주제로 학술 대회와 사진전 〈다시, 꺼내놓은 1991〉이 진행 중이고, 유가족 구술(口述) 아카이브 및 추모곡 뮤직 비디오까지 제작할 계획이다.

이것은 좌파가 1991년 분신(焚身) 정국을 민주화 운동의 역사로 편입시키고, 관련 기념사업을 시작하려는 정지(整地·지표 다지기) 작업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는 〈잊혀진 투쟁, 91년 5월〉이라는 테마로 기사를 연재하고 있다. 여러 '열사'들의 기념사업회가 모여 '민족민주 열사·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약칭 '추모연대')도 출범했다. '추모연대'의 주류는 주사파(NL·주사파) 계열로 알려져 있다. NL은 이미 명분과 조직을 갖추어 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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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다시, 꺼내놓은 1991〉의 광고 배너. 2021. 5. 18. / 사진=나연준

〈다시, 꺼내놓은 1991〉의 사진전 자료집은 행사의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제 30년, 1991년 열사 투쟁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투쟁으로 온당하게 재평가되고 재조명되어야 한다. 1991년 5월은 1980년 5월, 1987년 6월의 연장선에 서있다.”

즉, 1980년 5월과 1987년 6월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 서사에 1991년 5월을 추가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말도 안 된다. 민주화 과업은 1987년 6월에 성취됐다. 이들의 논리는 1945년 8월16일부터 독립운동을 했다는 주장만큼 억지스러운 것이다.

이와 같은 서사화 작업에는 '죽음'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기념사업회 김정길 상임대표의 인사말을 보자.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자기 몸을 불태워 싱싱한 세포 하나하나 타들어 가는 고통을 감내하면서 구도자적 자세로 죽어갔다. 동서고금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놀라운 역사다. ... 1991년 열사투쟁의 힘으로 내각제 개헌 음모를 막아냈고, 수백 수천만의 촛불이 되어 박근혜를 탄핵했지만, 열사들의 염원을 풀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광주·전남 추모연대의 박봉주 공동대표는 이렇게 쓰고 있다.

“민주주의를 완성하고 열사의 꿈이자 우리의 꿈인 자주·민주·통일의 세상을 위해 다시 한 번 투쟁을 다짐합니다”

명백하게 죽음을 미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의로 포장된 죽음은 정치 투쟁의 에너지다. 좌파는 항상 죽음의 무게를 잰다. 저울의 눈금은 정치적 효용가치를 보여준다. 시인 김지하는 1991년 5월 그 유명한 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에서 핵심을 짚었다.

“지금 당신들 주변에서 검은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은 네크로필리아 시체선호증이다. 싹쓸이 충동, 자살특공대, 테러리즘과 파시즘의 시작이다.”

“남의 죽음을 제멋대로 부풀려 좌지우지 정치적 목표 아래 이용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수 있다고 대답하는 모양인데, 그렇다. 바로 그 대답에 당신들의 병의 뿌리가 있고 문제의 초점이 있다.”

그때도 지금도 좌파는 죽음을 이용한다. 그래서 죽음 앞에 구도자(求道者)적 자세이니, 자주·민주·통일이니 하는 수식어를 거리낌 없이 붙일 수 있다. 죽음으로 대중의 정서를 파고들고, 기만적 서사로 이성을 마비시킨다. 에릭 호퍼(Eric Hoffer)의 통찰을 빌리자면 죽음을 "하나의 연극적 몸짓"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연극 공연에 참여하는 것처럼 느끼게"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연극'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화 투쟁'을 하고 있다는 환상이다. 박근혜의 잔당을 촛불로 무찌르고 마침내 조국통일을 이룩하자는 망상이다.

좌파가 죽음을 정치적 연극의 소재로 만든다는 것은, 결국 '써먹을 수 있는 죽음'과 '그렇지 못한 죽음'만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좌파는 30년 전 '열사'의 죽음은 절절하게 재현하지만, 지난해 북한 총격으로 서해에서 사망한 공무원의 죽음은 망각한다.

만약 1991년 분신 정국이 민주화 운동으로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다면, 그 다음 수순은 기념사업회가 난립해 각종 정부 보조금을 쥐어짜내는 것이다. 30년 전 김지하는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이 출발점이자 도착점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좌파는 죽음이 출발점이자 도착점이다. 좌파의 기념사업은 죽음으로 잉태하는 산업이다. 5.18은 이들 기념사업체의 모기업으로 전락했다.

◇"원 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

한편 5.18기념행사 중 하나로 〈보루, 예술이 된 노무현〉이란 전시회도 열렸다. 도대체 5·18과 노무현이 무슨 직접적 연관이 있나. '보루'란 노무현이 생전에 한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말에서 따온 듯하다. 예술은 명색이 전시회니까 억지로 갖다 붙였을 것이다. 여기서 ‘보루-노무현’과 ‘예술’의 연결 지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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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보루, 예술이 된 노무현〉의 광고 배너. 2021. 5. 18. / 사진=나연준

전시 작품은 노무현 초상화와 흉상, 손글씨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작품 설명 역시 노무현에 대한 그리움과 찬양 일색이었다. 아이돌 팬덤 굿즈 수준의 물건이 예술과 5.18의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전시회 기획의도를 보자.

“지켜내지 못했으나 그 분을 기억하고 위무하며 살아생전과 그 후, 그로 인해 영감을 받았던 분명함이 원 소스 멀티-유즈(one source multi-use)로 재생되길 간절히 바랐다”

'원 소스 멀티-유즈'라고 한다. 본인들은 노무현을 위무할테니 관람객이 알아서 5·18과 노무현을 엮어보라는 식이다. 이렇게 불친절하고 무책임한 전시회가 있을 수 있나. 전시실에는 노무현재단 후원신청서가 놓여 있었다. 이것이 원래 기획의도일 것이다.─"5.18을 맞아 노무현을 위무해라, 위무는 후원으로 증명해라."

하지만 '원 소스 멀티유즈'는 그 의도와 무관하게 5.18기념행사의 민낯을 보여준다. 5.18이라는 하나의 사건(원 소스)이 있고, 여기에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각자의 당파적 욕망(멀티-유즈)을 덧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현재 5.18은 무엇을 뜻하는가. '검찰개혁'이자 '민주당 재집권'이고, '주한미군 철수'이자 '국가보안법 철폐'이며, '이석기 석방'이자 1991년 '분신 정국'이고, '민주노총 총파업'이자 '국민의힘 해체'며, '세월호'이고 '노무현'이다. 이렇게 5.18은 당파적으로 재현된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해먹는 종북 좌파의 상징자산 대부업─이것이 2021년 5.18의 자화상이다.

나연준 객원 칼럼니스트(제3의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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