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근 칼럼] 언론특보들의 병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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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21.06.08 09:47:21
  • 최종수정 2021.06.0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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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보니 차기 대통령선거가 3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미 정치권은 물론이고 모든 미디어들도 온통 대권향방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민주주의는 30% 정치 열성층과 30% 무관심층으로 구성되었을 때 가장 이상적이라는 주장에 비추어보면, 분명 우리나라는 정치과잉국가임에 틀림없다. 광화문 촛불시위에 수만·수십만 군중이 모이고 정치적 요구인지 주장인지 모를 청와대 청원 게시판 글에 동의하는 숫자가 삽시간에 수만이 넘어가는 나라다. 윤석열을 소재로 한 책이 본인 의사와 무관하게 난립하는가 싶더니 사실관계도 맞지 않고 표현도 정제되지 않은 ‘조국의 시간’이 판매 첫날 10만 부가 완판되었다고 한다. 정치가 모든 것을 마구 삼켜버리고 있는 진한 회색빛 한국 사회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정권 아니 대통령이 모든 영역을 다 먹어버리는 승자독식 사회다. 대통령 이름으로 임명장 주는 자리가 5만 개가 넘는다고도 하니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러니 대통령선거 때만 되면 방귀깨나 뀐다고 하는 각계 인사들이 각 후보 캠프에 자의반·타의반 합류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렸다. 정치권 인사들은 물론이고 수백에서 수천 명에 이르는 교수·전문가들이 포럼이니 자문단이니 하는 이런저런 이름으로 줄을 선다. 심지어 여기에 끼지 못하면 무능한 사람인 것처럼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각 후보 진영에서 이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전문지식이 아니라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러 분야에 걸쳐 이렇게 많다’는 일종의 세몰이 과시용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후보 뒤에 서 있는 ‘병풍부대’다.

그러니 정치와 크게 관련 없어 보이는 예술·연예계 인사들까지 선거 때만 되면 정치권에 동원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실제 선거 때 줄 잘 못 서서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연예인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정치권력이 국민 생활 곳곳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해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나 성향·참여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의 정치적 참여(좋게 말해 참여라 하자)가 각자의 활동과 직접 연계된 생계형 혹은 입신양명형 목적이라면 그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이렇게 동원되는 분야 중에 빠지지 않는 아니 비교적 큰 규모를 가진 영역이 바로 언론이다. 이전에 있었던 몇 차례 대통령선거에서 모든 후보들은 각각 수십에서 수백명 규모의 ‘언론특보단’을 운영했다. 조금 과장하면 각 캠프의 언론특보 숫자만 합해도 알만한 언론사 퇴직 인사 전부를 망라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공개되지 않은 현직 언론인들까지 더하면 그 수는 더 커질 것이다(실제 정권교체 이후 정부산하 언론기관이나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론사·산하 단체들에 임명된 현직 언론인들을 보면 그 숫자는 생각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그러니 선거 기간 중에 특정 후보의 언론특보라고 스스로 만든 명함을 돌리는 인사들도 있다고 하고 집권 후 캠프에서도 파악되지 않는 언론특보들이 우후죽순처럼 창궐하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각 갬프의 ‘언론특보’들이 병풍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부는 자기 후보에게 필요한 정치PR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런 일에 수십에서 수백명 넘는 언론계 출신 인사들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솔직히 ‘똘똘한 소수 정예 전문가’들만 있으면 된다. 아니 전문 PR회사나 정치광고 실무자들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가능성이 더 높다.

더구나 인터넷 미디어들의 영향력이 기성 미디어를 압도하고 있는 미디어 패러다임 변화로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언론특보들 역시 다른 전문가집단들과 만찬가지로 세과시용 병풍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언론특보들의 세과시 병풍놀이의 병폐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선거를 마치고 나면 줄을 섰던 이들에게 보상 아니 대가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집권 이후 정권이 공식·비공식적으로 간여할 수 있는 언론사나 각종 언론기관의 장이나 임원 자리를 보존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차라리 공천을 받아 정치권에 입문하는 것으로 그나마 괜찮다.

하지만 이들 인사들을 정치적 독립성을 표방하는 공영방송이나 국가·지방자치단체들이 소유·운영하고 있는 언론사의 장이나 임원으로 배치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한마디로 언론영역을 선거에서 승리한 후 수 많은 언론특보들에게 보상하기 위한 일종의 정치적 전리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정치권에서 제기하고 있는 언론의 정치적 독립·공정성 같은 구호들은 허황된 것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요즘 자주 회자되고 있는 공정과 정의라는 화두와 가장 배치되는 것일 수도 있다.

지금 국회에서 여·야간에 충돌하고 있는 공영방송 거버넌스 개편 논쟁 – 말이 거버넌스 개편이지 여·야가 공영방송 사장과 이사를 몇 자리씩 나누어 먹는가가 주된 쟁점이다 – 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여·야가 대규모 언론특보단을 조직하지 않으면 된다.

이미 각 후보 진영에서 메머드(mammoth) 대선 캠프를 구성하고 있다고 한다. 일부 후보는 이미 무슨 포럼이니 하는 전문가 지지조직을 출범시켰다. 그나마 유력 야권 주자로 인식되고 있는 후보가 대규모 캠프를 조직하지 않겠다고 하니 여기에 조그만 기대라도 걸어 본다.

황근 객원 칼럼니스트(선문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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