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원영태 문화비평가] 트로트 유행의 정치적 함의
[기고/원영태 문화비평가] 트로트 유행의 정치적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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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편뿐만 아니라 공중파 방송에도 트로트 열풍은 거세다. 지금까지 트로트는 장년, 노년 세대나 즐기는 장르였고 주류 방송에서는 아이돌 음악에 밀려 인기가요 차트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가요무대나 지방행사에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 요즘 남녀노소를 초월해 소위 “뽕짝”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이러한 분위기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레트로 감성과 연결된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집단적인 경향은 좋았던 기억만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힘들었던 과거는 잊는, 개인이 갖는 무드셀라 증후군과는 분명 다른 현상이다.

트로트는 주로 산업화, 고도성장 시절 떠나온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어머니에 대한 연민, 과거 지나간 사랑에 대한 향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분명 힘들고 고됐지만 그래도 젊었고 희망이 있었던, 넉넉지 않았어도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다. 이 세대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세계에 대한 불만과 한탄을 잊고 자신이 확실히 이해할 수 있는 익숙했던 세계로 회귀하려는 심정을 트로트로 달래는 것이다.

반면, 보릿고개를 모르는 부유한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에게는 생전 겪어 보지 못한 만만치 않은 현실의 괴로움에 처해 있다. 청년들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향후 자신의 부모세대보다 더 잘 살기 힘들 것이라는 절망적 사실에 직면한다. 이들의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가장 공정하고 진보된 사회를 얻을 것이라는 희망은 실망을 넘어 좌절과 배신감으로 곤두박질쳤다.

이들은 트로트를 들으며, ‘공정’이나 ‘평등’이라는 말이 갖는 달콤한 허구성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틀딱”이라 조롱받던 조부모, “꼰대”라 여겼던 부모세대가 이루었던 업적과 그들이 소중히 여겼던 효도, 애향 등과 같은 전통적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트로트는 현재 다른 어떤 장르보다 남, 녀, 노, 소 전 세대에 걸쳐 가장 많이 사랑받는 장르가 된 것 같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물론 방송사의 기획이 한몫한 경우다. 보수적 중, 장년층이 가장 관심 있게 보던 방송사의 뉴스는 정치성 편향성 때문에 시청률이 바닥을 찍었고, 공정이 가장 큰 화두인 젊은 층에도 선택을 받지 못했다. 방송사의 영향력은 하락했으며 더군다나 전 연령층에 걸쳐 퍼진 스마트 폰과 더불어 유튜브의 약진은 특히 공중파의 재정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

유튜브의 다양한 채널을 통해 뉴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관심사를 충족하기 시작한 중, 장년, 그리고 노년층은 더욱 적극적으로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취사선택해 소비하기 시작했다. 시청률에 목마른 방송사들은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로운 듯한 트로트와 대중의 참여를 함께 끌어낼 수 있는 경연대회를 통합해 흥행의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우연히 발견한 젊은 층 에게도 통하는 트로트의 상업성에 각 방송국은 눈을 떴고 경쟁적으로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대응한다. 이로 인해 한동안 텔레비전에는 트로트가 끊일 날이 없었다.

혹자는 진보 혹은 좌파 진영에게도 트로트는 인기이니 이러한 해석을 침소봉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 30세대에게 지지를 점점 잃어가는 좌파들도 급격히 분화되어 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에게도 자칭 진보가 부끄럽지 않았던, 좋았던 시절이 있었고 이제 이들 사이에서도 자기들은 현 권력층과 다르다는 점을 어필해야만 미래 생존이 가능하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한다. 몇몇 소위 진보 지식인들은 이제 현 정부를 앞다투어 ‘손절’하고 있다. 아울러 탄핵 정국 집회에서 단골로 불렸던 노래들은 현 정부와 공동으로 레임덕에 직면한다. 여전히 80년대식 화석화된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에게도 그때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은 트로트는 쉽게 수용된다.

결국, 트로트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 정치적 올바름 (Political Correctness)에 발목 잡혀 말 한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들이 선택한 과거로의 집단적 도피처가 되었고, 예상치 못했던 좌와 우, 젊은 세대와 노년층이 만나는 화합의 장이 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586 운동권 기득권 세력의 몰락을 나타내는 문화적 징후로 읽히게 된다.

원영태 (문화비평/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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